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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영 선생 영전에.... (05.9.26.)
작성자 똥개 작성일 2014-03-13 17:14

그는 나의 글쓰기 스승 중 제일 윗자리에 꼽히는 분들 중의 한 사람이다.

글발 좀 날립네 하는 내 또래의 글쟁이 치고 한때 그를 깊숙이 사숙하지 않은 이도 드물 터이다.

혹시라도 언젠가 그의 전집이 나오게 된다면, 나는 아마도 그가 주도적으로 관여했던 잡지 이론의 창간호부터 종간호가 한 권의 결호도 없이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내 서가의 상석에 함께 모셔두게 될 것이다.

 

부고가 나기 무섭게 여기저기 실린 추모의 글들을 꼼꼼히 읽으면서.. 그의 '석연치 않은' 말년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들을 어렵지 않게 접하곤... 뭐랄까.. '난 좀 생각이 다른데...' 하는 생뚱맞은 느낌이 들었다.

 

91년 여름.... 그때 나는 후배들과 하필 '러시아 혁명사'를 공부하고 있었다. 그 시국에 '러시아혁명사'는 자칫 맥빠진, 머지않아 '한물 가게 될' 운명에 놓인 커리큘럼에 어설픈 뒷북을 치는 공염불이기 쉬웠지만, 의외로 우리 세미나는 오히려 무척 재미잇게 진행되었다. 세미나를 주도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 공의 상당부분을 그 당시 내가 꼭두새벽에 일어나, 정문은 지하철역에서 무척 가깝지만 정문에서 가장 먼 외진 곳까지 '산을 넘어' 가야 했던 한양대의 어느 계단 강의실까지 중뿔나게 쫓아가서 들었던 그의 정치경제학 특강이 내게 주었던 모종의 영감에 돌리고 싶다.

 

그의 강의 내용은 지금은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아마 대개는 졸앗을 것이다. 그리고 절반은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실각하던 날, 나는 꼭 그의 '한 말씀'을 들어야겠기에, 지금도 아침에 꼭 할 일이 있지만 일어날 자신이 없을때는 그렇게 하듯이 밤을 새운 뒤에 강의실로 달려걌다. 그는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자본론 2권의 난해한 대목을 세 시간 동안 덤덤하게 강의했다. 그리고 강의가 끝날 무렵 결국 더도 덜도 아닌 딱 '한 마디'를 남겼다. '살 맛이 안 난다. 공산당이 공산당을 총으로 치는 세상이라니.. ' 대략 이런 취지였을 것이다. 그것도 강의에 10여분 가량 지각을 한 것에 대한 변명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누가 끼여들려고 하면, 나도 바쁘단 말야.. 너만 바쁘냐..고 무시했을 텐데.. 무려 30여대에게 양보를 해 주면서 왔다'는 것이다.

 

사흘 뒤, 그 '혁명'(?)이 3일천하로 끝장이 났을 때, 나는 또 밤을 새워 그가 무슨 말을 할지를 기대하며 강의실로 달려갔다. 그는 여전히 아무일 없다는 듯이 복잡한 수식으로 가득한 강의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역시 강의가 마무리될 무렵, 착잡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안 할 말로 그렇게 해서라도 잡았으면 도로 뺏기지는 말았어야지...'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맥도날드에서 달랑 햄버거 하나를 하기 위해 30분 넘게 기다리는 그 나라 사람들은, 그들이 동경해 마지 않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유력한 모델 중의 하나로 여기는 서울 한복판에서 집이 없어 한겨울에 길바닥으로 내쫓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이를 방에 가둬놓고 일을 나갔다가 변을 당하는 사람들이 잇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서 얼핏 '사회주의를 할 능력이 없는 민족'이라는 '폭언'을 입에 담기도 했던 것 같다.

 

그 강의의 첫머리에 그는 불과 한두 달 전 '공적'으로 지목될 수밖에 없었던 김지하의 언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고 말랬었다. 아마도 김지하의 '환멸'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아파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사람에게 거의 우격다짐으로 난을 쳐달라고 조르다시피 해서 기어이 빼앗다시피 가져가서는, 환자에게 말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더라는 얘기를, 그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글로 써서 한 잡지사에 보내놓고는 마감 직전에 빼달라고 했다는 김지하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김지하에 대한 상념은 조선일보의 논객 류근일에게로 넘어갔다. 2년 동안 한국일보에서 기자를 하다가 중앙일보에 '신입'으로 들어갔던 건 순전히 류근일 밑에서 일하고 싶어서였다고, 자기 세대에게 류근일은 신화였다고... 그 류근일이 '변절'한 이유가 뭐겠느냐고.. 그것은 결코 '협박'에 굴복해서도 '회유'에 넘어가서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세대의 인식은 역사가 우리를 부르고 있다, 민중이 우리를 밀고 가고 있다는 데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그 역사가 그 민중이 배신할 때 갈곳을 잃었던 것뿐이라고... 그는 강의실을 가득 메운, 여전히 김지하에 대한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웅성거리는 젊은이들에게 '경고'했다. '녹슬은 해방구'에 나오는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그들이 30년이 넘도록 '종이 한 장' 쓰는 일을 못하고 있는 것과 4.19세대들의 훼절에 어떤 차이가 있을지를 물었다. '역사가 부르고 민중이 밀고 간다고 생각하면 역사가 민중이 배신할 때 갈곳이 없지만, 자기로부터 시작한 사람들은 심지어 김장군이 다시 내려와서 해방시켜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믿음도 버리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선 호기롭게 '역사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고 반론을 펼치는 학생에게 이렇게 일갈했다. '한 달 사이에 열 한 명이 죽었는데, 집권당을 2/3를 뽑아놓는 건 역사가 아닌가'

 

그 여름의 뜨거웠던 강의실을 생각하며, 나는 이제 우리가 그의 '환멸'(그런 게 있다면... 어느 추모의 글에서 그의 말년을 이 단어로 설명하고 있기에..)을 이해할 때가 아닌가... 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김지하의 '환멸'을 이해한다던 그의 '환멸'은, '공산당이 공산당을 총으로 치는 놈의 세상' 게다가 심지어 그걸 지키지도 못하고 '사회주의를 할 능력이 없는 민족'에게 다시 굴복하는 '난장판'에 대한 그의 '환멸'은, '진보'를 실천하려는 이들에게 그가 던져 주었던, 그리고 던져 주고 가 버린 '과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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