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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도 못 권하는 사회... (08.11.7.)
작성자 똥개 작성일 2014-03-13 17:55

영화로 만든 아내가 결혼했다를 봤다...

 

영화 자체로는.. (그러니까 오리지널 소설이 없었다고 한다면...) 썩 나쁘지 않았다.

제법 웰메이드 축에 드는 편이다. 깔끔하고.. 발랄하고....

 

그런데 문제는 소설과 영화의 간극이다.

(뭐 그 자체가 불만은 아니다. 어차피 소설 문법과 영화 문법은 다를 수밖에 없고 장르적 완성도를 위해 원작의 훼손은 불가피하다. 가령 박찬욱의 JSA는 박상면의 원작 소설 DMZ와 사실상 거의 아무 상관도 없다고까지 할 만큼 전혀 다른 작품이지만, 영화적으로 상당히 성공적이다. 영화는 영화고 소설은 소설이다. 더구나 아내가 결혼했다는 처음 나왓을 때부터 내가 '결코 영화로 만들 수 없는 소설'이라고 말하기도 했거니와, 전혀 다른 작품을 만들지 않는 한 그대로 영화로 만들기는 어려운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이 가지고 있었던 가장 전복적인 요소를 영화는 전혀 엉뚱하게 재구성했다.

(이건 JSA가 원작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를 과감하게 생략해버린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원작과는 사뭇 다른 영화의 주제를 부각하기 위해 원작에서는 중요했지만 영화에서는 부수적일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를 생략하는 것과.............. 원작과 같은 주제를 말하면서도 원작의 가장 중요한 장치를 고의적으로 정반대로 뒤틀어버린 건... 혹 영화적 필연성 때문에 불가피했다면 모를까... 나란히 놓을 수가 없다.)

 

소설이 유쾌하게 전복해 버렸던 '혈연 미신'에 영화는 어이없이 항복한다.

소설 속에서는 끝내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혀지지도 않고 주인공도 그에 대한 의문 자체를 포기하지만... 영화에서는 오히려 그 대목이 절정으로 가는 핵심적 장치로 작동한다.

 

뭐야.. 왜 저래? ... 하다가 처음엔 그저 이 편이 더 대중적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나보다.. 씁쓸하기만 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꼬리를 무는 의문...

그 부분이 사라져버리고 말면... 즉 '혈연가족'을 넘어선 '새로운 가족'을 향한 상상력이 기작되어 버리고 나면... 도대체 그들은 왜 한국을 떠나야 하지?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가 분명해지고 나면(게다가 여주인공은 한 남자와는 '피임'을 했다고까지 한다)... 그래서 두 남자 중 누가 '본남편'이고 누가 '샛서방'인지 위계가 분명해지고 나면.... 그냥 늘 보아왔던 '본처'와 '첩'을 거느린 가부장적 양상을 성별적으로 뒤집어만 놓은 꼴에 불과한데. 그 정도의 전복은, 가령 드라마 '불량주부'에서 가사노동을 둘러싼 가정내 성역할이 전도된다든가 하는 설정과 무엇이 다르지? 성이 개입해서? 그러니까.. 일부다처는 돼도 일처다부는 좀 그렇다? 그렇다면 거의 다부다처 수준으로 부부가 스와핑성 맞바람을 피우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의 주인공들은 우주로 이민가야 하나? 한국을 떠날 필연성이 없다.

 

물론 영화는 거기에 필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돌잔치 깽판 사건을 삽입한다. 그대로는 한국에서 더이상 살 수 없는 상황을 어거지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순환적이다. 원작에도 없는 '친자확인 검사'를 기어코 실행시켜 스토리를 뒤틀어버린 것도 모자라.. 그 뒤틀린 스토리에 힐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검사 결과를 가지고 깽판까지 치게 한 건.. 상당히 폐쇄적인 순환구조다. 왜 그랬을까.....

 

다부다처에 가까운 스와핑적 상상력이 영화가 되는 마당에 일처다부 정도는 위험한 축에도 못 든다. 이 영화는 조금도 위험하지도 불편하지도 않다. 그저 이 영화는 '남자들은 되는데 여자라고 왜 못해?' 정도만을 얘기한다. 뭐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죽어도.... '내 새끼인지 남의 새끼인지'는 구별해야겠다는 혈연미신에 대한 다른 상상은 용납 못하겟다는 거다. 영화 작가가 못 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이 시대의 영화 관객은 그런 상상을 수용할 수 없다고 여겨 그렇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결과는 그렇다. 죽어도 '내 새끼인지 남의 새끼인지'는 알아야 하고.. 다른 가능성은 절대로 없다는 거다.

 

그래서... 소설을 읽고나서.. '이민 권하는 사회'라고 썼던 게 생각이 나서.. 젠장 '이민도 권하지 못하는 사회'로군.. 해 버리고 말았다. 상상을 차단하는 사회.... 상상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 사회.... 그러니까 일부다처라 해도 '본처'도 '첩'도 따로 없는 가족... 일처다부라 해도 두 남자 사이에 아무런 위계가 없는 가족... 아이는 그저 '우리 아이'일 뿐이지 생물학적으로 누구의 '씨'인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가족....에 대한 상상은 고의로 봉쇄됐다. 소설의 핵심은 다 사라져버렸다...

 

도대체 그런데 뭐하러 하필 그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는지 모르겟다.. 그저 1억원짜리 상받은 유명세에 편승하려고? .. 아무래도 그 이유말고는 없는 것 같다.. 소설에서 그 정도 모티브만 빌려올 참이라면 얼마든지 다른 식으로도 이 정도의 성별 전도는 표현할 수 있고 훨씬 더 재미있고 아기자기한 스토리도 만들 수 잇었을 것이다. 굳이 비싼 원작 판권료 안 물어도 되고....

 

그런데 정말 .... '다른 가족'을 상상해서는 안 되는깔까.. 대중성? 그럼 '가족의 탄생'은? (하긴 마니아들의 열렬한 환호에도 불구하고 흥행은 별로 안 되긴 했지... 하지만..  '아내가 결혼했다'가 '가족의 탄생'이나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보다 흥행이 더 잘 될 거 같지는 않은데...) 정말 꼭 그래야만 했을까.... 왜 '가족의 탄생'이 던진 문제의식을 더 발전시키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후퇴시켜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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