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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단상... (11.8.31.)
작성자 똥개 작성일 2014-03-13 21:54

1. 곽노현이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은 크게 두 가지 중 적어도 하나의 판단을 전제한다.

하나는 그가 박명기에게 2억을 건넨 행위가 '범법'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것이다.

 

2. 그의 행위가 범법인지 아닌지는 전적으로 사법적 판단의 문제일 뿐이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 결정적 하자가 없는 한, 재판 결과 무죄라면 그걸로 그뿐이지 '사실상 유죄'라는 식으로 여전히 범법자로 바라보는 것도 옳지 않고, 마찬가지로 재판 결과 유죄로 판결나면 그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으면 그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헌법에 보장된 대로,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 그는 '무죄'라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에게 제기되는 혐의는 모두 '검찰의 주장'일 뿐이며, 그 혐의만큼이나 검찰이 주장하는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그의 주장도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3. 범법인가의 여부를 떠나, 설사 범법 행위가 아닐지라도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나도 그가 썩 잘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분명히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엇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로 그가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공직자로서 적절한 처신'과 '부적절한 처신'의 기준이나 '얼마만큼 부적절한 처신을 하면 공직에서 물러나야 하는지' 등에 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으며 그에 관해 명시적으로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는 한(그런 기준이 제시되어 있다면 그건 다시 범법의 문제로 환원된다. 과연 그가 공직에서 물러날만큼의 부적절한 처신을 했는지 역시도 사법적/준사법적 다툼의 문제이며 그 판단이 확정되기 전까지 그는 '부적절한 처신'을 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것은 순전히 댇아수의 사회구성원이 승인하는 일반적인 '윤리 감각'의 문제일 따름이다.

그러나 '윤리적 문제'로 공직자의 사퇴를 들먹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설사 그가 사회구성원 대다수의 '윤리감각'에 비추어,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행동을 했다 하더라도,

그 이유로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면, 윤리적으로 훌륭하지 못한 사람은 공직자가 될 수 없다는 의미이며,

이것은 헌법이 보장한 '공무담임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윤리의 폭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세훈이었으면 이랬을 걸 곽노현이니 저런다면 대중은 '이편이나 저편이나 매한가지'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라는 김규항의 주장은 그 자체로 매우 지당한 지적이긴 하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나는 설령 문제가 되는 행위의 당사자가 오세훈이었다 해도, 위에서 말한 것과 똑같은 이유로 '대다수의 일반적인 윤리감각에 비추어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는 이유로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윤리의 폭력'이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것이 곽노현이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하는 게 아니다. 이와 같은 주장은 일견 공정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오세훈이라면 이랬을 사람들이 곽노현이라면 저러는 것이 '현실'이라 해도 오세훈이라면 이랬을 행동을 나무라는 게 옳지, 그걸 당연하다고 전제하고서 그러니까 곽노현이라도 똑같이 이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심각한 도착이다. 가령 철수라면 죽도록 두들겨 팼을 일을 영희라서 감싸고 돈다면,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두들겨팰 수 있느냐고 나무라는 게 옳지 영희도 철수와 똑같이 반 죽도록 두들겨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공평한 것인가. 물론 이건 사람이 사람을 두들겨패은 건 어떤 경우에도 옳지 않다는  걸 전제했을 때만 성립하는 얘기다. 두들겨패는 게 필요할 때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공평한가만 문제가 될 뿐, 똑같이 감싸고 돌든가 똑같이 두들겨패든가는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 요컨대 김규항은 '공직자가 부적절한 처신을 했따면 물러나야 한다'는 발상이 왜 위험한지를 모르는 것이다.

물론 나는 '윤리적이지 않아도 능력만 있다면 공직자가 될 수 잇다'는 엄청난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공직자에게는 더러 일반인들보다 더 엄격한 윤리적 기준이 요구될 수도 있다고 흔쾌히 승인하며, 심지어 '윤리성 자체가 매우 중요한 업무능력 중의 하나'라는 현실적 정황까지도 기꺼이 인정한다. 단, 그렇다 해도 그 기준은 법적으로 또는 그에 준하는 형식으로 정당한 절차에 따라 명문화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즉 공무담임권이 신성불가침이라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그의 행위가 공직을 더는 수행할 수 없는 정도의 심각한 윤리적 흠결이라는 명시적 규정이 없다면 어쩔 수 업는 일이라는 식의 '법만능주의적인'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적어도 그를 선출한 사람들 가운데 만일 그가 그런 정도의 윤리적 흠결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에게 투표하지 않았을 사람들의 의사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탄핵'이나 '주민소환' 같은 제도적 절차가 마련되어 있는 건 바로 이럴 때 써먹으라는 거다. 정 그가 물러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의사를 대변하는 정당을 통해 '탄핵'을 발의하거나 '주민소환'을 제기하면 된다.

 

4. 한 가지 더 짚을 점이 있다. 과연 그의 행위가 '공직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윤리적으로 부적절한 처신'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도대체 어떤 행위가 그러한가.

2억이라는 큰 돈을 아무 대가없이 누군가에게 줄 만큼 재산이 많다는 것?

아니면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맨 것?

그도 아니면,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하고 사퇴한 전력이 있는 사람을 개인적으로 도와준 것?

도대체 막연한 이미지일 뿐이지 실체가 아리송하다. '개혁진영의 도덕성에 큰 상처를 남겼다'고 하는데 도대체 도덕적으로 문제될 만한 행동을 했어야 상처를 남기든 말든 할 것 아닌가. 궁이 실체가 있다면 본질적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인 검찰의 주장뿐이다. 그러니 '도덕적 상처'를 남겼다면 그 주체는 검찰과 그 프레임에 놀아나고 있는 사람들이지 곽노현이 아니다.

뭐 굳이 따지자면,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맨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그건 그의 행위가 공직윤리 차원에서 부적절했다는 뜻이 아니라, 현명하지 못했다는 뜻일 뿐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바보'니까 물러나라고 주장하라. 역시 탄핵이든 주민소환이든 정당한 방법으로... '공직을 수행하기에는 아이큐가 떨어지니까 물러나야 한다'라고... 얼마든지 인정하겠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것이 곽노현이 아니었따 해도, 똑같이 말했을 거다. 내가 무슨 곽노현의 골수 지지자도 아닌데, 그의 편을 들어 옹호할 까닭이 어디 있겟는가. 나는 곽노현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라, 실체도 아리송한 막연한 이미지에 의해 유린되고 있는 공무담임권을 옹호하는 것이다. 곽노현이 아니라 보편적 인권을 옹호하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은 다 몰라도 조국만큼은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  아무리 정치적 필요가 절박했기로 명색 법을 공부했다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 그거야말로 전문가로서 직업윤리의 파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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