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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상 만사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작성자 똥개

최근 몇 달 사이에 서점에 나가본 사람이라면, 눈에 잘 띄는 소위 ‘베스트 셀러’ 코너에서 특이한 기류를 감지했을 것이다. <**하는 **가지 **>류의 비슷비슷해 보이는 제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흔히 홍수에 비유되곤 하는 정보의 범람 속에서 더구나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차근차근 정보의 쓸모를 가려낼 틈이 없다. 따라서 단순명료하게 몇 가지 모델로 압축요약해서 친절하게 전달해 주는 다이제스트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좀 깊이 성찰을 해보면 이러한 현상이 그다지 바람직하지는 않겠지만, 어떻든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한다면 왈가왈부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문제거리가 하나 더 남아 있다.

그러한 책들의 분야가, 예컨대 순수하게 인문적 교양을 위한 정보라면 마뜩치 않기는 하지만 다이제스트로라도 훑어보겠다는 정성을 굳이 나무랄 필이 아니다. 혹은 처세 기술 따위의 내용이라면, 더더욱 다이제스트판의 실용성은 차라리 미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주종을 이루는 주제는 이도저도 아닌 엉뚱한 내용인 것 같다. 마음을 평안하게 가지도록 위로해준다는 내용들이 꽤 오래도록 팔려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보자니 굳이 <**가지>라는 노골적인 유행을 좇아가지 않더라도 비슷한 분야의 책들이 강세를 보인다는 점이 눈에 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새로운 메시지도 아니다. 컵에 물이 반쯤 남아있을 때 ‘반이나 남았다’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반밖에 남지 않았다’라고 생각하는가에 따라 같은 현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누구나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얘기다. 해골바가지의 물을 맛있게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원효 대사의 일화가 이야기하는 바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이런 가르침에 굳이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같은 현상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있는 그대로’로만 보일 수 있다면, 아마도 이데올로기의 사회적 작용에 관한 다양한 고민들은 무의미했을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쪽으로만 보자고 들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리라고 나 역시도 긍정한다.


나는 “많이 팔리는 책이 반드시 좋은 책은 아니다”라는 식의 선언(?)에도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많이 팔린다는 ‘획일적’인 잣대로, 경제적 가치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문화적 생산물의 질을 평가하려는 무모한 시도에 관해서라면, 불만이 없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 또는 독서를 통해 얻고자 하는 즐거움이 모두에게 같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그런 다양한 독서의 양상을 ‘좋은 책’이라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밑도끝도 없는 기준으로 다시한번 ‘획일적’으로 재단하는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누군가가 애써 얄팍한 주머니를 털어 어떤 책을 사서 읽는다면, 읽고 난 뒤에 스스로 본전 생각이 나지 않는 한 그것은 어떤 기준에 의해서든 적어도 그에게는 ‘좋은 책’이었던 것이며, 누구도 거기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어떤 이유로든 선택한 책을 단지 자기 자신의 기준에 드러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좋은 책’이 아니라고 폄하하는 것은, 무조건 많이 팔리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폭력이다. 책을 사는 사람들이 돈이 남아돌아서 심심풀이로 책을 수집(?)하고 시간이 남아돌아서 그다지 좋지도 않은 책에 코를 박는 게 아니라면, 많이 팔리는 책은 적어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좋은 책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작 질문해야 할 것은, 세상 만사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철학적인 태도에 대한 그야말로 탁상머리의 관념적인 토론이나, 또는 그토록 많이 팔린다는 책들이 과연 그만큼 좋은 책들인가 따위의 하나마나한 질문이 아니다. 도대체 왜 그들은, 또는 나아가 우리들은, 그런 책들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어하며, 행복은 마음 속에 있다고 한사코 믿고 싶어하는가 같은 질문이 차라리 더 필요할 것이다.

5~6년 전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음을 기억해 내기는 어렵지 않다. 소위 ‘잠언류’의 명상서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나와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불티나듯 팔렸었다. 아마도 그 당시는 사회주의 러시아가 붕괴하고 그에 따른 후유증으로 이념적 지표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았다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더 좋은 세상을 위한 꿈들이 유행이 지난 이야기가 됐을” 때, 마음 속에서라도 행복을 찾고 싶어지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물론, 우리가 행복하기 위한 더 좋은 세상과 사회주의 러시아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어떻든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 사이 우리 사회는 물질적 풍요라는 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물론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현실은 여전하고 정치적 후진성도 제자리걸음이지만, 예전에는 ‘눈을 돌려 애써 외면하지 않으면’ 보일 수밖에 없었던 현실의 질곡들이, 이제는 ‘눈을 부릅뜨고 굳이 찾아보지 않으면’ 잘 눈에 띄지 않게끔 된 것도 어느 만큼 사실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반성적으로 성찰하고 안락한 삶을 부끄러워하게 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고역스럽게 마주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에서라면 행복한 삶을 향한 의지는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치달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꼭 그럴 필요가 없다. 고통스러운 현실쯤은 ‘내 일’이 아니라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자연스럽게 된 것이다. 그러니 나의 행복은 내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물론 ‘자연스럽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며, 더더욱 ‘올바른’ 것도 아니다. 여전히 이 사회의 아름답지 못한 현실은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일이며, ‘나’의 행복과 큰 상솬이 있는 일이다. 그러나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내일의 ‘진정으로’ 행복한 세상을 위해 오늘의 ‘불행’을 고역스럽게 마주하자고, 굳이 응시해보자고 다그칠 수 있겠는가. 더욱 멀고 험난해진 길을 함께 나아가기보다는 아무래도 그냥 여기에서 주저앉아 집짓고 작은 행복이라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 또한 인지상정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락과 행복을 위로받고 싶은 것이다. 아무도 더이상 손가락질하지 않아도 지난 시절 앞으로 나아가려 하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스스로의 부끄러움만큼은 피할 수 없기에.

그렇다면, 거기에 대고 당신은 결코 이 땅의 현실로부터 도망갈 수 없다고, 눈을 돌려 세상을 한 번 보라고 말하는 것은, 과녁을 한참 빗나간 비판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더더욱 부끄러울 것이고, 따라서 점점더 마음에 평화를 갈구하며 아름다운 이야기들에만 탐닉해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아직도 여전히 세상 만사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속편하게 생각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주문(呪文)이라도 외듯이 한사코 행복은 내 마음 속에 있다는 메시지에 점점더 귀를 기울이려 드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참혹하게도 새로운 세상을 향한 목소리로부터는 마음을 닫아걸게 된다.

차라리 거꾸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어떨까. 행복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고, 우리는 이미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으니 안심하라고. 다만, 그 행복이 우리만의 것이어서는 안 되지 않느냐고, 여전히 그렇지 못한 그래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꿈을 여전히 꿀 수밖에 없는 우리의 이웃에게 눈을 돌려보자고. 멀고 험한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집을 짓고 주저앉은 것 자체가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정작 부끄러운 것은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피하기 위해 집 밖에 여전히 길이 있고 또 거기에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 것이 아니냐고. 모든 사람이 이제는 집짓고 산다고 길을 끝났다고 치부해버리는 뻔뻔함만은 경계해야 하지 않느냐고. 중요한 것은 기득권자가 아니 되는 것이 아니라, 험한 세상을 살아내며 쥐꼬리만할망정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된 기득권에 대해 스스로 투명해지는 것이 아닌가. 세상 만사가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말이다!

발표지면 말, 1997.10.
단행본수록 만장일치는 무효다
대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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