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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그는 피해자인가 공범인가
작성자 똥개
교통사고 손해배상을 위해 소액재판을 청구하면서 서민들에게는 가혹하기만 한 법원 문턱의 높이를 몸으로 경험했던 달수가 이번에는 내집 마련의 기대를 안고 순진하기 짝이 없는 건축주로 나섰다. 법 말고는 달리 믿을 곳이 없는 서민의 초상 달수는 전작 <달수의 재판>에서 이미 법의 숨겨진 또다른 얼굴에 실컷 쓴맛을 보았다. 권위적이고 경직된 법체계는 하루하루를 밥벌이에 매어 살아야 하는 평범한 생활인의 접근을 완강하게 가로막았으며 적지않은 시간과 노력과 돈을 잡아먹기만 한 채 법은 결국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 무력한 종이호랑이였다.

그리고 이제는 법을 따지는 것조차도 하잘 것 없는 넋두리로 둔갑하는 말 그대로의 무법천지를 경험한다. 설계사의 능력은 튼튼한 설계가 아니라 인허가에 달렸으며 그나마 설계도 따로 시공 따로인 데다가 골조 자재는 기준에 미달하는 것이 당연하고 감리와 준공검사는 적당히 눈치와 촌지로 비껴가는 기가막힌 현실이다. 게다가 집 한 채를 짓는 동안 공무원으로부터 이웃주민에 이르기까지 쥐꼬리만한 권력을 내세워 ‘인사’를 요구하는 손벌림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건축공사는 누가 누구를 나무라고 탓할 수도 없는 총체적 부패의 현장이다. 모든 이에게 핑게는 한결같다. “세상이 다 그런 걸!” 요컨대 혼자 떳떳하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전혀 없을 뿐더러 오히려 상호공생 관계로 짜여진 판에서 밀려나 도태되기만 할 뿐이다. 달수가 직장일에까지 소홀해지며 휴지쪼가리에 지나지 않는 법조문의 관련규정을 순진하게 뒤적이는 대신 ‘관행’이라는 이름의 부패 구조에 서서히 순응해가는 길을 밟아간다고 해서 누구도 그를 비난할 수 없다는 데 상황의 심각함이 있다. “무너지는 건 다음 문제이고 아예 짓지도 못한다”는 데야 도대체 무슨 수로 독야청청할 것인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백하게 지적해야만 할 것은 한편으로는 피해자임에 틀입없는 달수 또한 어김없이 이 부패한 질서의 공범이라는 엄연한 사실이다.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쯤은 그들중 누구라도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패와 부정의 관행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업자들과 공무원과 이웃들에게 끌려다니는 동안에도 여전히 책임을 면제받을 수 없는 건축주인 것이다. 그래도 법과 규정을 지켜서 공사한 것보다 싸게 먹혔다는 달수의 게산서 위로 부실시공된 천정을 뚫고 떨어지는 빗물이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그는 결코 일방적인 피해자라고 누구에게도 주장할 수 없다.

달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누구라도 소박한 상식만으로는 살 수 없는 세상을 향해 서슴없이 삿대질을 할 수 있다. 한두 번쯤 억울하기 짝이 없는 피해를 감수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또는 부당하다는 것은 알지만 혼자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노라는 자기 위안의 근거 또한 충분하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피해자라는 이유로 무죄일 수 없다. 피해자일 뿐이라는 그럴듯한 자기암시 속에 어느샌가 자신도 모르게 한통속이 되어버린 모두가 공범인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 어디에도 이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단죄할 수 있는 죄없는 자 또한 없겠지만.
발표지면 미상, 1995.
단행본수록 상식으로 상식에 도전하기
대상 달수의 집짓기 - 베스트극장, MBC,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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