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가입에는 이메일 주소 외에 어떤 신상 정보도 필요하지 앟습니다.
똥개네집 통합검색
편집자 광장
책마을 소식
진로 상담
출판실무 Q&A
예비편집자 공부방
강의실
참고자료
비평적 산문
출판칼럼
매체 비평
인물론 & 인터뷰
사적 진술
주목을 바라는 글
저작목록
똥개와 수다떨기
일상 속 단상
퍼온글 모음
노출광의 일기
똥개를 소개합니다
똥개의 즐겨찾기

  매체 비평  Media rewview & preview
책, 영화, 방송 등 다양한 매체에 대한 장르비평을 올려두겠습니다.
이 게시판의 게시물은 인터넷을 이용하여 자유롭게 배포할 수 있으나, 반드시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
단, 영리/비영리 목적을 막론하고 고형물(인쇄물, CD 등)의 형태로 복제하여 배포하려면 운영자의 사전 승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시면 댓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넷/기타] 아날로그가 디지털을 만나는 몇 가지 풍경
작성자 똥개

편지에서 전자우편까지

전화가 일반 가정에까지 보편화될 무렵, 많은 이들은 편지가 사라져 가는 각박한 현실에 우려를 표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성들여 자필로 편지를 쓰고 곱게 봉함을 해서 우편함에 넣는 수고를 가벼운 전화 한 통으로 용건만 간단히 대신하는 세태는 분명 편리함을 좇아 인간 관계의 내밀함을 잃어버리는 기계 문명의 앙면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전화보다 훨씬 더 진보된 기계 문명의 이기가 등장한다. 바로 컴퓨터를 이용한 통신이다. 전화가 편지를 대체한 각박함에 염증을 느끼던 이들에게, 디지탈 문화의 만개는 사람의 목소리를 직접 주고 받는 최소한의 관계 방식조차 파괴하게 될 ‘괴물’처럼 여겨지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컴퓨터 통신망의 보급이 전화 때문에 거의 고사되었던 편지를 극적으로 부활 소생시켜 낸 것이다. 편지 한 통 쓸 줄 모른다고 구박을 받던 첨단 문명의 총아 신세대들이 다시 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편지를 쓰는 대신 전화로 안부를 전하면 성의가 없다고 서운해하던 사람들이 정작 편지가 부활하자 반가워하기는커녕 더 큰 목소리로 ‘손가락이 부러졌냐’는 섭섭함을 드러내며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던 때를 그리워하니 말이다. 물론 전자우편이 자필로 꾹꾹 눌러 쓴 아날로그 편지보다 성의가 없어 보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글쓰기가 단지 손의 수고로움으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한다면(그렇다면 예컨대 ‘필경사’와 ‘작가’가 무엇이 다르겠는가) 전화보다도 무례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좀체로 납득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전자우편에 대한 공연한 폄하는 사실 (특히나 기계를 다루는 일에 서투를 수밖에 없는 세대들의) 낯선 문화에 대한 막연한 공포일 뿐 아무런 근거도 없으며, 또 시간이 흘러 정서적으로 익숙해지면 마치 전화가 오히려 더 정겹게 느껴지듯이 얼마든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일부러 버리지 않는 한 보관함 속에 남아 있을 편지와 한 번의 클릭으로 언제든 삭제될 수 있는 전자우편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느냐는 반문도 그런 점에선 그저 ‘정서적 취향’의 차이일 뿐이다. 컴퓨터 환경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거꾸로 복제 백업이 자유로운 전자우편에 비해 아날로그 편지가 분실의 위험은 더 크지 않느냐는 반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성의하게 갈겨 쓴 편지를 받을 때의 불쾌함과 온갖 그래픽 이미지로 멋을 부려 보내는 사람의 정서를 한껏 표현한 전자우편을 받았을 때의 유쾌함이 주는 차이가 디지탈이냐 아날로그냐 하는 매체의 차이보다 훨씬 더 본질적이기도 하다.

오라는 편지는 안 오고 스펨 메일만 잔뜩 쏟아져 들어오는 전자우편에 대한 짜증도 따지고 보면 공연한 분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내 집 우편함에도 ‘번지내 투입’ 포기가 선명한 홍보물이 한 가득 들어 있고, 이 아날로그 스펨 메일은 원 클릭으로 삭제할 수 있는 전자우편보다 훨씬 더 처치가 곤란한 골치거리이다(개중에는 심지어 내 신상 정보가 고스란히 담긴 내용도 있어 재활용 쓰레기로 내놓기도 찜찜한 우편물도 수두룩하다).

휴대 전화가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이젠 전자우편도 쇠락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편지와 전자우편을 비교하는 일은 더욱 의미가 옅어진다. 정작 현실에서 디지탈이든 아날로그든 ‘글쓰기’로서의 편지는 전화와 그 뒤를 이은 휴대전화의 ‘가벼움’과 고군분투중이다. 나는 ‘편지지를 꺼내 놓고 펜을 들어 편지를 쓰자’고 말하는 대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편지쓰기 버튼을 클릭하자’고 말하고 싶다.

탈에서 아바타까지

1970년대 초, 폭압적인 정치 상황에서 문화적인 저항을 모색하던 이들이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실천했던 일 중의 하나가 ‘탈춤 부흥 운동’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 배경 때문에 다소 과장된 감이 없지는 않지만, ‘탈 놀이’가 특히나 전근대적 신분 사회에서 하루하루의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일반 평민들에게 당면한 현실과는 또 다른 삶, 또 다른 세상을 꿈꾸게 하고, 그것을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교감하게 하는 공간이었음도 부인할 수 없다.

1990년대 초, PC통신이 대중화되던 초창기에 채팅과 게시판에서 이루어지던 통신 글쓰기에서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감지했던 이들은, 이내 거기에서 ‘사설시조’의 형성과 유사한 점을 발견하고 주목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사설시조’들은 거의 작가가 알려져 있지 않다. 마치 우리가 탈 놀이를 보면서 예컨대 말뚝이 탈을 쓴 연희자가 누구인지에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듯이. 그러나 불과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그 당시만 해도 이 새로운 문화를 향유하던 이들이 뒤집어쓸 수 있는 ‘탈’이란 고작해야 영문과 숫자 몇 개로 조합된 ‘아이디’뿐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온갖 멀티미디어를 강력하게 통합하는 ‘웹’이라는 첨단 매체가 출현한다. 공식적으로 신분 질서가 해체되었다지만 장유유서를 따지는 서열주의나 여성을 배제하는 가부장주의 등 신분적 차별의 잔재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으며 학연/지연/혈연을 따라 거미줄처럼 일상을 옭죄는 전근대적 연고주의의 뿌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사회적 조건에서, 경제적 부가 새로운 특권을 의미할 수밖에 없는 천민적 자본주의를 고단하게 살아내야 하는 대중들의 또 다른 삶, 또 다른 세상에 대한 꿈이 신분 질서하의 평민들의 그것과 달라질 이유란 없다. ‘탈 놀이’는 바로 이런 조건에서 그 꿈을 표현하고 교감하기 위해 고안된 문화 전승이다. 다만 고도의 산업화 시스템에 24시간을 지배당하는 현대인에게는 더이상 탈 놀이가 가능한 공간이 허락되지 않을 뿐이고, 그런 의미에서는 오히려 ‘탈 놀이’를 향한 잠재적 욕망이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업화의 부수적 산물이면서 동시에 그 대응물이기도 한 ‘정보화’라는 괴물이 순식간에 컴퓨터 저장 공간 안에 새로운 개념의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공간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롭게 만들어지는 탈들에 우리는 아바타라는 낯선 이름을 붙였다. 나무를 손으로 깎아서 만든 탈들에 부여된 캐릭터가 탈 놀이에 참여하는 평민들의 욕망을 재현했듯이, 디지탈화의 세례를 받아 무한한 변형이 가능해진 시청각 이미지로 화려하게 장식된 아바타의 캐릭터에도 어김없이 대중의 욕망이 재현된다. 우리는 아바타를 치장하면서 단지 현실에서 충족되지 않는 꿈에 대한 대리 만족을 얻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은 그 이전에 이미 지금의 나와는 다른 나, 지금의 삶과는 다른 삶, 나아가 지금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탈 놀이에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대리 만족의 분출구라는 측면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탈춤 부흥 운동’의 역사가 웅변하듯 불만스러운 현실에 대한 저항의 힘도 함께 잠재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아바타를 장식하는 데 공을 들이는 것으로 자기 표현을 꾀하는 모습에도 단지 현실을 회피하는 몽상적인 대리 만족의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과는 다른 세상은,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이미 존재한다. 그리고 그 꿈이야 말로 현실을 더 나은, 더 살 만한 곳으로 바꿔 낼 수 있는 힘의 근원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바타를 장식에 소비적으로 탐닉하는 이들을 탓할 일이 결코 아니다. 적어도 그것은 꿈을 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렇듯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는 꿈까지도 상품화하여 장삿속을 챙기는 이들으로부터, 바로 그런 비인간적인 장삿속에 더이상 휘둘리지 않아도 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꿈을 보호해야 하지 않겠는가.

삼일장에서 전자쇼핑몰까지

불과 60년 전인 1930년대에 씌어진 이효석의 아름다운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직업은 지금은 그 흔적조차 희미해진 ‘장똘뱅이’였다. 서로 장날이 다른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떠돌며, 이 마을에서 산 물건을 저 마을에다가 파는 식으로 교환 경제를 중개하는 떠돌이 장사꾼을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청소년기에 읽었을 이 유명한 소설의 분위기가 워낙 한 폭의 수채화마냥 미끈했음인지, 장똘뱅이라는 직업에는 다분히 목가적인 이미지가 묻어 있다. 그러나 현실이 소설에서처럼 그렇게 낭만적인 것은 아니다. 예컨대 장을 따라 정처없이 떠도는 장사꾼들이 한 번 판 물건에 대해 책임을 질 리도 없고 책임을 물을 방법은 더더욱 없었을 터이니 ‘소비자의 권리’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급자족이 한계에 이르러 물자를 교환할 필요가 생기기 시작하면,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곳에는 어디나 장이 서게 마련이다. 그리고 장이 서는 곳은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리게 되고, 그 규모가 일정한 선에 다다르면 고단하게 발품을 팔지 않고 붙박이로 전을 벌여 주저앉는 장사꾼들이 생겨나면서 시장은 상설화된다. 이러한 상업 지역을 시(市)라 하여, 관청이 자리한 행정 중심지(당연히 여기에도 사람이 모여들 수밖에 없으니 시를 겸하겠지만)를 뜻하는 도(都)와 한데 아울러 ‘도시’라고 부른다.

인터넷 혁명은 통신 수단으로 교통 수단의 기능을 대신하게 했다는 데 핵심이 있다.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곳에는 어디서나 장이 서게 마련이니,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사이버 공간에도 당연히 장이 설 수밖에 없으며, 실은 이것이 결코 자선 사업가나 공공 기관이 아닌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이 인터넷에 투자를 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장이 선 곳에 사람들이 더욱 몰려들게 되는 것이 자명한 까닭에, 인터넷의 보급에 힘입어 사이버 도시가 생겨나고 공간적인 제약을 뛰어넘어 넷이 연결된 곳이라면 어디나를 아우르는 거대한 도시가 넷 위에 건설된다. 요컨대 모든 ‘도시’가 형성되는 근본적인 동력이 다름아닌 시장이듯, 사이버 도시 역시도 제아무리 정치․사회․문화적인 의미를 덧칠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전자쇼핑몰이 가장 핵심적인 존재 양태인 것이다.

도시화와 함께 재래식 시장이 사라지고 유통 산업이 합리화되면서, ‘흥정’도 함께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물론 여전히 물건값은 수시로 오르락내리락하지만, 그것은 상인이 다른 상인들과 경쟁하며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놓고 소비자가 선택하는 간접적인 방법을 취할 뿐, 이제는 더이상 상인과 소비자가 직접 물건값을 놓고 흥정하는 풍경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정서적으로야 인간미가 사라진 팍팍한 세태처럼 여겨질지는 모르나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말이 세계 3대 거짓말 중의 하나’이고 보면, 이것은 장똘뱅이에 덧씌워진 목가적인 이미지만큼이나 오도된 이미지일 뿐이다. 물자가 귀해서 사거나 말거나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몰라도 대량 생산․대량 소비의 시대에는 물건값을 흥정하기보다는 선택하는 편이 소비자에게 단연 유리한 것이다. 대신 소비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합리적인 소비를 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다양한 상품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는 부담이 남겨졌다. 전자쇼핑몰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이런저런 사이트를 넘나들며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것은 여전히 소비자의 몫이다.

‘원 클릭’으로 구매가 결정되는 전자쇼핑몰이 ‘충동 구매’를 부추긴다는 것은 근거없는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직접 물건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도 상품의 질을 신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는 여간해서 ‘클릭’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견물생심’이라고 오다가가 눈에 띈 물건의 질을 그 자리에서 직접 오감으로 확인할 수 있는 조건에서 ‘충동 구매’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원 클릭’은 역설적으로 더욱 신중하고 계획성 있는 소비 문화를 촉진하는 배경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전자오락에서 온라인 게임까지

1970년대 후반에 갑자기 생겨나 급속도로 확산된 신종 영업이 있었으니 이른바 ‘전자오락실’이다. 골목마다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기 시작한 전자오락실은 꼬마들의 방과 후 문화를 완전히 바꾸었고, 가끔 부모의 지갑을 뒤지는 못된 손버릇의 주요한 동기도 사탕을 사먹기 위해서에서 전자오락기에 넣을 동전을 구하기 위해서로 바뀌어 갔다. 지금의 기술 수준에서 보자면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단순한 게임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만으로도 한창 호기심 많을 나이의 아이들을 오락기 화면 앞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충분할 만큼 현란하고 자극적이었다. 이제는 장년기에 접어든 이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아련하게 기억되는 갤러그 같은 게임도 당시로서는 최첨단을 달리는 대표적인 신세대 문화의 상징이었다.

이 아이들이 자라나 청년이 되었을 때, 그 이전 세대 청년들의 시간을 속절없이 잡아먹던 당구장을 전자오락실이 대체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전자오락실은 혼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곳이지만, 친구들과 삼삼오오 어울려 놀거나 심지어 가난한 연인들이 그다지 돈을 들이지 않고 알차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데이트 장소로도 각광을 받았다. 친구를 기다리거나 잠깐 짜투리 시간이 남을 때 동전 몇 개로 가볍게 시간을 때우려는 이들에게 오락실만큼 편안한 곳도 없었다.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피시 통신과 함께 컴퓨터용 오락 게임들이 보급된 뒤에도 동네마다 들어선 전자오락실은 다소 기세가 꺾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건재를 과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자오락과 피시 게임은 그 용도가 달라도 한참 달랐기 때문이다. 공개 자료실에서 다운로드받은 게임 프로그램으로 즐기는 피시 게임이 집안이나 사무실에서의 무료한 일상을 달래 준다 해도, 거리에 나갔을 때 어쩔 수 없이 마주치게 마련인 짜투리 시간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친구나 연인들이 가볍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다른 문화적 환경이 조성된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정작 전자오락실이 급속히 쇠락의 길로 들어선 것은 인터넷 대중화의 바람이 몰아닥친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전자오락실이 들어서 있던 자리를 온라인게임방으로도 불리곤 하는 피시방이 대신 차지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온라인 게임은 통신망 너머에 자신과 똑같이 게임을 즐기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단순히 프로그래밍된 대로 동작하는 기계를 상대로 하던 전자오락이나 일반 피시 게임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상대가 있는 만큼 훨씬 더 역동적이고 게임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불가측성의 변수가 거의 무한대의 가능성으로 펼쳐진다. 단순한 프로그램에 따라 동작하는 전자오락은 결국 단계가 올라갈수록 점점 더 빨라지는 속도와의 싸움일 수밖에 없었지만, 온라인 게임에서는 속도도 여전히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더이상 유일한 요소도 아니고 핵심적인 요소도 아니게 되었다. 게임을 함께 하는 상대방과의 머리 싸움이 더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제 기계는 단지 게임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연결시키고 또 놀이판을 제공해 주는 일종의 심판의 역할만을 할 뿐이다.

그래서 게임은 더 인간적이 되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어찌된 일인지 혼자 기계를 상대하는 전자오락이 오늘날의 온라인 게임보다 훨씬 더 인간적으로 여겨지곤 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비단 ‘지나간 시절은 그리워지게 마련’이라는 어린 시절의 추억에 대한 향수어린 미화 때문만은 아니다. 친구들과 아울려서나 또는 연인과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 온라인 게임방을 찾는 사람은 아주 드물어졌다. 게임을 즐기고 싶다면 굳이 만날 필요 없이 각자가 자신의 컴퓨터나 가까운 피시방을 이용해서 접속해서 온라인으로 만나면 된다. 피시방은 짜투리 시간을 싼 값에 가볍게 때우기 위해 찾는 곳이 아니라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거나 또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게임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 찾는 곳이 되었다. 어쩌면 그래서 한 집 건너 피시방이 들어선 시대에도 그 사이사이에서 드문드문 명맥을 유지하는 전자오락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야흐로 '시간 때우기'를 위한 무의미한 '오락'이 아닌 여가 생활로서의 '게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즐기는 시대가 도래한 것만은 분명하다.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탈 카메라’까지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하고 싶은 것은 시간의 흐름을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일 것이다. 몇 분의 1에서 몇 천 분의 1초라는 극히 짧은 순간을 화학 물질의 도움을 빌어 하나의 화면에 고정시켜 주는 사진기라는 기계 장치는 시간의 흐름을 초월하고 싶다는 욕망의 산물이다.


모든 욕망의 성취에는 대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필름을 현상하고, 현상된 필름이 인화지에 옮겨져 비로소 사진의 형태로 손에 쥐어지는 그 지루한 시간들을 설레임 속에서 견뎌내 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화학 물질이 입혀져 있는 셀롤로이드를 구입하기 위한 비용과 그것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기꺼이 지불해 왔다. 사진 한 장에 담긴 그 설레임의 시간들과 얼마간의 비용은 그 사진을 더욱 값지게 하는 것이었고, 그만큼 찍어서 보관해야 할 순간들은 엄정하게 취사 선택되곤 했다. 온 가족이 모처럼 새옷으로 말끔히 차려 입고 가족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관으로 향하는 풍경이나, 무슨 행사라도 치를 양이면 기념 사진 순서가 빠지지 않는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디지탈 시대는 이 모든 것의 의미를 한꺼번에 바꿔놓았다. 이론적으로만 보자면, 디지탈 사진기는 (사진기 자체의 가격을 빼면) 거의 아무런 추가 비용 없이 무한대의 장면을 사진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사진기 한 대에 기억 용량이 제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예컨대 노트북 컴퓨터와 함께 휴대한다면, 노트북의 저장 용량을 모두 활용할 수 있고, 통신 기술을 이용하여 그보다 더 큰 저장 공간으로 전송할 수도 있으며, 인화에 따르는 비용을 걱정하지 않고도 무한대의 사람들에게 똑같은 사진을 보관하게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또 활영한 즉석에서 사진을 확인해 볼 수 있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지워버리거나 재촬영을 할 수도 있다. 오래되었거나 필요없는 사진을 삭제해서 새로운 사진의 저장 공간을 더 확보해 줄 수 있음은 물론이다.

디지탈 사진기의 출현으로 우리는 필름 사진기 시절에는 ‘쓸데없는’ 장면으로 여겨지던 사소한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쟈연스러운 모습에 비로소 아무 부담 없이 셔터를 누를 수 있게 되었고,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하고자 하는 욕망의 충족이라는 면에서 혁명적인 진보를 이루게 되었다. 적지 않은 시간과 만만치 않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의 고상한 취미 활동으로나 여겨져 왔던 사진 찍기가 보통 사람들의 일상 생활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공기나 물의 소중함을 때때로 잊고 살듯이,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얻어지는 것의 소중함을 종종 잊곤 하는 버릇이 있다. 디지탈 사진기는 우리에게서 한 장의 사진이 만들어져 나오기까지의 설레임을, 그리고 필름을 아껴 가며 더 중요하고 더 의미 있는 순간들을 포착하려고 애를 태우던 미묘한 긴장을 빼앗아 간 것인지도 모른다. 별다른 의미 없이 아무렇게나 사진기를 들이대고 플래시를 터뜨려도, 찍어 놓고 보니 아니다 싶으면 지워 버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어렵사리 만들어진 사진 한 장을 굳이 없애려 할 때 이런저런 상념으로 심란해하던 것과는 달리, 가볍게 삭제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 장면은 오히려 영원히 망각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디지탈 세대의 ‘가벼움’을 힐난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어차피 우리네 일상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는 새로운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욕망의 바벨탑이 무너지듯이, 생활 가까이로 한껏 다가온 사진은 이제 더 이상은 특별한 무엇이 아니며, 순간을 영원에 담고자 하는 욕망을 극대화할 때 오히려 더이상 굳이 욕망할 필요가 없는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무엇이 되어 버린다. 그 사소함 속에서 발견되는 소중함이, 만일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혜안만 가지고 있다면, 잔뜩 폼을 잡고 거창한 의미를 부여해야만 생겨나던 소중함보다 훨씬 더 값질 것이다.

신문에서 블로그까지

민주주의 사회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자신의 의사를 공공연하게 드러낼 자유를 기반으로 하여 성립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표현의 자유는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우선은 매체에 대한 접근이 일반인들에게는 너무나 어렵다. 신문을 예로 들면, 기껏해야 생색내기용 독자 투고란에 그것도 편집자의 손을 거쳐 손바닥만하게 나가는 게 고작이고, 텔레비전은 얼굴 한 번 잠깐 비춰준 것만으로도 당사자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되고 주위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화젯거리가 될 만한 ‘사건’으로 여겨진다. 오죽하면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노래까지 있을까.

그러나 매체 접근의 제한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그보다 더 폭넓게 존재하는 일상생활에서의 암묵적 발언권 제한은 우리 사회가 진정한 민주 사회인지, 우리의 일상생활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인지를 충분히 의심스럽게 한다. ‘남자들이 이야기하는데 여자가’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애들이’ ‘학식 있는 사람이 점잖게 말하는 자리에 무식한 사람이’ ‘상사가 말씀하시는데 부하직원이’ 감히 함부로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텔레비전의 그늘에 가리면서 나름대로 생존의 비법으로 일반 청취자의 적극적 참여에 기반하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 온 라디오 매체에서도 왜 하필 여성 대상 프로그램과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발전해 왔는지를 음미해 보자. ‘이르고자 할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할 사람이 많아서’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들었다지만, 세계 최저의 문맹률을 자랑하며 사회 구성원의 절대 다수가 한글을 깨우치고도 여전히 세종대왕의 그 원대한 포부는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이제 여기에 새로운 매체가 등장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방향적인 매체와는 아주 다른 매체이다. 우선 누구나 아무런 자격 조건의 제한 없이 접근하여 그 누구의 사전 승인이나 편집에 따른 제약도 전혀 없이 뜻하는 바를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이 방송국이고 자기 자신이 신문사이다. 게다가 일상 공간에서는 아버지가 말씀하시는데 함부로 대들었다가는 당장 몽둥이 세례를 각오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오로지 텍스트만으로 존재하는 매체 공간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다 뱉어낸다 하더라도, 역시 텍스트 말고는 달리 대응할 방법도 없다. 무제한적인 표현의 자유가 거기에 있다. 물론 그걸 적극적으로 찾아서 누리려고 애쓰는 사람에게만.

인터넷 상에서는 사실상 대형 언론사와 한 개인의 홈페이지는 적어도 형식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물론 자본 투자 규모가 다르므로 내용상으로는 비교가 곤란하지만, 오히려 거대 조직이 흉내내지 못할 창의적이고 개성 있는 아이디어만 있다면, 얼마든지 차별성을 확보하여 ‘손님’을 끌어모으는 경쟁을 벌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표현의 자유’는 좀더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개념이 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개인이 명실상부한 의사소통의 주체였던 적은 없다. 가족부터 학교, 종교 단체, 직장, 동아리 등 크고 작은 집단의 구성원으로서만 온전한 사회생활이 가능했다. 심지어 쌍방향 소통으로 특징지워지는 ‘넷 문화’가 자리잡아 가면서도, 어느 상업 통신망에서도 동호회 활성화가 마케팅의 핵심이 될 만큼이나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소통의 매개이며 유인 동기였다. 그러나 이렇듯 인터넷 홈페이지 시대가 열리면서 좀체로 흔들릴 것 같지 않던 집단을 통한 소통이 균열을 드러내며 개인대 개인의 소통으로 한 발짝 크게 나아갔으며, 블로그라는 더욱 발전된 형식의 힘을 빌어 만개하고 있다.

일부 언론사의 기업 활동의 자유로 현실적인 의미가 축소되었던 언론의 자유는 이제 명실상부한 시민 개인의 자유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다만, 모든 자유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뒤따르는 법. 최근 일부 신문에 대한 시민 사회의 반대 운동에서 드러났듯 무책임한 언론은 법적 규제 이전에 수용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퇴출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진실은, 블로그를 통한 ‘1인 언론’에도 준엄하게 적용될 것이다.

발표지면 한국우지제록스 사보, 2002.10.~2003.8.
단행본수록 미수록
대상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