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가입에는 이메일 주소 외에 어떤 신상 정보도 필요하지 앟습니다.
똥개네집 통합검색
편집자 광장
책마을 소식
진로 상담
출판실무 Q&A
예비편집자 공부방
강의실
참고자료
비평적 산문
출판칼럼
매체 비평
인물론 & 인터뷰
사적 진술
주목을 바라는 글
저작목록
똥개와 수다떨기
일상 속 단상
퍼온글 모음
노출광의 일기
똥개를 소개합니다
똥개의 즐겨찾기

  매체 비평  Media rewview & preview
책, 영화, 방송 등 다양한 매체에 대한 장르비평을 올려두겠습니다.
이 게시판의 게시물은 인터넷을 이용하여 자유롭게 배포할 수 있으나, 반드시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
단, 영리/비영리 목적을 막론하고 고형물(인쇄물, CD 등)의 형태로 복제하여 배포하려면 운영자의 사전 승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시면 댓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방송] 연민, 혹은 확장된 자기 연민, 그 처연한 종족적 인세스트
작성자 똥개

찬찬히 뜯어보지 않으면, 현실감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보기 어려운 몽상적인 인물들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들이 무심결에 내뱉는 듯 보이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는 현실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들이 놓여 있는 상황이나 드라마 속에서 한 올 한 올 맺어가는 관계 또한 현실 세계의 흔히 드러나지 않는 갈등 지점을 훌륭하게 재현해 내고 있다. 요컨대 <아일랜드>의 네 주인공은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그리고 어쩌면 등장 인물들의 이러한 비현실성으로 인해 오히려 드라마의 사실성이 역설적으로 더욱 분명하게 도드라져 보이기까지 한다. 아마도 이렇듯 비현실적인 요소들의 정교한 작동으로 빚어져 나오는 사실성을 극사실성(hyper-reality)라고 하는 것일까.

아무려나 그렇다면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 전형적인 인물들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낯설어 보이는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이 드라마가 그려내는 네 사람의 젊은이들이, 흔히 그 또래들이 관심을 보이리라고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일들에 대해 도무지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네 남녀의 관계가 얽히고설키는 복잡한 사랑 방정식이 등장하는데도 정작 주인공들은 이른바 낭만적 사랑의 판타지에 기반한 통속적인 연애 문법이 가르쳐 주는 '사랑 타령'에조차 무심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대사의 절제미'가 빛날 수밖에 없도록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다. 일상의 디테일을 과감하게 덜어내 버리지 않는다면, 드라마의 '현실감'을 극대화하는 장치로서의 주인공들의 역설적인 '비현실감'은 반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상의 디테일이 거세되기 위해 이들에게는 가족이 없거나 있다 해도 망가져 있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비틀려 있기는 하지만 유일하게 가족과 일상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시연(김민정)의 캐릭터가 그나마 네 사람 중에 가장 현실에 근접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속된 말로 '또라이'이거나 이물스런 '외계인'인 양 묘사되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가장 비현실적인 캐릭터인 듯 보일 재복(김민준)의 대사를 찬찬히 들어 보면, 속이 멀쩡하다 못해 거의 '도인' 수준이다.

다시 말해 네 사람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우리 시대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비록 스테레오타이프화 되어 있는 보편성을 가지지는 못하지만 그 또래라면 누구나 한두 번쯤은 해 보았을 법한 드물지 않은 고민을 안고 있는, 게다가 심지어 그것을 적절한 자기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흔치 않은 능력을 가진(그래서 비슷한 감수성을 가진 그 또래의 젊은 시청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인물형들이다. 그러니까 이들이 '이상해' 보이는 것은 애당초 '이상한' 인물들이어서가 아니라 우리 시대가 흔히 '정상'으로 간주해 버리곤 하는 일상의 디테일을 사정없이 거세해 버린 치밀한 극적 장치 때문이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자못 의미심장하다.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 실은 '개성'을 추구하는 듯 보이면서도 가치관이나 관심사, 행동 방식 따위가 큰 틀에서 엇비슷해 보이는 언저리를 맴돌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그들이 일상적인 관계망을 맺고 있는 가족 관계가 붕어빵처럼 닮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지리멸렬한 일상의 디테일을 과감하게 걷어내면 그제서야 비로소 개인의 '개성'이,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서로 다른 성격과 관심사와 고민이 심지어 '비사실적'으로 보일 만큼이나 '사실적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힘주어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 대해, 근래 들어서 거의 대부분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앞다투어 등장시키는 소재(걸핏하면 '출생의 비밀'이 튀어나오면서 심지어 입양에 대한 비하 표현으로 항의를 받는가 하면, 연전의 <다모>나 올초의 <진주목걸이>에서처럼 서로의 정체를 모르던 친남매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를 무분별하게 끌어들여 드라마의 흥미를 반감시킨다는 식으로 폄훼하는 것은 부당해 보인다. 물론 두 사람의 청춘 남녀가 아무런 필연성도 없이 그저 "첫눈에 끌렸다"는 밑도끝도 없는 계기에 의해 연애 감정이 생겨나는 것으로 묘사되곤 하는 흔해 빠진 드라마들에서라면, '알고 보니 그들은 친남매간이었다'는 식의 설정은 "피가 끌렸다"는 입증도 반증도 불가능한 미신적 사고를 확고한 진리이기라도 한 양 강화시킨다는 점에서 그저 진부하기만 할 뿐 아니라 매우 위험하기까지 한 것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일견 그 연장선에서 읽힐 수도 있는 <아일랜드>에서의 재복과 중아(이나영)의 관계가 내포하는 의미는, 예컨대 우연히도 같은 배우가 누이를 사랑하는 친오빠라는 비슷한 배역을 맡았던 탓에 더욱 유사해 보이는 <다모>에서의 장성백과 채옥의 관계와는 오히려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요컨대 <다모>에서라면(또는 적어도 '친남매간의 사랑'이라는 모티브를 현대물로 재연한 <진주목걸이>도 마찬가지지만) 장성백이나 채옥이 서로에게 감정적으로 끌리는 것은 그 두 사람의 캐릭터와는 전혀 무관하다. 굳이 그런 캐릭터가 아니었더라도 그 두 사람은 아무런 필연적인 계기 없이도 서로에게 끌릴 수밖에 없도록 이미 선험적으로 운명지어져 있다. 심지어 그들은 서로 목숨을 놓고 겨루는 '적'이기까지 했음에도 그저 "몸이 먼저 그렇게 움직였을 뿐"이라는 변설로 스스로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설명하려 든다. 그러니 시청자들로서는 "피가 끌려서"라는 군색한 이유말고 다른 납득할 만한 근거를 발견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아일랜드>의 맥락에서 이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만일 재복이 자폐적인 사회 부적응자가 아니었다면, 또는 중아 역시 다분히 자폐적인 자아 찾기의 도정에 있지 않았다면, 그들이 드라마가 묘사하는 '바로 그' 캐릭터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결코 서로를 발견하지 못하고 스쳐지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일랜드>의 관계 문법이며, 그것은 비단 재복과 중아뿐 아니라 재복과 시연, 중아와 국, 또는 시연과 국의 관계에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즉 이 네 사람은 만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었던 것이 아니라 서로를 한 눈에 알아볼 수밖에 없는 '성격'의 인물인 것이다.

따라서 <아일랜드>에서 재복과 중아가 친남매라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차라리 네 사람의 주인공 모두가 이미 정신적인 '동족'이며 재복과 중아의 혈연 관계는 그것을 상징적으로 재현한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 흔한 말로 "피 한 방울 안 섞인" 재복과 시연, 중아와 국의 사랑조차도 이미 인세스트 모티브에 강하게 포섭되어 있는데, 새삼스럽게 재복과 중아가 친남매라고 해서 더 놀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 이 드라마는 서로를 알아볼 수밖에 없는 어느 '소수 종족'의 인세스트에 관한 드라마이다. 물론 그 '종족'의 정체성은 통속적인 '혈연'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실존적 상처' 또는 더 정확히는 그 상처와 대면하는 방식(아마도 상당히 '자폐적인'), 그리고 나아가 그것을 공유하는 '동족'을 발견했을 때의 정서적 태도(아마도 '연민'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따위가 그들의 '종족적 동질성'을 구성하는 핵심일 것이다.

자신의 상처를 힘겹게 응시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자기 연민'의 시선에 거의 자폐적으로 붙들려 있는 그들이 타인에게서 경험하는 '연민'의 감정은 기실 '확장된 자기 연민'에 다름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때의 '연민'은, 이 종족에 속하지 않는 '다수'들이 흔히 자기보다 못한 처지에 있다고 여겨지는 이들에게서 경험하곤 하는 다분히 '시혜적인 우월감'에 물들어 있는 통속적인 의미의 '연민'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지금껏 그 '존재'조차도 분명하게 인식되지 않았던 이 '종족'은 이 드라마의 제목이 암시하는 바 그대로 섬나라 '아일랜드'의 처지와 많은 점에서 닮아 있거니와, 그들을 잠정적으로 '아일랜드'라는 별칭으로 부른다고 해서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지금도 이 사회의 어느 구석에선가 '소수 종족'으로서의 자기 소외를 감당하고 있을 모든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바로 이 드라마의 네 주인공들처럼 '자기 연민'에 충만한 종족적 정체성을 승인하고 그 시선을 동족에세로 확장시켜 보지 않겠냐는, 그 처연한 인세스트의 향연에 기꺼이 동참하지 않겠냐는 따뜻한 초대의 메시지말이다.

발표지면 MBC노보, 2004.9.
단행본수록 미수록
대상 아일랜드, MBC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