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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전문 지식이 아닌 시민적 상식으로서의 법
작성자 똥개
혹시 이런 책을 보신 적이 있는지. 매우 제한된 소수의 전문가들에게만 독점되던 전문 지식을 비전문가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해 주는 책. 게다가 초심자나 비전문가를 위한 책이라고 해서 독자들을 깔보며 시혜라도 베풀듯이 아마추어 수준의 교과서적 지식만 단순 나열하지 않고 실은 전문가들조차도 평생을 두고 고민을 거듭해야 할 그 분야의 핵심적인 주제들로 깊숙이 파고들어 이론서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는 책. 심지어 전문 지식을 폐쇄적으로 독점하면서 특권을 누리는 전문가 집단 내부의 은밀한 동학(動學)을 파헤쳐 대중의 감시 앞에 노출시켜 주는 책. 거기에 덤으로 전문 지식을 다루면서도 딱딱한 이론적 언어 대신에 저자의 풍부한 정서적 감수성이 녹아든 유려한 문장을 읽는 문학적 즐거움까지 누릴 수 있게 해 주는 책. 그래서 문체의 흡인력에 압도되어 단숨에 끝까지 읽어치우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는 책. 그리고 이 모든 미덕이 서로 부조화스럽게 따로 놀지 않고 하나로 통합되어 책 전체에 일관되게 통째로 발휘되는 책. 아마도 이런 책이 있다면 언필칭 '고전'의 반열에 올려 놓아도 부족함이 없을 터이다. 김두식이 지은 <헌법의 풍경>이 바로 그런 책이다.

일반인이 쉽사리 범접하기 어려운 모든 전문 분야에서 일반 독자를 위해 이런 책을 써 주는 전문가들이 있어야겠지만, 법치를 근간으로 하는 현대 민주 사회의 시민적 교양으로 자리매김되어야 마땅할 법학 분야는 특히 그러하다. 예컨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적 인권이 어떤 내용과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와 같은 문제들이 대학에서 헌법학을 전공한 법률 전문가들끼리만 토론하는 데 머물러서는 곤란할 것이다.

저자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하지만, 이 책에 담겨 있는 내용은 실은 제대로 된 교육 제도 아래에서라면 중고등학교에서 이미 다루어 주었어야 할 내용들이다. 대학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예컨대 '법에는 정답이 없다'는 이치나 '말하지 않을 권리'가 왜 중요한지,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반드시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도 중고등학교 사회과 교과 과정 안에서 수박 겉핥기 식으로나마 법을 가르치기는 하지만,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이 내용은 '민주 사회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내면화하고 있어야 할 상식'이 아니라 '대학 입학 시험만 끝나면 까맣게 잊어버려도 좋을' 엄청난 분량의 암기 목록 중 눈에 잘 띄지조차 않는 일부분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그렇다면 법률 전문가들이라도 나서서 부실한 제도 교육의 피해자들이 시민적 상식을 회복하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의미에서, 서우데 제시한 미덕을 고루 갖춘 훌륭한 책들이 진즉에 많이 나와 있었어야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일반인을 지레 주눅들게 하는 권위적인 언어로 법의 원리를 살펴 보아야 할 필요을 느끼고 접근하려는 사람을 오히려 가로막기 일쑤였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의 출현이 반가운 까닭이고,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가치일 것이다.
발표지면 대한변협신문, 2004.7
단행본수록 미수록
대상 김두식, <헌법의 풍경>, 교양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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