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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빚지지 않는 사람을 바보로 보는 사회
작성자 똥개

이 책의 내용은 뒷표지에 박힌 두 문장으로 집약된다. “갚고 싶어도 못 갚는 건 내 책임이 아니다. 못 갚을 줄 알면서도 빌려준 약탈적 금융을 고발한다!” 30%가 넘는 고리대마저 버젓이 법으로 허용되는 이 나라의 금융시스템이 ‘약탈적’이라는 건 “갚을 수 없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돈으로 받지 않고 자산을 강제집행해서 돌려받겠다는 약탈적 의도가 전제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마디로 돌려받지 않아도 된다는 과도한 선행이지만 갚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돈을 떼먹었다는 자기 낙인을 찍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라는 저자들의 친절한 설명이 아니어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뻔한 사실이다. 하지만 애당초 갚지도 못할 빚을 낸 사람이 ‘내 책임이 아니’라는 건 너무 뻔뻔한 발뺌이 아닐까.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조하려는 의도에 흔쾌히 동의하면서도 책을 읽는 동안 마음 한켠이 내내 불편했다.

적어도 불로소득을 기대하며 무리하게 빚을 내서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시세 폭락으로 알거지가 된 사람들의 손해를 구제할 방법을 찾아내라는 아우성을 ‘도박으로 잃은 돈을 물어내라’는 어거지쯤으로 여겨온 내 처지에서는, 순진한(?) 사람을 도박판으로 꾀어낸 자들이 도박에 끼어든 사람보다 당연히 더 나쁘겠지만 그렇다고 도박에 뛰어든 사람이 정말로 순진하기만 한 사람들일까 하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이다. 약털적인 금융기관과 그것을 방조하는 정부와 언론을 한편에 놓고 그 반대편에 금융소비자를 대립시키는 이 책의 이분법적인 구도만으로 ‘가계부채 총액 1000조 원, 하우스푸어 150만 가구’의 현실을 깔끔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절반쯤 읽었을 때에야 그 불편함을 덜어낼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10년 전만 해도 2억 원의 대출을 받을 만큼 대담한 사람들이 아니었”으나 “어딘가에 홀리지 않고는 했다고 할 수 없는 일을 벌이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사례에서였다. 그들을 ‘홀린’ 건 이 책이 가장 집중적으로 고발하는 금융기관의 마케팅만은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빚지지 않고 사는 사람을 바보 혹은 유난스런 사람으로 취급하는 세상” 좀더 구체적으로는 형제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고집을 버리라는 충고”를 일삼지 않았다면, 아니 나아가 그들이 빚으로 얻은 불로소득을 부끄러워하며 도박판에는 곁눈질도 않는 형제를 존경하고 부러워했다면 과연 그런 무모한 욕심에 휩쓸렸을까. 그제서야 이 책의 제목이 (약탈적 금융‘자본’이나 약탈적 금융‘시스템’이 아니라) 약탈적 금융‘사회’라는 데 눈길이 닿았다.

몇 해 전, 적금을 들려고 찾은 은행에서 펀드를 권유방고 단호하게 거절한 일이 있다. 이른바 잘 나간다는 펀드의 수익률이 두자릿수 행진인데 적금 이자는 고작 3%대이던 때다. “어떻게 번 돈인데…. 원금 보장 안 되면 안 해요.” 혹시 이런 내가 딱해 보인다면, 세상물정 모르는 아집덩어리로 보인다면, 굳이 안 봐도 되는 손해를 보겠다고 우겨대는 바보로 보인다면, 그런 시선 하나하나가 모두 이 책이 고발하는 약탈자들의 ‘공범’들이다. 그리고 소름 돋게도 그들은, 빚을 부추기는 금융 전문가나 정부 당국자나 언론 종사자들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언제든 약탈당할 수 있는 금융소비자들이다.

‘피해자 탓하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저자들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역설적이게도 ‘왜 소비자가 더 현명해져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자연스런 욕망과 무분별한 탐욕의 경계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아무리 그 자체로 지극히 자연스럽더라도 빚이 아니면 실현할 수 없는 욕망을 절제하지 못한다면, 그건 실은 약탈자들의 탐욕과 다를 바 없는 탐욕일 뿐이다. 바로 그것이 약탈의 숙주다. (사족: 서두의 의문에 대한 내 결론. 도박으로 잃은 돈을 물릴 수는 없지만 도박 빚은 갚을 의무가 없다!)

발표지면 시사인, 2012.12.
단행본수록 미수록
대상 제윤경․이헌욱, <약탈적 금융사회>, 부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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