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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자연과학과 안 친한 ‘지성인’들을 위해
작성자 똥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자연과학’은 매우 중요한 열쇠말 가운데 하나이다. 그것은 비단 흔히 ‘과학기술’이라는 말로 뭉뚱그리곤 하는 통념에서처럼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일상이 ‘기술문명’의 토대 위에 서 있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다. 눈부신 기술문명의 발전을 추동한 원동력이 자연과학에 힘입은 바가 큰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자연과학의 의미를 순수하게 기술적이며 따라서 도구적인 차원으로만 환원시키는 그러한 태도야말로 실은 우리로 하여금 이 중요한 열쇠말에 다가가는 것을 가장 견고하게 가로막는 심각한 편견이다. 철학사의 시원에 자연철학이 자리잡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또는 근대가 성립하는 과정에서 코페르니쿠스나 다윈의 연구와 저작이 세계상의 혁명적 변화에 미친 ‘철학적’ 영향을 시시콜콜 들먹이지 않더라도, 생물학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유기체로서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는 구체적인 공간에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 우리 자신에 관한 모든 존재론적인 질문들이 근본적으로 자연과학이 다루는 주제와 맞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얼핏 하나마나한 것처럼 보이는 뻔한 얘기를 잔뜩 무게잡고 늘어놓으며 서두를 연 것이 혹시 촌스럽거나 우스꽝스럽게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작 우스꽝스러운 일은 따로 있다. 출판편집자로의 진로를 모색하는 젊은이들을 직업교육 현장에서 숱하게 접해온 내 제한적인 경험에 비추어보면, ‘지성의 보고’를 세심하게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지를 타진하는 이들조차도 ‘지성의 불균형’이 심각한 것이 현실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제법 조리있게 설명할 줄 안다고 믿는(또는 내게도 언뜻 그렇게 보이기까지 하는) 이들 대다수가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에서만큼은 중학교 교과서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무지’를 드러내기 일쑤이며, 심지어 그것을 그다지 큰 문제로 여기지 않거나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손쉽게 ‘어쩔 수 없는’ 한계로 치부해버리곤 한다. 나는 그들이 딴에는 자신있어 하는 ‘인문학적’ 또는 ‘사회과학적’ 소양도 실은 보잘 것 없는 ‘파편적 지식의 무더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무슨 근거로 그런 폭언을 하는지 의아스럽다면, 이 글을 다시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주시길 권한다. 그것이 내가 ‘촌스러움’을 무릅쓴 까닭이다. 요컨대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가 부실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철학의 빈곤’을 노출한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유독 그런 사람들이 많았던 것일까. 단적으로 국내 도서 시장에서 자연과학 교양서가 차지하는 비중을 되짚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또는 질적인 차원으로까지 시야를 확장하면 내 경험이 결코 부당한 일반화는 아니라는 심증이 더욱 강하게 든다. 가령 내 책 <편집에 정답은 없다>에 제시했던 “언젠가 읽은 어느 과학책은 스페인어 원서의 한국어판이었는데, 스페인어 전공자들이 (아마도 상당히 공들여) 번역해 내놓았다. 그런데 과학 전공자들도 까다로워하는 대단히 복잡한 이론도 아니고 중학교 수준에서 다루고 있는 물리 법칙들조차 도저히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난삽하게 서술되어 있었고,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유명한 과학자들의 이름조차도 엉망으로 표기되어 있었다.”와 유사한 사례는 수두룩하다. 고등학교에서부터 이미 ‘문과’로 진로를 잡았을 외국어 전공자들의 대다수는, 유별난 ‘개인적 관심’이 작동하지 않는 한 제도교육의 정규 교과를 통해 자연과학을 접할 기회가 없으며, 실은 오히려 몸에 밴 ‘개인적 무관심’이 자연과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는 ‘문과’를 선택하도록 이끌기도 하지 않던가.


물론 우리 사회의 공교육 체제의 왜곡이 야기하는 문제점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고, 자연과학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가령 ‘이과’를 선택한 학생들은 거꾸로 정규 교과에서 사회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기회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나아가 과연 대학입시에 볼모잡힌 채 ‘철학 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는 한국의 중등교육 현실에서 ‘대학 입시만 끝나면 깡그리 잊어먹어도 좋을 파편적인 지식’ 외에 ‘세상에 대한, 삶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 주는’ 공부를 언감생심 기대하기도 어렵다. 말하자면, 현재의 교육 현실에서는 ‘문과’에서 사회과학을 접하고도 조악한 사회의식에 머무르는 이들도 부지기수이고, ‘이과’에서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쟈연과학을 공부하고서도 ‘문과’ 출신과 별다를 바 없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다만 내가 지적하려는 것은, 제도교육 바깥에서 다시 말해 ‘개인적 관심’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지적 활동에서 나타나는 극심한 불균형이다.


예컨대 마르크스나 프로이트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세계상에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적어도 대략적으로는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며,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이들이 구축한 세계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지적’인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그보다 더 많다. 그러나 마르크스나 프로이트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으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상을 제시한 아인슈타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대략적으로라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을 마주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지적’이기보다 일종의 ‘마니악’한 관심으로 여겨지기 쉽다. 특히나 가령 자연계열 전공자가 촘스키나 부르디외를 들먹인다고 해서 이상하게 여길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인문사회계열 전공자가 허블이나 베게너를 아는 척한다면 좀 엉뚱하다거나 신기하다는 눈길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내가 전공이나 주로 활동해왔던 분야와는 사뭇 거리가 멀어보이는 자연과학 교양서를 ‘강추’하는 가장 중요한 까닭이다. ‘책이 마음의 양식’이라면, 편식이 신체의 건강에 해로운 것 이상으로 편독은 정신의 성장에 치명적이다. ‘불균형한 지성’이란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관심도 흥미도 없는데 그저 ‘좋은 약은 입에 쓰다’니까 억지로라도 책장을 넘기라는 뜻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진실로 ‘나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향해 진지한 존재론적 관심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자연과학이 재미없을 수 있겠느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자연과학도 알면 알수록 흥미진진해지는 점입가경의 세계이니 공연한 선입견으로 지레 멈칫거리지 말자는 것이다. 그래도 께름칙하다면 생긴 게 투박스러워 선뜻 손이 안 가지만 막상 먹어보면 씹을수록 맛있었던 음식들을 떠올리자.


그런데 그렇게 자연과학과 좀 친해져보자고 작심을 했다 하더라도, 워낙 ‘기초’가 부실한 탓에 또는 중학교 졸업 이후로는 손에서 놓은 지 오래라 도무지 낯설고 종잡을 수 없어서, 몇 권 집어들었다가는 끝까지 읽어내지도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제대로 들어서기만 하면 점입가경이 펼쳐질 텐데, 입구도 못 찾고 헤매느라 공연한 고생만 하다가 “과학은 역시 재미없어” 내지는 “나는 그쪽은 영 아니야”라는 상투적인 결론으로 되돌아오는 셈이다. 딱딱한 교과서 스타일이 아니라 문외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말랑말랑한 에세이 스타일의 ‘개론서’가 아쉬운 건 그래서이다. 전체적인 윤곽을 보여주는 개론서는 많지만 불친절한 이론서가 대부분이고, 좀더 대중적인 교양서도 많지만 단편적인 소재를 나열하는 데 그쳐 낱낱의 내용이 아무리 충실해도 체계적인 ‘(지적) 지도’를 그려주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원더풀 사이언스>는 그런 점에서 무척이나 반가운 책이고, 특히나 ‘과학과는 좀체 친해지지 못했던,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한번 친해져보기로 맘먹은’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우선 이 책은 표지에 큼지막하게 새겨진 The Canon이라는 원제가 웅변하듯, 확률․척도․물리학․화학․진화생물학․분자생물학․지질학․천문학 등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를 체계적으로 잘 설명해준 ‘교과서’이다. 동시에 ‘아름다운 기초과학 산책’(원제: A Whirligig Tour of the Beautiful Basics of Science)이라는 부제로 알 수 있듯 학자가 쓴 이론서가 아니라 저널리스트가 쓴 대중교양서이다.

발표지면 <지난 10년 놓쳐서는 안 될, 아까운 책>, 부키, 2011.
단행본수록 미수록
대상 나탈리 앤지어, <원더풀 사이언스>, 지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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