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문화센터에서 ‘출판 편집자 입문 과정’의 강의를 시작하며, 전업 강사의 첫발을 떼기 시작한 것이 2003년 6월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강의를 통해 수많은 ‘편집자 지망생’들과 ‘초보 편집자’들을 만나면서, 현장에서 일을 할 때는 ‘눈앞의 일’에만 매몰되어 미처 살필 겨를이 없었던 숱한 문제들을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실마리를 얻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가령 이런 것이다.
도대체 출판사에서는 무슨 일을 할까?
석 달에 한 번씩 개설되는 내 강의를 거의 매번 30명이 넘는 인원이 수강한다. 어느 해인가는 35명 정원을 마감하고도 대기자만 30명이 넘은 적도 있다. 서울북인스티튜트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서 ‘편집 입문 과정’의 정원이 50명인데도 매번 강의실을 가득 매우는 성황을 이룬다. 2006년에 처음 시작한 서울출판예비학교는 (무료 교육이라는 무시 못 할 메리트를 감안하더라도) 2년 연속으로 10대 1이 넘은 입학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줄잡아도 연간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출판 편집’에 뜻을 두고 문을 두드리는 셈이다. 그런데도 현장에서는 “사람이 없다. 편집자 좀 찾아 달라.”라는 하소연과 아우성이 줄을 잇는다.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현장에서는 ‘구인난’에 애가 타고, 인력을 아쉬워하는 회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취업의 문’은 넓어지지 못하고 ‘구직난’에 허덕이는 것일까. 여러 가지 복잡한 사회적 배경이 작용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딱 잘라 그 원인을 지목하기는 쉽지 않지만, 출판 현장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다시피 한 ‘지망생’들은 물론이려니와 이런저런 회사를 전전하며 현장 경험을 하고도 ‘초보’ 딱지를 떼지 못하는 ‘신참내기’들이 막연하게 그리는 편집자의 모습과 출판 산업의 요구 속에서 개별 출판사들이 필요로 하는 인력의 모습 사이에 쉬이 해소되지 않을 적잖은 간극이 있으리라는 사정을 짐작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몇 해 전, 어느 출판사의 편집주간으로 일하던 지인이 이런 경험을 들려준 일이 있다. 처음 인사를 드리게 된 집안 어른이 “자네는 무슨 일을 하나?”라고 직업을 묻기에 “출판사에 다닙니다.” 했더니 “많이 힘들겠군. 요즘 집에 문들은 잘 열어 주나?”라며 걱정을 해 주시는 바람에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 어른은 ‘출판사에 다닌다’는 말에서 대뜸 ‘방문판매’를 연상했던 것이다. 오랜 편집자 생활을 거쳐 출판사 대표로 활약하는 어느 선배가 이 이야기를 듣고는 곧바로 들려준 이야기는 이렇다. 아파트 경비원이 인사를 하며 무슨 일을 하냐기에 출판사에 다닌다고 했더니, ‘아!’ 하고 알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대듬 하는 말이 “명함도 찍어 주나요?”였더라나. 하기사 꽤 팔리는 책을 몇 종씩이나 냈다는 저자들조차도 출판사를 인쇄소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수두룩하고, 북에디터 사이트에도 잊을만 하면 한 번씩 “책 한 권 만드는데 돈이 얼마나 필요한가요?”라는 요령부득의 질문이 올라오고 있으니 이런 대꾸도 무리는 아니다. 아마 편집자들에게 수소문을 해 보면 이런 에피소드만을 모아도 책 한 권 분량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들을 때마다 배를 잡고 웃지만 한편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알아 달라고 떼를 쓸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편집자 입문’의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이들에게만이라도 피상적인 이해를 넘어선 실상을 제대로 전해줄 길은 없는 것일까.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니, 역시 책을 통한 방법을 가장 먼저 떠올릴 법하다. 그런데 2003년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런 용도에 적당한 책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편집자란 무엇인가'를 어렵사리 찾아 아쉬운 대로 읽히기는 했으나 십여 년 전에 출간되어 체제가 워낙 낡은 데다가(레이아웃이 요즘 독자들의 감각과 사뭇 다른 책은 일단 읽기가 수월치 않다) 우리나라의 이야기가 아니어서 현장감이 떨어진다는 한계는 감수해야 했다. 2004년에 <편집자 분투기>가 나왔을 때 호들갑스럽게 환호성을 질렀던 것도 그 때문이다.(그 또한 <기획회의>의 지면을 통해서였다. ‘출판가 쟁점’의 연재 지면을 빌어 겁도 없이 <배워서 남 주자!>라는 ‘격문’을 써올렸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그러나 이 책이 그 자체로 매우 훌륭한 책이라는 사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거의 최초로 현장 편집자의 육성이 한 권의 책으로 엮여 나왔다는 ‘역사적’ 감동에 취해 미처 살피지 못했던 아쉬움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것은 그 이듬해 ‘기획자 노트 릴레이’ 시리즈의 첫 결실 <책으로 세상을 편집하다>를 마주하고 나서였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다양성’이라는 가치이다.
출판의 세계는 다양하다!
출판사에 취업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역점을 두고 강조하는 ‘팁’은, 제발이지 “어디든 취업만 되면 고마운 일”이라는 막연한 생각부터 버리라는 것이다. 일반 독자들에게야 ‘책’이란 그저 다 똑같은 ‘책’이고 ‘출판사’도 그저 다 똑같은 ‘출판사’일 뿐이지만, 한 번이라도 책을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세상에 그런 ‘책’은 없다는 것, ‘어떤 (종류의/성격의) 책’이 있을 뿐이라는 것, 그리고 ‘어떤 책’을 만드느냐에 따라 ‘책을 만드는 일’의 매무새도 그 일을 하는 ‘사람’의 됨됨이도 무척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 다양한 모습을 뭉뚱그려 일반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 해도, 그 내용은 구체적인 현장 경험이 전무하거나 일천한 ‘입문자’들이 접근하기에는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하나마나한 ‘공자님 말씀’이거나 기존의 피상적인 통념과 아무런 긴장을 일으키지 않는 ‘뜬구름잡기’에 불과할 것이다. 혹 순수한 학문의 세계에서라면 ‘추상’에서 ‘구체’로 연역하는 방법도 의미가 있겠지만, 실무의 세계에서는 언제나 ‘구체’에서 ‘추상’으로 귀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출판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추상적인 명제를 나열하기보다는 ‘이런 출판은 이렇고, 저런 출판은 저렇다’라고 구체적인 모습을 제시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편집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출판편집총람>이나 sbi 강의 교재인 <편집자 입문 과정>보다 ‘(다른 사람에게라면 몰라도) 나에게 편집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편집자 분투기>가 더 좋은 길잡이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한 사람의 ‘나’가 쓴 <편집자 분투기>보다 30명의 ‘나’들이 쓴 <책으로 세상을 편집하다>가 훨씬 더 범용성이 클 것이다. 모든 편집자가 <편집자 분투기>의 저자와 같은 편집자가 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책으로 세상을 편집하다>를 비롯하여 ‘기획자 노트 릴레이’ 시리즈를 쓴 90명의 저자들과 같은 편집자가 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그저 90명 중에서 어느 한 사람을 지목하여 그 저자와 같은 편집자가 되려고 노력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설령 그렇다 해도 다른 89명이 말하는 편집 또한 편집자로 살아가며 일하는 동안 끊임없이 시야를 넓혀 가야 할 출판의 소중한 일부분일 것이며, 그 모든 모습들이 한데 어우러졌을 때라야 추상화하지 않고서는 일반화하기 어려운 출판의 전모가 어렴풋이라도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30명의 글을 담은 <책으로 세상을 편집하다>가 한 권에서 그치지 않고, 해를 거듭하며 <책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책으로 세상을 움직이다>로 이어지며 더 많은 편집자들의 육성을 담아냈으며 ‘기획자 노트 릴레이’가 지금도 계속 이어져가고 있다는, 결코 ‘완결판’이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존재할 수 없는 ‘열린 텍스트’라는 점에서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미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기원하지만 혹여라도 '기획회의'의 ‘기획자 노트 릴레이’가 멈추게 된다 해도, 책이 사라지지 않는 한, 책을 만드는 일이 계속되는 한, 이 시리즈는 누구의 손에 의해서든 계속될 수밖에 없으며 또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3권의 책이 엮이는 데만도 4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앞으로 아무리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40년, 400년이 걸려서라도 30권, 300권을 이루고도 결코 ‘완간’이라 말할 수 없는 바로 그것이 어쩌면 ‘출판’의 참모습일 것이다.
‘편집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편집자로 사는’ 것이다!
출판 입문의 길을 찾는 이들에게 이 시리즈의 책들을 읽어 주기를 주문하면서 잊지 않고 꼭 당부하는 말이 있다. 이 책 속에서 ‘편집이란 어떤 일일까’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편집자란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답을 구해 보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책들이 ‘편집이란 어떤 일일까’에 대한 답을 주기에 모자라서가 아니다. 위에서 장황하게 늘어놓았듯, 이 책은 ‘책을 만드는 일이 어떤 일인지’의 다양한 면모를 매우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이 시리즈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전에 ‘편집자란 어떤 사람인지’를 그야말로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제넘은 잘난 척을 좀 하자면, ‘edit’(편집하다)와 ‘editor’(편집자)라는 영어 단어의 유래부터가 그렇다. 언뜻 보면 동사 ‘edit’에 접미사 ‘-or’이 붙어서 'editor'라는 명사가 파생했을 것 같지만, 실은 그 반대다. 언어학 교과서에서는 'edit'를 역조성(逆造成; 파생과 반대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조어법)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하고 있거니와, 명사 ‘editor’가 먼저 있었고 이 말이 우연히도 ‘-or’로 끝나는(동사에서 파생하지 않고도 이런 경우는 꽤 있다. 가령 doctor나 barber가 그렇다.) 데 이끌려 ‘edit’라는 동사가 역조성된 것이다. 말의 유래가 역사적 정황과 언제나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흥미로운 언어학적 사실이 편집이라는 일과 편집자라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성찰하려 할 때 무척이나 의미심장한 시사를 던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요컨대 ‘편집’ 일을 하는 사람이 ‘편집자’인 것이 아니라, ‘편집자’인 사람이 하는 일이 ‘편집’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늘 내 학생들에게 ‘편집’ 일의 첫걸음을 일러 주기보다는, ‘편집자’로 사는 길의 걸음마를 도우려 했다. 어느 해였던가, 강의를 마치는 뒤풀이에서 “편집 입문 강의인 줄 알고 들었는데, 인생 철학 강의였네요!”라는 짤막하지만 인상적인 강의 평을 접했을 때도, 터무니없는 ‘자뻑’일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을 강의 내용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 지적이 아니라 바로 내가 의도한 대로 강의가 이루어졌다는 찬사로 들었다. 그것이 내가 편집에 입문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강의를 통해 전해주려 하는 내용의 핵심이라면,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길을 살았냈던 90명의 선배, 동료, 후배 편집자들의 ‘편집자’로서의 삶이 송두리째 배어 있는 이 시리즈 말고 또 어떤 책을 권해야 할까. 그리고 어찌 거기에서 ‘일머리’의 윤곽을 가늠하는 데서 그치기보다 ‘사람됨’의 자취를 더듬어 주기를 바라지 않을 수 있을까.
북에디터 사이트에서 지겨울 정도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편집자 지망생’들의 판에 박힌 질문들, 어떤 전공이 유리한지, 무슨 자격증을 따야 하는지, 외국어 시험 성적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등등에 대한 내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다. 편집자의 전문성은 그런 눈에 보이는 것, 계량화할 수 있는 것들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결코 어떤 척도로도 계량화할 수 없고 계량화해서도 안 되는 내면의 성숙, 총체적인 인성(personality)에 기반한다. 그리고 여기 ‘기획자 노트 릴레이’에 담긴 90명의 삶이 바로 그것을 웅변한다. 그 저자들 각자는 가치 정향도, 세계관도, 출판관도 모두 다르고, 그것을 자신의 일과 삶에 실현해 온 방법과 과정도 모두 다르지만, 그래서 한 마디로 ‘편집자는 어떤 사람이다’라는 명제로 환원될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의 숨길 수 없는 공통점이 있다면, 그저 ‘편집’이라는 일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편집자’로 살았기에 그 일을 해낼 수 있었으리라는 점이다.
이 점은 특히나 세 번째로 묶인 <책으로 세상을 움직이다>에서 한결 빛을 발한다. 출판업계의 전통적인 분류로 치자면 통상적인 의미의 ‘편집자’보다는 역시 통상적인 ‘영업자’로서 직업적 커리어를 쌓아왔던 필자들이 유독 많이 참여했다. 그러니 그저 ‘일’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분들까지를 아울러 ‘편집자’라 못을 박는 내 말투가 혹여 거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분들은 ‘영업 영역’이라는 출판 현장에서 (‘편집 영역’에서 편집 일을 했던 어느 누구 못지않게) ‘편집자’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이 바로 그 점을 일깨운다. 나는 심지어 출판의 ㅊ자와도 인연이 닿지 않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으며, 성실한 독자라는 점 외에는 출판이라는 직업을 꿈에서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들 중에서도, 그야말로 ‘타고난 편집자다!’라는 감탄을 자아내곤 하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적잖이 알고 있다. 그 찬탄이 그가 ‘편집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님은 명백하다. ‘편집 일’ 근처에도 오지 않고도 훌륭하게 ‘편집자’로 살고 있는 그의 ‘사람됨’이 일깨워졌던 것이다.
세상은 역사 위에 존재한다!
>기획회의>에 연재될 때는 잡지의 제호만큼이나 밋밋한 ‘기획자 노트 릴레이’라는 제목 아래 놓였던 글들이 책으로 묶일 때는, <책으로 세상을 편집하다>, <책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책으로 세상을 움직이다>라는 새로운 제목을 얻었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글이니 ‘책’이 키워드로 등장한 것은 한편 자명하지만, 하필 왜 ‘세상’이라는 키워드가 이 시리즈를 관통한 것일까.
물론 ‘세상’은 책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책을 이루는 세 요소, 저자와 독자, 출판인들이 버팅기고 있는 공간을 의미할 것이다. 소쉬르의 생각틀을 훔쳐 오자면, 아마도 그 공간(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 중첩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지금까지의 ‘기획자 노트 릴레이’는 잡지에 정기적으로 연재되는 형식을 통해 시간 축을 따라 흘러 왔다는 태생적 조건에 비추어본다면 다소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리즈의 제목에서 확연히 드러나듯이 ‘책’의, 또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공시성만을 보여준다.
이 책들을 통해 나를 포함한 이 책들의 독자들과 동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저자들의 일과 삶, 그 다양한 모습이 은연중 공유하고 있을 이 시대의 시대정신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체로 무척이나 기쁘고 의미있는 일이지만, 다른 한편 그들이 책으로 편집하고, 소통하고, 움직였던 세상이 4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어떻게 달라져 있는지, 좀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2005년에 책으로 편집했던 세상과 2006년에 책으로 소통했던 세상과 2007년에 책으로 움직였던 세상은 과연 같은 세상인지 아니면 시간의 흐름 속에 중첩된 또 다른 세상인지가 또렷하지 않은 것이 (그것이 이 책들의 장점이 될지 단점이 될지는 좀더 생각을 가다듬어 봐야겠지만) 마음에 걸린다.
특히나 이 시리즈가 연재되는 지난 4년의 시간은 한국의 출판 환경이 그 어느 시기보다도 급격한 변화의 격랑에 휘말렸던 시기이다. 나 자신만 하더라도 ‘입문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적어도 현장 편집자들과라면 좀더 치열하게 공유했을 고민의 화두들에 비하면) 뻔하디 뻔한 강의 내용인데도 3~4년 전과 지금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다. 그리고 공간적으로는 물론이지만, 시간적으로도 그 변화의 한복판에 ‘기획자 노트 릴레이’가 있었다. 혹 너무 한복판이어서, 다름아닌 ‘태풍의 눈’이어서일까. 이 책에 실린 편집자들의 숨결은 통시성을 가늠하기에는 너무나 고요하다.
만일 ‘기획자 노트 릴레이’가 더도 말고 한 3년쯤 앞서 연재를 시작했다면, 그래서 지금 5~6권쯤이 책으로 엮여 있다면, 어쩌면 거기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중첩된 서로 다른 세상‘들’의 결절(=‘시대’)이 좀더 분명하게 감지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자리가 연재 100회를 기념하는 덕담으로 채우기에도 모자란 지면이라는 부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편집자들이란 자신의 시대와 가장 치열하게 긴장하는 사람들이라는 믿음을 저버리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한국의 출판 환경이 급격하게 소용돌이치고 있다면 그 소용돌이가 미처 시작되기 이전의 시대와 (그것이 언제가 될지 모르나) 어느 정도 지나간 이후의 시대, 그 사이가 우리가 살고 있는 하나의 ‘시대’인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이 시리즈는 아마도 그 공시성의 가장 충실한 재현일 터인데 공연한 어깃장을 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것은 지금까지 나온 세 권의 책에 대한 객쩍은 딴지라기보다 100회를 맞은 ‘기획자 노트 릴레이’ 연재가 앞으로도 이어지기를 바라며, 그 앞날에 짐짓 눙쳐두는 다짐이기 쉽다. 비유하자면(행여라도 농담으로 받아넘겨 주시기를 바라지만), 이 연재가 몇 회까지 갈지, 그리고 이 시리즈가 몇 권이 더 나올지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그 시리즈를 한데 묶을 수 있는 제목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책으로 시대를 편집하다'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직은 이 제목을 붙이기에는 상당히 빈약하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지만, 시간의 무게가 더 덧씌워진다면 머지않아 이런 제목을 붙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앞서의 가정을 다시 되풀이하자면, 앞으로 더도 말고 3년쯤만 연재가 계속되고, 그래서 5~6권쯤의 볼륨이 된다면, 2004년의 시대정신과는 사뭇 다른 2011년의 시대정신이, 그리고 그 사이를 면면히 관통하는 통시성의 도도함이 우러나오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아무려나 세상과의 피를 말리는 긴장 속에서도, 시대의 숨가쁜 격랑 속에서도, 어쩌면 (적어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일’로서의 ‘편집’이 더는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되는(즉, ‘편집 일’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영 딴판인) 끔찍한 날이 오게 된다 해도, 책과 세상(들) 사이에 있었고 있고 있을 사람, 편집자들은 숨이 다하는 날까지는 여전히 ‘편집자’로 살아내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 모두에게 복 있으라! ―― “To write is human, to edit is divine.”(스티븐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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