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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미완으로 남은 '언어학 대중화' 시도
작성자 똥개

언어가 없는 사회를 상상할 수 있을까. 인간의 사회가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에 기초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독자들이 알 수 있는 것도, 언어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표피적인 관찰일 뿐이다. 언어가 없이는, 실은 생각도 없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도구 이전에 생각의 도구이기도 하다. 사람을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정의할 때, 언어는 ‘사람을 사람답게 해 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일상에서 한시도 떼놓을 수 없는 언어의 됨됨이에 관해 깊이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에둘러 말할 것도 없이, 온갖 학문들의 가장 기초적인 개념을 서술한 대중적 교양서들이 넘쳐나는데도, 언어학을 다루는 책은 전공자들을 위한 전문학술서들은 많아도 읾반인을 위한 대중교양서를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언어를 다루는 대중서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아니 무척 많지만, 그 대부분은 언어 현상 일반의 얼개를 이해하도록 돕는 교양서가 아니라 외국어 학습을 위한 실용서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심지어 한국어에 대한 책들이라고 해도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이미 일상 속에서 짧지 않은 세월을 익숙하게 부려쓰고 있는 모어(母語)의 문법과 어휘를 마치 낯선 외국어 공부하듯 새삼스럽게 학습의 대상으로 삼는 ‘한국어 실용서’ 시장의 풍경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요컨대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어든 외국어든 ‘언어에 관한 지식’이란, 어떤 표현이 맞는 말인지 틀린 말인지를 가리는 기준으로서의 쓸모 이상을 넘어서지 않는다. 하지만, 특정한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반드시 특정한 형식을 충족해야 한다는 필연적인 근거 따위는 없다는, 즉 본디 맞는 말도 틀린 말도 없다는 언어학의 가장 초보적인 ‘상식’은 무시되기 일쑤다. 그럼에도 우리가 가령 “나는 어제 집에 가겠다.” 같은 문장을 비문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뜨거운 물이 발등에 떨어졌을 때 (“발을 뎄어.”가 아닌) “발이 탔어.”라고 말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본래부터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무슨 필연적인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고 누군가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고 정해놓았기 때문이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단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특정한 표현을 특정한 의미로(만) 사용하더라는 현실만이 유일한 근거일 뿐이다. 따라서 언어에 대한 지식을 쌓는 일은 현실로 존재하는 언어 현상을 관찰하는 방법을 익히는 일일 테고, 그 방법을 대중들에게 친절하게 일러주는 내용이라야 ‘언어학을 다루는 대중교양서’라 할 수 있을 게다.

모르긴 해도, 웬만큼 폭넓은 독서 편력을 자랑하는 교양서 독자라도 그런 책을 제목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게다가 더 심각한 문제는, 허다한 ‘한국어 실용서’들이 한국어의 언어 현실에 대한 과학적 관찰의 결과 얻은 경험적 지식이 아닌 편협한 국수주의에 매몰된 관념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급기야 대중들은 지금껏 제 생각을 전개하는 데 아무 불편 없이 부려써 왔으며 사회적 의사소통에 아무 지장을 주지 않았던 ‘멀쩡한 한국어’를, 아무런 합리적 근거도 없이 스스로 ‘잘못된 말’이라고 여기기에 이르는 이데올로기적 폭력에 노출되기까지 한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전문지식의 대중화에는 손을 놓은 채 ‘그들만의 리그’에 안주하고 있는 언어학자들의 직무유기 탓이 크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에 관해 나는, 고종석의 <국어의 풍경들>(문학과지성사)과 <감염된 언어>(개마고원)가 출간된 1999년에 쓴 이 책들에 대한 서평에서 이렇게 지적하기도 했다.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엉터리 건강 정보가 아무런 의심없이 대중들 사이에 횡행하고 있다면, 그건 거기에 대해 '냉소'와 '경원'의 태도를 가지고 침묵하는 의사들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내 글, <천박한 대중사회와 폐쇄된 상아탑 사이에서> )

고종석은 저널리스트로 널리 알려져 있고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우리 독서 시장에서 보기 드물게도 ‘언어학 지식의 대중화’에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온 언어학자이기도 하다. 그가 그 과정에서 펼쳐내 왔던 한국어의 모습이 대중사회에 만연한 ‘규범주의’(현실에 대한 관찰의 기술에 불과한 규범으로 역동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을 재단하려는 선후와 본말이 뒤바뀐 태도)와 ‘언어순혈주의’(외래의 요소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한국어라는 관념에 집착하는 태도)에 바짝 날이 선 긴장으로 맞서 있는 듯 보이기도 하는 건, 그래서 사실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착시이기도 하다. 그는 기존의 언어학과는 다른 대단히 새롭고 독특한 언어학을 선보인 것이 아니라, 한국어든 외국어든 언어학을 전공하는 대학 1학년생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언어학의 ‘상식’을 재확인한 것뿐이다. 물론 대중사회에서라면 그것은 심지어 불온하게까지 느껴질 만큼 낯설고 신기한 내용일 게다. 그의 언어학 저술은 ‘상식의 확인’만으로도 독보적인 입지를 확보할 수 있는 초라한 한국 지식사회의 아이러니를 유감없이 폭로한다.

그러나 단지 그뿐이라면, 2007년에 초판이 발행된 <말들의 풍경>을 굳이 이 지면에까지 끄집어낼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좁게 보아서는 <국어의 풍경들>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신문 연재글 모음집으로 이 책만의 독립적인 성취를 가늠하기 쉽지 않으며, 넓게 보아 <사랑의 말들, 말들의 사랑>(문학과지성사), <언문세설>(새움) 등 ‘말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일련의 저작을 모두 포괄하더라도 그의 언어관을 가장 깊이 있게 드러낸 대표작오르는 단연 <감염된 언어>를 내세워야 마땅할 터이다. 그럼에도 <말들의 풍경> 2012년 개정판을 주저없이 ‘아까운 책’으로 꼽을 수밖에 업는 것은, 개정판에 새로 담긴(즉 초판에는 없던) 여덟 편의 글이 지닌 의미가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국일보>가 이 글들의 연재를 알렸을 때, 나는 적잖이 들떴었다. 제대로 틀잡힌 ‘언어학 대중교양서’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살폈듯 <국어의 풍경들>이나 <말들의 풍경>(초판)만으로도 보기 드문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특히나 <감염된 언어>의 독보적인 위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여러 주제들이 무매개적으로 나열되어 있을 뿐 언어학의 전체적인 윤곽을 어림하기엔 본젹적이지도 체계적이지도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어김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드디어 전공자들의 서가에 전문학술서로 갇혀 있던 ‘언어학 개론’이 대중교양서로 다시 태어나는 감격적인 과정을 독자로서 함께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본디 100회 가량 이어나가며 언어학 이론과 언어학사의 번듯한 교직을 시도할 요량”이었던 이 연재는, “일간신문 지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편집국 안팎에서 빗발쳐” 8회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허무하게”라는 수식어로 좌절의 심경을 내비치고 있지만, 기대에 한껏 들떴던 독자의 처지인들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작 이 정도의 ‘지식 대중화’ 직업도 수용하지 못할 만큼 한국의 대중사회가 우민화되어 있다고는 차마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저 ‘일간신문’의 호흡이 짧은 탓이려니 하기엔, 매체를 옮겨서라도 이 연재를 지속할 만한 그보다 호흡이 긴 다른 대중매체가 좀체 떠오르지 않았다. 지나친 비약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한국 사회의 매체 지형은 전문지식과 대중의 접촉을 견고하게 차단하고 있다.

어쩌면 “대학에서 전공자들이나 공부할 전문지식을 대중이 꼭 다 알아야 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대중의 교양으로 자리잡은 상식들도 한때는 소수의 전문지식이었다는 것을, 인류의 역사가 바로 그렇게 진보해 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게다가 대학 진학률이 80퍼센트에 이르는 사회에서, 대학 교양과목으로 수강할 정도의 내용을 대다수가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대중이 수용하지 못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몇 달 뒤, 고종석은 ‘절필’을 선언했다. 그 결심을 되돌리지 않는 한, 우리 사회가 ‘언어학 지식의 대중화’에 고종석처럼 전문지식의 탄탄한 기반과 저널리스트의 대중적 필치를 겸비한 적임자를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을 성싶다. 미완으로 남아 <말들의 풍경>의 부록처럼 달린 ‘말들의 모험’이 너무나 아까운 까닭이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고종석, <감염된 언어> 개정판, 개마고원, 2007.
이 책의 내용을 얼마나 불편하게 느끼는지야말로, 규범주의와 언어순혈주의에 얼마나 매몰되어 있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

최경봉, <한글 민주주의>, 책과함께, 2012.
완고한 규범주의/언어순혈주의에 맞서는 전선에 학계의 전문연구자로서는 거의 최초로 나타난 우군.

발표지면 <아까운책 2013>, 부키
단행본수록 미수록
대상 고종석, <말들의 풍경> 개정증보판, 개마고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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