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의 어느 유치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강남 엄마’들의 교육전쟁의 단면을 그려낸 KBS 드라마스페셜 연작시리즈 <그녀들의 완벽한 하루>는, 흔히 ‘교육문제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강남 어디에선가 일어날 법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물론 부유층의 왜곡된 ‘아이사랑’을 고발하는 데 초점을 맞춘 드라마도 아니다. 실은 강남을 욕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아이들을 전쟁터에 밀어넣으면서 ‘에듀푸어’를 마다하지 않는 모든 부모들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주제는 교육 문제의 좀더 김숙한 사회적 동인을 겨냥한다.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아주 단순하다. 유치원생이 초등 3학년 과정을 선행학습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틱 증세를 보이는 하진, 갖고 싶은 건 다 가져야하고 하고 싶은 건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꼬마 악녀’ 리나, 엄마의 애정에 목말라 보모가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도훈, 이 아이들의 불행은 과연 엄마들의 비뚤어진 교육열 탓이기만 할까.
이 아이들과 엄마의 관계는 물론 누가 봐도 심하게 일그러져 있지만, 단지 그뿐이 아니다. 그 이전에 엄마와 아빠의 관계가 훨씬 참혹하게 망가져 있다는 지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아빠들은 한결같이 엄마들의 유별난 ‘아이사랑’을 못마땅해하지만, 그에 관해 어떤 대화도 시도하지 않는다. 다른 일상사는 충분히 대화가 가능한데 유독 아이 문제에서만 입을 닫고 비껴서 있는 게 아니다. 부부 사이에 아예 대화라는 게 없다. 애당초 이들의 결혼이 거래 이상의 아무것도 아닌 탓이다. 부모가 불행한 결혼에 묶여 있는데, 아이가 행복할 수는 없다.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를 꼭 저렇게 키워야 하는지”를 따지기 이전에 드라마는 묻고 있다. “당신의 결혼은 안녕하십니까?”
도훈네처럼 결혼을 ‘비즈니스’로 여길 만큼 대단한 부자도 아니고, 라나네처럼 ‘고급 성매매’의 예외적인 귀결도 아니니 나와는 상관없는 딴 세상 사람들 이야기일까? 아니다. 가령 부부가 모두 일류대를 나왔다는 하진네는 어쩌면 흔해빠진 캠퍼스커플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부 사이에 존중도 신뢰도 사라진 채 그 어떤 대화의 실마리도 찾지 못하는데도 이들의 결혼이 유지되고 있다면, 그건 단지 ‘남편은 돈 벌어다주고 아내는 아이 키우면서 살림하는’ 거래만 앙상하게 남은 껍데기일 뿐이다. 도훈네나 리나네와 무엇이 다른가.
결국 하진 아빠는 그 껍데기를 박차꼬 나가지만, 그건 숨막히도록 아이의 교육에만 집착하는 아내 탓만이 아니다. 극단적으로 치닫도록 방치한 자업자득이기도 하다. 게다가 말로는 그런 교육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아이는 여전히 엄마에게 내맡긴 채 혼자만 빠져달아나는 비겁함이라니! 정말로 아내가 미쳤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아이부터 구출해내야 한다는 최소한의 책임감조차도 없다. 애초에 문제를 해결할 의사가 있기나 했던 걸까.
물론 엄마들에게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드라마는 아이를 지옥의 고통으로 내몰면서도 그게 다 아이를 위해서라고 강변하는 이율배반이 함의하는 교육전쟁의 핵심적 본질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다. 딸을 아무것도 아쉬울 것 없는 공주로 키우겠다는 리나엄마 차혜주(김세아)의 욕망도, 아들을 영재로 키우기 위해 무섭게 몰아치는 하진엄마 유경화(신동미)의 욕망도, 실은 아이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들 자신의 (좌절된) 욕망을 아이에게 투사한 것일 뿐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정도의 차이가 있다뿐이지 교육전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어느 부모인들 나는 그들과는 다르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다시 드라마는 묻는다. “당신의 아이가, 그 아이의 삶이, 아이를 통해 대리충족이라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딜 당신의 알량한 꿈에 희생되어도 괜찮습니까?”
그래서 ‘아이가 더 크기 전에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둔 정수아(송선미)의 시선에서 드라마가 진행되는 것도, 또는 그들과 끝내 섞이지 못하는 영지엄마 차현수(사현진)가 워킹맘이라는 설정도, 나아가 그 엄마들이 (누구 엄마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서로를 만났다면 그들의 관계가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지를 어림하는 수아의 마지막 내레이션도, 매우 의미심장하다. 엄마의 주체적 개별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지지될 때, 엄마는 자신의 욕망을 아이에게 투사하는 대신 ‘일’을 통해 실현의 통로를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실마리를 던져놓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실마리를 풀기 위해서는, 드라마의 도입부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유능한 커리어우면 수아는 왜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었을까. 왜곡된 교육전쟁의 해법은 워킹맘에게 잔인하기 짝이 없는, 그 짐을 나누지 못하도록 아빠들을 혹사하는 사회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
드라마가 보여준 육아 비결
아이들 사이에 주먹다짐이 일어나고, 그 자리에게 있던 예린에게 어른들은 누가 먼저 때렸는지를 묻는다. 예린은 도훈에게 초대받고 싶어 거짓말을 하고는 그 사실을 엄마에게 털어놓는다. 그러나 예린엄마 정수아(송선미)는 딸을 나무라지 못한다. 그저 슬픈 표정으로 꼭 안아줄 뿐이다. 아이들과 아울리고 싶은 딸의 욕망에서, 엄마들과 어울리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들켰기 때문일 게다. 리나는 예린이 사는 집을 ‘거지들이 사는 아파트’라고 욕한다. 그러나 리나엄마 차혜주는 민망한 표정으로 자리를 피할 뿐, 딸을 나무랄 수도 없고, 여섯 살 먹은 아이들조차 알고 있는 ‘아파트 평수 물어보는 건 실례’라는 상식을 가르칠 수도 없다. 리나에게 그런 경멸을 가르친 게 다름아닌 자신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잘 키우는 비결은 별다른 게 아니다. 호화 유치원에 보낸들 고액 교숩을 시킨들, 잘못을 나무랄 수 없는 어른이 아이를 가르칠 수는 없다. 어른이 제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훌륭한 교육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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