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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어른이 사라져버린 시대
작성자 똥개

항간의 오래된 오해와는 달리, 김수현 드라마의 가장 큰 미덕은 현실성에 있다. 인물의 성격이나 갈등의 전개 양상이 극단적으로 과장된 나머지 곧잘 현실적 개연성이 없다는 비난에 직면하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정말로 ‘현실에서는 도무지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어디서나 쉽게 마주칠 수밖에 없지만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의 단면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명징하게 짚어내고야 마는(극단적 과장은 바로 이 효과를 위한 장치이다) 거침없는 묘사가 불러일으키는 ‘불편함’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미덕은 가령 장애(<부모님전상서>)나 동성애(<인생은 아름다워>)처럼 사회적으로 예민한 문제를 어설프게 에두르거나 ‘연민’만을 자극하며 적당히 얼버무리는 대신 주변 인물의 편견과 당사자의 고통을 정면에서 다루는 뚝심에서도 어김없이 확인된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갈등을 조정하거나 해소하는 과정에서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향수를 숨기지 못한다는 점일 게다. 때로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만큼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그러나 함부로 거스르기엔 좀체로 경우에 어긋나지 않는 ‘(남성) 어른’의 역할이 지나치게 강조되곤 한다는 것이다. 2010년작 <인생은 아름다워>는 이 역할이 여성으로 옮아가는 전향적인 면모를 보였지만, 대가족의 핵심에 자리한 ‘어른’의 존재감은 여전했다. 이 드라마의 배경이 제주도였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공중파 채널의 같은 시간대 드라마 시청률을 앞지르며 종편의 핸디캡을 돌파해낸 <무자식상팔자>에서도 김수현 드라마의 미덕은 건재하다. 뿐만 아니라 거의 예외없이 드러났던 한계가 새로운 지평으로 열리고 있다는 조짐마저 감지된다. 표면적으로는 폭군형 가부장에 통솔되는 대가족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위상은 전작들에 비해 눈에 띄게 위축되어 있다. ‘어른’으로서의 계몽적 언설은 아내에게까지 ‘배냇병’으로 치부되는 ‘잔소리’ 이상의 의미가 없는가 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쏟아내는 ‘경우바른’ 잔소리가 무색하게도 터무니없는 의처증으로 황혼 이혼 위기에 몰리기도 하고, 환갑 언저리의 아들들에게까지 발길질을 날리는 돌출적 폭력을 서슴지 않기도 한다. 요컨대 조정자로서의 역할이 완전히 거세된 건 아니지만, 전작들에 비해 상당히 제한될 수밖에 없는 인물인 것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단연 (아들들이 아닌) 며느리들이다. 평소에는 큰소리 한 번 못 내고 눈치만 보다가 고작 술김에 상욕이나 내뱉고는 전전긍긍하는 큰아들, 화내고 성깔부리긴 해도 그래 봐야 씨도 안 먹히니 기껏해야 가출로 시위하는 둘째아들, 겉으로는 지극한 애처가지만 실은 지쳐서 외도조차 못 되는 한눈을 팔다가 발각되는 막내아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소극적 반항’뿐이지만 그것만으로 엄청난 사건이 될 만큼 아내들의 기에 눌려 있다. 그렇다고 며느리들이 남편을 비록한 가족들을 실질적으로 리드하는 조정자 역할을 기대할 만큼 어른스러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크고작은 갈등을 일으키거나 최소한 증폭시키는 장본인들이다. 그리고 이들로 인한 갈등은 하나같이 그들의 강박적인 성격 탓이다. 돈에 집착하는 둘째며느리 유정(임예진)이나 사랑에 집착하는 막내며느리 새롬(견미리)의 ‘속물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언뜻 보기에 이들과 대비를 이루는 듯한 맏며느리 지애(김해숙)조차도 이를테면 ‘체면’에 대한 집착에 붙들려 있다.

그런데 이런 강박은 정도의 차이가 있다 뿐이지, ‘어른이 사라져버린’ 이 시대를 사는 누구라도 자신의 내면에서 직면하게 마련인 황폐함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세 며느리들의 성격이야말로 이 드라마의 현실성이 가장 강한 빛을 내뿜는 대목이다. 현실에서 그러하듯, 이들이 스스로를 괴롭히고 주변을 불편하게 하는 병적인 집착의 기저에는 ‘자존감 부재’라는 더 근원적인 마음의 병이 도사리고 있다. 겉보기엔 판이하게 대조되는 듯해도 실은 내면의 공허함을 달래기 위한 집착의 대상만 다를 뿐이다. 다시 말해 이 드라마는 행복한 삶을 위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조건은 명예나 돈 또는 사랑 따위가 아니라 다름 아닌 자존감임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집착이 벗어나고 싶다고 맘대로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고, 자존감이 갖고 싶다고 마구 솟아나는 것인가. 이들이 하루아침에 ‘어른’으로 탈바꿈하는 해피엔딩은 언감생심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 가장 건강한 자존감을 드러내는, 따라서 가장 ‘어른스러운’ 인물이 막내손주며느리로 예정된 수미(손나은)라는 지점에 주목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객관적으로는 가장 ‘자존감’을 갖기 어려운 조건에 놓인 겨우 열여덟 살 소녀다. 김수현은 이제, 과거세대가 아닌 미래세대에게서 희망을 찾으려는 것일까.

지애는 왜 가장 불행한가

돈에 집착하는 유정은 정떨어지는 수전노다. 사람을 사귀고 인정을 나누는 데도 돈이 필요한 소비자본주의 시대에 돈에만 인색할 수는 없는 탓이다. 먹고살 걱정을 할 만큼 어려운 형편이 아닌데도 결국 사람에까지 인색해지는 건 필연이다. 사랑에 매달리는 새롬은 얄미운 공주병이다. 모든 사랑의 토대라 할 ‘타인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다. 그에게 사랑이란 언제나 스테레오타이프화한 가시적 표현으로 환치될 뿐이다.

그러나 가장 문제적인 건, ‘체면’에 집착하는 지애(김해숙)다. 유정이나 새롬의 집착은 궁핍과 애정결핍이라는 상처의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이지만, 지애에게는 공허한 내면을 설명해줄 만한 상처가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그저 사회적으로 그렇게 학습되어 내면화된 것뿐이다. 실은 그래서 가장 무섭다. 또는 유정과 새롬의 집착은 ‘남들이야 뭐라건’ 돈이나 사랑에만 집중하기에 비뚤어졌을망정 ‘자존감’의 갈구일 수 있지만, 지애에게는 오로지 ‘사회적 시선’만이 유일한 가치이기에 그가 추구하는 건 ‘자존감’과는 애당초 무관한 차라리 ‘타존감’이다. 실은 그래서 가장 공허하다. 오죽하면 사회적 편견 앞에 노출된 자식들을 감싸주기는커녕 오히려 가장 직접적으로 편견을 체현한다. 우연찮게도 같은 배우가 연기했던 <인생은 아름다워>의 당당한 어머니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발표지면 시사인, 2013.3.
단행본수록 미수록
대상 무자식상팔자,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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