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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가쟁점] ‘인턴십 제도’를 재론함
작성자 똥개

<편집자를 양성하는 직업 교육은 가능한가> 제하의 글을 놓고,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그 글에서 ‘자격 검정 제도’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조심스럽게 제시한 ‘인턴십 제도’에 관해 약간의 논란이 일었다. 그것은 우선 좀더 분명한 비전 속에서 언급되었어야 할 내용을 내가 부주의하게도 정밀한 설명을 생략하고 툭 던지듯 제시하는 바람에 빚어진 오해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미 출판 관련 단체들이 주관하여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인턴 고용이 실시되어 왔다는 정황에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하여 스스로 오해를 자초한 측면도 있다. 모호한 내용으로 인해 독자들에게 혼란을 드린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다시 한 번 이 문제를 논함으로써 애당초 그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던 의도를 좀더 분명하게 해명하고자 한다.

다만 그에 앞서 왜 현실적으로 당장 오해가 빚어질 수도 있는 문제를 어설픈 몇 마디로 단순무식하게 제시할 수밖에 없었는지부터 변명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그 글에서도 전제했다시피 출판계에 만연해 있는 안면과 인맥을 매개로 하는 전근대적 고용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민과 모색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인턴십 제도’만이 가장 유력한 대안이라고 주장할 의사도 없었을뿐더러, 오히려 아직은 내 머릿속의 상상으로만 맴돌고 있는 ‘인턴십 제도’의 구상을 지나치게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자칫 또 하나의 탁상공론으로 논점이 교란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기도 했다. ‘인턴십 제도’를 이야기한 것은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순전히 “더 많은 고민과 모색”의 실마리로서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뿐이며, 따라서 나로서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제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자. 이를테면 이런 방안도 있지 않은가.” 정도의 이야기였던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턴십’이라는 것이 내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현실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물론 내가 그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인턴십 제도’는 현재 운용되고 있는 ‘인턴십 제도’와는 성격도 다르고 그 구체적인 모습도 전혀 다른 것이다. 한마디로 단언하자면, 현재의 출판계 상황에서 개별 기업에 전적으로 관리와 운용의 책임을 위임한 인턴 제도는 말이 좋아서 ‘인턴’이지 실은 편집자의 전문성 양성이나 능력 검증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해고가 손쉬운 단순 노동력의 저임금 고용을 정당화해 주기나 하는 속 빈 강정이다.

지나친 막말이라고 생각하실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출판사에서 어떤 경우에 인턴 사원의 필요성이 제기되는지 더 노골적으로는 당장 인턴 사원을 받게 된다면 무슨 일을 시킬 것인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본다면 분명하게 답이 나올 것이다. 우선 제대로 검증되지도 않은 인력에게 상당한 수준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업무를 맡길 리 만무하다. 책의 제작과 관련하여 무엇인가를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그 결과를 냉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기존 직원들에게 그 만큼 새로운 업무 부하가 걸리게 마련이다. 솔직히 깨놓고 말해서 인턴들의 수습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점검할 만큼의 여력이 잠재해 있는 회사라면, 무엇 때문에 인턴 사원을 고용하겠는가. 고참 편집자가 인턴들의 훈련을 챙길 시간에 책을 한 권이라도 더 만들어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고작해야 굳이 독자적인 판단이 필요없는 잔심부름이나 잔뜩 시키다가 수습 기간이 다 채워지면 여전히 업무 능력에 대해 충분한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식 고용을 거절하면 그만이다.

요컨대 ‘인턴십 제도’의 핵심은 실질적인 업무와 연계된 체계적인 교육․훈련 프로그램에 있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수습 기간을 정상적으로 마치면 실무에 당장 투입해도 지장이 없는 업무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 자체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는 출판사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일도 없거니와, 설령 그런 출판사가 어디에선가 꾸준히 그런 식으로 성실하게 신규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해도 그렇다면 더더욱 업계 단체를 통해 일괄적으로 모집된 인턴 사원을 배정받는 방식이 아니라 그 회사에 필요한 인력의 선발 기준과 규모를 스스로 정하여 신규 채용 절차를 통해 정식으로 고용하려 할 것이다.

실은 특히나 영세 규모의 출판사에서 신규 인력 채용을 기피하고 경력자를 선호하는 것은, 체계적인 교육․훈련 프로그램의 미비 때문이다. 이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출판편집자가 거저 하늘에서 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지금도 편집자 지망생을 위한 각종 교육 프로그램들이 곳곳에서 성업중이다. 그러나 실무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지 않은 프로그램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편집자가 만들어지기 위해 정작 필요한 것은, 경험이 풍부한 선배 편집자의 수준 높은 강의가 아니라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스스로 하나하나 경험하며 자신의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실습’이며,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경력을 자랑하는 훌륭한 강사가 아니라 실제로 책을 만들어가는 실습 과정의 디테일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점검하여 그때그때 적절한 조언을 줄 수 있는 성실한 안내자이다.

이런 최소한의 실습 체계도 마련하지 않은 채 운영되는 ‘인턴 제도’는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수습’ 제도일 수 없으며, 실제로는 단순 노동력의 저임금 임시 고용(심지어 그 알량한 임금조차도 정부의 보조금으로 충당하여 ‘손 안 대고 코를 푸는’)을 정당화해 주는 눈가림에 지나지 않는 허울뿐인 ‘인턴 제도’에 나는 단호하게 반대한다.

그렇다면 애당초 내가 빈약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려 보았던 ‘인턴십 제도’는 어떤 모습인가. 처음부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편집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하여 실제로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경험이 없고 미숙하기 때문에 일을 처리하는 속도는 매우 더딜 터이고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출판사에서 그 과정을 감당해 가며 체계적인 훈련을 시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래서 (편집자 인력 양성이라는)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특수한 형태의 출판사라는 한정 어구를 붙였던 것이다. 사실 말은 그럴싸하지만 처음에는 공공적으로 설립했다고 해도 결국에는 경영 압박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것이 다시 수습 과정의 부실로 이어질 위험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가령 책의 제작과 판매에 소요되는 비용은 오로지 공공 자금이나 이 기관을 통해 양성된 인력을 공급받게 될 기업의 분담금 등으로만 조달하도록 하고 영업 이익은 인센티브 형식을 통해 전적으로 해당자에게 환원되도록 제도적으로 못을 박아 놓는다면, 적어도 이러한 취지에 대한 출판계 공동의 인식이 유지되기만 한다면 위험을 피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또 출판의 각 분야별로 요구되는 편집자의 능력이 다를 터이니 분야별로 이런 특수한 형태의 출판사가 만들어져도 좋을 것이다.

[이 글을 쓴 이듬해 서울출판예비학교 교육과정 설계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 글에서 피력한 생각들을 교육과정에 반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노동부의 지원을 받아 현실화된 이 과정은 지원기관이 요구하는 제도적 한계로 말미암아 온전한 ‘인턴십’으로 발전시키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었다. 일례로 본격적인 ‘인턴십’이라면 당연히 ‘훈련 상황’이 아닌 ‘실제 상황’에 대한 긴장을 체화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핵심이어야 할 텐데, 아무리 교수진들이 짐짓 ‘실제 상황’에 걸맞는 긴장을 주문해도 학생들이 이미 ‘연습’임을 알고 있다는 전제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또한 입학부터 수료까지의 교육과정이 확정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기획 회의의 모델을 세미나 방식으로 도입하는 것까지는 가능해도 실제로 기획을 책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을 ‘실습’하는 데는 현실적인 무리가 따른다. ‘취업률’로 교육과정의 성과가 평가되는 한계도 학생들의 성취도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훌륭한 교수진들의 노력으로 제한된 조건 아래에서나마 최대한 ‘인턴십’에 근접시키려는 기조를 4년 동안은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기조가 근본적으로 무너지는 파행이 빚어졌고, 그에 대한 문제 제기를 <기획회의> 286호(2010.1.2.20.)에 실린 <매트릭스를 멈춰라>라는 제목의 글에 담은 바 있다.]

물론 서두에 밝혔듯이 이것은 채 여물지도 않고 다듬어지지도 않은 그저 하나의 가능성에 대한 예시일 뿐이다. 이것이 정말로 가능한 구상인지 어떤지는 애당초의 논제가 아니었다. 나는 단지 꽤 오랫동안 출판계 일각에서 고용 관행의 합리화 방안의 하나로 거론되어 왔던 ‘자격 검정 제도’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과는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다른 더 좋은 방안이 없는가를 좀더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모색해 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제기한 설익은 방안보다 더 좋은 방안이 있다면 얼마든지 제시해 주시고, 또는 내 생각에 조금이라도 그럴듯한 면이 있다면 그것을 실마리로 하여 좀더 발전적으로 변형시켜 주셔도 좋겠다. 그런 논의들이 풍부해질수록 우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에 근접하게 될 것이다.

발표지면 송인소식 2004.4.5.
단행본수록 출판생태계 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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