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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가쟁점] 출판인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작성자 똥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때가 때이니만큼 정치 이야기가 빼놓을 수 없는 술안주거리가 되기도 하고, 어느 정당을 지지한다는 둥 반대한다는 둥 옥신각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풍경도 주변에서 드물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한 한편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과 거의 비례하여 정치에 대한 혐오와 냉소의 표현 또한 점차 수위가 놓아지기도 한다. 하루하루를 먹고살기 바쁜 갑남을녀들에게 정치에 대한 관심이 먼 남의 나라 이야기나 호사가들의 취미생활쯤으로 여겨지곤 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닐 것이다.

오죽하면 정치 따위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을 만큼이나 빡빡한 하루하루의 일상이라는 것이 다름아닌 정치와 깊숙이 맞물려 있다거나, 정치가 유치원생 수준만도 못한 모리배들의 난장판이 되게 내팽개치는 것도 결국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 때문이라거나 하는 뻔하디 뻔한 공자 말씀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다만 지지하는 정당도 없고 정치하는 놈들이라면 어느 정당을 막론하고 다 지긋지긋하게 신물이 난다는 ‘정치적 냉소’ 또한 틀림없는 하나의 ‘정치적 견해’일 뿐이라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환기하는 것으로 족할 듯하다. 그리고 과연 그러한 정치적 견해는 (다른 모든 구체적인 정치적 견해와 마찬가지로) 얼마나 자신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정치적 견해인지를 조용히 자문해 보기를 권하고 싶을 따름이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내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특정한 정당을 열열이 지지하는 사람치고 그 정당에서 내걸고 있는 정강 정책의 방향이 그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나 당장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꼴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재벌가의 자제가 재벌의 경제적 이해를 옹호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죽었다 깨나도 그 근처에도 못 가 볼 사람들이 그런 정당을 지지한다고 쌍지팡이를 짚고 나서는 것은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런 꼴이 하도 같잖다 보니 ‘정치 얘기’라면 지레 손사레를 치게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도대체 당신이 지지한다는 그 정당이 국회의원을 몇 명 당선시키건 말건 당신하고 무슨 상관인데?”

하지만 꼭 그렇게 싸잡아 냉소할 일만은 아니다. 가령 근로기준법을 휴지로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한 출판계 현실에서 일반적인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출판 시장이 날로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문화산업의 공공적 성격을 지지하는 정당을 환영하는 것은, 심지어 치솟는 사무실 임대료와 인건비가 영세한 출판사의 경영에 가장 큰 압박 요인이라고 할 때 ‘부동산 공개념’을 주장하고 임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비용을 국가의 사회보장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정당에 동조하는 것은, 결코 냉소하거나 경원할 일이 아니다.

물론 이는 비단 출판인뿐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시민의 정치적 권리이자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당연히 생겨나는 소중한 의무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출판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그에 덧붙여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할 분명한 이유가 더 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민주 사회의 시민이 별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질 의사가 없다는 무책임의 적나라한 표현일 수밖에 없듯이, 적어도 ‘인간의 창조적 정신활동의 결과물’을 다루는 출판산업 종사자가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하다는 것 또한 ‘쓸데없는 데 한눈 팔지 않고 일에나 열중하는’ 성실함이 아니라 실은 직업적으로 몹시 무능하다는 징표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세상에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텍스트치고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몰가치하거나 가치중립적인 텍스트가 존재하는가? 만일 그런 텍스트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이미 ‘의미를 가진’ 텍스트가 아닐 것이다. 모든 기호가 기호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의미’란 어차피 임의적인 것이다. 따라서 ‘의미’란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삶의 관계망 속에서 태어난 것이며, 그러한 한 ‘의미’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모든 행위는 그 자체로 ‘정치적’이다. 요컨대 모든 문화적 생산물은 그 존재 자체로서 정치적 맥락에 포섭되어 있다. 그 모든 맥락을 무시한 채 문화적 생산물을 가공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일뿐더러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이것은 거창하게 특정한 저작물이 궁극적으로 내포하는 정치적 함의에 한정되는 이야기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 영역에서라면 출판인들은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정치적 견해’가 출판물로 표현될 자유에 대해서까지 너그러워질 필요가 분명히 있다. 정작 섬세한 정치적 감각이 요구되는 지점은 그보다 더 사소하고 자질구레해 보이는 곳에 있다. 하다못해 문장 하나를 다듬고 단어 하나를 선택하는 데에도 저자의 편향된 정치적 견해는 어김없이 개입하게 마련이고 그것을 상품으로 가공하는 출판인들에게는 저자의 그러한 편향을 점검하고 판단할 수 있는 정치적 안목이 요구된다. 이러한 안목이,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다양하게 존재하는 정치적 견해들을 무턱대고 냉소해서는 결코 확보될 수 없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예컨대 그저 무심히 넘어갈 수도 있는 ‘편부모 가정’이라는 편견에 가득찬 말을 굳이 ‘한 부모 가정’이라는 좀더 중립적인 말로 고쳐 주고, 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은 ‘비혼(非婚)’이라는 낯선 말을 혹여 ‘미혼(未婚)’이라는 말의 오타려니 넘겨짚지 않고 오히려 그 말에 담긴 편견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라는 것을 간취해 낼 수 있는 능력이 단지 지식의 많고 적음이나 사회 통념상 일반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인성으로부터 저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방송 진행자였던 이계진 씨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어느 아나운서는 1982년 이산가족 찾기 방송의 그 북새통 속에서도 `애꾸‘니 `절름발이’니 하는 원색적인(?) 표현이 씌어진 팻말을 그대로 읽어 나가지 않고, 꼬박꼬박 “한 쪽 눈이 안 보이신답니다” “다리가 불편하시답니다”로 고쳐 읽었다고 한다. 이것이 이 사회에서 장애인이 비장애인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대한 ‘정치적’ 관심 없이 가능한 일일까.

그래서 나는 ‘책’이라는 문화적 생산물을 다루는 출판인들에게 일반적인 의미에서 일정한 수준의 ‘교양’이 필요하다고 할 때, 그 ‘교양’은 <취직 시험 일반 상식> 따위에 들어 있음직한 ‘상식’과는 다른 종류의 ‘교양’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마도 언젠가 출판계의 선배이기도 한 칼럼니스트 김규항이 “교양이 문화적인 지식이나 감정표현의 절제, 우아한 말과 행동 따위라는 생각은 봉건적”이라면서 정확히 지적했듯이 “사회적 분별력, 곧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그 뜻과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자신과 나아가 이웃의 삶 앞에 정직하게 분명한 정치적 견해를 가지는 것이야말로 그러한 ‘교양’의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일부분일 것이다.

정치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정치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들 몇 명을 놓고 그 중 누가 더 나은지 또는 좀더 정확히는 누가 덜 못한지를 가르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이해관계가 때로 대립하고 충돌하기도 하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 가운데 내가 과연 누구의 편인가를 정직하게 스스로에게 되묻는 과정이라면, 선거를 앞두고 우리가 굳이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꺼려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관심조차도 여전히 호사가의 취미생활일 뿐이라면 나는 차라리 이렇게 말하겠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상품 역시도 그런 의미에서라면 마찬가지 아니겠냐고. 어차피 인간의 정신활동과 그 총체로서의 문화생활이란 ‘경제적 잉여’이고, 그것을 누리는 것이야말로 ‘삶의 질’이며, 바로 그것을 위해 우리가 오늘 이 시간에도 불철주야 자신의 노동력을 눈이 빠져라 실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냐고.

발표지면 송인소식 2004.3.20.
단행본수록 출판생태계 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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