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계량화된 수치로 객관화할 수 없는 일들이 무척 많다. 가령 어떤 음식을 ‘맛있다’고 하거나 어떤 사람을 ‘훌륭하다’고 하거나 또는 어떤 예술 작품을 ‘걸작’이라고 할 때, 그 판단 기준은 (비록 시대에 따라 대체적인 흐름은 있겠지만)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그리고 출판편집자의 ‘능력’도 그 중의 하나이다.
우선 출판 편집은 단순한 기능으로 환원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특정한 기능만 익히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일이 결코 아니다. 물론 기능적인 면도 분명히 있고 그래서 어느 정도 숙련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이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에게라면 간과할 수 없는 미덕임에 틀림없지만, 출판편집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능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제아무리 기능적 숙련도가 높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좋은’ 편집자가 될 수는 없다. 또 그렇다고 해서 예컨대 일반 사무직이나 판매직처럼 일을 대하는 성실함이라든가 적극성처럼 어느 직업에서나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보편적인 기준에 들어맞는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요컨대 출판 편집은 매우 전문화된 능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전문성’의 정체가 무척 아리송하다는 데 있다. 대개의 전문직들은 그 분야가 요구하는 전문적인 지식의 체계가 마련되어 있고, 그 지식의 양을 객관적으로 측량할 수도 있으며, 또한 그러한 지식의 전달 체계 또한 확고하게 제도화되어 있다. 하지만 출판편집자가 되기 위해 무슨 전문적인 지식의 습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듣도보도 못했거니와, 설령 그런 것이 있다 해도 (앞서 말한 ‘기능적 숙련도’와 마찬가지로 이미 이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라면 미덕이겠으나) 다른 전문직들에서처럼 그것만으로 이 직업을 갖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따른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편집자에게 전문적인 지식이나 숙련된 기능이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좋은’ 편집자로 발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그것은 각자가 일을 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경험이 쌓이면서 축적되는 일종의 ‘경륜’에 속하는 문제이지, 애당초에 이 직업에 취업하기 위해 꼭 갖추고 있어야 하는 ‘최소한의 자격’, 즉 취업 준비생을 위한 직업 교육에서 핵심적으로 다루어야 할 내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출판사에 취업을 희망하는 구직자들이 줄을 잇고 있는데도 출판사들마다 “사람 좀 구해 달라”고 아우성인 아주 기묘한 상황이 좀체로 해결될 기미조차 안 보이는 답답함의 기저에는, 출판사에서 그리도 안타깝게 목말라하는 ‘사람’이 도대체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인지를 구체적으로 특정하여 구직자들에게 제시해 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딱한 사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내 나름대로 굳이 편집자에게 요구되는 전문적인 능력의 정체를 한 마디로 딱 잘라 정리하라면, ‘인문적 균형감각’쯤으로 어림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많은 출판인들이 (여전히 무언가 모자라다는 느낌이 들기는 할망정) 대체로는 동의할 만한 기본적인 자질 중의 하나임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는 편집자가 되기 위해서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마치 “정확한 판단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가 필요합니까?”라든가, “폭넓은 교양을 위해서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합니까?”라든가, “논리적인 사고를 위해서는 어떤 기능을 익혀야 합니까?”라든가 하는 질문들만큼이나 생뚱맞게 들린다.
다시 한 번 오해 없기를 바라지만, 이러한 능력을 굳이 ‘인문적 균형감각’이라고 표현했다고 해서 그것이 꼭 이른바 ‘인문서 분야’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책이라는 상품이 ‘인간의 창조적 정신활동’의 소산이고 사회 전체의 ‘인문적’ 자산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면, 그 상품을 생산하는 현장 노동자에게 ‘인문적 균형감각’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공장에서 규격화된 제품을 찍어내듯이 쏟아내도 되는 것이라면, 단지 종이에 먹물을 묻힌 물건에 불과하지 그것을 ‘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물며 펄프 1그램도, 기름 한 방울도 안 나는 나라에서 그런 물건을 ‘책’이랍시고 만들어 내놓는 것은 거의 죄악이다.
특히나 흔히 편집자의 기본적인 기능으로 평가되곤 하는 문장 교열 능력도 실은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기능이라기보다는 ‘세상을 넒게 보고 깊게 생각하고 정확하게 판단하는 능력’의 소산으로 쟈연스럽게 체득되는 것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물론 이러한 능력 역시도 부단한 훈련 과정을 통해 다듬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라면 ‘기능’일 수 있지만, 그 훈련 정도를 객관적으로 계량화하여 측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나 단기간의 체계적인 직업 훈련을 통해서 숙련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는 그렇게 볼 수 없는 측면이 더 많다.
출판업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현재의 지극히 폐쇄적인 노동력 시장이 좀더 합리적이고 투명한 방향으로 근대화되지 않으면 출판산업이 자멸의 길로 들어서리라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좀더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직업 교육의 길을 마련하고 또 그 성취도를 좀더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한 객관적인 준거를 확보해야 한다는 필요성에도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더구나 평균 근속 기간이 2년 미만이라는 높은 이직률을 감안하자면, 근무 기간만으로도 대략의 숙련도를 가늠할 수 있는 기능직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점에서 경력자에 대한 능력 검증 수단도 꼭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도대체 누가 무슨 수로, 어떤 사람의 거의 총체적인 인성에 깊숙이 닿아 있는 이러한 능력을 평가할 수 있을까. 더 솔직히 말하자면 실제로 일을 시켜 보기 전에는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실은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사람이 없다”고 애태우면서도 알음알음의 안면에 의존해서 사람을 구할 수밖에 없는 전근대적인 고용 관행이 끈질기게 유지되는 것일 터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얼마나 ‘넓게 보고 깊게 생각하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지’를 그나마 가장 그럴듯하게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란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는 믿을 만한 사람을 통해서 넘겨짚는 수밖에 더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할 것인가. 편집자의 능력을 어느 정도라도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계량화된 지표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출판계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데에는 분명히 타당한 이유가 있지만, 나는 어쩌면 그런 식의 제도화야말로 ‘인문적 균형감각’을 평가하는 것과는 가장 거리가 먼 어리석은 방법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자유로운 정신을 ‘직업적 능력’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편집자의 전문성을 압살하고, 나아가 편집자의 능력을 단순한 기능으로 환원시키려는 ‘반인문적’인 시도가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어쩔 수 없으니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계속 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맥빠지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는 인력난과 구직난이 공존하는 부조화가 너무나 심각하다. 더 많은 고민과 모색이 필요하겠으나 적어도 지금의 내 상상력이 허락하는 가장 그럴듯한 대안은 ‘인턴십’ 제도이다. 일을 시켜 봐야만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실제로 일을 시켜 보면 될 것 아닌가. 제대로 능력이 검증되지도 않은 인력을 활용할 만한 여력이 있는 출판사가 몇이나 되겠느냐는 열악한 현실을 몰라서 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타당성을 가진 ‘능력 검정 제도’를 도입하자는 발상이 나오는 마당이라면, 적어도 그런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한 시도를 위해 필요한 막대한 시간과 노력에 투자할 예산 규모로, 차라리 출판계 공동의 노력으로 ‘인턴십’ 운영이라는 공익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출판사 한두 깨쯤 만드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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