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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 개구리’조차 아쉽다
작성자 똥개

책 만드는 일을 잘해내려면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 어두워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상식에 속한다. 세상이야 어찌 돌아가건 눈과 귀를 꼭 닫고 원고더미에만 코를 박아 보았자, 그 원고의 가치가 제대로 보일 리도 없고, 그 가치를 온전히 책 속에 담아낼 방법을 찾을 길도 막연할 것이며, 궁극적으로 그 가치를 전달할 독자를 창출해내기도 언감생심일 것이다. 책을 통해 만나야 할 독자들은, 세상에서 몸 부딪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내고 있는 갑남을녀들이지 세상과는 동떨어진 별천지에서 ‘독서삼매경’에나 취해있는 탈속적인 존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전에 출판학교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한 면접에서, “지난 1주일 동안 일어난 사건 가운데 한국 사회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사건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물론 정답은 없다. 사람마다 얼마든지 서로 다른 대답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아예 답변할 말을 찾지 못하다면, 신문이나 방송 뉴스와는 담을 쌓고 산 티가 역력하다면, 일단 책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자격 미달’이라고 판단해도 그다지 큰 무리는 아닐 성싶다. 그러나 현직 종사자들조차 이토록 기초적이고 상식적인 ‘자격’을 충족하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면, 지망생들에게 ‘자격’을 따져묻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새삼스럽게 이런 회의가 떠오른 것은, 지난 달 20여 명의 수강생 전원이 현직 편집자였던 어느 강의에서 마주쳐야 했던 당혹스러운 현실 때문이다. 실제 사례를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출판 동네 안의 ‘알 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는 뒷소문’도 아니고, 언론을 통해 제법 떠들썩하게 공론화되었던 사건을 예시하는데도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생전 처음 듣는 얘기’라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울컥 치밀어오르는 참담함을 느꼈다. 초보 편집자들이니 불과 한두 해 전에 일어난 ‘따끈따끈한’ 사건이라도 전혀 사전 정보가 없을 수도 있겠거니 할 텐데, 바로 며칠 전에 발생한 현재 진행형의 일이고 실은 나 역시도 시시콜콜한 속사정을 알지 못해 그저 언론에 보도된 수준의 팩트만 언급했을 뿐인데도 술자리 따위에서 ‘뒷소문’을 얻어듣는 것과 다르지 않은 태도였던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긴 하지만, 책 만드는 사람이라고 해서 딴 세상에 사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제 앞가림조차 버거운 갑남을녀들임에 분명할 테니 백 걸음을 양보하고 또 양보해서, 가령 서울 한복판에서 열리고 있는 G20 정상회담 따위에 미처 시선이 닿지 못하는 것쯤은, 아니 몇 백 날씩이나 힘겹게 이어진 비정규직 투쟁처럼 언제든 내 문제가 될 수 있는 이웃들의 숱한 문제들에 까맣게 무지한 것까지도, 딱하게는 여길망정 차마 나무랄 일은 아니라 치자. 하지만 ‘좁아터진’ 출판 동네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조차 눈과 귀가 막혀 있다면, 도대체 이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발딛고 살아내는 ‘세상’의 실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우물 안 개구리’에게도 비록 좁아터진 ‘우물’일망정 ‘세상’은 틀림없이 존재할진대, 이건 아예 ‘우물 안 개구리’만도 못하지 않은가.

수강생의 질의에 응답하는 과장에서 마침 적절한 사례라 판단되는 사건의 의미와 시사점을 설명하려고 꺼낸 예시였을 뿐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사건 개요를 설명하느라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기형의 강의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며칠 뒤 어느 편집자와 말 그대로 ‘세상 돌아가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와중에 이 이야기를 꺼냈다가 더 큰 참담함을 느껴야 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뜸 되돌아온 대꾸를 그대로 옮기겠다. “사장님들이 아주 좋아하시겠군!” 문제는, 이 말을 그저 냉소섞인 농담이려니 “에이, 설마 그러기까지야.”라고 웃어넘길 수만은 없었다는 데 있다. 나 자신을 포함해 동석했던 이들이 모두 “그럴 법하다”고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허탈해졌으니 말이다.

물론 명색 문화산업을 경영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업계 안팎의 어려움 속에서도 분투하시는 출판경영자들이 ‘세상 돌아가는 일에 도통 무지할 뿐 아니라, 심지어 동네 돌아가는 사정에조차 깜깜절벽인’ 편집자들을 좋아할 만큼 몰상식하리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설령 오지랖이 태평양을 자랑하는 편집자에게 “쓸데없는 데 신경끄고 일이나 하라”는 요령부득의 주문을 일삼는 사장님이라 해도, 그저 ‘과유불급’을 경계하는 것일 뿐 정말로 그걸 바라는 건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게다가 대놓고 ‘신경 끄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 분들일수록, ‘요즘 젊은 편집자’들이 무식하다고 질타하시는 말씀을 그 이상으로 더 자주 하시는 경향이 있는데,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 신경 끄고 일이나 하는’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무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니 결코 진심일 리 없다는 게다.

하지만 사실이야 어떻건, 대다수의 편집자들이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 빠삭하고 동네 소식에 빠꼼한’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 경영자들이 적지않다고 여기고 있다면, 특히나 자기 회사의 사장이 바로 그렇다고 판단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이미 현실을 구성한다. 책 만드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으로 흔히 지목되곤 하는 ‘세상에 대한 폭넓은 시야’와 주체할 수 없이 왕성한 ‘호기심’ 따위는 자칫 인사권자의 눈밖에 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금기로 전락하게 된다.

게다가 “어느 출판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더라”는 동네 소식을 알뜰히 챙기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사장님들이 실제로 적지않기도 하다. 밖에서 물어오는 소식과 안에서 빠져나가는 소식이 동전의 앞뒷면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이치이고 보면, 무엇이 떳떳하지 못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제 집에서 일어난 일이 동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꺼린 소치가 아닐까 짐작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 보니 왜곡과 과장을 동반하게 마련이고 더러 ‘아닌 땐 굴뚝에서도 연기가 나기’까지 하는 업계 뒷소문들의 회자를 경계하는 분위기가 지나친 나머지, 아예 동네 소식이라면 언론에 보도될 정도의 사실조차도 백안시하는 태도가 형성된 것일 게다.


하지만 옆집에서 일어난 일은 언제든 내 집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그 대부분은 ‘타산지석’의 소중한 자원이 된다는 점에서, 책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크고작은 사건들과 그것을 능숙하게든 미숙하게든 처리해낸 경험은 공유되는 것이 옳다. 또한 동네 소식이 공공연해지는 것만이 전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찜찜한 ‘카더라 통신’류의 뒷소문을 사라지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적어도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도 시원찮을 사람들을 ‘우물 안’도 모르는 청맹과니인 채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발표지면 기획회의, 2010.11.20.
단행본수록 편집자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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