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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이란 무엇인가
작성자 똥개

1. 서평이란 무엇인가

서평을 말 그대로 풀자면, ‘책에 대한 비평’이다. 비평이란 ‘사물(이 경우에는 책)의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따위를 분석하여 가치를 평가하는 일’이다. 이렇듯 ‘가치 판단’의 내용을 담는다는 것이 ‘책을 읽고 난 뒤의 감상을 적은 글’이라 풀이할 수 있는 독후감과 다른 점이다.

물론 독후감에도 가치 판단의 내용이 얼마든지 담길 수 있다. 그러나 책에 대한 가치 판단이 분명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감상을 진실하게 피력했다면 훌륭한 독후감이 될 수 있으며, 또는 어느 정도의 가치 판단이 포함된다 해도 그 근거를 객관적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가령 “책의 이러저러한 대목을 읽고 나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라는 진술은, 진실성만 담겨 있다면 독후감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서평으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진술이다.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것만으로는 대상이 된 책의 가치에 대한 평가라고 보기 어려우며, 설령 ‘긍정적인 평가’를 피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해도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독후감은 ‘책’이 아니라 ‘책을 읽은 나’에 대한 글이라면, 서평은 ‘내가 읽은 책’에 대한 글이다. 또한 독후감이 ‘나(또는 내 속내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를 위한 글 이라면 서평은 ‘그 책을 읽은/읽을 다른 사람’을 위한 글이다. 다시 말해 책에 대한 감상을 피력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이지만, 책을 비평하는 일은 그 자체로서 사회적인 행위이다.

서평이 피력하는 가치 판단에 객관적으로 설득력 있는 근거가 요구되는 것은, 사회적 행위에는 당연히 사회적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타당한 근거를 생략한 가치 판단은 무책임한 일이다. 반면에 감상(‘나는 이렇게 느꼈다!’)은 그것이 아무리 부정적인 것이라 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실제로 그렇게 느꼈다는데야, 굳이 책임이 있다면 내게 그런 느낌이 들도록 한 책에 있지 그 책을 읽고 그렇게 느낀 나에게 무슨 책임이 있겠는가. 내 감상이란, 실은 자신 외의 다른 사람은 오롯이 알 길이 없는 ‘진실성’(정말로 그렇게 느꼈는가, 그 느낌은 자신에게 정직한 것인가)으로, 나 자신에게 책임을 져야 할 문제일 뿐이다.

따라서 독후감을 써 놓고 서평이라고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독후감은 자신의 일기장에 쓰는 것으로 족하다. 또는 ‘나’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지인에게나 보여줄 만한 것이다. 설령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라는 인격과 만나는 일 자체에서 기꺼이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분명히 서평으로 써서 발표한 글을 (대개는 반론에 부딪히거나 좀더 설득력 있는 근거 제시를 요구받을 때) ‘단순한 독후감’일 뿐이라고 발뺌하는 것도 매우 비겁한 일이다.

2. 서평은 왜 쓰는가

비평이라는 사회적 행위의 목적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비평의 일차적인 목적은, 비평 대상이 되는 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서평을 읽은 독자가 “도대체 무슨 책이길래”가 궁금해져서 “나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마침내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서평을 읽고서도 그다지 책의 내용이 궁금해지지 않거나, 살짝 호기심이 발동하긴 해도 읽어봐야겠다는 작심에 이르지는 못하거나, 그저 작심에만 머물 뿐 정작 실제로 책을 읽게까지 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면, 그것은 일차적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실패한 서평이다. 긍정적 가치 판단을 담은 호평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심지어 부정적 가치 판단을 담은 혹평조차도, 실은 그 책이 사회적으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 따라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서평의 존재 자체로 웅변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굳이 시간을 내어 읽을 만한 가치가 전혀 없다”거나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 것은 사회적인 해악”이라고 말하는 서평은 아무 의미가 없거나 적어도 서평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는 자가당착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렇게 여겨지는 책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굳이 혹평의 근거를 조목조목 늘어놓기 위해 시간낭비하지 말고 그냥 무시하면 된다. ‘비평할 가치가 없는 책’은 말 그대로 ‘비평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내가 쓴 혹평을 읽고 사람들이 그 책을 읽지 않게 되기를 바라고 쓰는’ 그런 서평은 없다. 서평을 쓴 사람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이리도 험한 평가를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으리라는 보장도 전혀 없고, ‘정말로 그런 무자비한 평가를 받을 만한 책인지’ 직접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독자로서 훌륭한 태도라고 칭찬할 일일지언정 어리석다고 나무랄 일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혹평의 가치가 있으며, 서평의 목적이 ‘책을 읽게 하는’ 데 있음에도 서평의 세계에 호평과 혹평이 공존하게 마련인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때로 매우 역설적이게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게 하는 데 냉정한 혹평이 따뜻한 호평보다 훨씬 큰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지 이것만이 전부라면, 그것이 굳이 서평으로 표현되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진실성이 담긴 감상이라면, 독후감만으로도 훌륭히 그 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때로 분석적인 평가보다 진심어린 감상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 책을 읽도록 이끄는 데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 서평의 또다른 목적은, 가치 판단이라는 비평의 본질과 관련되어 있다. 모든 비평은 대상에 대한 가치 판단을 통해 비평하는 사람의 가치관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서평자가 비평 대상으로 삼은 책을 바라보는 고유한 시선과 그 기저에 자리잡은 서평자 고유의 가치관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고자 하는 것도 서평의 중요한 목적이다. 이때 서평 대상이 된 책은 서평자의 가치관을 피력하기 위한 매개로서 기능하게 되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책에 대한 평가 또한 서평의 핵심 주제라기보다는 자신의 가치관을 좀더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위한 가시적인 소재가 된다. 다시 말해 단순히 ‘나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 책을 이러저러하게 평가한다’는 내용이 아니라, ‘(내가 이 책에 대해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러저라한 평가를 하는 데서도 잘 드러나듯이)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러저러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내용이 서평의 진짜 주제라는 것이다. 비평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세계상과 가치 정향을 드러냄으로써, 자신과 동질적인 세계상을 가진 사람들을 호출해내거나, 자신과 이질적인 세계상을 가진 사람들에 맞서거나, 또는 서로 상반되기도 하는 다양한 세계상들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가능하면 자신과 동질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내고자 하는, 비평자의 내면적 욕망으로부터 비롯된다. 따라서 논쟁적이지 않은 서평, 쉽게 말해 합리적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거나 거꾸로 누구도 동의하지 못하게 하는 서평은, 공연한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다. 그 서평이 있든 없든 어느 누구에게도 달라질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서평의 목적은 독서 행위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책을 읽고 그 내용을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수용하는 일은 그 자체로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동시에 명백하게 사회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미 다른 사람(책을 쓴 사람)과의 대화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와도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눌 의사가 없는 사람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책을 써서 일반 공중이 읽을 수 있도록 펴내는 일에서 더욱 확연해진다. 책을 써서 누군가와 대화를 시도하는 일이 사회적인 행위임에 틀림이 없다면, 책을 읽음으로써 그 대화에 응하는 일이 순수하게 개인적일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독서는 책을 쓴 저자와 책을 읽은 나 사이에만 관계된 일이 아니며, 같은 책을 읽음으로써 같은 맥락의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도 관계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같은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과 책의 내용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토론을 함으로써, 다시 말해 책의 저자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대화를 다른 사람에게까지 개방하여 풍요롭게 함으로써 독서를 완성시켜 간다. 그것은 독서의 다음 단계가 아니라, 실은 그 자체로 독서의 일부이며 가장 중요한 독서 과정이기도 하다. 책을 읽고 나서 자신이 읽은 바에 관해 다른 어느 누구와도 토론하려 들지 않는다면 그 독서는 불완전한 것이다. 서평은 바로 이러한 대화를 위해 존재한다. 서평을 통해 나의 독서는 물론이려니와 그 서평을 읽은 다른 사람의 독서도 좀더 풍요롭게 완성되어 간다. 따라서 지나치게 폐쇄적인 나머지 같은 책을 읽은 다른 사람의 독서 체혐에 새로운 생각거리를 던져주지 못하는 서평도 무의미하며, 반대로 지나치게 친절한 나머지 다른 사람이 스스로 읽어내야 할 몫까지 대신 읽어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 서평 또한 생산적인 대화와는 거리가 먼 주제넘은 참견이 따름이다..

3. 서평은 어떻게 쓰는가

위에서 살펴본(또는 미처 살피지 못한) 목적에 충실하다면, 서평을 잘 쓰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모든 글들이 그러하듯, 특히나 비평의 성격을 가진 글이라면, 그저 ‘개성있되 설득력 있게’ 쓰면 된다.

서평 쓰기의 가장 중요한 전제 가운데 하나는, 일단 성실하게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읽지도 앟고 쓴 서평이 허약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과연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어떤 책을 읽고 나서 내 삶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 책을 읽었다는 것이 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이며, 자신에게조차 별다른 의미가 없는 독서를 굳이 서평까지 해가며 다른 사람과 공유할 내용이란 무엇인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책을 읽음으로써 내 삶이 무엇인가 달라졌다는 뜻이다. 이때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야말로 서평을 통해 다른 사람과 공유할 그 책의 가치이다. 따라서 서평을 쓰려 한다면, 다시 말해 어떤 책의 가치를 따져 평가하고자 한다면, 그 책이 내 삶의 무엇을 달라지게 했는지 또 어떻게 달라지게 했는지부터 숙고해야 한다.

다음으로 전제해야 할 것은, 서평에 담길 내용이 고유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내용이라면, 어느 누구도 책을 읽은 것으로 족하지 굳이 그 서평을 읽어야 할 이유가 없을 터이며, 따라서 굳이 내가 서평을 써야 할 이유도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써 자신만의 남다른 점이 도드라지도록 의식할 필요는 전혀 없다. 내가 평가하는 그 책의 가치가 오롯이 그 책이 다른 어느 누구의 삶도 아닌 내 삶을 어떻게 달라지게 했는지에 기반한 것이 틀림없다면,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존재할 수는 없는 까닭에 그것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결코 나와 똑같은 방식으로는 도출해낼 수 없는 나만의 고유한 평가일 것이다.

그러나 서평 역시도 나름의 사회적 의미를 가진 글로서 다른 사람에게 읽히기 위해 쓰는 것이라면, 서평을 쓰는 자신뿐 아니라 그것을 읽는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를 가져야만 그 책을 읽게 할 수도 있고, 그 책을 읽은 나의 시선을 전달할 수도 있고 그 책에서 어떤 의미를 더 발견할 수 있을지 토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서평에 담기는 가치 평가에는 객관적으로 타당한 근거가 제시되어야 하고, 제시된 근거로부터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설득력을 지녀야 한다. 이때 객관적으로 타당하다거나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 반드시 누구나 동의하지 않을 수 없으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은 전혀 아니다. 어떤 사람의 생각에 대해 타당성을 인정한다는 것과 그 생각에 동의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쉽게 말해 설득력이 있다는 것은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를 일깨울 수 있다는 차원의 문제이지, ‘나도 이렇게 생각해야겠구나’ 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분석의 객관적 타당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얄팍한 선동일 뿐이다. 설령 누군가가 내가 쓴 글을 읽고 그 영향을 받아 생각이 달라졌다 해도, 그것은 그 사람의 삶에서 일어난 그 사람 고유의 사건일 뿐이며 여전히 내가 그에게 전한 내 생각과는 다른 그 사람의 생각일 것이다.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존재할 수 없다면, 아무리 글을 설득력 있게 쓰는 재주가 있다 해도, 내가 쓴 글을 읽고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일 그런 의도가 조금이라도 포함되어 있다면, 그것은 결코 대화를 하자는 진지한 태도라고 볼 수 없다. 서평은 ‘나는 이 책을 이런 방식으로 읽었고, 그래서 이렇게 평가한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지, ‘이 책은 이런 방식으로(만) 읽어야 하고, 따라서 이렇게 평가해야(만) 한다’고 강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 태도로는 제아무리 탄탄한 근거를 제시한다 해도 설득력을 가질 리 만무하다.

마지막으로, 서평 뿐 아니라 모든 글은 언제나 ‘도대체 누구 읽으라고 쓰는 글인가’를 분명하게 의식하면서 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무리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고쳐 쓴 글이라도, 그것이 누구에게 하려는 말인지 스스로 해명할 수 없다면, 그저 ‘혼잣말’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 혼자만 보는 일기장에 쓰는 글조차도 ‘나 자신’이 읽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무의미한 단어와 문장의 나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발표지면 <백인의 책마을>, 리더스가이드, 2010. '보론'
단행본수록 미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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