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가입에는 이메일 주소 외에 어떤 신상 정보도 필요하지 앟습니다.
똥개네집 통합검색
편집자 광장
책마을 소식
진로 상담
출판실무 Q&A
예비편집자 공부방
강의실
참고자료
비평적 산문
출판칼럼
매체 비평
인물론 & 인터뷰
사적 진술
주목을 바라는 글
저작목록
똥개와 수다떨기
일상 속 단상
퍼온글 모음
노출광의 일기
똥개를 소개합니다
똥개의 즐겨찾기

  출판칼럼  Publishing affair
출판문화와 출판산업의 현황 및 전망에 관한 비평글만 따로 추려 올려두겠습니다.
이 게시판의 게시물은 인터넷을 이용하여 자유롭게 배포할 수 있으나, 반드시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
단, 영리/비영리 목적을 막론하고 고형물(인쇄물, CD 등)의 형태로 복제하여 배포하려면 운영자의 사전 승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시면 댓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출판 환경의 변화와 편집자의 삶
작성자 똥개

출판편집자의 진화: ‘에디터’에서 ‘에디팅 매니저’로

지난 해 9월에 출간된 <출판편집자가 말하는 편집자>(부키)에서 나는, ‘에디터’에서 ‘에디팅 매니저’로 출판편집자의 위상과 역할이 진화되어 왔음을 말하면서, 그러한 변화의 저변에 크게 세 가지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우선 기술적인 측면에서, 편집 공정이 전산화되면서 기능적인 작업 영역이 거의 사라진 탓에 책임편집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출판사에서 할 일이 없어져버렸다. 다음으로 시장 환경의 측면에서, 출판 시장의 위축(또는 수용 태도의 변화)으로 말미암아 시장 실패의 위험이 증가하면서 경영 압박이 일상화되었으며, 공격적인 상품 개발과 위험 분산을 위해 시장을 읽고 내다볼 줄 아는 유능한 책임편집자여야만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산업구조의 측면에서, 2000년대로 들어오면서 자본 집중이 심화된 것이 이러한 변화가 가시화된 직접적인 계기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이 지적했듯 “주요 도매상의 상위 10개 출판사 매출점유율은 80%를 넘어섰다.” 그에 따라 출판산업의 인력구조가 급속도로 재편되면서, 대규모 자본과 노동이 결합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임프린트 제도가 확산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입지가 날로 급격하게 축소되는 소규모 출판사에서도 영세한 규모로 생존을 유지하려면 자본이 노동을 고용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기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동업자조합’에 더 가까운 형태를 띨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된 사업 단위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첫째, 전통적인 분업 구조가 해체되고 있다. 이제 ‘책을 만드는 사람’과 ‘책을 파는 사람’의 구분은 현장에서 거의 무의미하다. ‘에디터십’을 갖추지 못한 ‘마케터’도 어불성설이고, ‘마케팅 마인드가 결여된 편집자’도 형용모순이다. 편집자란 그저 책을 잘 만들면 된다는 소박한 접근으로는 ‘도대체 어떤 책이 잘 만든 책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 망연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이라도 먹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음식물 쓰레기’에 불과하듯이, 아무리 공들여 만든 책도 읽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폐지 더미’일 뿐이다.

또한 최근 ‘인디자인’의 보급이 확대되고 있는 것도, 단지 어떤 소프트웨어를 채택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책의 텍스트를 다루는 사람’과 ‘텍스트를 지면 위에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사람’이라는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분업 구조도 해체되거나 적어도 재편되리라는 전망을 시사한다. 적어도 (마치 ‘타이피스트’라는 직업이 사라졌듯이) 본질적인 의미에서 디자이너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조판 기사’의 존재는 현장에서 사라질 것이 거의 확실하다. 따라서 확고한 에디터십이 뒷받침된 가운데 텍스트를 주밀하게 소화해낼 수 있어야만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을 해낼 수 있으며, 반대로 지면 구성의 기능적․미적 원리를 스스로 구현해냄으로써 ‘추가 비용’의 발생을 억제하는 것도 편집자의 역할이 되는 것이다.

나아가, 책이 만들어지는 공정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편집자의 목표가 궁극적으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경제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까닭에, 편집자와 경영자를 나누는 전통적인 경계도 희미해지게 된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가 바로 임프린트 방식이고 또한 ‘팀제’이며, 사실상 일종의 ‘동업자조합’과 유사한 출판사 조직이다. 요컨대 편집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된 사업 단위’인 것이다.

무한 노동 강요하는 정글의 법칙

둘째, 이러한 위상 변화는 편집자가 전통적인 의미의 ‘노동자’보다는 ‘자영업자’로서의 성격에 더 가까워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바로 이 점이 편집자 개개인에게 가장 절실히 체감되는 변화일 것이다. 이 대목에서 다른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흔히 ‘특수 고용’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비정규 노동의 양태(‘화물연대’의 운송노동자들, 보험 설계사, 학습지 교사, 학원 강사 등)와 관련하여, ‘자영업자’로 못박아 규정함으로써 ‘노동자’로서의 성격을 부인하는 노동 정책에 조금이라도 부화뇌동하려는 게 아니다. 출판노동자의 성격이 ‘자영업자’에 더 가까워진다 해도, 다른 모든 특수 고용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마땅히 그 또한 (순수하게 사업에 따른 매출이익이 아니라)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임금을 받는’ 노동의 한 형태임을 법적․제도적으로 인정받고 노동으로서 보호되어야 한다는 데는 아무런 이의가 없다. 다만 이렇듯 변화된 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변화한 삶의 조건에 대처하는 새로운 전망의 단초가 마련되리라는 것뿐이다. 적어도 ‘경력’과 ‘임금 수준’을 곧바로 연결시키는 시대착오적 발상(지금도 북에디터 사이트에는 이런 발상에 기반한 푸념들이 즐비하다)으로는 어떤 노동 조건도 실질적으로 개선시킬 수 없다.

아무려나, 성과가 부진한 임프린트는 재계약을 거절당할 것이고, 하루아침에 ‘사업팀’이 공중분해되고 구성원들이 해고되어 뿔뿔이 흩어지는 사레도 부지기수이며, 외견상 ‘고용된 노동자’처럼 보이는 회사에서조차 제몫의 밥벌이를 해내지 못하는 편집자는 뻔한 회사 형편에 스스로 눈치가 보여서라도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으니, 상대적으로 안정된 노동 조건을 유지하며 직업적 전망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은 그야말로 ‘확실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쉴 새 없이 일하고 또 일해서’ 갈고닦은 전문성을 가시적인 성과로 제시하는 것뿐이다. 냉정한 시장 논리는 생산성이 낮은 생산자가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유감스럽게도 현재 한국의 출판 산업은 책의 생산과 유통, 소비의 어떤 측면에서도 시장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다른 질서의 토대를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한 무한 경쟁의 정글이다.

[이 글을 다시 정리하고 있는 와중에, 이러한 실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기획위원’이라는 제도를 도입하여, 정액 급여가 아닌 판매에 비례하여 일종의 ‘인세’를 지급하기로 계약하고는 다만 마치 ‘선인세’처럼 일을 하는 동안은 정액을 ‘선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는 어느 출판사에서, 판매 부진으로 발생하게 된 ‘초과지급액’을 되돌려 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기가 막힌 일이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차라리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다시 오해 없기를 바라지면, 신자유주의의 첨단을 달리며 ‘계약 자유의 원칙’을 무분별하게 휘두르는 상식 이하의 작태를 조금이라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대략 1만 부 이상 판매되는 책을 연간 10종 이상 만들어내야만 3천만 원 이상의 소득을 기대할 수 있는 ‘터무니없는’ 계약으로 ‘목구멍이 포도청’일 수밖에 없는 구직 편집자들을 우롱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또한 애당초 판매 실적에 따라 정산을 하기로 계약하고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성과를 상회할 게 뻔한’ 정액 보수를 미리 지급받았는지를 따지며 ‘피해자 탓하기’를 하고 싶지도 않다. 성과가 가시화될 때까지 무보수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이 않을 테고, 그런 황당한 조건으로라도 일이 필요했을 절박함 또한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더 주목할 수밖에 없는 지점은, ‘성과 보수의 선지급’를 당장 편한 대로 ‘정액 급여’라고 여겼다면 시대착오적인 순진함일 터이고, 진심으로 보수에 값하는 성과를 기대한 것이라면 ‘취업’은커녕 심지어 ‘사업’조차도 아닌 ‘도박’에 지나지 않았다는 준엄한 사실이다. 요컨대 그 출판사는 적자생존의 정글로 변모한 출판 환경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순진한’ 편집자들의 ‘생계의 절박함’을 악용해 ‘취업’이라고 속여 ‘도박판’에 끌어들인 셈이다. 앞서 출판산업도 영화산업처럼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는 했지만, 영화감독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성과 보수’로 약속된 금액을 미리 지급받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흥행이 실패했다고 해서 미리 지급된 보수를 반환하지도 않는다. 다만 흥행 실적이 저조하면 다음 영화를 찍을 기회를 얻기가 어려워질 뿐이다. 이런 이치가 출판에도 적용되고 있다는 현실만 직시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라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출판편집자가 되기 위해 강의를 들으러 오는 이들에게 첫 시간부터 이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출판사를 ‘김밥집’에 비유하자면, 대개 적잖은 수강료를 내고 강의에 기대하는 내용은 ‘김밥 마는 기술’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다. ‘김밥집’에 취직하기 위해 ‘김밥 마는 기술’을 열심히 배워 갈고 닦겠다는 의지로 충만하다. 그러나 그런 출판사는 없다. 굳이 비유하자면, 출판사는 ‘김밥집’이 아니라 ‘김밥집 체인 본사’다. 출판사에서 구하는 사람은 ‘김밥 마는 기술자’가 아니라 ‘김밥집’을 운영할 사람이다. 조건은 이렇다. 가게 내주고 재료 대주고 레시피도 주고 심지어 최소한의 생계비도 준다. 그렇게 장사를 해서 회사에서 제공한 비용을 제하고 남는 이익을 회사랑 나누자는 것이다. 회사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개는 그 이익이 사회적으로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소득에 이를 때까지는 다 가져가라고까지 한다. 물론 적자를 냈다고 해서 비용을 되돌려 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계속 손해가 발생하거나 이익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될 때 ‘운영을 포기하고 가게를 비우라’고 요구할 뿐이다. 프랜차이즈 사업에 관심을 가져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건 거의 ‘환상적’으로 좋은 조건이다. 시간과 노력 말고는 따로 비용 부담이 없지 않은가. 다만 그래서 진입장벽이 높은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표정들이 눈에 띄게 어두워지곤 한다. 정해진 시간 동안 정해진 일을 하면 정해진 보수를 받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젠 내 강의 내용도 조금은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 같다. “심지어 회사가 부담한 비용을 되돌려 달라는 회사까지 출현했다. 그런데 역설적이지만, 이 직업이 ‘김밥집 운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김밥 마는 기술자로 취직’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일수록 이런 터무니없는 조건을 수용할 가능성이 더 높다.”]

게다가 산업예비군의 존재가 열악한 노동 조건의 유지를 지탱한다는 고전적인 이론에서처럼, 과포화된 노동력 시장이 정글의 법칙을 더욱 살벌하게 몰아가기까지 한다. 단순한 산수로, 단행본 시장 규모를 대략 1조 5천억으로 추산하면, 모든 출판사가 영업이익이 전혀 없이 매출액이 모두 비용으로 지출된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한다 해도 편집자들의 임금으로 지불될 수 있는 총액은 1500억을 넘지 못할 것이다. 이 직업에 요구되는 전문성이나 교육 수준을 감안해 생애평균임금으로 최소한 연봉 3천은 기대한다면 고작 5천 명이 수용 가능한 최대치가 될 것이고, 비현실적인 가정으로 넉넉히 잡은 것이 이 정도이니 현실은 그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단행본 편집자가 5천 명밖에 안 된다면 아무도 안 믿을 것이며, 연간 3백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어떻게든 출판편집자로 일할 기회를 얻으려 수십만 원의 수강료를 부담하며 취업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강의 프로그램을 통하지 않고 각개약진하는 이들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박봉은 더이상 문제거리조차 안 되는 잔인한 상황이다. 가령 연봉 1500 수준의 박봉도 감수할 의사가 있는 사람이라 해도, 그에 값해 1억 5천 이상의 연 매출을 책임질 수 없다면 가차 없는 퇴출 대상의 처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는 그 정도 능력은 충분한 사람이라 해도, 적게 벌어들이고 적게 받으면 그만이라는 ‘자발적 가난’의 소박함이 설 자리는 결코 없다. 정글에서는 목표치는 언제나 과도하게 설정되게 마련이며 스스로 목표치를 낮춰잡는 사람은 언제든 퇴출시켜도 그만인 ‘루저’일 뿐이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일손을 놓아 버리기 전에는 조금이라도 숨 돌릴 틈을 찾기 위해서라도 더 악착같이 자신을 혹사시켜야 하는, 충족불가능한 욕망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결국 살아남는 쪽에 낄 수 있다 해도 그다지 영광스러울 것도 없는 상처뿐이고, 남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리 악착을 떨었는지 모르겠다’는 허무뿐이다.

직업이 아닌 삶의 방식

셋째, 박봉과 격무로 대변되는 열악한 노동 조건만이 문제의 전부가 아니며 스스로를 그토록 혹사시키고도 그 의미를 찾을 길이 막연한 허무가 더욱 심각한 문제라면, 그것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은 궁극적으로 ‘능력’이 아닌 ‘태도’에, ‘얼마나 노력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노력하는가’에 있을 것이다. 작가가 그러하듯, 또는 예술가가 그러하듯, 아니 정신적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이제 편집자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편집자들이 맞닥뜨린 가장 큰, 가장 근본적인 전환이다. 그런데 내가 ‘편집자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역설할 때, 더러 그 취지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훌륭한 편집자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훌륭한 편집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새삼스레 다지더라는 것이다. 전적인 오독이다. 나는 훌륭한 편집자의 조건을 말한 것이 아니라 편집자의 정체성을 말한 것이다. 아니 그것이 굳이 ‘훌륭한 편집자’라면 이렇게 고쳐 말할 수밖에 없다. 훌륭하지 않다면 편집자로 살아남기는 애당초 글러먹은 일이다. 위에서 말했듯, 그런 훌륭한 편집자가 못 되는 사람이 설혹 살벌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는다 한들 영광스러울 것도 없는 상처뿐이다.

이것은 그저 공허한 ‘개똥철학’을 늘어놓기 위한 변설이 아니다. 고용이 불안정해진 조건에서 가장 현실적인 직업적 전망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가령 아무리 유능한 편집자라도 향후 1~2년간의 출간 예정 목록을 기획해내는 데 실패할 수도 있다. 혹시 자기 돈으로 하는 사업이거나 전폭적인 신뢰 속에서 위험을 감수할 의사가 충만한 투자자가 있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능력이 닿는 대로 밀어붙여 볼 수 있겠지만, 머리를 쥐어짜내 어렵사리 만들어낸 계획이라도 투자자에게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일종의 ‘동업자조합’일 수밖에 없는 출판사에 일자리를 얻는 일도 마찬가지다. 위험을 서로 나눠야 하는 만큼 ‘의기투합’에 기반한 전인격적인 신뢰가 없이는 함께 일할 기회를 얻기 어렵다.) 그리고 투자를 받아낼 수 있는 설득력 있는 기획안을 도출해낼 때까지는(또는 전인격적인 신뢰 속에 위험을 기꺼이 함께 나눌 회사를 만나기 전까지는), 마치 당장 손에 잡히는 시나리오가 없어서 또는 몇 년을 공들여 만든 시나리오를 들고도 투자자를 못 찾아서 영화를 못 찍고 있는 영화감독처럼, 일단 일손을 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일손을 놓은 동안에도 생계를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라면 책 만드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편집자가 단순한 직업이라면 책 만드는 일에서 손을 놓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전업’임에 분명하겠지만(또한 결국 그렇게 ‘전업’으로 귀결되는 이들도 현실적으로 적지 않겠지만), 편집자로 사는 사람에게 실제로 책을 만들고 있는가 아닌가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충분한 준비가 되고 적절한 기회를 얻으면 책을 만드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비록 다른 일로 생계를 감당할지라도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을 뿐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살벌하기 짝이 없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반문화적인 출판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다른 질서의 가능성을 찾을 실마리를 얻게 될 것이다. 책을 만드는 일이 단순한 ‘직업’이 아니게 된다면, 즉 그 일에 전적으로 생계를 걸지 않게 된다면, 그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문화적 성과를 도출했을 때 그에 대한 사회적 보상만으로도 기꺼울 수 있다면, 책을 만드는 일은 적어도 지금보다는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물론 자본은 이윤만 확보된다면 정글의 법칙을 강요하기를 멈추지 않겠지만, 또 자신을 혹사시켜서라도 직업적 성취를 유지하려는 갈망을 못내 떨치지 못하는 사람들도 틀림없이 존재하겠지만, 충무로 상업 영화도 있고 실험적인 독립 영화도 있듯이, 그런 출판을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들과 시장 안에서 ‘누가 더 책을 많이 팔고 돈을 더 버는가’를 놓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지배하는 시장과 자본에서 자유로운 공공적 연대가 ‘누가 더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더 의미 있는 읽을거리를 마련해주는가’를 놓고 전혀 다른 차원에서 경쟁해보는 것은 어떤가. 편집자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상상만으로도 신바람나지 않는가.

발표지면 기획회의, 2010.6.5.
단행본수록 편집자로 산다는 것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