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취직하기’인가 ‘편집자 되기’인가
책보다는 영상 매체에 익숙한 세대들에게 출판편집자라는 직업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흔히 출판편집자를 영화감독이나 방송연출자에 비유하곤 한다. 상상력을 더 발휘해 보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나 전시장의 큐레이터에 해당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전달하는 매체에 따라 다양한 직업으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의미를 나르는 상품’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일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영화감독과 출판편집자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100여 명이 넘는 제작 스태프들이 움직여야 하며 영화감독은 이들을 지휘하는 역할을 하지만, 출판편집자는 그렇지 않다. 물론 책을 만드는 데도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개입하지만, 편집자의 직접적인 통솔이나 지휘를 받지는 않는다. ‘1인 출판’이라는 개념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차이가 있다. 혹시 수십 년 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영화산업 구조에서 영화감독이 영화사에 직원으로 고용되어 있는 경우는 없다. 작품 단위로 계약을 할 뿐이고, 계약이 이루어진 뒤라 해도 투자를 받는 데 실패하면 고스란히 엎어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에 출판편집자라고 하면 으레 출판사에 취직하는 것으로 여기며, 일반 회사와 마찬가지로 정해진 시간 동안 일하고 그 대가로 정액 급여를 받는 직업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좀 달리 말해 보자. 출판업계에는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신기한 일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한 가지만 꼽으라면, 나는 ‘구직난’과 ‘구인난’이 공존하는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다. 출판편집자로 취업하기 위해 구직 활동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두고도 출판사에서는 “사람이 없다”는 하소연이 계속되고, 애타게 일손을 구하는 출판사들이 적지 않은데도 구직자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한숨을 쉰다. 일시적으로 ‘사람을 구하는 출판사’와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이 서로를 못 찾아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단순히 그런 문제라면 가령 대규모의 ‘취업 박람회’ 같은 이벤트를 통해 이들을 만나게만 해 주어도 어느 정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겠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거칠게 말해, 대부분의 구직자들이 찾는 일자리의 성격과 또 대다수 출판사들이 필요로 하는 일손의 성격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출판편집자로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 중에는 “무슨 일이든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고 실무 경험이 쌓여가면서 능숙해지게 마련이거니와 책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 아니겠느냐”는 식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심지어는 경력이 쌓여가면서 숙련도가 높아질 테니 그에 따라 일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고 나아가 당연히 같은 시간을 일해도 더 많은 대가가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들도 많다.
유감스럽게도 책이나 영화 같은 문화상품을 만드는 일에서는 이 두 가지 생각은 모두 착각이다. 책 만드는 일은 처음부터 잘해야 하고 그럴 수 있는 사람만 출판편집자로 살아남는다. 만일 경력이 쌓여가면서 책 만드는 매무새가 좋아진다면, 뒤집어 말해 예컨대 1년차 초보 편집자가 만든 책이 10년차 베테랑이 만든 책보다 완성도가 허술하다는 뜻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허술한 책을 읽어야 하는 독자는 어쩌란 말이며, 출판사를 믿고 원고를 맡긴 저자는 또 어쩌란 말인가. 영화관에 가서 정당한 관람료를 내고 영화를 보는 관객은 그 영화를 만든 사람이 이제 막 데뷔한 신인감독이라고 해서 더 너그럽지는 않다. 연기가 어설픈 배우에게 “아직 신인이라서…….”라는 말이 변명이 될 수 있을까. 경력이 쌓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책의 완성도에 대한 기대 수준이 아니다. 영화감독의 몸값이 궁극적으로 흥행 가능성에 따라 매겨지듯이 책임의 규모에 대한 기대 수준이 달라질 수 있을 때만 경력은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경력이 쌓여가면서 일머리가 결코 수월해지지도 않는다. 흔히 출판편집자를 요리사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책 만드는 일과 음식 만드는 일은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많다. 가령 요리사는 김치찌개 하나만 기막히게 잘 만들어도 매번 똑같은 맛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김치찌개의 달인이나 명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수십 년을 하다보면 눈 감고도 그 솜씨를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은 한 권 한 권이 모두 새로운 상품이고 새로운 도전이다. ‘베스트셀러 제조기’라는 찬사를 얻은 편집자라고 해서 다음 책도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작은 규모를 움직이는 사람이 실수로 긴장을 놓치면 작은 손해가 나지만, 큰 규모를 움직이는 사람이 긴장을 놓치면 실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큰 손해가 발생한다. 책임의 규모가 커질수록 긴장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경력이 쌓이는 만큼 일의 부하가 훨씬 더 커지는 것이 출판편집자이다.
간추리자면, 실은 출판사와 출판편집자의 관계도 영화사와 영화감독의 관계처럼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어느 누구도 영화사에 취직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듯이, 단순히 출판사에 편집자로 취직한다는 생각만으로는 출판편집자를 직업으로 삼기 어렵다.
출판 환경의 변화와 출판편집자의 위상
이런 변화가 일어난 원인은 크게 세 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다.
20년 전, 책을 만드는 일은 물리적으로 사람의 손이 많이 가고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해서 손이 덜 가고 품이 덜 들게 된 것은 아니지만, 그 성격은 사뭇 다르다. 한 사람의 책임편집자 아래 적게는 서너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에 이르는 편집자들이 손발을 맞춰야만 비로소 책이 만들어지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마치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연출부의 잔심부름부터 시작하듯이, 당장은 편집자로서의 소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활자 매체에 대한 친화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출판편집자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몇 년 동안 선배의 어깨너머로 출판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 듣고 깨우쳐 나가다 보면 어떤 사람은 잠재된 소질을 계발해서 책임편집자의 역할로 나아가기도 했고, 설령 그렇게 되지 못한다 해도 오랜 세월 손에 익힌 숙련 노동이 필요한 일거리는 출판사 안에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인쇄 제작 환경의 변화로 인해, 아무런 현장 경험이 없는 초보자를 세월 속에서 숙련시킬 수 있는 기능적인 일거리들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 편집 공정이 전산화되면서 처음부터 책임편집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출판사에서 할 일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출판사들이 경력자만 원하면, 도대체 신입은 어디에서 경력을 쌓으라는 말인가?”라는 구직자들의 항변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199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를 계기로 촉발된 출판 시장 환경의 변화가 맞물리면서 구인과 구직 사이의 간극이 더욱 증폭되기도 했다. 출판 시장의 위축으로 말미암은 시장 실패의 위험이 증가한 것이다. 이렇듯 경영 압박이 일상화된 조건에서는 공격적인 상품 개발과 위험 분산을 위해 회사의 규모에서 수용이 가능한 편집자는 모두가 시장을 읽고 내다볼 줄 아는 유능한 책임편집자여야만 했다. 그러니 당장은 딱히 맡길 일이 없는 무경험자를 긴 안목에서 훈련시켜 책임편집자로 성장시킬 여력이 없었을 것은 자명하다. 책을 만드는 매무새에 관한 한 현장 경험 속에서 숙련된 편집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도 출판사 입장에서는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 없다”며 구인난을 호소하기에 이른 것도 그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시장 환경의 변화에 출판산업이 조응해가는 과정에서, 2000년대로 들어오면서 자본 집중이 심화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출판편집자의 위상 변화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된 직접적인 계기이다. 대규모 자본과 노동이 결합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최근 빠르게 확산되는 임프린트 제도가 출판편집자의 변화된 위상에 시사하는 바는 명료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입지가 날로 급격하게 축소되는 소규모 출판사라고 해서 사정이 다르지는 않다. 영세한 규모에서 근근히 생존을 유지하려면 자본이 노동을 고용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기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동업자조합’에 더 가까운 형태가 되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대규모든 소규모든 출판편집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된 사업 단위’인 것이며, 그 단위의 경영자(매니저)로서 역할해야 한다.
물론 책은 경제적 가치와 함께 문화적 가치를 지닌 문화상품이다. 영화감독이 반드시 흥행 성적만으로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듯, 출판편집자의 능력도 단순히 투자 대비 효율로만 평가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시적인 취미 활동이 아니라 지속적인 직업 활동이라면, 손해를 보면서도 그래도 의미있는 일을 했다는 보람에 자족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책을 만드는 일은 사람들 사이에 ‘의미’를 만들어내는 일임에 틀림이 없지만, 동시에 펄프 1그램도 안 나고 기름 한 방울도 안 나는 나라에서 종이에 잉크를 묻히는 ‘경제 활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회적 비용에 대한 책임도 도외시할 수 없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이라도 먹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음식물 쓰레기’에 불과하듯이, 아무리 공들여 만든 책도 읽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폐지 더미’일 뿐이다.
소유할 것인가 존재할 것인가
이 같은 변화의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겪어낸 어느 편집자는 “편집자는 빨간 펜을 잡고 있을 때 행복하다. 계산기를 잡는 순간 불행해진다.”라고 출판편집자의 진화 과정을 표현하기도 했거니와, ‘빨간 펜’으로 상징되던 전통적인 의미의 ‘에디터’가 아니라 ‘한 손엔 빨간 펜, 한 손엔 계산기’로 상징될 ‘에디팅 매니저’가 요구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엄연한 현실이다. 사업을 경영하는 일에는 소질이 있어도 텍스트를 다루는 데 소질이 없는 사람이 출판편집자로 일하기 어렵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텍스트를 다루는 데 얼마간 소질이 있다 해도 사업을 경영하는 데는 도통 소질이 없다면 출판편집자로 일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능력이 꼭 무쪽 자르듯 나뉠 수 있는 것일까. 가령 출판 현장 경험이 전혀 없는데도 적지 않은 나이에 우연히 출판사에 일자리를 얻고도 불과 몇 달만에 거뜬히 제 몫을 해내는 분들이 수없이 많다. 심지어 출판과는 전혀 인연이 닿지 않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으며, 성실한 독자라는 점 외에는 출판이라는 직업을 꿈에서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들 중에서도, 그야말로 “타고난 편집자다!”라는 감탄을 자아내곤 하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적잖이 알고 있기도 하다. 반면에 몇 년씩이나 현장에서 종잇밥을 먹었다는 ‘경력 편집자’들 중에서도 선뜻 일을 맡기기에는 도무지 미덥지가 않은 분들도 수두룩하다. 그 차이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산술적으로 계량할 수 있는 ‘경력’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 계기 속에서 축적된 ‘경륜’의 차이일 것이다.
편집자가 다루는 텍스트는 그저 글자들의 나열이 아니다. 인격으로서의 존엄을 지닌 한 사람이 펼친 ‘정신 활동’의 소산이다. 그 앞에서 겸손해질 수 없다면 제아무리 오랜 세월 텍스트를 다루는 기술을 갈고 닦았다 해도, 그 텍스트의 가치에 걸맞는 책으로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텍스트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 갈고 닦아야 할 것은, 해박한 지식이나 숙달된 기술이나 풍부한 실무 경험 따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을 대하는 자세이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자신의 삶을 마주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요컨대 자신의 삶도 제대로 편집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정신이 담긴 텍스트를 감히 편집할 엄두인들 낼 수 있을까.
이렇듯 문제를 텍스트에서 삶으로 확장시켜 놓고 볼 수 있다면, 사업을 경영하는 일과 텍스트를 다루는 일을 가르는 것이 부질없어진다. 자신의 삶을 편집해낸다는 것이나 자신의 삶을 경영한다는 것이나 결국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위에서 전제했던 말은 이렇게 수정되어야 한다. 텍스트를 다루는 데 소질이 없는 사람이라면 사업을 경영하는 일인들 제대로 될 리가 없고 혹시 일시적으로 수완을 발휘할 수 있다 해도 반드시 과욕이 사고를 부르게 되어 있다. 또 사업을 경영하는 데 소질이 없는 사람이라면 텍스트를 다루는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고 혹시 겉으로 그럴싸해 보인다 해도 실은 공허한 관념놀음에 불과할 것이다.
시인이 직업이 아니듯, 또는 손에 꼽을 만한 몇몇 스타급 외에는 때로 영화감독도 그 자체로는 직업이 아닐 수 있듯, 출판편집자도 그 자체로는 직업이 아닐 수 있다. 당장 손에 잡히는 시나리오가 없어서 또는 몇 년을 공들여 만든 시나리오를 들고도 투자자를 못 찾아서 영화를 못 찍고 있는 영화감독도 영화감독이듯, 또한 영화를 못 찍고 있는 동안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고 있다 해도 그가 영화감독이라는 사실이 달라지지 않듯, 출판편집자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편집 일을 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편집자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책을 만들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출판편집자이다. 반대로 편집자로 살고 있지 못한 사람이라면, 정작 책을 만들 기회를 아무리 많이 주어도 아까운 종이로 ‘책’이 아니라 ‘폐지’만을 만들어내는 게 고작일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편집 일을 하는 것(TO HAVE a job for editing)’이 아니라 ‘편집자로 사는 것(TO BE as an edito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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