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가입에는 이메일 주소 외에 어떤 신상 정보도 필요하지 앟습니다.
똥개네집 통합검색
편집자 광장
책마을 소식
진로 상담
출판실무 Q&A
예비편집자 공부방
강의실
참고자료
비평적 산문
출판칼럼
매체 비평
인물론 & 인터뷰
사적 진술
주목을 바라는 글
저작목록
똥개와 수다떨기
일상 속 단상
퍼온글 모음
노출광의 일기
똥개를 소개합니다
똥개의 즐겨찾기

  출판칼럼  Publishing affair
출판문화와 출판산업의 현황 및 전망에 관한 비평글만 따로 추려 올려두겠습니다.
이 게시판의 게시물은 인터넷을 이용하여 자유롭게 배포할 수 있으나, 반드시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
단, 영리/비영리 목적을 막론하고 고형물(인쇄물, CD 등)의 형태로 복제하여 배포하려면 운영자의 사전 승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시면 댓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1인 출판: 거품이 꺼진 자리에는 무엇이 남았나
작성자 똥개

출판 담론으로서의 1인 출판

(마르크스식으로 말하자면) 지난 10년간 하나의 유령이 출판업계를 배회했다. 그것은 ‘1인 출판’이라는 유령이다.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으로건 부정적으로건 ‘1인 출판’을 입에 올렸지만, 정작 그 수많은 말들 속에 등장하는 ‘1인 출판’이 과연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이것은 ‘1인 출판’이라는 새로운 흐름의 성패를 평가하기 이전에 그것을 일련의 ‘현상’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에 직면하게 한다.
사실 책이 만들어져 판매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제 나름의 깜냥으로 파악하고 있는 이 바닥의 ‘빠꼼이’들치고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1인 출판’이 가능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1인 출판’의 가능성을 낙관적으로 전망할 때조차도 그것은 그저 ‘(당장은 자기 한 사람만을 스스로 고용할 수 있을 정도의) 소규모 창업’을 좀더 그럴듯하게 들리는 유행어로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업계 안팎에서 ‘1인 출판’의 전형적인 사례로 관심을 모았던 많은 이들이, 바로 그런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성공을 통해 어느 정도 규모를 확보하게 되면, 한두 사람 정도를 더 고용하여 더이상 ‘1인 출판’이라고 이름붙이기 멋쩍게 되기도 했고, 또는 자기완결성을 가진 사업으로서 경영하는 것 자체를 당연한 전제가 아닌 ‘목표’로 삼은 채 다분히 자족적인 출판 활동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여전히 ‘1인 출판’은 많은 이들에게 매력적인 소구력을 발휘하고 있고, 특히나 업계 경험이 거의 전무한 채로 막연하고도 피상적인 이해만으로 창업을 모색하는 어찌 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이들에게서, 현실적으로 전혀 가능하지 않은 말 그대로의 뜻으로 오해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하기도 한다. 이 모든 정황은 ‘1인 출판’이 현상이 아닌 담론(또는 담론적으로 구성된 가상현실)일 뿐이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구조적으로 강요된 각개약진

물론 이러한 담론이 형성된 데에는 업계 내외의 사회적 배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널리 알려져 있듯 새천년 벽두의 출판 산업은 대형 도매상들의 부도 사태로 초유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게다가 시장 상황의 변화로 인해 시장 위험이 고도화되었다는 구조적 위기가 광범위하게 내연되어 있었다. 이러한 조건은 한편에서는 본격적인 ‘기획출판’의 시대를 여는 배경으로 작용하면서 출판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만성적이고 구조적인 고용 불안을 배태할 수밖에 없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의 시스템을 통해 시장 위험을 분산함으로써 안정적인 생산 조건을 확보하기에는 열악한 자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자금 경색이라는 현실적 조건 앞에서 공동의 가치와 지향에 기반한 생산성의 질적 척도를 따지는 것 자체가 사치일 수밖에 없었다. 시장 위험은 고스란히 개개인의 구성원에게 전가되었고, 매출 실적으로 에누리없이 표현되는 생산성의 양적 척도에 따라 임금 수준이 냉정하게 결정되고 노동강도는 개개인이 처한 상황을 아랑곳하지 않고 무한정 강화되었으며 나아가 고용 여부에까지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형편이 된 것이다.
당장은 ‘짤릴’ 위험이 없는 유능한 사람이라 해도 시장 실패로 인한 실적 저하가 발생할 경우 언제든 미련없이 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 앞에서 노동강도만 높아져 갓으며, 하물며 당장 ‘모가지’가 오락가락하는 불안정한 실적으로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는 더 많은 사람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이렇듯 어차피 시장 실패의 위험을 개인이 감당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굳이 회사 조직 속에서 직업적 전망을 모색할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인지상정일 것이다. 차라리 고유의 가치와 지향을 누구 눈치볼 것 없이 자신의 생산 과정에 최대한 실현해 내면서 노동 강도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으로 적당히 유지하고, 설령 실패하게 되더라도 그 ‘민폐’의 범위가 자기 자신만으로 제한되는 각개약진이 구조적으로 강요된 것이다.
사람이란 아무리 험한 상황에서도 그 조건을 발판으로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게 마련이다. ‘1인 출판’ 담론은, 어쩌면 강요된 선택에 어쩔 수 없이 직면한 출판 종사자들이 스스로를 격려하기 위한 ‘자기 포장’의 수사학은 아니었을까.(그럼에도 업계 밖에서 전혀 엉뚱한 맥락으로 이를 증폭시킨 언론의 선정적 부추기기를 통해 유령 담론이 확산되었다는 점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나날이 위축일로를 걷는 시장 상황은 도외시한 채 누구든 의지만 있으면 단기필마로 뛰어들어 승부를 걸어볼 만한 미개척지인 양 떠벌여댄 것은, 종잇밥으로 잔뼈가 굵고서도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살얼음판을 걸어야 하는 출판인들을 ‘두 번 죽이는’ 행태엿다.) 물론 몇몇 스타급 편집자들이 ‘기획출판’을 통해 성공을 거두기도 했던 사례들이 희망의 실마리를 제공해 주기도 했고, 출판 생태계를 위해서도 다양한 색깔의 출판사가 공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회적 이상에 부합하는 길이기도 했으니 명분도 분명했다.

자본을 위한, 자본의 의한, 자본의 출판

이런 조건들이 조금이라도 완화된 것도 아니고 그럴 조짐의 실마리라도 보이는 것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구조적으로 더욱 견고하게 강화되었다. 그런데도 ‘1인 출판’ 담론의 위력은 적어도 업계 안에서는 몇 년 사이에 현격히 감소되었다. 그것은 독점의 심화로 인해 소규모 출판의 판매 위험도가 더욱 커졌다는 상황과 맞물린 결과이다. 시장 위험에 대한 완충 효과를 기대만큼 해 주지 못하는 조직에서 ‘자의 반 타의 반’ 떠밀려나와 각개약진의 각오를 새삼스레 다진 것도 잠시, ‘조직의 쓴 맛’을 제대로 보게 된 것이다. 한 마디로 시장에서는 자본만이 이긴다. 그것이 고도의 시장 위험이라는 새로운 조건에 출판 자본이 조응하여 창출해낸 생존의 법칙이다.
채찍이 있으면 당연히 당근도 있게 마련이다. 출판은 제아무리 대규모 자본이라 해도 주력 상품을 대량 생산하여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시장의 크기는 줄어드는 데도 출간 종수가 늘어가는 것을 신기해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시장의 크기가 줄기 때문에라도 기를 쓰고 종수를 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시장 위험을 가장 효과적으로 분산시키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자본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책을 만들어줄 ‘사람’을 확보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가 될 수밖에! 물론 이때 전통적인 방식으로 고용을 통해 인력을 확보하는 것은 시장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생산 규모를 신속하게 조정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자본의 의지가 아무리 확고한들 준비된 노동력들이 적절하게 공급되지 못한다면 무척이나 낭패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 다행히도(?) ‘1인 출판’ 담론이 한 시기를 횡행한 덕에 이 난제가 손쉽게 해결될 수 있었다. 그래도 창업이라도 꿈꿀 만한 잠재적 경쟁력을 지닌 업계의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즐비하게 ‘1인 출판’ 간판을 걸고는 ‘경영난’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생활고’에 직면하여 ‘알바’거리를 찾고 있지 않은가. 단발적인 ‘알바’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기획에 투자를 하고 수익을 나누는 임프린트 시스템은 적어도 현 단계에서 이 ‘당근’의 가장 발전된 양상일 것이다.
'담론'의 거품을 걷어내고 '현상'에 시선을 집중하면, 노동 시장 유연화라는 ‘글로벌한’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에 한국 출판 산업이 내부의 아무런 저항도 없이(오히려 새로운 희망에 속없이 들뜬 아낌없는 협조까지 받아가며) 순조롭게 조응하여 노동 장악을 구조적으로 강화했다는 실체만이 남는다.

발표지면 기획회의, 2010.1.20.
단행본수록 편집자로 산다는 것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