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가입에는 이메일 주소 외에 어떤 신상 정보도 필요하지 앟습니다.
똥개네집 통합검색
편집자 광장
책마을 소식
진로 상담
출판실무 Q&A
예비편집자 공부방
강의실
참고자료
비평적 산문
출판칼럼
매체 비평
인물론 & 인터뷰
사적 진술
주목을 바라는 글
저작목록
똥개와 수다떨기
일상 속 단상
퍼온글 모음
노출광의 일기
똥개를 소개합니다
똥개의 즐겨찾기

  출판칼럼  Publishing affair
출판문화와 출판산업의 현황 및 전망에 관한 비평글만 따로 추려 올려두겠습니다.
이 게시판의 게시물은 인터넷을 이용하여 자유롭게 배포할 수 있으나, 반드시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
단, 영리/비영리 목적을 막론하고 고형물(인쇄물, CD 등)의 형태로 복제하여 배포하려면 운영자의 사전 승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시면 댓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나에게 맞는 젇보 가려내기
작성자 똥개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허위 정보’의 바다이기도 하다. 특히 일반 이용자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개방한 이른바 ‘지식 검색’이나 ‘오픈 사전’ 서비스 등이 정보의 보다 자유롭고 폭넓은 교환에 크게 기여한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왜곡된 정보들이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무차별적으로 유통되는 매개가 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정확한 사실이 아닌 막연한 추측이나 단순한 장난성 답글 따위는 정상적인 판단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충분히 판별해 낼 수 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짜증을 내며 성토를 하는 것에 비해서는 그 폐해가 차라리 적은 편에 속한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경우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수준에서 그 진위를 도저히 가릴 수 없는(만일 그런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애당초 그런 정보를 요구하는 질문 자체를 제기하지 않았을) 문면만으로 보아서는 유용한 정보로 보이지만 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쓰레기 정보’(junk information) 들이다. 전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막연한 소문이 그럴듯한 사실로 포장되거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편협한 의견이 마치 일반적인 통설인 양 서술되기도 하고, 특정한 사안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에 지나지 않을 내용이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기라도 한 것처럼 제공되기도 한다. 해당 주제에 대해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일반인이 이런 ‘쓰레기 정보’들을 확실한 사실이나 확립된 의견으로 믿어 버릴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아직도 적잖은 사람들이 사실로 알고 있는 수 년 전의 ‘설악산 흔들바위 추락’ 사건은 엉터리 정보가 어떻게 버젓이 사실로 둔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다. 대통령 선거 직후 ‘전직 정보 기관원’을 사칭한 사람의 ‘양심선언’ 조작 사건은 야당이 재검표를 요구하는 심각한 상황으로까지 치닫기도 했다.

그래서 가치가 있는 정보와 무가치하거나 심지어 해로운 정보를 수용자 스스로 가려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해진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정보 가치를 판단하는 방법에 ‘왕도’는 없다. 근거나 출처가 명시되지 않은 정보는 일단 의심할 필요가 있지만, 출처가 확실한 정보라고 해서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권위 있는 일간지에 보도된 내용이니 유명한 석학의 발언 내용이니 출처를 밝혔다고 하더라도 정말로 그런 보도나 발언이 있었는지 직접 확인해 보기 전에는 그 진위를 알 수가 없는 데다가, 설령 실제로 보도된 내용이라고 해도 오보일 수도 있으며 전문가도 얼마든지 착오를 일으킬 수 있다는 데까지 나아가면 사실상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모든 정보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강조하는 것 외에 다른 뾰족한 대안은 없다. 그러나 이것이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경험적 사실에 비추어 정보 가치를 판단하여 선별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미 알고 있는 경험적 지식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실에 부합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실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까지도 ‘비판적인 거리 두기’의 대상에서 예외일 수가 없으며 어쩌면 새롭게 접하는 정보 이전에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잘못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겸손한 태도’가 선행되지 않은 채 새로운 정보에 대해서만 가치를 의심하는 것은 ‘비판적 거리 두기’가 아니라 ‘우물 안 개구리’의 아집과 독단으로 치닫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비판적 거리 두기’의 태도를 체화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는 두터운 인문적 소양과 균형 감각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우리가 단지 ‘실용적인 정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실생활에는 당장 아무 쓸모가 없어 보이는 ‘교양’을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무조건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인문적 소양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그럴듯한 남의 말에 쉽게 속지 않고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조차도 비판적인 점검을 게을리 하지 않는’ 태도를 몸에 익힐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책을 읽되 눈으로 글자만 읽지 말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면서 행간을 읽어내는 훈련을 거듭하는 것만이 ‘정보의 바다’에서 허위 정보에 빠져 허우적대다 익사하지 않고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걸러내는 안목을 체득하는 유일한 길이다.

인터넷으로 클릭만 하면 온갖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매체 환경은 흔히 오해되듯이 독서의 필요성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수많은 정보 가운데 어떤 정보를 얼마만큼의 비중으로 수용하는가를 판단하게 해 주는 힘은 정보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 자신의 지적 능력과 태도에 달려 있으며, 자신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는 데 책보다 더 효과적인 매개물은 없다.

발표지면 통 2004.11.
단행본수록 그들만의 상식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