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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칼럼  Publishing affair
출판문화와 출판산업의 현황 및 전망에 관한 비평글만 따로 추려 올려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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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가쟁점] 자본의 영세성은 극복의 대상인가
작성자 똥개
출판계에 산적해 있는 여러 문제를 들추어낼 때마다 반드시 맞부딪치게 되는 벽이 ‘출판 자본의 영세성’이라는 두번 말하면 숨가쁜 현실이다. 출판 노동자들에게 일한 만큼의 임금을 지불하지 못하는 구조화된 저임금 고용도 다 자본의 영세성 때문이고, 출판사가 가장 앞장서서 보호해야 할 저자․번역자․디자이너 등 ‘콘텐츠 생산자’들을 오히려 본의 아니게 가장 앞장서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골탕을 먹이게 되는 것도 순전히 자본의 영세성 때문이며, 외서의 저작권을 수입해 오는 과정에서 저작권 대행사의 ‘횡포’에 농락당하는 데서부터 책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유통업자의 ‘장난질’에 피멍이 드는 데까지 온갖 문제들이 모두 자본이 영세한 탓에 당하는 설움이라는 식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설명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진실’의 일면을 가지고 있다. 자본만 넉넉하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주먹구구에서 벗어나 좀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합리적인 경영을 도모할 수 있을 텐데, 자본만 넉넉하다면 좀더 나은 조건 속에서 능력 있는 편집자가 마음껏 재주를 발휘할 기회를 줄 수 있을 텐데, 자본만 넉넉하다면 역량 있는 필자를 좀더 적극적으로 발굴해 지속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텐데, 또는 자본만 튼튼하다면 그래서 본격적인 생산 규모를 확보하고 거래 규모가 늘어난다면 일방적인 농간에 대항력을 가질 수 있을 텐데……로 이어지는 그럴듯한 포부를 가슴에 품어보지 않은 출판인이 누가 있으랴.

그러나 정말 자본만 넉넉하다면 그 모든 ‘꿈’을 현실화할 수 있을까. 아니 자본의 영세성은 순전히 그 모든 ‘꿈’의 실현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적 장벽이기만 한 것일까.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출판 자본이 영세할 수밖에 없는 데는 또 반드시 그럴 만한 사회적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출판업은 결코 거대 자본이 개입해서는 안 되는 일종의 ‘중소기업 고유 업종’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그것은 출판산업이 순수하게 책이라는 상품을 제조하고 판매함으로써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혹은 적어도 그와 동시에 경제적 가치만으로는 환원되지 않는 문화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산업도 산업인 이상 경제적 가치를 도외시할 수만은 없다는 차원에서 본다면야, ‘자본’이라고 이름붙이기조차 낯뜨거운 동네 구멍가게 수준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이윤에 한계가 있다면 더 많은 이윤을 위해 규모를 키우는 것은 필연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화산업의 가장 큰 문화적 가치는 ‘이윤’이 아니라 ‘다양성’에 있다. 더 많은 이윤의 창출이라는 단일한 목표를 향해 합리적으로 수립된 경영 전략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문화산업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 정향에 따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그것을 독자적으로 실현해 나아가는 수많은 출판인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이 훨씬 더 건강하다. 오히려 이윤 창출이 그 고유의 존재 목적임을 그 어떤 경우에도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자본’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것 자체가 출판산업이 문화적인 힘을 가지게 되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이조차 부인한다면 출판산업을 굳이 문화산업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것은 물론 터무니없는 허위의식일 뿐이겠지만, 도대체 누가 그걸 몰라서 당장 먹고살려고 발버둥치는 줄 아느냐는 입빠른 대꾸도 그다지 정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자본의 영세성이 출판산업이 건강하게 유지․발전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될 본연의 존재 조건이라면, 출판산업이 직면하고 있는 온갖 어려운 현안들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 ‘자본의 영세성’이라는 현실적 한계를 거의 습관적으로 들먹이는 것은 기실 하나마나한 개탄에 그치기 쉽다. “자본이 조금만 더 넉넉하다면” 뭐든 해결이 될 것처럼(적어도 해결의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하는 대신, “자본이 딸림에도 불구하고” 출판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재생산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은 과연 어디에 있을 것인지가 정작 고민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물론 자본만이 경제적 가치의 생산을 독점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금도 자유롭지 못한 우리들 모두에게 가장 명료한 대답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한마디로, 그런 길은 “없다!” 너무도 자명한 이 결론이 아마도 위에서 언급한 “누가 그걸 모르느냐”는 항변의 진원지일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바로 이 대목이 정작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출발점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문화적 가치를 생산하는 일은 ‘자본’으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되어 있을 때라야만 ‘다양성’이라는 그 고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리고 이른바 ‘문화산업’에 종사한다는 자부심이 단순한 허위의식이 아니라 일말의 진정성이 담긴 포부이고 그것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면,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의 테두리를 넘어설 수 있는 ‘상상력’만이 그 길을 열어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대단히 과격한 ‘빨갱이 선동’을 하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말이 나온 김에 옆길로 잠깐 새자면, 도대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백안시당하기 일쑤인 우리 사회의 문화적 황폐함에 나는 참을 수 없는 욕지기를 느끼곤 하거니와, 문화적 가치를 실현하시느라 불철주야 노고를 아끼지 않는 출판인들 중에는 그런 황폐함을 재생산하는 데 일조하시는 분이 절대로 없으리라고 굳게굳게 믿는다.) 가령 출판산업의 공공적 기반을 강화할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을 강구하고 그 실현을 정부에 요구하는 정도는, 굳이 ‘자본주의’의 테두리를 넘어선다고 할 것도 없는 차라리 현대에 이르러서는 상식처럼 자리잡은 ‘수정자본주의’에 포괄될 수 있는 내용이다.

자본의 영세성은 출판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덫’이 아니다. 오히려 그 자체가 출판산업의 문화적 가치를 꽃피우기 위한 소중한 기반일 수 있다. 그런 전향적인 사고로 나아가지 못하는 ‘타성’이야말로,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하고 싶은 맘도 굴뚝 같지만 그것을 실현시킬 물리력이 없는 걸 어떡하겠냐는 한숨에만 머물러 있는 ‘상상력의 빈곤’이야말로 정작 출판산업이 빠져 있는 치명적인 ‘덫’일 것이다. 출판인들 스스로가 “돈이 없으면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닳고 닳은 생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적어도 문화산업으로서의 한국 출판산업에는 아무런 미래가 없다. 스스로 포기해 버린 길을 대신 찾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아니 거창하게 출판산업의 미래를 떠나서, 당장 박봉과 격무 속에 하루하루 스스로를 소진시켜 가는 출판 노동자들, 저작물의 생산에만 전념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쥐꼬리만 한 저작료조차 제때 받지 못하는 불안정한 일상 속에서 저작물의 질을 따지는 것 자체를 사치로 여길 수밖에 없는 콘텐트 생산자들에게 케케묵은 ‘영세한 자본’ 타령이 ‘전망’은 고사하고 ‘위안거리’라도 되겠는가를 절박하게 되짚어본다면, 답은 분명하게 나올 것이다.
발표지면 기획회의, 2004.11.20.
단행본수록 출판생태계 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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