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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칼럼  Publishing aff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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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 경쟁’은 정당한 노동권도 정당한 경영권도 아니다
작성자 똥개

어느 출판사에서 노동조합의 ‘셩명서’와 그에 대응하는 회사의 ‘호소문’이 공개적인 공방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호소문’에 대한 노동조합의 ‘반박글’은 보이지만 그에 대한 회사의 입장은 알 수 없는 상태다. 이 문서들의 문면에 드러난 내용을 넘어서는 더 깊은 속내를 알 수는 없는 처지에서, 이 사안 자체에 대해 어떤 의견이든 내놓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일일 테다. 이것은 내가 사실관계의 디테일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뜻 어느 편도 들기 어렵다는 ‘중립적인’ 태도로 접근하고 있다는 듯은 아니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현실적으로 서로의 ‘정당성’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엉뚱한 ‘뜬구름 잡기’로 여겨질지는 모르지만, 순전히 위에 제시한 문면에 드러난 내용에만 근거한다면 문제의 본질은 어느 쪽의 주장이 더 정당한가가 결코 아니라는 게 내 판단이다. 노동조합이 주장하는 내용이 전적으로 정당하다 해도 그것이 노사관계의 의미있는 ‘진전’이나 최소한 그 ‘실마리’가 될지는 무척 아리송하다. 반대로 말해도 마찬가지다. 아니 실은 더 심각하다. 회사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해도, 아니 그러면 그럴수록 경영진의 무능과 무책임만 확인된다. 심하게 말하자면 노동조합도 회사도 서로를 상대로 ‘누워서 침 뱉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 걸로 보일 지경이다.

어설픈 양비론이나 펴자고 귀한 지면을 어지럽히는 게 아니다. 자해행위라는 점은 같지만, 그 성격은 사뭇 다르다는 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노동조합이 주장대로 회사가 부당하다면 그것은 노동조합의 책임이 아니지만, 회사의 주장대로 노동조합의 부당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회사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내가 이 글에서 말하려는 내용을 통해 자연스레 드러날 것이다. 그럼에도 노동조합의 주장이 여전히 자해행위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건, 회사의 책임을 물을 방법이 (현실적으로뿐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없기 때문이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도 함께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특정 출판사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는 ‘정당성 싸움’이 왜 자해행위인지를 밝히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슬그머니 한 발을 빼면서 실은 현안에 개입해 시시비비를 논하는 건 ‘회사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며 싸우는’ 노동자에게도, 또는 ‘노동조합의 무리한 요구에 곤욕을 치르는’ 경영진에게도,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 터이다.

이 글은, 이번 사례가 특정 출판사에서 돌출적으로 벌어진 별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판단에서 출발한다. 양상은 다를망정 이와 유사한 자해 구조는 출판계 안에 보편적으로 잠재한다. 즉 적지않은 편집노동자들이 집단적이고 공개적인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뿐이지 심리적으로는 이미 이런 자해의 자장에 포섭되어 있다. 물론 대다수의 출판경영자들도 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치지 않는다뿐이지 이런 자해의 위험(또는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심지어 이미 알게 모르게 저지르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뿐이지 지금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어느 출판사에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지성’을 매개하는 책이라는 물건을 만드는 공간에서 이렇게 ‘황당한’ 일(노사의 극한 대립이 ‘황당하다’는 뜻이 아니니 오해 없었으면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대립은 필연적인 것이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그 대립의 양상이 하필 ‘자해’적이라는 게 어처구니없다는 뜻이다.)이 광범위하게 잠재할 수 있는 건, 무엇보다도 편집 노동의 특성에 대한 몰이해에 기인한 바가 크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기획회의> 319호(2012.5.5.)에 실린 <편집노동자의 인권과 생산성이 양립하려면>의 연장선에서, 편집 노동이 본질적으로 안고 있는 딜레마를 넘어설 수 있는 전망의 계기를 마련해 보려는 것이다.

나는 위의 글에서, 편집자의 고용은 ‘전인격적 신뢰’에 기반한다는 논지를 펼친 바 있다. 이때 신뢰의 주체가 되는 것은 비단 ‘사용자’만이 아니라 실은 함께 일하는 동료 편집자들까지도 포괄한다. 그래서 출판사의 성격이 ‘기업’이라기보다 일종의 ‘동업자조합’에 가깝다고 쓰기도 했다. 이러한 틀에서 볼 때, 이번 사례의 핵심은, 노동조합을 구성하는 편집자들과 회사의 경영진 사이에 이미 신뢰가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아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폭적인 신뢰라는 건 관념적인 이상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므로, 단지 신뢰가 깨진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고쳐 말하자면 신뢰 상실이 ‘회복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 문제가 애당초 ‘정당성 싸움’의 대상으로 적절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이미 신뢰가 무너진 마당에, 어느 쪽이 먼저 신뢰를 무너뜨렸는지를 따지는 건, 나아가 금가기 시작한 신뢰를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까지 몰고간 것이 어느 쪽인지를 가리는 건, 당사자들에게는 사실상 부차적인 일이며 깊은 속내를 알 길이 없는 제삼자에게는 (‘싸움구경’에만 신이 난 ‘비인간적인 관음증’이 아니라면) 무의미한 일이다. 어느 한 쪽의 책임이 절대적이라고(다른 쪽이 전적으로 정당하다고) 결론이 난들, 무너진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 한 사실상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가시적인 조치를 통해 ‘책임’을 물을 수는 있어도, 신뢰는 내면의 문제이므로 어느 누구도 다른 누군가에게 ‘신뢰’를 강제할 수는 없다. 다른 업종에서라면 내면의 ‘신뢰’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도 아니거니와, 오히려 그것을 문제삼는 것 자체가 전근대적인 악습이기도 하다. 즉 회사의 업무 지시나 징계가 부당하다면 그 지시나 징계를 철회하고 재발 방지를 보장하는 조치로 책임을 지면 된다. 노동조합의 요구가 부당하다 해도 역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면 된다. 그러나 전인적 총체성이 투여되는 편집 노동의 특성(이 특성을 부인하게 되면, 남는 것은 ‘하루에 몇 쪽 이상, 일 년에 몇 종 이상’이라는 식의 몰상식하기 짝이 없는 계량화뿐이다.)을 전제하면, 신뢰와 책임의 문제를 이렇게 단순화할 수 없게 된다.

회사가(사장이든, 편집장이든, 또는 다수의 동료 편집자들이든 회사를 대표할 수 있는 어느 누구라 해도) 어떤 이유에서든 어느 편집 노동자의 내면을 신뢰할 수 없다면, 그는 그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게 불가능하다. 설령 신뢰를 무너뜨린 책임이 전적으로 회사에 있다고 해도 이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책임질 방법이 없으니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막말을 하려는 건 전혀 아니다. ‘해고’를 전제로 책임을 물을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꼭 노동자의 ‘해고’를 뜻하는 건 아니다. ‘신뢰’는 상대적인 것이니 만큼, 신뢰를 무너뜨린 책임이 있는 경영진이 회사를 떠나는 것으로 책임을 지는 것도 논리적으로는 가능하다. 가령 만일 이번 사례의 노동조합이 (현재까지 나온 주장에는 그런 요구가 없지만) 그것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그제야 비로소 ‘신뢰를 무너뜨린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가 비로소 중요한 쟁점이 된다.

하지만 그런 요구가 가능하려면 그 책임 주체가 오너 경영자가 아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오너라면 매각 말고는 회사를 떠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조합이 회사를 매수할 의지와 능력)이 있거나 노동자들의 신뢰 속에 경영을 할 만한 매수자를 찾는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고, 나아가 (쉽지는 않겠지만) 사실상 회사를 포기하고 ‘빈손’으로 나가는 것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을 만큼 무거운 잘못이 있다는 것을(뒤집어 말해 그런 요구가 무리가 아닐 만큼 자신들에게 정당성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든 회사를 떠나라는 요구까지 나아갈 참이 아니라면, ‘해고’를 전제하지 않은 모든 요구는 ‘신뢰’를 강요하는 폭력일 뿐이다. 물론 ‘해고’를 전제로 그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그 요구가 정당한지를 가리기 위해 누구에게 더 많은 책임이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상황을 뒤집어 노동자가 무슨 이유에서든 회사를 신뢰할 수 없는 경우라 해도 마찬가지다. ‘고용’에 대한 반대급부로 ‘신뢰’를 강요하는 것이 폭력이라는 것은 대명천지에서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노동자는 그저 성실하게 노동력을 제공할 뿐 그 이상의 인격적 책임을 질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나 편집 노동자는 내면의 ‘신뢰’에 기초하지 않고서는 성실하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외견상 정해진 근무 시간에 일정한 분량의 가시적인 일을 해낸 것으로 보일 때조차도, 질적으로는 사실상 아무 일도 하지 않은 ‘태업’에 지나지 않게 된다. 물론 이것이 ‘고의’라는 뜻은 전혀 아니다. 대개 이런 경우는 노동자가 취업을 거절하거나 스스로 회사를 떠나는 선택을 하는 게 통례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회사로서는 고용을 거절하는 것 말고는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다. 이것은 앞서 살폈듯 ‘정당성’을 다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노동자가 노동자일 수 있는 것은, 그의 노동이 (신뢰가 충분하면 하고 모자라면 말 수 있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계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편집 노동이 아무리 특수한 성격을 지닌다 해도, 노동자에게 ‘해고는 살인’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회사는 무능한 노동자를 가차없이 ‘해고’하기보다는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교육훈련’의 기회를 제공할 사회적 책임이 잇다. 하지만 생산성의 핵심적 기초가 내면의 ‘신뢰’라면, 허울좋은 ‘교육훈련’조차도 ‘신뢰’를 강요하는 폭력일 뿐이라는 딜레마를 피할 길이 없다. 출판업에서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회사의 책임이란 그저 ‘신뢰’를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데 머물 수밖에 없지만, 이미 ‘신뢰’가 무너졌다면 그 어떤 노력도 ‘위선’의 혐의를 피할 길이 없다. 

당장의 현실에서, ‘출판’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이 딜레마에 대한 답은 실은 하나뿐이다. 내면의 ‘신뢰’와 무관한 ‘성실한 노동력 제공’(애당초 불가능하지만)만으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고 여기거나, 목전의 ‘취업’을 위해 ‘신뢰’를 가장하기까지 하는 노동자의 고용을 단호하게 거절해야만 한다. 얼핏 노동자에게 잔인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출판편집자는 1만 여개의 직업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출판사도 수없이 많다. 어느 출판사를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는 편집자라도 다른 출판사는 얼마든지 그보다 더 신뢰할 수도 있고, 애당초 내면의 ‘신뢰’ 따위를 전제하지 않는 직업은 훨씬 더 많다. 사실상 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을 고용하는 건, 비록 ‘선의’일지라도 ‘고용’이 아니라 자존감을 짓밟는 ‘적선’일 뿐이며, 다른 취업 기회를 박탈하는 ‘취업 사기’나 다를 바 없다.

물론 출판업계에서 구직난 이상으로 구인난이 심각하다는 걸 나도 안다. 당장 일손이 필요한데 깊이 따질 겨를이 없으리라는 걸 모르지 않으며, 아무리 여유를 가지고 찬찬히 살펴도 제대로 일할 준비가 된 구직자 만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비겁하게도 당장 급한 대로 어차피 끝내 감당하지도 못할 사람을 고용하는 무리수를 감행하는 것 자체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주목하는 지점은, 그것이 비겁한 선택이라는 걸 인정하는 경영자가 드물다는 것이다. 대개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막연한 낙관이거나 심지어 ‘잘 가르쳐보겠다’는 근거없는 오만이겠지만, 아예 ‘신뢰’를 전제하지 않은 채 ‘시키는 일이나 잘 하라’는 자포자기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선 설령 ‘신뢰를 무너뜨린’ 책임이 전적으로 노동자에게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회사의 ‘비겁함’에 대한 자명한 대가일 뿐이다. 비겁함은 비난받을 일이 아닐지 몰라도, 그 대가를 회피하는 무책임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신뢰가 무너졌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경영 실패’인데, 아무리 정당성을 주장한들 무슨 설득력이 잇는가. ‘자업자득’인 것을!

‘전인격적 신뢰’를 전제하지 않은 고용을 요구하는(사실상 ‘편집 노동’을 할 의사가 없거나 능력이 없는) 노동력들이 업계 안에 이미 폭넓게 포진하고 있으며, 그들의 고용을 거절하지 못하는 비겁함에 대가를 치를 의사도 능력도 없는 출판사는 그보다 더 많다. 필연적으로 ‘자해’는 곳곳에서 되풀이된다. 한마디로 ‘출판 불능’의 상황이다. 이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서는 출판산업에 그 어떤 전망도 없다.

발표지면 기획회의, 20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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