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쳥년인턴제’가 가지는 일반적인 문제점에 관해 시시콜콜 따질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비록 그것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늘려주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필요한 일손을 손쉽게 ‘단기 알바’로 채워넣을 수 있는 길을 정부가 앞장서서 부추기는 ‘사기극’에 지나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한계는 분명하지만, 그냥 아무일도 않고 놀면서(절치부심 ‘열공’한다는 항변도 있을 수 있지만, 어차피 취업에 실패한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공부에 매달려 경제 활동을 유보하는 건 자기 기만이다) 허송세월하는 것보다야 무슨 일이든(설령 ‘단기 알바’라 해도) 닥치는 대로 해나가면서 최소한의 생계도 해결하고 세상에 부딪치는 경험도 쌓는 게 더 현명한 일이기도 하니 그런 터무니없는 제도라도 아예 없는 건보다는 낫다고 평가할 측면도 전혀 없지는 않을 게다.
그러나 출판으로 시야를 좁혀보면, 특히나 출판사 인턴에 지원하는 이들의 대다수가 편집자 지망생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문제는 사뭇 달라진다. 가장 중요한 지점은, ‘인턴’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가 무색하게도 ‘현장 실무’를 익힐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사무 보조’에 종사하는 사람을 ‘인턴’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불러준다고 해서 편집자로 ‘훈련’될 리가 없지 않은가. 물론 기능직이나 사무직 같은 다른 직종이라면 단순한 보조 업무만으로도 얼마간은 ‘훈련’의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고, 직업적 경력의 첫 단계를 보조부터 시작하는 건 대다수 직업에서 흔한(또는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편집자는 결코 그런 방식으로는 훈련되지 않는다.
지난 해 ‘편집자론’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쟁을 이 자리에서 다시 불붙이고 싶지는 않다. 도대체 편집자를 어떤 직업이이라고 생각하는가를 떠나서 두 가지 질문만 해 보자.
먼저 현재의 출판산업 구조에서 (가령 병원의 ‘수련의’나 언론사의 ‘수습기자’처럼) ‘보조 편집자’의 역할과 분장 업무를 분명하게 확정할 수 있는가.(물론 “사람이 두 명 추가 투입되면 혼란은 네 배가 된다”는 강무성의 <일정배반의 법칙>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내 생각을 말하라면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편집자에게는 ‘보조’는 ‘불필요’할뿐더러 일거리만 더 늘려놓는 ‘재앙’이기까지 하다.) 또는 그럴 수 있다 해도 그것이 편집자로 성장하기 위해 불가결한 업무 능력을 체득하는 과정이라고, 다시 말해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편집자로 일하는 데 심각한 지장이 있다거나 최소한 그런 일을 해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편집자로서의 능력을 더 신뢰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수련의’도 ‘의사’이고, ‘수습기자’도 ‘기자’이듯) ‘보조 편집자’도 ‘편집자’라면, 또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있다. 과연 편집자로 성장할 잠재적인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선발 절차가 마련되어 있는가. 또는 그렇다 해도 지원자들이 그러한 평가를 통과할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여전히 ‘황당면접’ 사례(도대체 부모의 재산 상태나 심지어 주거 형태가 편집자의 능력과 무슨 상관인가)나 ‘황당해고’ 사례(일을 못한다거나 큰 실수를 했다는 이유도 아니고 ‘인상이 마음에 안 들어서’라니!)가 속출하는 현실이니 회사의 준비도 미덥지 못하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충분한 점검도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막연한 ‘의욕’만으로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는 편집자 지망생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당장 일손을 못 구하더라도 (비록 ‘보조’일망정) ‘편집자’로 일할 역량이 안 되는 지원자는 더 준비할 수 있도록(또는 하루라도 빨리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탈락시키는 것이 당사자를 위해서도 회사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고, 만일 전적으로 회사가 임금을 부담한다면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조차도 없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가 임금을 부담하는 기간 뒤에 계속 고용할 의무가 없다면, 복잡하게 따질 필요도 없이 일단 아무나 선발해서 아무 일이나 시킨다 해도 그것만으로도 꽤 남는 장사가 된다. 어느 조직에건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 될 허드렛일은 있게 마련이고 출판사에도 그런 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끝도 업이 쏟아지는 자질구레한 일까지 직접 처리해야 하는 편집자들의 볼멘소리가 그치지 않는데도 그 짐을 덜어줄 일손을 따로 구하지 않는 건 순전히 그 비용만큼 생산성이 오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누누이 강조하듯 편집자의 생산성은 일 년에 몇 종을 만들어내는가, 하루에 몇 페이지를 가공해내는가 따위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독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책을 만들어내는가에 달려 있다.)
편집 업무의 본질과는 인연이 닿지 않는 허드렛일을 대신할 보조 인력을 정부가 고용함으로써 편집자의 노동강도가 조금이라도 완화된다면 그건 나쁘지 않은 일이지만, 순진하게도 ‘인턴’이라는 말의 마술에 속아 그걸 편집자로 일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믿고 여섯 달 뒤면 (그저 당장의 생계를 위해 출판과는 무관한 성격의 회사에서 일한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사무 보조 알바’ 경험만 남기며 산산조각 날 꿈에 부풀어 정작 절실하게 필요한 치열한 자기 점검의 기회와 차근차근 준비할 시간을 박탈당하는 지원자들의 헛발질은 도대체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나는 그래서 내 학생들에게 늘 이렇게 말하곤 한다. “밥을 먹어야 꿈도 꿀 수 있고 편집자로 일할 준비가 단기 속성으로 가능한 것도 아닌 만큼, 무슨 일이든 편의점 알바라도 당장 구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차분히 준비하라. 그런 차원에서라면 굳이 출판사 인턴만 하지 말라고 말릴 이유는 없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편집 일을 실습할 수 있는 기회라거나 취업에 손톱만큼이라도 도움이 될 경력일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말라.”
줄기차게 주장해 왔듯이, 출판업은 구직난만 심한 게 아니라 심각한 구인난도 공존한다. 아무리 넉넉하게 계산해도 고작 5천 명도 못 되는 인력이 안정적으로 일할 규모에 1만 2천 명 가량이 박터지게 경쟁하고 있는 살인적인 상황에서 “믿고 맡길 사람을 찾을 수 없다”는 하소연이 그치지 않는다는 건, 이 업계가 사람을 당장 급한 대로 쓰고 버릴 줄만 알았지 제대로 키워내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에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그만인, 정부에서 돈을 준다니 고맙게 받기는 하겠지만 제 돈으로는 결코 고용하지 않을, 결국 고작 여섯 달 쓰고 버릴 인력까지 더 늘려놓기만 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아니 국민의 혈세를 이렇게 무책임하게 낭비해도 되는가.
본디 ‘청년인턴제’는 일자리가 포화에 이른 상황에서 구직난 해소방안이랍시고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출판업처럼 구인난이 공존하는 경우엔, 제대로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고 그래서 결정적 하자가 발견되지 않는 한 계속 고용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인재라면 굳이 정부에서 지원해주지 않아도 ‘일자리 창출’에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물론 출판산업에서 근본적으로 일자리를 늘리려면 시장 위험을 완화하는 ‘공공화’ 정책이 전제되어야겠지만, 당장 일손을 못 구해 쩔쩔매는 출판사들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수많은 청년 구직자들이 취업에 실패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지도 살펴야 한다. 적어도 출판에 뜻을 둔 청년 구직자들에게 필요한 건, 스스로 판단하고 집행하면서 미숙한 탓에 실수도 하고 실수를 수습해내는 책임도 감당하는 ‘실무 경험’이지 치밀하게 판단할 필요도 없고 따라서 크게 실수할 일도 없는 ‘허드렛일’이나 하고 받는 임금이 아니다.(‘돈은 중요하지 않다’는 야비한 선동으로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돈은 물론 중요하지만, 단지 그뿐이라면 굳이 출판사여야 할 이유는 없다는 뜻이다.)
물론 실습도 엄연히 ‘일’인 만큼 임금을 받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만 가령 작가 지망생의 ‘습작’에 정부가 나서서 원고료를 지불할 거라 기대할 만한 문화선진국은 아니니 현실적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작가 지망생이 그 자체로는 아무런 대가가 따르지 않는 ‘습작’을 게을리 하지 않는 건, 그것을 평가받을 기회가 (과연 얼마나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지는지돠 무관하게)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 지망생에게도 다양한 공모전의 기회가 열려 있다면, 그리고 그 평가 기준이 많은 출판사들의 신뢰할 만한 것이라면, 편집 실무 경험과는 상관없는 사무 보조 알바라도 해보겠다고 출판사 인턴에 지원하는 대신, 공모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판단 하나하나에 ‘이게 과연 최선인지’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물으며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실무 경험’의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거기에 그런 실습 과정 또는 그 이전에 당연히 전제가 되어야 할 ‘읽기 및 쓰기 능력’ 향상을 위한 훈련을 효과적으로 지도하고, 편집자의 필수불가결한 업무 능력이라 할 ‘균형 잡힌 교양’의 성장을 지지해 줄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한국출판산업진흥원이 조금이라도 출판산업의 일자리 문제에 진지한 관심이 있다면, 출판업의 고유한 특성이나 구인난과 구직난이 공존하는 현황과 그 사회문화적 배경에는 아무 관심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는 노동부의 예산으로 사실상 아무 의미도 없(을뿐더러 수많은 편집자 지망생을 엉뚱한 방향으로 오도하기까지 하)는 생색이나 내고 말 일이 아니다. 분명한 비전과 확고한 의지만 있다면, ‘청년인턴제’보다 훨씬 적은 예산으로도, 꽤 근사한 공모전으로 편집자 지망생들에게 막연한 꿈을 현실로 만들 기회를 줄 수도 있고, ‘출판 동아리’의 결성과 운영을 지원함으로써 ‘출판인 양성’과 ‘독서 진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든든한 토대를 마련할 수도 있으며, 무한한 실험과 치열한 모색으로 충만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출판산업이 절실히 요구하는 ‘양질의 인력’을 안정적으로 키워낼 수도 잇을 것이다. 적어도 직업 능력을 기능적 숙련도로 환원시킬 수도 없고 투여된 노동시간만큼 성과가 도출되지도 않는 출판산업에서 ‘일자리 창출’은 그렇게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