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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엄쉬엄 꾸역꾸역
작성자 똥개

지난 5년을 견디기도 숨이 찼는데, 앞으로 5년을 또 어떻게 버텨야할지 막막하다는 한숨들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불난 집에 부채질’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돌 맞을 각오로 정직하게 말하자면, 우리 눈앞에 닥친 현실은 이른바 ‘2012년 체제’론이 (역설적이지만) 관철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이명박 정부의 온갖 실정에도 불구하고, 총선에서도 대선에서도 주권자들은 집권당의 책임을 묻지 못했다. 특히나 투표율이 75%가 넘었는데도 텔레비전 토론을 통해 고도의 정치적 판단 능력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대화 능력조차 의심스럽다는 것이 만천하에 폭로된 후보가 과반수의 지지를 얻었다는 것은, 선거라는 행위가 ‘책임 있는 주권’의 행사가 아닌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묻지마’ 인기 투표에 지나지 않는다는 소름돋는 사실을 방증한다. 지난 10년 안팎 출판 시장의 변화를 주의깊게 되짚어보자면 이것은 어쩌면 충분히 예견된 일이고 새삼 놀랄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새 정부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더욱 강화되고 구조적으로 공고화할 것이다. 성공한다면 ‘여왕 폐하 만세!’의 물결이 휩쓰는 통에, 실패한다 해도 더욱 고통스럽게 무너져내리는 삶에 치여 신음하느라 사유의 공간은 더욱 협소해질 터이니 말이다.

이러한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자면, 설령 ‘5년 뒤’를 벼르는 각오가 성공한다 해도 그조차 집권당에 책임을 묻는 정치행위의 성공이 아니라 일체의 정치적 판단을 유보한 ‘묻지마’식 세몰이에서의 승리를 의미할 따름일 것이 거의 분명하다. 그리고 최소한 향후 20년은 이 흐름을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혹시 이 말을 새누리당 정권이 지속될 것이라는 의미로 오독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느 세력이 집권하든 그것이 주권자의 ‘책임있는 정치적 판단’에 기초하지 않은 인기 투표의 결과일 뿐이라는 그 도도한 흐름을 몇 년 사이에 되돌릴 뾰족한 방법이 있겠느냐는 의미이다. 이것이 (처음 그 의제를 제기한 분들의 의도와는 정반대이기는 하지만) 현실로 다가온 ‘2012년 체제’의 실체이다.

물론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손을 놓을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20년이 아니라 50년, 100년의 세월이 흘러도 이 흐름을 뒤집을 새로운 실마리를 만들어내지 못할 테니까. 다만 ‘앞으로 5년’이 우리 앞에 닥친 재앙의 전부가 아니라는, ‘5년 뒤’의 설욕을 다짐하는 데 머무는 것이야말로 무기력한 ‘거짓 희망’에 지나지 않는다는 새삼스러운 각오가 절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힘겹게 견뎌온 지난 5년은, 앞으로 견뎌야만 할 ‘20년 이상’을 위한 ‘예방주사’였는지도 모른다.

사유의 공간이 좁아진다는 것은, 책의 자리도 좁아진다는 뜻이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이번 선거 결과에 속이 쓰리긴 할망정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계간지들이 백가쟁명하던 담론 시장이 무너진 게 언제고 인문교양서 시장에서조차 독자는 실종되고 몇몇 ‘히트 상품’에 극심한 쏠림이 빚어지기 시작한 게 언제인데, 이제 와서 ‘설마 이럴 줄은 몰랐다’고 호들갑스럽게 뒷북을 칠 일이 결코 아니다. 다만 그간 기회 있을 때마다 “지금도 죽겠다고 아우성인 동업자들에게는 참 미안한 말이지만, 단행본 출판 시장이 10분의 1쯤으로 줄어든다고 해도 결코 놀라지 않겠다.”라던 내 말이 공연한 허언이 아니라는 실증적 근거를 하나 더 얻었을 뿐이다. 나 자신 역시 차마 믿고 싶지는 않지만, 미치지 않고 지쳐 쓰러져 얼어죽거나 굶어죽지 않고 심지어 그 와중에도 새로운 시대의 씨앗을 뿌리면서 나날이 좁아져만 갈 사유의 공간, 책의 자리를 버텨내려면 그쯤은 각오해야 한다.

그런 각오 위에서 스스로에게 차분히 물어보자. 과연 책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책의 자리가 좁아질수록 그 답은 옹색해지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옹색해도 결코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두 눈 부릅뜨고 직시하자. 잘 팔려봐야 고작 몇 십만 부에 지나지 않을 책이라는 물건이 천만 명이 넘는 주권자들을 새삼스러운 각성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는 건 가련한 미망이다. 책의 자리는 이미 소비자가 되어버린, 심지어 자신이 주권을 행사해야 할 정치과정에서조차 기꺼이 소비자의 역할에 머무는 데 익숙해진 ‘대중’에게 있지 않다. 그것을 거절하는, 미쳐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함께 미쳐돌아가지 않으려 고통스러운 삶의 현실을 힘겹게 버티면서도 그럴수록 사유의 공간을 포기하지 못하는, 점점 더 ‘소수’가 되어가며 질식 상태로 내몰릴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지킬 최후의 무기로 그렇게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어떻게든 한 권의 책이라도 더 팔아 먹고살아야 하는 출판 종사자들에게라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혹한 주문이겠지만, 입에 발린 말일망정 책이 일반 소비재와는 다른 문화상품이라 여긴다면 끝내 저버릴 수 없는 ‘직업 윤리’가 무엇일지 되새겨야 한다. 바야흐로 시대의 대세가 되어버린 ‘먹고사니즘’에 그렇게 쉽게 투항해버릴 거라면, 도대체 책은 뭐하러 만드는 건지를 따질 필요도 없이, 집권 세력의 정권 연장에 손을 들어준 1천5백만의 몽매를 향한 개탄과 저주가 무색한 일이다. 어떤 직업에든 직업 윤리는 있는 법이고, 그것을 감당하기 버겁다면 그 직업을 버리고 좀더 감당하기 쉬운 직업을 구하면 되는 일이다.

그렇다고 비장해질 필요는 없다. 오래 버티기 위해 가장 중요한 미덕은 지치지 않는 것이니 만큼 당장의 참담함에 들뜬 비장함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독이다. 만일 이런 각오에서 차분한 평상심이 아니라 이를 악문 비장함밖에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건 이미 가장 유효한 무기 하나를 잊고 있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혼자 감당하려니까, 막막하기만 한 무게에 짓눌려 이를 악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할 수 있다면, 그런다고 감당해야 할 무게가 더 가벼워지지는 않겠지만, 굳이 살벌한 표정으로 갑옷을 칭칭 두르지 않아도 덜 지치면서 더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건 고금의 진리다.

그러니 내가 각오하자는 건, 그저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 테니 만만히 보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만만히 볼 일이 아니니, 제 한 몸 건사하기도 버겁더라도 그럴수록 더 힘을 내서 동료의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자”는, 그럴 각오를 하자는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아무리 험난한 길이라도 함께 감당할 동료가 있다는 건 충분히 즐거운 일이다. 그렇게 쉬엄쉬엄 꾸역꾸역 가다보면 아무리 견고해 보이는 ‘몽매의 동맹’에도 끝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끝을 앞당기는 유일한 길이다. In Solidarity!

발표지면 기획회의, 20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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