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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칼럼  Publishing affair
출판문화와 출판산업의 현황 및 전망에 관한 비평글만 따로 추려 올려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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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론] 출판은 왜 사양산업이 되었는가
작성자 똥개

전자책에 대한 오해와 진실

몇 해 전부터 ‘종이책’의 종말을 점치는 담론들이 꾸준히 확산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지하철을 타 보면, 책을 읽는 사람은커녕 신문을 읽고 있는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다. 대신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에 코를 박고 있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고, 앞으로도 점점 늘어날 것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도 이런 시대적 추세에 부응하여, 2015년까지 ‘서책형 교과서’를 ‘디지털 교과서’로 대체하여 학교 현장의 풍경도 이렇게 만들겠다고 한다.[이에 대한 비판은 <스마트교육의 허와 실>에 담았다.] 종이책은 정말 머지않은 장래에 자취를 감추든가 골동품으로나 여겨질 것인가.

이 질문에, 막연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제대로 대답을 내놓으려면 몇 가지 검토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이다. 구체적으로 이렇게 질문해 보자. 가령 종이책으로 구입할 때 한 권의 가격이 1만 원 하는 책이 있다면, 같은 내용을 전자매체에 내려받기만 할 때 얼마쯤의 가격이 적당하다고 생각하시는가. 실제로 이런 조사를 정밀하게 해 보지는 않았지만, 대략 2천 원에서 3천 원쯤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아마도 가장 많을 것이고 5천 원 이상을 지불해도 상관없다고 대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책값에 대한 이런 대중적 ‘감각’에는 커다란 오해가 한 가지 개입되어 있다. 좀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질문을 조금만 바꿔보자. 한 권에 1만 원짜리 종이책이 있다면, 이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종이를 사서 인쇄를 하고 책을 묶는’ 순수하게 물리적인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쯤일 거라고 생각하시는가. 다시 말해 그런 물리적 과정을 없애버린다면 지불하지 않아도 될 비용이 얼마쯤일까. 놀라지 마시라. 책의 규격과 재질, 인쇄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에 싸잡아 말하기가 조심스럽긴 하지만, 본문에 색도 인쇄를 하지 않는 일반 단행본의 경우 아무리 많이 잡아도 2~3천 원을 넘지 않는 게 보통이다. 의심스럽다면 비슷한 규격의 (별다른 디자인이 없는) 평범한 공책 한 권의 가격이 얼마쯤일지를 어림해 보시면 된다.

그런데 이렇게만 말하면, 도대체 책값이 왜 그리 비싼 건지, 혹시 엄청난 폭리나 가격 거품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시는 분도 있을 게다. 혹시 ‘책’이 아니라 ‘공책’의 가격이라면 이런 의심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책을 사는 것은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몇 십 만원짜리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면서 시디값이 몇 푼이나 한다고 이리 비싼 값을 매기느냐는 식으로 셈하는 사람이 어리석다면, 책값이라고 하면 으레 종이값과 인쇄비부터 따지고 드는 발상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같은 내용을 종이에 인쇄하지 않고 전자매체로 전송했을 때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비용이 ‘종이를 사서 인쇄를 하고 책으로 묶는’ 비용뿐이라면(좀더 엄밀히 따지자면 ‘책을 팔기 위해 옮기고 보관하는’ 비용도 포함해야 하지만, 전자책의 전송 및 보안 시스템의 개발과 유지 관리에도 적잖은 비용이 필요한 만큼 일단 그 부분은 무시하자), 1만 원짜리 종이책을 전자책 형태로 공급할 때 적정 가격은 대략 7천 원선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바람직한가의 여부를 떠나서 오랜 세월에 걸친 경험 속에서 문화적으로 형성된 가격에 대한 ‘감각’이 쉽게 변하기 어렵다면, 적정 가격이 2~2천 원쯤이라고 생각되는 상품의 정가가 7천 원으로 매겨져 있을 때 선뜻 지갑을 열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지금도 이미 ‘종이책’ 시장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긴 하지만, 애써 만들어낸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아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생산 원가에도 못 미치는’ 터무니없는 헐값을 내건 무분별한 덤핑이 더욱 판을 칠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고, 출판산업의 재생산 기반은 와해될 것이다.

물론 음반 시장은 몰락했지만 대중음악산업 자체는 음원 시장이라는 대체 시장을 성장시키켠서 살아남았던 사례를 근거로, 이런 전망이 너무 비관적이라는 반론을 펴는 분들도 없지는 않을 게다. 쉽게 말해 가격이 떨어지는 만큼 수요가 늘 수만 있다면, 7천 원짜리가 2천 부 팔리나 2천 원짜리가 7천 부 팔리나 마찬가지 아니겠느냐는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책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초기 비용 가운데 실제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주어진 내용을 좀더 읽기 편하게 가공하여 일정한 공간(종이책이라면 지면, 전자책이라면 수신장치가 요구하는 규격의 프레임)에 보기 좋게 배열하는’ 비용이고 이 과정은 일단 완결되면 판매량의 증가에 따라 추가 비용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딴은 일리가 있는 생각이기도 하다.

[이 글이 말표된 뒤, 이 대목에 관해 “대중음악산업의 현실을 모르는 무책임한 서술”이라는 식의 비판을 받았다. 오해의 여지가 있음을 흔쾌히 인정한다. 그러나 음원 시장으로의 재편에 대한 긍정적 평가에 동의한다는 뜻도 전혀 아니고, 그러한 재편 과정에서 대중음악 종사자들의 삶이 더욱 황폐해지고 음악의 질도 저하되었다는 주장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그런 현실 인식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에게 대중음악산업의 현실을 환기하는 것은 이 글의 주제를 크게 넘어서는 일이기에 글의 논점을 좀더 분명하게 좁히기 위해 불가피하게 단순화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라며, ‘설령 이러한 반론의 근거가 사실이라 해도’라는 가정법 표현을 생략한 불찰로 인해 혹시라도 상처를 받은 대중음악 종사자나 애호가가 있다면 깊이 사과드린다.]

잠깐 옆길로 새자면, 바로 이 점 때문에 책은 ‘생산 원가’를 기계적으로 셈할 수가 없다. 판매량이 증가하는 데 반비례하여 총생산비에서 이러한 초기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들면서, 한 권당 생산 원가도 낮아진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해 판매가 부진하면 결과적으로 ‘생산 원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혹시 착각하시는 분이 있을까봐 덧붙이자면, 이것은 일반 공산품 제조업에서 생산 규모가 커질수록 원가가 낮아진다는 원리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대량 생산이 ‘규모의 효율성’을 확보한다는 뜻이 아니라, 생산 규모와 무관하게 초기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의 경직성이 크다는 뜻이다. 이것은 책뿐 아니라 모든 문화상품의 본질적 속성이다. 가령 영화의 예를 들자면, 관객이 1만 명일지 100만 명일지는 개봉을 해야 알 수 있는 일이지만 그와 무관하게 개봉 이전에 이미 제작비의 대부분을 집행한 상태인 것처럼, ‘모험성’ 또는 ‘위험성’이 그만큼 크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속성 때문에 이미 발생한 손해를 최대한 만회하려다 보면 ‘겉으로 남고 안으로 밑지는’ 덤핑의 유혹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기도 하다.

아무려나,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음원 시장이 음반 시장을 대체한 것처럼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낙관적인 반론은 정당한가를 따져보자. 대중음악과 책은 수용 양상이 상당히 다르다. 사람마다 취향이 있게 마련이라 단지 값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음악이나 소비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아주 싫어하는 장르만 아닌 한 크게 부담되는 가격도 아니라면 구매를 결정하는 데 상대적으로 그리 큰 고민이 필요하지는 않다. 게다가 마니아가 아닌 이상 음악을 들을 때는 음악에만 집중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러나 책은 다르다. 완전히 무료라면 모를까 자신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 아니라면 구매를 결정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글을 읽는 것은 따로 시간을 내서 어느 정도 집중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 음악은 한 번 내려받으면 좀 지겹다 싶어질 때까지는 몇 번이고 내킬 때마다 되풀이해서 듣게 마련이지만, 이왕 내려받은 책이니 알차게 본전을 뽑겠다고 같은 내용의 책을 서너 번 이상 읽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춘다고 해서 그에 비례하는 만큼 구매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물론 모든 책이 다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책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수용 양상도 천차만별이라, 대중음악과 유사한 양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종류의 책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가벼운 터치의 로맨스 소설, 무협지, 야설 따위처럼 특별히 할 일이 없는 자투리 시간에 심심풀이삼아 일별해도 크게 부담이 없는 내용들이 대표적이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런 책들이 무가치하다고 주장하려는 건 전혀 아니다. 책에는 다양한 효용이 있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런 종류의 책들을 탐닉하는 게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뉴스부터 가십까지 무료로 뿌려지는 텍스트들도 널려 있고, 게다가 동영상이나 게임 같은 훨씬 자극적인 멀티미디어 기반의 다양한 콘텐츠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얼마나 경쟁력을 가질지가 미지수라는 점뿐이다. 예컨대, 가격이 비슷하다면 야동을 두고 굳이 야설을 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정보통신 기술이 나날이 진보하는 환경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다양한 형태의 전자책이 지금보다 확산될 것은 분명하지만, 산업적 전망은 극히 불투명한 상황인 만큼 지나치게 들뜰 일도 아니고, 위에서 예를 든 협소한 범위의 책들을 제외하면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하지도 못할 터이니 섣부르게 ‘종이책의 종말’이 시대의 대세이기라도 한 양 떠들 일도 아니다. 정작 더 깊이 고민해야 할 지점은 ‘다가오는(?) ―― 실은 다가오지도 않을 전자책 시대’를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책’ 자체의 위기가 그야말로 ‘종말’로 치닫고 있는 현실이다. 이대로 가면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한국 출판산업은 처참한 붕괴를 맞을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가 유도하는 착시

책을 다루는 ‘뉴스’들도 다른 ‘뉴스’와 다르지 않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 흔한 말로 ‘개가 사람을 무는 건 뉴스가 못 된다. 사람이 개를 물어야 뉴스가 된다.’ 게다가 문화 현상을 다루는 뉴스에서라면, 심지어 전혀 뉴스가 안 되는 ‘개가 사람을 문’ 사건조차도 곧잘 ‘사람이 개를 문’ 뉴스거리로 둔갑하기도 한다. 문화 현상에서 ‘객관적인 사실’ 그 자체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가령 최근(2011년) 출판 시장의 ‘뉴스’ 가운데 하나는 <도가니>라는 책이 잘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순수한 ‘팩트’는 이 사실뿐이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이것이 ‘사람이 개를 물었다’는 건지 ‘개가 사람을 물었다’는 건지, 즉 뉴스인지 아닌지조차 아리송하다. 이 사실을 어떤 시각에서 어떻게 기술하느냐에 따라 그저 흔해빠진 ‘단신’에 머물 수도 있고 ‘출판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어마어마한 뉴스가 될 수도 있다.

두어 해 전,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현재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드러나는 대중의 욕망을 통해 시대정신의 흐름을 파악해 보라’는 과제를 낸 적이 있다. 꽤 의미있는 공부가 될 거라고 생각한 과제였는데, 딱 두 학기 동안 시도해 보고는 포기해 버렸다. 학생들의 보고서가 신통치 않아 별다른 교육효과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학생들은 과제가 요구하는 바를 너무나 성실하게 고민해 주었지만, 그 고민의 결과를 살피며 내가 내린 결론은 ‘적어도 베스트셀러 목록을 통해서는 시대정신의 흐름을 읽어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유행하는 문화상품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절감했다. 물론 책의 판매를 촉발한 다른 문화상품이 왜 유행하는지까지 시선이 닿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시대정신의 기저를 탐색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이미 ‘출판’을 가르치는 과목의 범위를 훌쩍 넘어선 주제인 데다가 굳이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필 필요도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예컨대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가 지금 잘 팔리고 있는 ‘유일한’ 이유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 <도가니>가 화제 속에 흥행몰이를 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이 소설의 판매는, 특히나 이 작가의 고정독자층이 꽤나 튼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부진했다. 물론 영화 <도가니>의 흥행에서 어떤 시대정신의 흐름을 읽어내는 것은 당연히 가능하고 또한 의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영화비평’이지 ‘출판비평’이 아니다. 고작 ‘영화가 잘 나가면 원작 소설도 덩달아 잘 나가기도 한다’, 즉 문화상품 시장에서 책은 ‘독립변수’가 아니라 다른 장르의 ‘종속변수’가 되었다는 것이 이 시대 ‘매체 수용’의 흐름이라는 정도가 출판비평의 내용일 것이다. 요컨대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이 어떻게 공전의 히트를 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건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겠지만, 오로지 그 덕분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성균관 유생의 나날>을 통해서는 ‘책이 드라마의 파생상품이 되었다’는 사실 외에 어떤 의미있는 통찰도 기대할 수 없겠더라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도도한 흐름은 2011년 초 ‘주원이의 서재’를 통해 다시 한 번 유감없이 확인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에 관한 ‘출판비평의 내용’은,  <책이란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로 다시 정리해 두었다..]

치졸한 ‘밥그릇 지키기’ 차원의 편협한 페쇄성의 발로가 아니라면 그게 도대체 무슨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갸우뚱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돌려 설명해 보자. 어떤 책이 주제의식에서든 소재의 선택에서든, 논지 전개나 접근 방식에서든, 서술 전략이나 문체적 특성에서든, 그 고유한 속성으로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면, 우리는 그 사실로부터 얼마든지 ‘이 시대의 대중이 어떤 책을 요구하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고, 더 나아가 ‘어떤 책을 만들면 그러한 시대정신에 부응할 수 있을지’를 모색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가령 영화 <도가니>나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흥행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 시대의 대중이 어떤 영화를 요구하는지, 어떤 드라마를 요구하는지’뿐이다. ‘어떤 책을 요구하는지’라고 질문을 바꿔놓으면 ‘책 자체의 고유한 속성과는 크게 상관없이, 영화나 드라마가 성공했든, 존경할 만한 인물이 돌아가셨다고 뉴스에서 연일 관심을 보였든, 또는 심지어 이미 잘 나가는 책이라고 소문이 날 만큼 났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책’이라고밖에는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예를 들자면,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해석을 내놓았다. 그런데 과연 그런 해석들이 이야기하는 이유에서 이 책이 그토록 오래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얼마 전에 이 책과 관련된 우스개를 하나 들었다. 웬 아주머니가 서점에 와서 “요즘 잘 나가는 책이라던데, 제목이 뭐라더라. ‘아시아 청년’인가, 그런 책 있나요?”라고 묻더란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아프리카 청년’으로 잘못 들었던 모양인데, ‘아프리카’는 너무 머니까 좀더 익숙한 ‘아시아’로 한 번 더 왜곡이 얼어난 것이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책을 산 사람들의 절반쯤은 그렇게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샀을 거라고 나는 감히 짐작한다. 무슨 근거로 그런 짐작을 함부로 하느냐고 묻는다면, 이 책과 비슷한 내용을 비슷한 어조로 서술한 비슷비슷한 책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기에 새로울 게 전혀 없는데도(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책들도 적지 않지만, 대개 오래 가지는 못한다) 지나치게 오래 롱런했다는 점에서 실마리를 얻었다고 답하겠다.

지난 2010년, ‘인문서 시장’의 건재를 확인했다는 상찬 속에 엄청난 판매를 기록했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이런 혐의가 발견된다. 우리 사회에 ‘정의’라는 문제가 화두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던 정치사회적 배경을 들먹이곤 하는 낯설지 않은 분석들이 옳다면, 이 주제를 다룬 동서고금의 수많은 책들이 이 책만큼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판매가 나아진 흔적이 발견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런 움직임은 조금도 감지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요란한 상찬 덕에 그토록 오래 많이 팔릴 수 있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지금 한국의 출판 시장에선 ‘좋은 책이 많이 팔리는’ 게 아니라 ‘많이 팔리는 (것으로 알려진) 책이 더 많이 팔린’다. 그래서 적잖은 출판사들이 외형상 매출을 올리기 위한 ‘되사들이기’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

베스트셀러 목록은, 문화상품 소비의 반문화적인 ‘쏠림’을 부추기는 시장의 왜곡을 야기한다거나 심지어 ‘책 되사들이기’와 같은 파행적 정보 왜곡의 여지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 외에도, 더 근본적으로 대중의 심각한 착시를 유도하기도 한다. 보통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상위에 한 달 이상 랭크될 정도라면 수십만 부가 판매된 결과이다. 그리고 온통 무슨 책이 몇 십만 부가 팔렸다느니 몇 십 쇄를 돌파했다느니 하는 ‘신나는’ 소식들만을 뉴스로 접하는 대중들은 출판산업이 ‘호황’인 줄 안다. 출판사들이 책이 안 팔려 빈사 상태이고 출판산업 전체가 붕괴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고 실상을 전해도 공연한 ‘엄살’인 줄 안다. 저렇게 잘 팔리는 책도 있고 잘 나가는 출판사도 있는데 ‘무능하고 게으른’ 것들이나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고 생각한다. 겉으로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출판사들조차 실은 ‘속 빈 강정’이고, ‘밑빠진 독에 불 붓기’ 식으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는 실상이나 초쇄 소화도 못하는 ‘수십 권의 실패작’들이 깔려야 ‘한 권의 베스트셀러’가 나올까 말까라는 ‘모험산업’의 계산법을 속속들이 털어놓은들 ‘배부른 투정’쯤으로 치부되는 게 고작이다. 

심지어 출판 종사자들조차 이런 착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루하루 죽겠다고 아우성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박’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못한다. 책을 제대로 읽어주고 좋은 책을 알아봐주는 ‘독자’가 사라져가고 있는데도, 어떻게든 책 한 권이라도 더 팔 궁리만 할 뿐 독자를 한 사람이라도 더 늘리려는 더 근본적인 모색은 안 한다.

공공화만이 해답이다

독자가 줄어드는데도 책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은, 순수하게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보자면 ‘낭비’다. 아무리 추상적으로 책의 가치를 역설한들 이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책은 읽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어야만 굳이 세상에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책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는 그것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읽을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무도 미리 알 수가 없다. 뻔하디 뻔한 얘기로 여겨지겠지만, 이것이 출판산업을 붕괴로 치닫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다.

앞서 책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종이값이나 인쇄비 따위의 물리적인 비용이 아니라, 설령 전자책의 형태로 만들더라도 결코 줄어들 리가 없는 비용이라고 말했지만, 그조차도 그저 피상적인 관찰에 지나지 않는다. 출판사에서 지출하는 비용 가운데에서 책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어떻게든 더 팔기 위해’ 들어가는 마케팅 비용이 날로 증가하고 있지만, 그 점을 논외로 하고 ‘책을 만드는 비용’만을 고려하더라도, 책 한 권의 ‘원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순수하게 그 책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제작비’나 ‘편집비’ 따위가 아니라 실은 일종의 ‘보험료’이다. 애써 만들어낸 책이 결과적으로 팔리지 않았을 때 발생할 수밖에 없는 ‘매몰 비용’이 팔리는 책에 의해 벌충되지 않으면 출판산업은 지속적인 재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령 출판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듯이, 저자에게 지불되는 ‘저작권 사용료’는 책값의 대략 10퍼센트 가량이다. 즉 1만 원짜리 책이라면 대략 1천 원 가량이 저작자의 몫이다. 단지 이 사실만 놓고 보면 출판사에서 엄청난 폭리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만일 5천 부에 해당하는 저작료가 미리 지불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사실 저작료는 판매에 대한 보수가 아니라 저작물을 복제하고 판매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대가이고, 적어도 계약된 부수의 판매에 대한 위험부담은 저자가 아니라 출판사가 지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책이 2천 부밖에 판매되지 않았다면, 1만 원짜리 책 한권에서 저작료 부담은 1천 원이 아니라 2천5백 원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설명의 편의를 위해 단순화한 계산법이다. 실제로 출판사에서는 책 한 권 한 권에 이런 계산을 적용하지는 않는다. 일정 기간을 단위로 출간 계획을 잡고 그에 소요되는 비용과 예상되는 판매량 및 위험부담을 전체적으로 계산한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일정 규모 이상에 못 미치는 대다수 영세한 규모의 출판사에서는 실제로 이런 장기적인 계산을 펼칠 만한 여유조차 없다는 것이다. 아예 폐업을 하지 않는 이상 책을 만들어야 수익을 기대할 수라도 있으니 ‘도박판’에 판돈 걸듯 위험부담에 대한 별다른 대책도 없이 일단 책을 만들어내고 본다. 그리고 대다수의 대중은 물론이려니와 심지어 그 책을 꼭 필요로 하는(즉 그런 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만 한다면 한 권쯤 사 줄 수도 있는) 그나마 얼마 안 되는 독자들조차 그 책의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채로 사장되는 책들이 부지기수이다.

독자들을 탓할 수만도 없는 게 1주일 동안 시장에 나오는 책만 해도 어림잡아 수백 종이다. 게다가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는 건, 기형적으로 왜곡된 ‘도서정가제’이다. 출간된 지 18개월 미만의 신간에 대해서만 정가판매를 강제하는 까닭에, 정가제에서 풀려난 구간 도서들이 걸핏하면 ‘반값’이나 그에도 못 미치는 터무니없는 헐값으로 할인 매장에 나온다. 하지만 당장의 실용적 요구를 충족하는 학습서 따위가 아니라면 ‘꼭 지금 읽어야 하는 책’이란 사실 별로 없다. 그러니 혹 읽고 싶은 책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길게 잡아도 1년 반만 기다리면 훨씬 싼값에 살 수 있다면, 곧바로 구매하는 것은 ‘바보짓’이나 다름없게 된다.

여기서부터 악순환이 일어난다. ‘되사들이기’는 물론 눈속임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기’라도 해보려는 안간힘이지만, 설령 역부족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해도 정직하게 ‘안 팔리는 책을 창고에 쌓아놓기만 하는 것’보다는 현금 융통에 훨씬 큰 도움을 준다. 중고 시장으로 풀려나오는 책들의 상당량이 실제 독자들이 읽고 되파는 책이 아니라 이렇게 변칙적으로 풀린 책들이라는 것쯤은 이제 출판계에서 비밀도 아니다. 그렇게 해서 발생한 손해는 ‘마케팅 비용’이라 여기면 그만이다. 그 와중에 ‘운좋게도’(!) 그간의 매몰 비용을 상쇄할 ‘대박’이라도 터져주면 그래봤자 ‘원점’이고, 그런 행운조차 만나지 못한다면 그냥 망하는 것이다. 혼자서만 망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아무리 코딱지만 한 구멍가게라도 대한민국에서 순수하게 제 돈만 가지고 사업하는 사람 본 적 있나. 곳곳에 ‘민폐 작렬’이다.

그래서 웃지 못할 역설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금융권 부실을 몰고 온 ‘대마불사’의 신화이다. 그대로 주저앉으면 꼼짝없이 떼이게 될 빚의 규모가 클수록 오히려 더 오래 버티게 마련이니, 터졌다 하면 ‘대형 사고’다. 도대체 누가 ‘출판은 소규모 창업이 유망한 업종’이라고 무책임하게 떠들어대는지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애당초 양심껏 살고 싶고 간도 작은 사람들이 고작 ‘몇 천만 원’ 정도의 (당사자에게는 피눈물 나는 거액이겠지만) ‘푼돈’으로 소박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도, “그러니까 팔릴 만한 책을 잘 골라 만들면 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현장 경험이라곤 전혀 없는 사람들일수록 자신이 구상한 책은 틀림없이 (크게 성공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수요가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하자. 진심으로 조언하건대, 정말 그걸 미리 알 수 있는 예지능력이 있다면 출판사를 차리는 것보다 미아리에 점집을 차리는 편이 성공 가능성이 훨씬 높다. 동어반복이지만,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위험’이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험산업’에서 ‘위험’이란, ‘예측’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다. ‘관리’에는 필연적으로 ‘비용’이 수반되게 마련이며, ‘위험도’가 높을수록 그 비용은 커진다. 그리고 그 비용이 현재 출판산업의 규모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졌으며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는 것이 내가 출판산업의 ‘붕괴’라는 극단적인 전망을 도출하는 근거이다.

그러니 출판산업이 붕괴를 피하려면, ‘위험도’를 줄이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아무도 ‘타산이 안 맞아’ 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세상이 그다지 불편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사람이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도 좋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책이 필요하고 또 누군가는 책을 만들어내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고 여긴다면, 그 노력에 상응하는 (충분치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대가가 정당한 방법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거기에는 ‘위험’에 대한 비용도 당연히 포함된다. ‘위험’을 오로지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면 누구인들 위험한 일에 뛰어들려 하겠는가.

세상의 그 어떤 책도 책으로 만들어져 대중 앞에 공개되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 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닐지를 단언할 수 없다는 준엄한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책이 만들어져야 그런 가치를 인정하든 말든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그 위험에 따른 비용을 사회적으로 함께 부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출판산업이 ‘공공화’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리고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은 그 책의 ‘생산 원가’가 얼마이든 그와 무관하게 ‘무료’로 책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시민의 세금과 자발적인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공공도서관의 확충만이 유일한 해답이다. 

[우연히도 <인문 정신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같은 매체에 실린 글이다. 5년이 넘는 시차가 있기에 일종의 ‘후속편’이라고 못박아 말하기도 어렵지만, 어렴풋할망정 앞글과의 연결을 의식하면서 쓴 글이라는 점을 부인하기도 쉽지 않다. 적어도 앞글의 내용을 전제하고 읽는 것이 맥락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이 글이 발표된 뒤, “현실 인식에는 동의하지만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논평도 있었는데, 결론으로 제시된 내용이 근거가 부실한 비약이라고 여겨지는 분들은 앞글(과 이 게시판의 다른 글)을 통해 좀더 보강된 논거를 확인하실 수 있을 것이다.]

발표지면 인물과사상 2011.11.
단행본수록 출판생태계 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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