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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왜 ‘출판 아카데미’ 간판이 필요했나
작성자 똥개

연초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하 ‘진흥원’)이 5억 원의 예산으로 출판 교육 사업을 벌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의아한 점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해왔지만, 교육은 다른 어떤 일보다도 전문성과 독립성에 기초해야만 본연의 목적에 충실할 수 있는 일이다. 아직도 제대로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는 몇 해 전의 서울북인스티튜트 파행 운영에서 보듯, ‘행정가’가 아닌 ‘교육 전문가’가 주도해야 하는 것이 절대 원칙이다. 따라서 진흥원이 이왕 적잖은 규모의 교육 예산을 확보했다면, 출판 교육에 아무런 경험도 없는 채로 직접 교육 사업을 벌이겠다고 나설 일이 아닌 것이다.

‘정책 수립 기관’으로서 출판 교육의 현실에 조금만 시선이 닿았다면, 10여 년의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하고도 그 사회적 역할에 걸맞는 적절한 공공적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야멸찬 ‘시장 논리’의 벼랑 끝에서 장기적이면서도 체계적인 전망을 도모할 여력을 하루하루 고갈시켜 가며 당장은 ‘교육 수요자’의 얄팍한 주머니 사정에 간신히 매달려 어렵사리 고군분투하는 현장의 교육 전문가들을 못 보았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좀더 안정적인 조건에서 ‘출판의 미래’를 더 깊이있게 궁리하고 당장은 암울하기 짝이 없는 ‘출판 현실’과의 접점을 더 치열하게 모색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이어야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근본적으로 영리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한겨레교육문화센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비영리적이긴 해도 출판 교육의 본령과는 거리가 먼 ‘기능 교육’의 노동부 프레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서울북인스티튜트 등 현장에서 기왕에 펼쳐져 왔던 노력들, 또는 기존의 ‘학원’식 교육에서 벗어나 좀더 미래 지향적인 교육을 펼치려는 의지는 있지만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는 잠재적 가능성들을 어떻게 한데 아울러 견인하고 뒷받침할 것인가에 정책적 관심을 보였다면 그건 백 번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오히려 공공기관이 무료로 운영하는 ‘학원’을 하나 더 만들어놓는 것이 과연 국민의 혈세로 할 일인가. 우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진흥원에서 준비했다는 ‘교육 프로그램’의 실체가 드러났다. 아니나 다를까. ‘무료’라는 점 말고는 기존 교육 프로그램들과 전혀 차별화되지 않는(즉 기존의 한계를 고스란히 답습한) 진부하기 짝이 없는 틀거리(‘철학 부재’!)에, 세부 내용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수년간 축적된 경험의 산물인 기존 프로그램들보다도 훨씬 엉성한 짜임새((‘역량 부실’!)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하지만 5개 과정, 230시간(교육 인원 124명)으로 계획된 하반기 교육 프로그램의 허실을 속속들이 파헤쳐 비판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거기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은, 비판할 지점이 너무나 뻔해서 굳이 소중한 지면에 구구절절 늘어놓을 만한 가치도 없다는 것, 그리고 굳이 들춰내자면 골자만 요약해도 제한된 지면이 모자랄 만큼이나 따지고 넘어갈 지점이 수두룩하다는 것,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껏 준비했다는 프로그램이 고작 이 따위인가보다 훨씬 중요하게 짚어야 할 문제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 이 글을 쓰는 까닭이다.

내 의문은 단순하다. 이 정도 규모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몇 천만 원이면 충분하고 아무리 넉넉히 잡는다 해도 2억 원을 넘지는 않을 게다. 구체적으로 짚어보면, 기존 교육 기관의 강사료가 시간당 7~10만 원 수준이지만 ‘강사료 현실화’도 공공적 가치라는 점을 고려해 20만 원으로 잡는다 해도 5천만 원을 넘지는 않는다. 혹시 아주 대단한 강사를 모셔오느라 파격적인 대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그건 ‘특혜’의 의혹을 불러일으킬 만한 사안이다. 강사료 이외의 운영비는 민간의 영리 교육 기관조차도 통상은 강사료를 넘지 않는 수준이고 위험 부담을 감수한 투자라 해도 두 배를 넘지는 않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강사료보다 그 이외의 운영비 비중이 이보다 더 높다면 그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비효율적 운영이다.

물론 공공기관이니 효율성만이 예산 집행의 기준이 될 수는 없겠지만, 앞서 살폈듯 민간에서는 엄두도 못 낼 공공 사업도 아니고 고작 기존의 교육 프로그램과 전혀 차별화되지 않는 프로그램이 민간에서만큼도 효율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사업 타당성 자체를 재고해야 할 ‘세금 낭비’ 아닌가. 하물며 받아놓은 예산을 쓰지 않고 반납하는 것은, 다음 해 예산을 삭감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공기관이 가장 꺼리는 일이라는 상식을 감안하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라도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 내가 궁금한 건, 5억 원이나 되는 진흥원 교육 사업 예산의 행방이다. 물론 몇 천만 원이라도 쓸데없는 일에 낭비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지만, 최소한 3억 원 이상의 행방이 아리송하다는 게 실은 그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부디 국고에 반납할 작정이기를, 그래서 내 의혹 제기가 기우에 그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단지 막연한 ‘짐작’에 지나지 않는 다른 가능성을 공개된 지면에 끄집어내는 까닭이 있다. 비록 그 ‘짐작’을 조금이라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전혀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순전히 내 상상력이 유독 비뚤어지거나 기발한 탓이려니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엔 꺼림칙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예산의 아귀가 맞지 않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만을 보고, 출판에는 문외한인 누군가가 대뜸 나와 똑같은 짐작을 내놓은 것이다. 누구라도 조금만 생각하면 품을 수 있는 의혹이라면, 사실 여부를 검증해볼 필요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정기 국정감사를 앞둔 국회를 비롯하여 감사기관들이 주의깊게 살펴서 ‘아무 근거가 없는 억측’이라고 속시원히 밝혀주든, 내 짐작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찾아주든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내 짐작의 실마리는, 진흥원이 교육 사업을 위해 상암동 문화콘텐츠센터에 마련했다는 ‘출판 아카데미’ 공간에서 비롯된다. 굳이 진흥원에서 직접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다면, 즉 글머리에서 살핀 대로, 진흥원 교육 사업의 방향이 현장에서 형성되는 다양한 교육 주체들이 전문성과 독립성에 기반해서 교육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기능에 역점을 둔다면, 전혀 필요하지 않은 공간이다. 그렇다면 이 공간은 출판 교육을 위해서만 필요했을까. 달리 말해 교육 사업을 하려다 보니 불가피하게 필요해서 마련한 것뿐일까. 혹시 거꾸로는 아닐까. 어떤 형태로든 진흥원이 쓸 공간이 필요하다 보니 ‘교육 사업’이라는 명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만일 이런 내 짐작이 맞다면, 교육 내용이 부실하다고 타박하는 건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애당초 교육 프로그램은 대외적인 명분을 위해 그럴듯하게 꾸며놓기만 하면 그것으로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고, 거기에 쓰자고 받아놓은 예산이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일단 의심하기 시작하니 의혹은 꼬리를 문다. 교육 사업 계획을 입안하는 단계에서 현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뛰고 있는 출판교육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거나 타당성을 놓고 공개적으로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도 전혀 없었고, 심지어 세부 내용이 발표되고 수강생 모집이 이루어질 때까지도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어떤 방향’으로 준비하고 있는지 감도 안 잡히게 ‘밀실’에서 추진한 것도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게다. 이왕 확보한 예산을 제대로 쓸 작정이었다면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공간이 필요한 게 먼저고 교육은 ‘대충’ 모양새만 갖추면 그만인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면 공개적 추진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일이었을 게다.

아직도 도통 무슨 애기를 하는 건지 감이 안 잡히시는 분들은, 진흥원이 내년에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할 계획이 확정돼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주시기 바란다. 과연 진흥원의 지방 이전이 타당한 일인지는 여기서 따지지 말기로 하자. 즉 백 걸음을 양보해서 출판사들이 밀집해 있는 파주나 서교동과 접근성이 좋은 지점에 진흥원의 창구가 열려 있을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고 치자. 출판사들 다 버려두고 진흥원만 달랑 전주로 옮겨서 무슨 현장에 밀착된 정책이 나오겠냐는 항변에도 일리는 있다고 하자.

(물론 나는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수도권을 떠나도 좋을 공공기관은 거의 없다. 게다가 앞서 ‘교육’을 예로 들어 설명한 진흥원의 바람직한 위상을 고려한다면, 상대적으로 다른 공공기관보다 민원 사무가 적은 편에 속한다고 보는 게 옳다. 비단 교육뿐 아니라 진흥원에서 직접 주관하는 사업은 지금보다 대폭 줄이는 대신 다양한 현장 주체들의 공공적 활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기만 해도, 지원 예산의 조정을 통해 얼마든지 지금보다 훨씬 풍부한 ‘출판진흥 정책’을 수행할 수 있다. 무릇 문화 정책의 근본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것이고, 필연적으로 ‘간섭’을 낳을 수밖에 없는 직접적 접촉의 여지가 적어진다는 점에서 나는 진흥원의 지방 이전을 원칙적으로 환영한다.)

그렇다면 떳떳하게 서울에 최소한의 인력이 상주할 필요를 설득해내고, 실패한다면 진흥원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위상과 기능을 겸허하게 재조정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기관이 마땅히 세금 내는 국민들에게 보여야 할 투명성이다. 하필 ‘출판의 미래’가 달려 있는 교육을 전면에 내거는 비겁한 ‘꼼수’로, 안 그래도 열악한 여건에서 공공적 지원의 손길이 닿기를 애타게 바라는 수많은 이들을 우롱하지는 말아야 한다. 예컨대 연간 2억 원 정도만 지원해도 서울북인스티튜트는 지긋지긋하게 발목을 잡고 있는 노동부 프레임에서 벗어나 훨씬 문화산업다운 교육을 펼칠 기반을 마련할 수 있고, 그 밖에도 공공적 관점에서 필요성은 충분한(수요자는 넘쳐나는) 반면 유효 구매력의 한계(쉽게 말해 최소한의 강사료를 충당하기에도 교육비가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탓에 채산성을 맞추기 어렵지만 연간 몇 천만 원의 공공적 지원으로도 사회적인 교육 수요에 응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수두룩하게 널려 있다. 애써 확보한 진흥원의 교육 사업 예산은 전혀 ‘아카데믹’하지 않은 ‘출판 아카데미’의 간판을 거는 데 낭비할 게 아니라 바로 이렇게 써야 하는 것이다. 

발표지면 기획회의, 201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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