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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칼럼  Publishing affair
출판문화와 출판산업의 현황 및 전망에 관한 비평글만 따로 추려 올려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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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에 관한 불편한 진실
작성자 똥개

책은 ‘마음의 양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라는 조건에서는 ‘상품’이기도 하다. 책에 담기는 사람의 사상, 감정, 지식 따위가 과연 ‘상품’으로 거래되는 것이 옳은 일인가라는 다분히 ‘당위’적인 질문과 무관하게, 이것은 부인할 수 도리가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저작권과 관련하여 깔끔하게 해명되지 않는 모든 문제들은 근본적으로 이러한 당위와 사실 사이의 확연한 괴리 때문에 빚어지는 혼란의 산물이다. 쉽게 말해 돈으로 살 수 없는(또는 돈으로 사려 들어서는 안 되는) 것을 돈으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는 것이다.

좀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돈으로 사람의 목숨을 살 수는 없다. 그런 발상이 비인간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사망 사고에 대한 책임을 손쉽게 돈으로 수습하려 드는 몰염치가 비난받아 마땅하다 해서, 아예 입에 발린(또는 어차피 아무도 확인할 수 없기는 하지만 ‘진심’이라 해도) 위로로 입을 씻어버리는 무경우가 용인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 따위에서 흔히 벌어지는 상황이지만, 이런 경우에 책임을 통감하면서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돈을 내밀 수도 안 내밀 수도 없는 난처함에 마주치기도 한다. 사과든 위로든 정서적인 접근이 먼저이고, 적절한 액수의 금전적 보상도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사람의 정신 활동의 소산이며 심지어 ‘인격의 일부’(저작물은 저작자의 인격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 ‘저작인격권’의 기본 개념이다)이기도 한 저작물에 이런 상식을 대입해 보자. 어떤 사람의 훌륭한 인격이 사회적으로 발현될 때 그로 인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았다면, 우선은 ‘존경’이 먼저다. 경의어린 존중이 뒷받침되지 않은 금전적 대가란 (설령 엄청난 거액이라도) 인격적 모욕이다. 반면에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에 따른 적절한 대가가 생략된다면 그 또한 인격의 착취에 다름 아니다. 요컨대 ‘저작재산권’이란 (사람의 인격을 재산으로 여기는 비인간적 발상이 아니라면) 단지 저작물이라는 무형의 재산에 대한 일종의 ‘소유권’이 아니라, 저작물로 표현된 저작자의 인격에 대한 ‘사회적 존중’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저작권의 보호를 ‘산업 기반’으로 이해하는 접근방시(가령 저작권 보호가 허술해지면 저작 의욕이 위축되고 문화산업의 기반을 위협할 것이라는 등의 언설)은, 현실에 대한 설명력은 나무랄 데 없을지 몰라도 실은 매우 위험한 태도다. 우리는 모든 것이 금전적 대가로 거래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대가가 따르지 않는 어떤 일도 전혀 안 하고 사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렇게 돌려 생각해 보자. 사망 보상금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이 망자의 시신을 놓고 장사를 하려는 것이 아니듯, 자신의 저작물에 정당한 대가가 따르기를 기대하는 저작자가 자신의 인격을 팔아 잇속을 챙기려는 것도 아닌 것이다. 가령 나는 (최근 허영만 화백의 사례에서 보듯) 정당한 저작권 사용료를 요구하는 저작자가 왜 ‘돈을 밝힌다’는 비난을 들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 대목에서 저작자도 먹고살아야 저작 활동도 한다는 식의 항변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단지 먹고살려고 제 인격을 상품으로 내다 파는 사람은 없다는(혹시 있다 해도 그런 상황 자체가 저작자의 내면을 황폐하게 착취한 결과일 뿐이라는) 점에서 저작 활동의 사회적 가치를 초라하게 왜소화하는 접근이다. 그저 누군가에게 해를 끼쳤다면 사과를 하는 것이 마땅하고 (돈으로 셈할 수 없는 문제라 해도) 적절한 금전적 대가를 치르는 것이 상식이듯, 누군가로부터 ‘재미’든 ‘유익’이든 도움을 받았다면 ‘사례’를 해야 마땅하고 그것이 금전적으로 표현된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는 상식을 환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일반 독자(또는 허다한 문화상품의 소비자)가 아니라 출판을 포함한 문화산업 종사자들의 경우다. 누군가의 저작물을 상품화하는 것으로 직업을 삼는 이들이 저작물로부터 얻는 것은 단지 ‘재미’나 ‘유익’이 아니라 명백히 ‘경제적 이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실의 잣대와 당위의 잣대를 그때그때의 이해관계에 따라 편의적으로 뒤섞곤 하는 것은 자기기만일 뿐이다. 일의 영역 바깥에서 당위를 지향하는 어떤 활동을 벌이든지는 각자의 정치적 자유일 터이나, 적어도 일의 영역에서는 철저하게 저작권을 옹호하는 편에 서서 현실의 잣대를 엄정하게 유지할 윤리적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타인의 인격을 내다파는 일로 먹고사는 사람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자의식이다.

이른바 ‘카피레프트’라는 (‘right’의 중의성을 이용한 일종의 말장난에서 비롯된) 재기발랄한 용어로 상징되는 ‘저작권 공유’의 발상과 실천적 함의도 이러한 인식에 기초한다. ‘카피레프트’는 결코 당위로 현실을 재단하여 모든 저작권 일반을 부인하려는 무모한 시도가 아니다. 가령 출판에서 ‘저작권 공유’를 실천하려면 적어도 세 가지 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는 ‘연대’의 원칙이다. 저작자는 단지 저작권을 대가 없이 공개하는 데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사회적 목적을 위한 실천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즉 사실상 ‘인격의 착취’를 ‘연대’라는 명분으로 포장하려 든다면, 그것은 저작권 공유의 취지와 한참 동떨어진 정치적 사기일 뿐이다. 다른 하나는 ‘접근 보장’이다. 공개된 저작물에 대해서는 일반 공중이 아무런 진입장벽 없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해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출판물에 담길 저작물에 저작권 공유 개념을 적용할 수는 없다. 설령 판매수익금 전액을 공공적 목적에 활용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 취지에 동의한다면 저작권 사용료를 기부하도록 권유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저작물 자체를 거저 제공받아 돈을 받고 파는 건 파렴치다. ‘돈’은 기부할 수 있지만, ‘인격’을 기부할 수는 없다.(위에서 말했듯, 인격은 ‘언대’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비용의 공공 부담’이 전제되어야 한다. 원고만 있다고 책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므로 일정한 비용이 필요하지만, 이 비용이 공공적으로 조달되지 않는다면 비용 회수를 위해 판매가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좀 장황한 감이 없지 않지만, 이렇게 개념을 명확히 해야 최근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재능 기부’(라고 쓰고 ‘열정 착취’라 읽는다)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실마리가 잡힌다. 거듭 강조하지만 저작물은 저작자의 인격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리고 ‘재물’은 기부할 수 있어도 ‘인격’을 기부할 수는 없다. 금전을 포함한 재물은 분할 가능하므로 얼마든지 ‘형편껏’ 기부할 수 있지만, 인격을 분할할 재주가 잇는 사람은 없으므로 총체적 실천 활동으로서 ‘연대’할 수는 있어도 ‘형편’을 헤아릴 여지가 없다.(차라리 ‘시간’을 기부해 달라는 거라면 그나마 말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좋은 일에 재능을 나눠 쓰자’는 식의 발상은 사람마저도 동원 가능한 자원으로 보는 극단적인 물신성의 발로일 따름이다.

이러한 비판은, 일각에서 제기된 ‘저작권 기부’(카피기프트) 제안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양서에 접근하게 하자는 독서운동의 취지가 정당하다면, 저작권을 기부받는다는 황당한 발상으로 안 그래도 현실과 당위의 괴리 속에서 혼란스러운 저작권 개념을 흔들 일이 아니다. 그 취지에 동의하는 이들의 기부를 받아 마땅히 치러야 할 저작권 사용의 대가에 충당하는 것이 옳다. 사람의 사상과 감정, 지식이 ‘거래’의 대상이 되는 것도 참담한 일인데, 아무리 그것이 당장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로소니, 하물며 ‘기부’의 대상으로까지 ‘확인사살’을 하려 드는 건 차마 목불인견이다.

출판산업이 공공적으로 재편된다면, 저작자에게 치르는 금전적 대가는 ‘책’이라는 상품을 거래한 결과가 아니라 책을 읽은/읽을 사람들이 저작자에 대한 ‘사회적 존중’을 기초로 지속적인 저작 활동을 부추기기 위한 ‘사회적 연대’의 금전적 표현으로 다시 자리매김될 것이다. 앞서 살폈듯 실은 그것이야말로 저작재산권의 본질이다. 그리고 아무리 ‘책’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현실에 빌붙어 먹고살 수밖에 없는 비루한 처지라 해도, 아니 그럴수록, 사람의 사상, 감정, 지식 따위를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여기는 세상은 잘못된 세상이라는 진실에 눈감아서는 안 된다.

발표지면 기획회의, 2013.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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