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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함'이라는 습관
작성자 똥개

아침에 잠이 깨면, 아직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을 부비며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 메일박스를 확인하는 것이다. 외출했다가 돌아올 때도 용변이 무척 급하다든가 하는 아주 특별한 사정이 아니라면 옷도 갈아입지 않고 컴퓨터 앞으로 먼저 달려간다. 컴퓨터가 업그레이드되면서 이런저런 보안 프로그램이 설치되는 바람에 꽤 길어진 부팅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짜증이 나서, 자거나 외출하는 동안에도 꺼 두지 않고 아예 24시간 온라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꽤나 오래된 일이다.

그뿐이 아니다. 적어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내가 주로 드나드는 몇 군데의 온라인 사이트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락날락하며 새로 올라온 게시물이 없는지 확인한다. 하지만 대개는 하루만 확인을 안 해도 게시물 목록이 몇 페이지씩 넘어가 있는 엄청 잘 나가는 사이트들이 아니라, 일주일쯤 잊어버리고 있다가 들어가 봐도 그다지 달라진 내용이 없을 사이트들이다. 그런데도 노상 '혹시나' 하는 기대를 떨칠 수가 없다.

그 정도면 '습관'이 아니라 '중독'이라고 대꾸할 사람도 있겠지만, 돌이켜보면 이건 컴퓨터가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 구경해 보지도 못한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이다. 가령 대학 시절, 단과대학 건물의 계단 입구에는 학과별, 학년별로 칸막이가 쳐진 우편함이 놓여 있었는데, 새로운 우편물로 채워지는 것이 하루 한 번뿐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리고 이미 그날치 우편물들이 배달된 뒤라는 것을 확인하고서도,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번번이 우편물 뭉치를 뒤적이곤 했다.

물론 어떤 친구가 무슨 우편물을 받는지 따위에 대한 호기심은 전혀 없었다. 그저 혹시나 내 앞으로 온 우편물이 있는데도 혹시나 내가 못 보고 지나친 것은 아닐까, 혹시나 배달을 맡은 사람의 실수로 다른 우편함에 잘못 들어가 있던 것을 누군가 발견하고 제대로 찾아 넣어주지나 않았을까, 우편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학교 안의 친구들이 직접 우편함에 넣어놓은 편지나 메모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그 '습관'의 배경에 깔려 있던 '혹시나'의 목록은 이 밖에도 무수히 많다.

학교에 다닐 때든, 졸업 뒤에도 학교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어슬렁거리던 백수 시절이든, 주로 이런저런 술자리들의 메모가 덕지덕지 나붙던 학교 앞 서점에 죽치고 앉아 두고두고 정신적 자양분이 되어 주었던 책들을 뒤적이곤 했던 것도, 딱히 엄청난 독서의 열망이나 주체할 수 없는 지적 갈증 따위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나는 그곳에서 누군가 '아는 얼굴'이 나타나기를 하루종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직장에 다닐 때는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면서 혹시나 누군가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자고 전화를 해 오지 않을까 조바심이 나서 전화벨 소리에 잔뜩 신경이 곤두서는가 하면, 혹시나 동료 중에 누군가가 그런 제의를 하지 않을까 싶어 눈치를 살피기도 했다. 때로 일과의 마무리는 뒷전이고 전화번호부를 뒤적여가며, 쇠뿔도 단김에 뽑는다고 그날 당장 만나자는 약속이 잡히는 '행운'은 가물에 콩 나듯이었고, 대개는 "언제 한 번 보자"는 하나마나한 인사치레로 끝나기 일쑤인 실없는 안부 전화 돌리기를 일삼기도 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이면 어김없이 발동하는 틀림없는 '황혼병'이었다.

어느 신문사의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지금도, 강의가 끝나도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하고 건물 현관 앞을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며, '야속하게도'(?) 가벼운 목례로 내 앞을 지나치며 총총히 귀가길을 서두르는 수강생들의 행렬이 다 지나가고 나서야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아쉽게 집 쪽으로 옮기곤 한다.

심지어 이렇다 할 술버릇이 전혀 없는 '깔끔한' 술자리 매너를 자랑하면서도, 꼭 한 가지 치명적인 술버릇은 어쩔 수가 없기도 하다. 그건 바로 "딱 한 잔만 더 하자!"며 술 친구들을 놓아 주려 들지 않는 것이다. 아주 곤죽이 되도록 취했을 때가 아니라면, 알딸딸한 상태에서 함께 놀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진 텅 빈 거리에 혼자 남겨지는 것을 무척이나 못견뎌하는 것이다.

너무나 일관된 이 모든 행동 양상들은 어쩌면 '습관'이라기보다 일종의 '강박'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 밥을 함께 먹자거나 술이라도 한 잔 하자는 누군가가 있을 것만 같은 기대, 혹시라도 (그것이 통속적인 의미에서 '연애'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것이건 아니건) 내게 마음을 터놓고 위로를 구하거나 나와 정서적 교감을 나누고 싶어하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 또는 뭐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나의 존재감을 분명히 의식하는 타인의 존재감으로 내 일상이 충만해지기를 바라는 모든 '막연한' 기대들이 한데 뭉쳐져 만들어낸 강박이 이제는 습관처럼 몸에 붙어버린 것이다.

기대는 언제나 설렘을 동반하게 마련이지만, 그것은 기대의 대상이 구체적일 경우에 국한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미 강박을 넘어서 습관이 되어버린 채, 분명하게 의식되지조차 않는 막연한 기대에는 기실 아무런 설렘도 없다. 그나마 그 막연한 기대의 흔적이라도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스팸메일로 가득차 있는 메일박스를 확인하거나, 이전에 접속했을 때와 전혀 다름이 없는 게시물 목록을 확인할 때, 또는 별다른 '뒤풀이' 없이 혼자 귀가하게 될 때, 어쩌다 내가 먼저 말을 걸자고 맘먹고 던진 제안이 거절당했을 때, 좀더 분명하게 가슴 한 구석에서 뭉클 솟구치는 헛헛한 쓸쓸함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애당초 아무런 기대도 없는 그저 무의미한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면 쓸쓸해할 까닭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딱히 큰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어차피 일상이란 지리멸렬한 것이고, 내 기대가 터무니없는 욕심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어쩌면 그래서 그게 구체적인 '욕망'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막연한 기대로 잠재하면서 고작해야 '습관'으로나 남겨진 것일 게다. 내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쓸쓸해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그저 '습관'일 뿐이다.

발표지면 우리교육, 20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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