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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왜 짖는가
작성자 똥개

어느 샌가 본명보다 더 유명해진 '똥개'라는 내 통신명의 개인사적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개인용 컴퓨터를 이용해 통신을 하거나 공개 통신망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글을 써올린다거나 하는 따위의 일을 공상 과학 소설쯤에나 나오는 일로 여겼을 1980년대의 대학생 시절까지 되돌아간다. 나를 개인적으로 알거나 또는 내 글을 눈여겨 보았던 많은 사람들은 흔히 '똥개'라는 내 이름에서 모종의 위악이나 심지어 자기 비하의 혐의를 발견하곤 하지만, 내가 처음 자칭타칭으로 '동개'로 불리기 시작했을 때 그런 부정적인 의미를 의식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이 이름에서 연상되는 부정적 함의들을 굳이 부인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은 군사 쿠데타의 원죄를 가진 자가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직선 대통령'에 당선되는 어이없는 현실과 그 현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스스로를 한사코 부정하려는 집단 무의식의 발로쯤이었을 게다. 한 마디로 '동개'는 나만의 독특한 개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뒤늦게 복학생으로 합류한 나보다 먼저 동아리에 진을 치고 있던 후배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서로의 이름 한 자를 개 견(犬) 자로 바꿔 부르는 분위기에 나 또한 별다른 거부감 없이 젖어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정견'으로 불리던 것을 내가 더욱 익살스럽게 내 성(姓)에서 연상되는 물건과 연결을 시켜 '동개'라고 수정한 것이 내가 적극적이고 의식적으로 개입한 유일한 일이다.

그 당시 이름의 한 글자를 굳이 개 견 자로 고쳐 부르며 치기어린 유행을 선도했던 후배들은 정작 하나둘씩 '어른'이 되어가면서 더 이상 개를 자처하지 않게 되었지만, 처음 통신망에 아이디를 등록하면서 무심코 '똥개'를 선택했던 나는 마치 스스로 성장하기를 거부한 <양철북>의 오스카마냥 1980년대의 최루탄 냄새 물씬한 대학 교정에서 한 치도 성장하지 못한 채로 21세기를 맞고 불혹(不惑)의 나이를 맞았다. 그것은 일찍부터 가족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오히려 그 이유로 인해 일찌감치 성인 대접을 받는 대신 마흔이 다 되도록 '가출 소년'쯤으로 여겨지곤 했던 개인사적 불운과 절묘하게 맞물려 묘한 정서적 공명(共鳴)을 자아내기도 한다. 요컨대 처음 '동개'가 된 것은 나의 의지나 의식과는 거의 상관없는 일이로되, 그 후로도 오랫동안 '똥개'였던 것은 거기에서 적극적인 의미를 발견한 나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물론 내가 '동개'에서 발견한 의미들이란 위악이나 자기 비하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가령 윤동주가 <또 다른 고향>에서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라고 노래했을 때 '개'는 오히려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白骨)"에 대비되는 상징으로 사용되지 않았던가. 아무리 10년의 세월을 세상과 화해할 길을 좀체로 찾지 못한 채 '프리랜서 빙자 백수'에 머물러 있는 대책 없는 청춘을 스스로 '개'에 빗댄 것이 그저 치기어린 자조였을 뿐이라 해도, 그것이 유치하다면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조차 우습게 알았던 통 속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또 얼마나 유치한가. 그 누구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무한한 자존심, 그것만이 아무 거리낌도 없는 자조의 비결이다.

'개'를 자처하기는 하지만, 나는 기실 개를 몹시 무서워하는 편이다. 주변의 지인들은 "개가 개를 무서워한다"고 곧잘 놀리곤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정색을 하고 "사람한테 제일 무서운 게 뭐냐?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지. 그러니 개도 개가 제일 무서운 건 당연하다."라고 대꾸하며 시치미를 뗀다. 어차피 무섭기는 마찬가지이니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폐가 있기는 하지만, 자지러지게 짖어대며 내게 달려들려는 개보다는 짖지도 않고 나라는 존재에는 무심한 듯 서 있는 개가 실은 더 무섭다. 자지러지게 짖는 개를 자세히 관찰하면 한결같이 뒷다리에 힘을 주고 뒷걸음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혹 재수없으면 공격을 당하는 경우가 없으란 법은 없는 만큼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속담만 믿고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개가 짖는 이유가 결코 나를 위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나를 향해 사정없이 짖어대는 개에게서 위협과 공포를 느끼는 내 입장에서 억울한 일이긴 하지만, 그 녀석도 나라는 '낯선 존재'에게서 나만큼이나 또는 어쩌면 그 이상으로 위협과 공포를 느끼는 것이 틀림없다. 물론 그게 딱하다고 짐짓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 녀석을 위로하려 드는 것은 바보짓이다. 만일 정말 사나운 놈이라면 뒷걸음을 치려다가도 내가 빈 틈을 보이는 순간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는 본능에 따라 공격을 시도할 수도 있을 테니까.

신기하게도 개의 그런 습성은 감정이입이라는 기제를 통해 고스란히 내게도 내면화되어 있다. 불행히도 세상의 질서에 온전히 동화(同化)될 기회를 차단당한 나는 걸핏하면 '낯선' 세상을 향해 사납게 짖어대지만, 그것은 감히 세상을 위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세상에 덤벼들어 물어뜯는 것은 오히려 '정글'이나 다름없는 세상에서 살아내는 법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일이다. 딱한 일이지만, 나는 언제나 위협받고 있다. 기실 내가 좀체로 개와 친해지지 못하고 무서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동물과도 정서적 교감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는 애견파들이 들으면 혀를 찰 일이지만, 내가 타자(他者)와 소통하기 위해 가진 유일한 언어는 '합리적 이성'뿐이며 개와는 그 언어로 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공포는 비단 개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나는 '합리적 언어'가 통하지 않는 모든 존재가 모두 낯설고 무서우며 사람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물리적 폭력이 지배하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같은 편의 머릿수가 많다는 것이 벼슬이 되는, 나이/성별/인종/성정체성/신체조건 따위에 따라 촘촘한 차별과 배제의 그물이 얽혀 있는, 그런 세상은 내게 그 존재 자체로 위협적이다. 합리적 언어로 소통할 수 없다는 점에서라면 내게 그들이 개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아니 적어도 개는 품종과 족보를 가려가며 사교를 하지는 않는다. 잡종으로 태어난 동개의 존재가 그것을 웅변한다. 개들도 안 하는 그 못된 짓을 사람이 한다. 물론 내 이름 '동개'의 유래는 처음부터 잡종을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내 아비로부터, 그 아비의 아비로부터 물려받은 성(姓)을 익살스럽게 비틀어 버림으로써, 내게는 끔찍한 저주와 다름이 없는 나의 가족사와 나의 아비와 나의 핏줄을 가장 유치한 방법으로 부인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하지만 사람을 적어도 그의 '이성적 판단 능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기준에 따라 가리려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이름이 부수적으로 내포하는 잡종스러움도 오롯이 내 몫의 소중한 의미이다. 나도 사람을 꽤나 까다롭게 가리는 편에 속하기는 하지만, 내가 사람을 가리는 유일한 기준은 역설적으로 잡종스러움을 꺼리지 않고 사람을 부당하게 속박하는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가운데 이성에 근거하여 판단하며 낯선 존재에 대해서도 사람에게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를 잊지 않는가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낯선' 세상에서 그런 사람과 마주치기라도 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쉴새없이 짖을 수밖에. "무서워, 저리 비켜, 나를 건드리지 마, 무섭단 말야!"

나는 아마도 숨이 다할 때까지도 세상과 화해할 길을 찾지 못할 듯하다. 나는 '정글'에 들어서는 순간, 스스로를 보호할 유일한 무기인 '이성'을 포기하는 순간, 더이상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몰룬 대다수의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정글에서 살아남기에는 너무나 약한 존재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패거리를 짓고 자신의 이성 대신 집단의 묵시에 의탁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려 한다. 그렇게 그 묵시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존재를 필요악쯤으로 여기는 정글의 법치을 체화해 간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묵시'와 '이성'이라는 매우 이질적인 언어의 경계가 가로놓여 있다. 물론 사람의 패거리에 끼이지 못한 채 거추장스럽기만 한 '깍두기'인 데다가 걸핏하면 '공연한 어깃장'으로 패거리의 평화를 흐트려놓기 일쑤인 나의 언어는 영원히 '개 짖는 소리'일 따름이다. 그것을 내 삶의 몫으로 의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스스로가 자랑스럽지는 못할망정 이것이 결코 '위악'이나 '자기 비하'일 수는 없는 것이다.

발표지면 <세상을 향해 짖는 즐거운 상상>, 아이앤드아이,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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