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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상식으로 상식에 도전하기 (토마토. 1996)
작성자 똥개
나는 단 한 번도 스스로를 '글쟁이', 즉 이른바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혹은 글쟁이가 되겠다고 생각해 본 적조차도 없다. 그런데도 어느새인가 누가보더라도 영락없는 '글쟁이'가 되어 있었고, 게다가 (스스로 입에 담기에는 차마 민망하지만) 꽤나 개성있는 글을 쓴다는 평판도 들었다. 이것은 당사자로서는 무척이나 곤혹스러운 일이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곤란한 지경으로까지 몰고 왔을까. 내 '글쓰기'는 '국어운동학생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도 인문적인 욕망에서도 아니라, 오로지 정치(?)를 하기 위해 밤을 새가며 소위 '문건'이라는 것을 썼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동네는 '과학'이 발붙일 곳 없이 천박한 대중선동만이 벌거벗고 횡행하는 뒷골목이다. 뒷골목의 쓰레기냄새 속에서, 의심없이 믿어지는 '상식'이야말로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할 대상이며 나아가 의심없이 믿어질수록 더욱 의심해야 한다는, 나를 두고두고 궁지로 몰아넣을 끔찍한(!) 시선이 나도 모르는 새 체득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어느 후미진 동네들만이 아니라 이 사회 자체가 '상식'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횡행하는 쓰레기더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이내 알아차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글쓰기'뿐이었다면, 그렇게 마음을 다잡아먹고 그 한 길로 매진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나는 부지런히 글쟁이로서의 '내공'을 쌓아가지는 못했고, 나는 여전히 '글쟁이'라고 어디에 내놓기에는 참으로 무식하다. 아니 '글쟁이'가 꼭 유식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비평이라는 글이 사회적으로 소통되기 위해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이론적 천착조차도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무릇 '비평가'를 포함한 모든 '글쟁이'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자일진대, 내게는 그런 꿈도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발언을 멈추지 않았던가. 아이러니칼하게도 내 시선이 서 있는 정확한 지점 또한 '상식'이었고, 내가 꿈꾸는 세상이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고작이었던 것이다. '상식'은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꿈이 아니라 당장 직면한 현실에서의 절박한 요구일 뿐이다.

'상식'을 의심하는 시선이 '상식' 위에 서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한 치도 더 움직이지 않는다? '상식'이라는 폭력이 횡행하는 것은 참을 수 없지만, 그러면서도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꿈꾼다? '글쟁이'가 아니면서도 무언가 '글을 쓴다'는 행위뿐 아니라 사실은 그 행위 자체가 본질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역리(逆理)가 나를 훨씬 더 곤란하게 했을 것이다. 하나의 상식과 또하나의 상식, 양자 사이에는 아마도 흔히 '혁명'이라고 일컬어지는 건널 수 없는 강이 가로놓여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지난 시절 열병처럼 앓았던 1917년의 혁명조차도 아닌, 1789년의 혁명이다. '상식'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횡행하는 한국 사회는, 자본주의의 비약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789년 이전이다. 1789년의 꿈과 1990년대의 현실 그 사이에는 고단하기 짝이 없는 내 실존이 있을 뿐이다. 나의 발언은 단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향하여 '상식'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실존의 몸부림이었을 뿐이다.

이런저런 매체에 발표되었던 글들을 묶으면서 편의상 두 부분으로 나눠보았다. 앞 부분은 '과학'을 빙자한 도그마에 지나지 않는 어떤 '상식'을 겨냥한 글들이다. 내가 그러한 상식에 도전하는 이유는, 더이상 '과학'이 필요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과학'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내가 배워 알고 있는 '과학'은 도그마에 반대하며, 스스로 도그마이기를 거절한다. 뒷 부분은 '상식'을 공유하는 시민들의 토론문화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폐쇄성과 그러한 폐쇄성이 '상식'으로 둔갑하는 폭력, 그 쓰레기더미를 향한 발언이다. 물론 나는 거창하게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꿔야 한다거나 하는 정치적 기획 따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것들이 가능할지조차도 이제와서는 의문이다. 그래서 여기에 묶인 글들에는 어설픈 희망보다는 뼈아픈 절망과 어찌할 수 없는 냉소가 적지 않게 뒤섞여 있다. 독자들의 행간을 읽는 혜안을 기대할 뿐이다.

바로 어제 영화법의 사전검열 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이 내렸다. 지난해 음반법 개정에 뒤이어 사전검열 제도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다. 물론 검열철폐는 환영할 일이고 일시적인 축제분위기도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무작정 만세부를 일은 분명 아니다. 오히려 냉정하게 현실을 되돌아 볼 때가 아닌가. 일례로 나의 은사이기도 한 마광수 교수는 여전히 집행유예 상태로 강단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조차도 않는다.

국어학은 내가 택한 전공분야이고, 그리고 사회적 인간으로서 내가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고 지금까지도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정신'은 "실천이 없는 공부는 무의미하다"는 명제이다. 그곳이 내 시선과 발언의 진원지이기에, 김하수 선생님의 가르침을 비롯하여 '말과 삶'에 대한 고민과 모색을 함께 하던 '한말글'(국어운동학생회 연합)과 '말글터'의 후배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지난 너댓 해 동안 발언의 지면을 제공해 준 교지·학보 등 허다한 대학 매체의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편집자들과 길지 않았던 시간이지만 함께 고민하며 밤을 지새웠던 {캠퍼스저널}의 동료들, {오늘예감}의 젊은 힘들, 그리고 하이텔 대중매체모니터링 동호회의 공간을 함께한 수많은 이들이 이 글들을 함께 만들었음을 기억하고 싶다.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1996년 10월 5일
발표지면 .
단행본수록 상식으로 상식에 도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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