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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계산하지 말고 궁리하자” - 안상평 고래가그랬어교육연구소 팀장
작성자 똥개

출판을 굳이 직업으로 삼으려는 이들에게 그 까닭을 물으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거칠게 정리하자면 “자본주의 시스템의 부속품이 되고 싶지 않아서”쯤으로 수렴되는 대답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마치 출판업이 무슨 ‘해방구’이기라도 한 양 막연한 ‘로망’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에게는 딱한 일이지만, 희한하게도 대다수의 출판 종사자들의 일상은 하고 많은 직업 놔두고 왜 하필 이 일을 하는지를 스스로도 해명할 수 없는 ‘시스템이 강요하는 무의미한 반복노동’으로 점철되어 있는 게 어김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그걸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무기력하게 체념하면서 ‘책의 힘을 믿는 출판인’이 아니라 ‘고장난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전락해간다. 정말 ‘현실’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석 달 전, <고래가그랬어>의 김규항 발행인이 자신의 블로그에서 대기업 과장으로 일하다가 “경제적 안정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로” 했다고 그를 소개한 글을 보고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진 건 그래서였다. 김규항 발행인도 지적했듯, “사람이 삶을 바꾸려면 언제나 그걸 주저하게 만드는 사정들이 있게 마련인데 그 사정들을 완전히 해결하면서 삶을 바꿀 방법은 사실 없다. 왜냐하면 그 사정들이란 대개 기존의 삶이 제공하는 크고작은 기득권과 관련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살 순 없어’라는 생각을 품는 사람은 많아도 정작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드물다.” 그가 그 ‘드문’ 일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지혜와 용기를 어떻게 얻었는지 듣고 싶었다.

세상의 위험에서 ‘나’를 지켜낼 방법을 찾아서

변정수 (이하 ‘변’) 반갑습니다. <경향신문>에 기사가 나기도 했습니다만, 좀더 깊숙한 내면의 고민들을 듣고 싶어, 인터뷰를 청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면 그저 ‘대단하다’거나 ‘별스럽다’는 인상을 받는 데 그치고 또 금세 잊어버리는 게 고작이니까요. 단순히 ‘대기업 과장’을 그만두고 ‘작은 출판사’로 이직을 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거기까지 가게 되는 구체적인 과정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성장기는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안상평 (이하 ‘안’) 강원도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가 학교 선생님이셨는데 워낙 두메산골 분교를 옮겨다니셔서, 아주 어렸을 때는 30리를 걸어 들어가서 줄을 당겨 끄는 배를 타고 건너가야 하는 분교라든가, 전기가 안 들어와서 화로를 놓고 사는 그런 산골에서 살았던 기억이 있어요.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는 춘천에서 할머니와 살면서 중고등학교까지 춘천에서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서울에 올라왔죠.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했는데, 졸업하고 바로 신문사에 취직을 했다가 4개월 만에 그만뒀어요.

1970년대 초중반이었을 텐데, 그 또래에서 그런 경험을 한 사람도 드물겠다 싶습니다. 신문사가 적성에 안 맞던가요?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언론사에 대한 기대가 있었어요. 직업이 사람을 성숙시키는 면이 기자들에게 있을 거라는 기대죠. 치열한 현장을 통해서 사람이 성숙해가고 그런 걸 기대했는데, 오히려 안 좋은 방향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신문사에서 일이 돌아가는 모습을 못 참겠더라고요. 5~6년차 선배들을 봐도 사람들이 거칠어져 있고 표독스러움만 남고, 여기 계속 있으면 나 자신을 지켜낼 자신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 비리가 드러난 어느 기자 출신 공직자도 그때 같은 회사의 선배였거든요.

그래도 본받을 만한 선배가 한두 분이라도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그만두지는 못했을 것 같은데요.

경험이 짧아서 단정짓긴 어렵겠지만, 저는 그런 모습을 못 봤어요. 다른 의미를 발견한다면 나중에라도 다시 시험 봐서 들어오면 되겠지만, 이대로 가면 빼도박도 못하고 이상한 사람 되고 말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나를 지켜내려면 우선 뭘 지켜야 될지 알아야겠다 싶어서 대학원에 갔어요. 대학원을 마칠 무렵엔 유학도 생각햇는데 여건이 안 됐어요. 다시 언론사 시험을 보긴 했는데 떨어지고, 흔히 ‘인문사회계열 대학원생들의 무덤’이라고 하는 리서치 회사에 2년 반 정도 있었어요. 처음엔 여론조사 쪽으로 전망을 가졌는데, 그 무렵이 마케팅 리서치 시장이 커지던 시점이엇어요. 여론조사는 관에서 발주하는 미미한 수준이고, 70~80%가 마케팅쪽 일이었죠. 전자제품 쪽을 담당했는데 그게 인연이 돼서 전자회사로 옮겼어요. 다른 걸 다 떠나서 가능하면 리서치 회사에서 일단 벗어나고 싶었던 게 컸지요.
마음 둘 데도 없고 사회생활을 많이 힘들어하면서 다른 길을 찾아볼까 고민하던 무렵이었거든요. 저희 또래가 대개 비슷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기업체에 취직했다가 다시 대학원으로 돌아왔다가 유학을 가려고 했지만 여건이 안 돼서 기업체에 취직하는, 저하고 비슷한 경로를 걸어온 친구가 있는데 한때 우울증 증세에 시달리기도 하고 그랬지요

어느 세대에나 그 세대 나름의 고통이 있겠지만, 그 또래가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현상이 도드라지는 것 같기는 합니다.

부모 세대에는 너무나 정형화된 삶의 패턴들이 있었고 시장의 압력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정해진 루트를 따라가면 어느 정도 살 수 있었잖아요. 사회적 욕망 자체가 하나였기 때문에 큰 갈등도 없었고요. 그런데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 흐름이 지나간 뒤에 1990년대 초에 이런저런 ‘대안적’ 모색들이 많이 있었잖아요. 그 무렵 대학에 들어갔던 또래를 보면 그런 ‘다른’ 모색들에 더 많이 노출될수록 사회에 나와 더 많이 힘들어한 거 같아요. 고등학교 때까지 전근대적인 교육을 받다가 대학에서 사춘기를 겪지만 그 기간은 너무 짧죠. 그리고 사회에 던져져 곧바로 시장에 쪼이게 되면, 머리는 뭔가 새로운 걸 추구하는데 몸으로 체험한 경험은 없다는 간극이 사람을 우울하고 패배주의적으로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 조건에서 삶의 전범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선배들 애기를 들어보면 직장 환경도 많이 바뀌었어요. 10년 위 또래가 다녔던 회사와 우리가 다니는 회사는 실은 다른 회사인 건데, 그러니 선배라는 사람들도 그 안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거죠. 모든 게 흩어져서 모든 걸 다 재조합해야 하는 운명에 놓인 셈인데, 재조합할 대상이 많으면 그만큼 힘들고 또 그걸 재조합할 가치가 있느냐는 건 별개 문제고, 그 상태로 오래갈 수는 없는 거죠. 어느 쪽으로든 정리가 안 되면 미칠 수밖에 없는 거고, 순식간에 포기하기도 하지요. 그렇게 가 버리면 더는 뒤돌아보기 싫기 때문에 ‘다른’ 모색에 더 혐오를 보내게 되기도 하고요.

그건 그 또래만의 문제는 아닌 거 같아요. 저희 또래만 하더라도, ‘뉴라이트’라는 사람들의 다수가 ‘왕년의 운동권’이었잖아요.

그렇게 생활이 피폐해지다 보니까 마음을 다잡아야겟다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블로그를 통해서 김규항 선생을 알게 되고, ‘진짜 예수’를 찾아 교회도 다니게 되고, ‘예수전’ 강의를 듣게 된 거죠. 2005년에 1기 강의를 들었고 2년 뒤에 1~4기가 다시 모여서 세미나를 했는데, 그제서야 마음 둘 데를 찾았다고 할까요. 김규항 선생을 계기로 만들어진 공동체를 통해서 심적으로 위안이 되는 사람들을 얻은 거지요.

한편으론 다행스러운 일입니다만, 다른 방향도 있었을 텐데 교회를 찾으신 건 어떤 의미였는지요?

어렸을 때 이메일 주소를 만든 적이 있는데 그때 아이디가 ‘protectmyself’였어요. 외부적인 것이 내 삶을 많이 훼손하고 침해한다는 염려가 강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잘 살려면 사회적인 위험들이나 편견들로부터 나 자신을 잘 보호하는 것이 화두가 되겠다 그런 생각이었던 셈이죠. 사회학을 공부하다 보니 비판적인 지식들이 나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실제로 별로 힘이 안 되는 거예요. 오히려 그런 지식들이 더 정신을 불안하게 하고 사람을 날 서게 하고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스트레스가 자신에게 쌓이는 과정이 순환되는 걸로 보이더라고요. 그럴 때 근본적인 자기를 찾게 되는 거죠. 그런데 교회나 에수전 강의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면서 날 선 부분들이 많이 줄어들고 마음이 편해졌어요. 진심으로 보여줄 만한 걸 다 드러냈기 때문에 심리적 결속이나 상대에 대한 신뢰 같은 것들이 각별했거든요. ‘진짜 예수’를 찾다 다니게 된 향린교회에서도 많은 위안을 받았는데 회사 다니면서도 수요예배까지 열성적으로 참여하기도 했어요. 뭔가 충만해지는 느낌이었던 거죠.

“내가 할 수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게 마음 둘 데가 생겼다면 그냥 남들처럼 살 수도 있었을 텐데요. 대개는 그렇잖아요?

예수전 강의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는데, 그때 제 심리적인 하한선이 ‘집’이었어요. 10년 넘게 자취를 하면서 집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지요. 집을 사면 거기에 묶여버린다는 우려도 있엇지만 집이 없으면 더 불안해지겠다 싶었던 거죠. 아내와 사귀게 된 지 얼마 안 돼 아내가 건강이 안 좋아졌어요. 아이도 생기면서 아무래도 집을 장만해야겠다 싶었지요. 그리고 어차피 그럴 바에는 빨리 끝내자는 목표가 생기더라구요. 그걸 빨리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그게 ‘제조업의 전장터’라는 현지 해외 영업팀 근무였어요. 두바이에서, 매일 매출에 대한 압박을 받으면서 사생활이 없어지고, 회사가 내 생활을 구성하는 일부분이 아니라 압도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알게 모르게 야비한 협박을 받는 생활을 2년 했어요. 그러다 보면 자아 분열이 오지요. 내가 바뀌든가 내가 바뀌지 못하면 가족들한테도 영향이 가고, 이걸 더 진행하면 나한테도 가족한테도 안 좋겠다, 그런 임계점까지 간 건데요. 그 와중에 둘째아이를 사산하는 참담한 경험을 하면서, ‘이게 뭘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 거죠. 아이가 둘이 되면 이런 삶에서 발을 빼긴 어렵겠다고 생각하던 시점이었는데, 이건 ‘뭔가 생각을 해보라’는 얘기겠구나 그렇다면 내가 한번 생각을 해보마, 그렇게 귀국을 하게 된 거지요.

신문 기사에 보니 “이직을 한 건 통큰 ‘결단’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가족·지인들과 소통하고 준비해 오면서 결단의 ‘문턱’이 점점 낮아진 것”이라는 설명이 있던데, 이해가 좀 가네요. 귀국하고 나서도 좀 시간이 걸렸지요?

전혀 준비되지 않은 귀국이었어요. 임기를 마치고 오는 게 아니라 좀 복잡한 문제가 있었고, 아내 건강도 안 좋았고, 당장 거처도 없었고, 6개월을 동가식서가숙하면서 이런저런 계산을 해 봤어요. 집을 다시 팔고 이렇게저렇게 맞추면 최소한의 경제적 하한선은 유지하겠다는 식의 계산을 했는데, 이번엔 또 집이 잘 안 팔리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이건 집이 팔리고 안 팔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결정적인 고민의 순간을 경제적인 이유랍시고 계산을 하면서 회피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차피 못 넘어갈 조건으로 하한선을 맞춰놓고 계산을 하고 있었던 거죠. 그건 고민의 선후가 뒤바뀐 거죠.

맞아요. 도달할 수 없는 조건을 내세워 ‘이 문제만 해결되면 이렇게 하겠다’는 건 실은 그렇게 안 하겠다는 거죠. 그런데 경제적 하한선의 문제는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렇죠. 가족이 있으면 하한선을 맞추는 문제가 쉽지는 않아요. 그런데 그게 아내에게 고민의 공을 던지는 게 돼버리더라고요. 제가 제 삶의 결정 주체가 돼야 하고 그에 따라 가족에게 협조와 이해를 구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민주적’인 태도랍시고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가능하겠냐”고 계속 묻고만 있는 거죠.

민주적인 게 아니라 실은 무책임한 거죠.(웃음)

아내가 아침에 직장에 나갈 때 즐겁지 않은 모습으로 나가는 걸 더는 못 보겠다고, “한번 해 보자 죽기야 하겠냐.”고 해서, 더 계산하지 않고 그냥 저질렀어요. 오래 전부터 교육에 대한 고민들도 정리하고 대안적인 사례들도 모으고 하는 교육운동을 해 보자는 제안은 받아놓고 있었는데, 그렇게 계산만 하면서 미뤄왔던 거예요. 경제적인 계산을 하지 않으면 그만큼 궁리를 하게 돼요. 그때부터가 진짜 삶이죠. 돈이 많으면 따로 궁리할 필요가 없죠. 고민이 없어지면서 길들여지는 거죠. 아이 교육도 돈으로 때우고 친구를 만나도 서로 바쁘니까 술 진탕 먹고 헤어지는 게 다잖아요. 우정이라는 게 살면서 아주 중요한 가치인데 20대에는 많은 걸 나누지만 나이가 들면 관계의 맺음이 얇아지죠. 그런 아주 익숙하고 편하던 방식들을 걷어내고 나면 날것들이 보이게 되죠. 그제서야 우리 관계가 뭐냐, 뭘 해주는 게 좋은 거냐 하는 근본적인 궁리를 하게 되죠. 이직하고 나서 두 달 정도 책도 보고 시간을 좀 넉넉하게 보내고 있는데 직장생활 10년이라는 시간이 나를 참 멀리도 데려왔구나 싶어요. 돌아와야 할 지점도 찾아야 하고 개인적인 과제들을 극복하는 것과 이 연구소에서 해야 할 일과도 맞물려 있으니 행복한 경우라고 해야 하나요.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이것저것 궁리하다 보니 그동안 신경을 못 썼던 부분들도 보이고요. 도대체 사는 게 뭔데 친구도 가족도 중요한 건 다 얇아져 있다면 뭐 하러 사는 걸까. 우리가 뭘 하든 결국 그걸 하려고 하는 건데 말이죠. 그런 점에서 좋아진 거죠. 관계가 힘을 주는. 관계로부터 힘을 받는 시발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가 몇 살이죠? 아이가 커가면서 여기에서 하시게 될 일이 더 의미가 커질 것 같은데요.

이제 네 살이에요. 제가 한편으로 가지는 장점이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겪었던 과정은,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보편적인 욕망의 고리들을 겪어온 거 아닐까,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으면 누구든 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이 있어요. 내가 회사에서 나올 수 있었던 조건이라면 누구도 그럴 수 있을 거다. 아이를 다르게 키우는 것도 내가 가능하다면 누구나 가능할 거다. 그런 생각이예요. 가령 김규항 선생 같은 분이야, ‘워낙 잘난 인간이니까’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요.

그런데 거기에도 딜레마는 있는 것 같아요. 남다른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특별하게 보이잖아요. 기회가 공평하지 않은 세상이니까요. 그게 과연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요?

실은 저도 그런 시각이 불편하긴 해요. 다르게 산다는 게 우월한 선택일 수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위화감이 생길 수 있죠. 하지만 그 고민의 과정이나 지점들 자체는 대부분 비슷하기 때문에 저의 경우를 가능한 소상하게 나누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제 정신으론 쑥스러워 못할 짓이지만 비슷한 고민들이 있는 사람들에게 행여 힘이 된다면 못할 건 없다는 생각이죠. 그래서 이 인터뷰도 용기내어 하는 것이고요. ‘다르게 살아가기’라는 건, ‘다르게’와 ‘살아가기’라는 두 가지 전혀 다른 세계의 조합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다르게’는 가치의 문제이고 따라서 개인의 선택의 문제지만, ‘살아가기’는 노력과 역량의 문제이고 세상을 통해 엄중한 결과가 현실로 토해지는 객관의 문제니까요. 저는 이제 우여곡절 끝에 전자에만 겨우 다다른 셈이죠. 돈을 위해 사는 사람들도 밤낮 안 가리고 노력하는데, 돈보다 더 귀한 걸 위해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그들보다 더 노력해야 ‘살아가기’가 가능할 거라고 봐요. 그렇게 사는게 사람답게 사는 거고, 그런 믿음을 현실화해 내려는 진심과 노력이 내게 진정한 즐거움과 능력의 배가를 선물해 줄 거라는 생각으로 생활하려 합니다. 그렇게 제가 아이를 키우거나 살아가는 모습이 비슷한 문제를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하나의 자극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불안은 그대로 두면 점점 커진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계시는지요?

매월 교육 문제에 대해 논평 같은 것을 정기적으로 내놓으려 하고 있고요. 장기적으로는, 아이들 진로 문제에 대해서 다른 생각들을 가진 부모들은 있는데 막상 사례가 부족한 것 같아요. 공유할 수 있는 사레들을 놓고 상담도 진행하고요. 무슨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하는 상담이라기보다는 서로의 경험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고래동무(<<고래가그랬어>>를 공부방에 보내주는 후원자)가 지금 2천 명쯤인데, 그 정도면 함께 해볼 수 있는 게 많을 거 같아요. 사실 100명만 모여도 고민과 경험의 사례들은 무궁무진하잖아요. 그걸 부추기고 자극하는 자체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되게 하고, 그 안에서 서로의 경험과 고민을 오가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겠지요.

좀 짓궂은 질문일지도 모르겟는데, <고래가그랬어>도 재정적으로 힘들어질 수 있잖아요. 경제적으로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가를 떠나서, 최소한의 생존조건을 확보하려다 보면 또 ‘도대체 왜 사는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을 만큼 일에 매몰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뜻한 바 있어’ 출판게에 들어온 사람들 대다수가 그런 이유 때문에 일에 치여서 중요한 걸 잊고 살기도 하고요. 또는 활동가 중에서도 삶이 피폐해진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상황에 마주친다면 어떻게 대처하실 건가요?

삶이 힘들어지는 건 어떤 불안한 상황 때문이 아닌 거 같아요. 실은 그런 불안 때문에 관계가 틀어지고 온갖 것들이 엉망이 되니까 힘들어지는 거죠. 그럴 때일수록 정말 중요한 게 뭔지를 살펴 그 하나하나가 제자리에 굳건해야 편안해지는 거죠.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그게 없으면 삶이 건강하게 유지되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서 공부도 하고, 자기 내면을 살피는 내적 수련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지탱할 수 있는 수준을 더 단단하게 하는 거죠. 이를테면 30평짜리 집에 못 사는 게 불안한 사람도 있겠죠. 그런데 다른 시각에서 보면 별 게 아닐 수도 있거든요. 그렇게 내성을 키우면서 외부적 조건들이 내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을 가능한 낮추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우리는 24시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관계에 노출돼 있고 그걸 거부하는 건 불가능하죠. 그렇기 때문에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욕망은 그대로 있는 게 아니라 점점 더 커지게 마련이죠. 그래서 내적으로 더 굳건해 져야하고, 또 혼자서는 미약하니까 서로 뜻이 맞는 사람들을 찾아 연대하면서 함께 극복해 내야겠지요. 만약 그래도 힘들면, 가차없이 관둬야지요. 지난 10년 간 행복하지 않는 일을 참아가며 한 것으로 충분하니, 그런 짓은 그만 해야지요.

출판계 안에도 그렇게 서로를 지지해주는 네트워크가 좀 있었으면 좋겟는데, 이런저런 모임은 많지만 욕망을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서로의 욕망을 확인하는 가운데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면서 안도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요. 정작 ‘왜 사는가’ 같은 진지한 질문은 피곤해한다고 해야 하나요. 그게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막상 일상의 자잘한 욕망을 포기하기가 쉬운 일은 아닌데요.

자신에게 의미있는 가치를 좇아서 남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누구나 불안한 지점이 있거든요. 하지만 그런 불안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온 거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얻은 것은 안 보고, 자꾸 불안만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점점 더 불안해지죠. 그걸 그대로 놔두니까 더 커지는 거죠. 적극적으로 억제해야 해요. 껍데기뿐인 일상을 유지하는 게 아닌 진짜 삶의 맛을 한번 보면, 사실 그게 더 편하다는 걸 알게 되고 그걸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인류는 45억년 을 그렇게 살아왔고 저는 그런 유전자가 우리에게 있다고 믿어요. 지금처럼 산 건 불과 몇 십 년이잖아요. 그런 다른 삶의 즐거움이나 활력을 적극적으로 느끼려고 하고, 또 그걸 활용해서 불안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럴 수 있고요.

지금의 자신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을 소개해 주세요.

예전엔 <현대성과 자아정체성>(앤서니 기든스)을 꼽곤 했어요. 저를 잘 설명해주는 책이라서 큰 위안이 됐거든요. <연대와 열광>(김종엽)도 사회의 힘이랄까 역사의 힘을 일깨워준 책이고요. 지금은 좀 달라졌는데, 아무래도 <예수전>(김규항)을 빼놓을 수는 없겠죠.

최근에 읽으신 책은 어떤 책인가요?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데이비드 그레이버)를 재미있게 읽었어요. 자본주의가 아닌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를 고민하는 데 많은 영감을 주는 책이죠. 제가 생각하기에, 사회주의가 무슨 거창한 이념이라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인 삶의 꼴이나 사람의 도리 같은 걸 되짚어볼 때 그게 모이면 사회주의가 되는 것 같아요. 뭘 하든지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나는 뭘 하고 싶은가, 나는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어떤 것들이 이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가 그런 본질적인 질문을 하는 태도가 아니면 도달하기가 어려운 거죠. 이런 질문을 자꾸 회피하면 결국 그게 다시 더 무거운 짐으로 돌아오는 것 같아요.

오랜 시간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지난 몇 년간 줄곧, 날로 황폐해져가는 출판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역설하긴 했지만, 다른 한편 정작 함께 모여 고민하려는 사람이 없다고 무기력해지곤 했다. 이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소중한 힌트를 얻었다. ‘책 잘 만드는 방법’을 공부하는 모임, ‘성공을 향한 욕망’에 대한 반성 없이 성공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고민을 나누는 모임 따위로는 황폐하고 무기력한 일상을 채울 수 없다. 계산을 멈출 때 궁리가 시작된다. ‘내가 왜 책을 만드는지’, (‘어떤 책을 만들면’이 아니라) ‘어떻게 책을 만들 때 내가 행복한지’ 같은 대화를 통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잊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얻어가는 그런 모임이 필요하다. 함께 하고 싶은 사람 여기 붙어라~!

발표지면 기획회의, 201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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