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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론] 천박한 대중사회와 폐쇄적인 상아탑 사이에서 - 고종석 에세이스트
작성자 똥개

연전에 나는 <말만 보면 말도 못 본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글은 <이오덕의 ‘우리글 쥐어짜기’는 정당한가>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한국어에 대한 과학적 천착이 결여된 다분히 국수주의적인 접근이 무시하지 못할 대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데 대한 문제 제기였다. 이 글에서 나는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소위 ‘재야 국어학자’들이 매우 흥미롭게도 ‘과학으로서의 언어학’에는 문외한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은 주석을 붙인 일이 있다.

“이 점은 언어학자들이 깊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연구 과정에서 인접 사회과학과의 유기적 연관에도 천착하지 못했으며(최근 유행이다시피 한 ‘담론’ 이론의 수용 과정에서 언어학자들의 이름을 불 수가 없다), 교육 등 연구 성과의 대중화에도 초연(?)한 태도로 일관했다(소위 ‘학교 문법’은 이러저러한 이론들을 정치적(?)으로 절충한 앞뒤도 제대로 안 맞는 짜깁기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얘기다. 만일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엉터리 건강 정보가 아무런 의심없이 대중들 사이에 횡행하고 있다면, 그건 거기에 대해 ‘냉소’와 ‘경원’의 태도를 가지고 침묵하는 의사들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매우 불행한 일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국어’를 초등학교 1학년부터 대학 교양과목까지 한 해도 빼놓지 않고 배우면서도, 단 한 번도 한국어를 과학의 대상으로 바라보도록 교육받지 못했다. 심지어 더욱 불행한 일은, 한국어를 과학의 대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조차도 매우 불경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져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만큼 대중사회의 한국어에 대한 인식과 전문 연구자들의 학술적 접근 사이의 간극은 점점 더 넓어졌고, 따라서 다시금 그러한 불행이 더욱더 심화되는 악순환이 계속되어 왔다.

‘재야’의 우국지사들은 ‘상아탑’의 학자들을 대신하여 대중들에게 모국어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호소함으로써 그들의 편협하고 자의적인 언어규범의 권위를 확보했으며, 이러한 권위에 기반하여 그 규범에 대한 최소한의 과학적인 문제 제기조차도 모국어에 대한 애정이 결여된 ‘먹물들의 현학’으로 매도되었다. 예컨대 국어 교과서의 존대법에 대한 서술은, 이미 더이상 ‘실재’하는 한국어에 대한 과학적 기술이 아니라, ‘관념’ 속의 규범만을 기술한 윤리 교과서가 되어 버렸지만, 어느 누구 하나 적어도 대중적으로는 ‘그것은 한국어가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니 그것은 아끼고 사랑하고 지켜나가야 할 모국어에 대한 불경(!)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고종석을 만나야 할 첫번째 지점이다. 그의 한국어에 대한 ‘에세이’는 모국어에 대한 애정으로 충만하면서도, 그것을 관념 속의 규범에 당위적으로 가두어두지 않는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매우 드물게도, 언어학을 전공한 소설가이다. 소설가로서 그는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제시하고 구현하려고 노력하지만, 언어학자로서의 그는 그가 한국어의 구석구석에서 발견해낸 이 아름다움을 뜬금없는 애국적 수사로 예찬하는 대신, 냉정한 과학자의 시선으로 재구성한다.

그는 그렇게 경계에 서 있다. 한쪽에선 그의 과학자로서의 유연하고 냉정한 시선을 못마땅해 하며, ‘사대주의자’쯤으로 터무니없이 몰아대는 반지성적 작태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과학자들이 그의 든든한 뒷배경이 되어주지도 않는다. ‘학술논문’이 아닌 ‘에세이’는 ‘상아탑’의 고상하신 학자들에게는 그다지 주목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일까. 대중을 상대로 한 ‘잡문’을 써서 호구로 삼는 일이 학자답지 못한 일이어서일까. 소위 ‘학계’로부터는 일단의 우국지사들과 마찬가지로 백안시되고 있는 것이 어김없는 현실이다.(그는 그의 ‘에세이’ 곳곳에서 이런저런 학자들의 학설을 소개하고 인용하고 있지만, 그 반대로 그의 ‘에세이’를 인용하는 ‘학술논문’이 과연 가능할까.) 실은 그들이 진즉 했어야 할 작업을 이제서야 그가 시작했을 뿐인데 말이다.

사실 고종석은 그가 서 있는 경계의 양쪽 모두에 대해 공격적이다. 그를 ‘사대주의자’쯤으로 매도하는 ‘애국주의자’들의 관념적이고 당위적인 한국어가 그의 공격 대상이 되는 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그 반대편, ‘상아탑’의 폐쇄성 또한 그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학자’가 한사코 대중사회를 외면하게 되면, ‘학술논문’은 점점 더 그들만의 ‘은어’가 되어 버린다. 비유컨대, 돌파리 의사들이 시장바닥을 주름잡는 걸 눈감아주는 대가로, 의사 집단은 그들의 전문지식을 천박한 대중들이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 감춰두면서 폐쇄적으로 권력화했던 것이다! 고종석에게는 ‘우군’이 없다.

이곳이 우리가 고종석을 만나야 할 두번째 지점이다. 그는 단지 ‘한국어’를 둘러싼 어처구니없는 ‘통념’과의 싸움을 외롭게 벌이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는 한 사회에서 지식인이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매우 곤혹스러운 질문을 오래도록 ‘상아탑’에 안주해 온 학자들에게도 또한 외롭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 질문에 누가, 또한 어떻게, 그리고 언제쯤, 화답하고 나서 줄 것인지 나는 대학 4년 동안 한국어를 공부했던 국어학도로서 지켜보고 싶다.

내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나는 오래 전에 한동안 터무니없는 오해를 한 적이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 노엄 촘스키를 나는 매우 반동적인 지식인으로 오해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 촘스키의 이론을 직수입했던 촘스키의 제자들은, 심지어 80년대에조차도 ‘비판적 지식인’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나는 촘스키의 때로는 급진적이기까지 한 사회의식과 그의 언어 이론 사이에 꼭 필연적인 연관성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의식은 쏙 빼놓고 이론만을 선별수입(?)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를 두고 비아냥거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게 하나의 시사점을 던졌던 것만큼은 꼭 두고두고 곱씹고 싶다. 나는 왜 터무니없는 오해를 했던가. 사회의식이 사상되고 사회와의 교호를 잃어버린, 그런 이론은 전문가 집단의 한낱 ‘은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고종석은 사회와의 정치적 긴장을 놓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몇 안 되는 언어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자유주의’라는 입장에 서서, 한국 사회의 구석구석에 잔존한 전근대적 권위주의와 연고주의와 싸우고 있다. 그는 ‘자유주의자’ 강준만과 연대하고, 진중권, 김규항 등 ‘아웃사이더’를 표방하는 일단의 ‘좌파’ 지식인들과 연대한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극우가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자유주의’의 입지는 매우 협소하다. 그는 언어학이라는 자신의 전문 지식으로써 ‘한국어’를 극우 헤게모니에 장악된 ‘애국주의’의 선동으로부터 구출하려는 노력의 한 편으로, 진즉에 타파했어야 할 권위주의와 연고주의의 견고한 성을 쌓고 있는 ‘상아탑’을 무너뜨리려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

고종석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가슴죄며 보고 있노라면, 두 가지 꿈쯤은 가질 수 있게 된다. 고종석의 <국어의 풍경들>이 보여주는 한국어에 대한 최소한의 과학적 접근이 대중들에게 상식이 자리잡게 되어 더이상 ‘애국주의’의 천박한 선동에 휩쓸리지 않게 되는 그런 세상을 나는 꿈꾼다. 중고등학생들에게 읽혀도 좋을 만큼 쉽고 아기자기한 그의 에세이들이 교양 도서 목록에 빠지지 않는 그런 세상을 말이다. 그리고 또 나는 꿈꾼다. 이 책이 언어학자들에게도 그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는, 학술적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논문에 인용되기도 하는, 그런 학문 풍토를 꿈꾼다. 더이상 ‘학술논문’과 ‘잡문’을 미리부터 재단해 구별하지 않으며, 학자의 대중사회에서의 작업을 ‘외도’로 간주하여 백안시하지 않는, 그렇게 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열려 있는 ‘상아탑’을 꿈꾼다. 이 꿈은, 고종석이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숙제이기도 하다.

발표지면 연세대 대학원신문, 1999.11.
단행본수록 만장일치는 무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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