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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론] 우리는 모두 엄기호다
작성자 똥개

무척 낭패스러웠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따비)를 읽는 동안 내내 가슴이 먹먹해지는 통에, 도무지 ‘비평적 거리’가 확보되지 않았다. 차라리 ‘서평’이라면 그저 이 생생한 느낌이라도 오롯이 펼쳐놓으련만 내가 써야 할 글은 이 책에 대한 서평이 아니라 이 저자에 대한 ‘저자론’이다. 아무리 ‘프로답게’ 마음을 다잡으며 온통 텍스트에 압도된 시선을 저자에게 돌리려 애를 써봐도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더 책이 던지고 있는 문제의 무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 책을 평한다는 건 참으로 한가한 일이다.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모니터 앞에서 어줍잖은 평을 늘어놓고 앉아 있을 겨를이 없다.  엉킨 실타래처럼 내 머릿속을 어지럽힌 건, ‘이 책을 어떤 각도에서 평해야 할까’조차도 아닌 ‘이 책이 내게 준 자극을 어떻게 내 삶에서 실천해야 할까’쯤에 해당하는 궁리들이었다. 하물며 저자는 이미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여기엔 좀 장황한 부연이 필요하다. 나는 교사도 학생도 아닐뿐더러 현실적으로만이 아니라 잠재적으로도 학부모가 될 가능성도 없다. 그런데도 교육 현장의 문제를 다루는 이 책의 내용에 ‘비평적 거리’가 생겨나지 않을 만큼이나 깊이 빠져들었다. 이유는 차라리 단순하다. 이 시대의 교육 문제는 단순히 교사 학생 학부모 같은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을 일깨우는 것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기 때문이다. 다시 덧붙이자면 그것은 내가 오지랖넓게도 내 일상과 직접 맞닿지 않는 국가와 사회의 미래 따위를 걱정해서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거꾸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생생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학교의 속살’들은 그저 학교라는 제한된 공간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가령 “지금 모두가 소진되어버린 이 사회에서 낯선 것/새로운 것을 만나는 것은 피곤한 일이기만 하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자는 말만큼 짜증나는 말이 없다. 피곤이 설렘을, 짜증이 경이로움을 대체했다.”라는 저자의 진단은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 구석구석으로 파고든다. 누군들 이것이 자신이 속한 삶의 현장과는 거리가 먼 풍경이라고 자신있게 항변할 수 있을까. 내 삶의 현장인 출판동네에서도 이것은 어김없는 진실이다. “이들은 학교에서의 교육이 점점 어려워질수록 동료 교사들과 만나 상처와 고통을 공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주변의 동료 교사들과는 나눌 이야기가 없다며 학교 안에서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라는 지적에서 ‘교육’을 ‘출판’으로 ‘교사’를 ‘편집자’로 고쳐 읽어보면, 출판계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말이 된다.

요컨대 이 책에서 망가진 학교의 참상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고 큰일이라도 난 듯 호들갑을 떠는 건 책을 수박 겉핥기로 읽은 것이다. 실은 망가진 건 학교와 교육이 아니다. 학교는 그저 망가진 사회를 압축적으로 재연하고 있을 뿐이고, 교육의 사회적 기능을 염두에 두자면 망가진 사회를 재생산해내고 있는 것뿐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국민의 수준에 걸맞는 정부를 가질 뿐’이라는 정치 영역의 오래된 경구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학교가 정말 문제다’로 단순무식하게 요약되지 않았다. 대신 ‘사회의 수준에 걸맞는 학교를 가질 뿐’이라 말하는 게 정직했고, 교사도 학생도 학부모도 아닌 나는 그러나 한 사람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그 무거운 책임을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이 책은 풍부한 사례를 통해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차마 인정하지 못하는’ 현실의 내밀한 속살을 민낯으로 드러냄으로써 누구도 더는 부인할 수 없는 ‘진단’으로 힘있게 이끌어주기는 하지만, 그뿐이다. 어설프게라도 ‘처방’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혹시라도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그러니 어쩌라고……” 싶은 공허함만 남겨진다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웬걸, 오히려 그 반대다. 나만 그렇게 무기력한 게 아니라 실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다들 그렇다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나의 답답함과 또다른 답답함들 사이에 ‘말’의 다리를 놓을 것인가. 끝내 공허해지지 않을 ‘처방’은 책에 기대할 것이 아니라 내 삶 속에서 스스로 찾아내야 할 내 몫의 과제인 게다. 이를테면 이 책에 담긴 교육 현장에 대한 저자의 작업을 출판동네에서도 응용해서 ‘편집자도 책이 두렵다’쯤으로 엮어낼 수는 없을지, 그러자면 우선 이 책을 함께 읽어보자는 모임부터 조직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등등으로 마구 뻗쳐나가는 궁리들로 머릿속이 미어터지니 공허함이 들어설 여지란 도대체 없다.(이 지경이니 ‘비평적 거리’가 생기지 않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닫는다. 바로 이 점에서 엄기호는 사회 문제를 다루는 숱한 다른 저자들과는 사뭇 다른 방식의 글쓰기를 하고 있고, 그것이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 저자의 힘이라는 것을. 버젓한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저자에게 혹 결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글쓰기는 (치밀한 논증과 사변으로 결론을 향해 치달려 나가는) 전형적인 ‘연구자’의 글쓰기와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또는 1990년대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성장한 내 또래들에게 충분히 익숙한 (날선 자의식이 번뜩이는) ‘비평가’의 글쓰기와도 꽤나 다르다. 굳이 말하자면 ‘활동가’의 글쓰기라 칭할 만하다. 그는 소통이 사라진 삶의 현장에 ‘말’의 다리를 놓는 ‘매개자’다. 그의 책 안에 담긴 ‘말’들은 그의 머릿속에서 빚어낸 논변이나 자의식의 소산이 아니다. 그것은 대개는 혼잣말로 또는 기껏해야 술자리 푸념으로 휘발되는 게 고작이었던, 현실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타인의 말’들이다. 글쓰기의 과정은 당연히 ‘대화’일 수밖에 없다. 다분히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자료와의 대화’도 ‘자신과의 대화’도 아닌, 말뜻 그대로의 ‘살아 숨쉬는 사람과의 대화’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 책만의 독특한 성격이 아니다. 그 원형은 이미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푸른숲)에서부터 틀잡혀 있던 것이다.

그런즉 우리가 그의 책 속에서 저자의 체취를 좇는 것은 어마어마한 오독이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 끝에 눈을 두는 꼴이다. 내게 진지하게 말을 건네는 사람이 있다면, 우선은 진지하게 대꾸부터 마련하는 게 올바른 순서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글이 어떻다 저떻다 평을 늘어놓을 일이 아니라, 내가 발딛고 있는 현장의 ‘말’들로써 화답할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의 책은 비로소 완성된다. 요컨대 ‘활동가’의 글쓰기는 관습적인 ‘독자’의 자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독자에게 그저 그의 책을 ‘읽으라’고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가 그의 책을 통해 초대하는 말의 잔치에 어떤 방식으로든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 오해 없기를 바라지만, 무슨 대단한 정치적․사회적 실천에 나서라고 선동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개별화되고 파편화된 각자의 경험들을 나누자는 것이다.

얼마 전, 어느 편집자와 나눈 대화의 한 토막. “모여서 뭘 하(고 놀)자고 하면 편집자들이 재밌겠다고 모여들까요.” “뭘 하자고 하면 당연히 안 모이죠. 다들 바쁘고 힘든데.” “그렇다고 그냥 아무것도 하자고 안 할 테니 모이자고 해도, 그럴 거면 굳이 왜 시간을 내야 하느냐고 안 모일 텐데요.” 이를테면 이런 종류의 딜레마에 차마 맞설 수 없다면, 감히 엄기호를 읽었다고, 심지어 공감한다거나 동의한다고, 또는 주목할 만한 저자라고, 입에 발린 찬사를 늘어놓지 말 일이다. ‘학교가 두려운 교사’들이 모두 엄기호가 되지 않는다면, 엄기호는 없다. 모든 교사는 ‘매개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편집자라고 과연 다를까.

그래서 제안한다. ‘저자론’에 할애된 지면에는 확실히 어울리지 않는 생뚱맞은 마무리지만, 나는 이 제안을 통해 내가 이 ‘실천적인’ 저자를 이해하는 방식을 ‘실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최고의 경의를 표현하려는 것뿐이다. 이 책을 읽고 무언가 가슴 속에 뭉클 솟구친 분들, 여기 붙어라~!

발표지면 기획회의, 201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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