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가입에는 이메일 주소 외에 어떤 신상 정보도 필요하지 앟습니다.
똥개네집 통합검색
편집자 광장
책마을 소식
진로 상담
출판실무 Q&A
예비편집자 공부방
강의실
참고자료
비평적 산문
출판칼럼
매체 비평
인물론 & 인터뷰
사적 진술
주목을 바라는 글
저작목록
똥개와 수다떨기
일상 속 단상
퍼온글 모음
노출광의 일기
똥개를 소개합니다
똥개의 즐겨찾기

  비평적 산문  Critical essay
사회문화 비평 성격의 산문을 올려두겠습니다.
이 게시판의 게시물은 인터넷을 이용하여 자유롭게 배포할 수 있으나, 반드시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
단, 영리/비영리 목적을 막론하고 고형물(인쇄물, CD 등)의 형태로 복제하여 배포하려면 운영자의 사전 승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시면 댓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가부장제와 인권은 양립 불가능하다 - 범죄와 남성성
작성자 똥개

논의를 간명하게 하기 위해 범위를 좀 좁혀 보자. 형법학에서 말하는 범죄에는 세 가지 범주가 있다. ‘국가적 법익에 관한 죄’, ‘사회적 법익에 관한 죄’, ‘개인적 법익에 관한 죄’로 나눈다. 이 글에서는 앞의 두 범주는 일단 논외로 한다. 설령 그 범주에 속하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 가운데 여성보다 남성이 압도적으로 더 많다고 하더라도 그 범죄의 성격이 ‘남성적’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성의 사회 활동의 범위가 협소하여 ‘범죄에 참여할 기회’(?)조차도 제한되어 왔다고 보는 편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 그러나 ‘개인적 법익에 관한 죄’는 좀 다르게 볼 여지가 있다.

‘개인적 법익에 관한 죄’를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게 된다. 다른 사람의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법익)을 정당한 이유 없이 침해할 경우의 범죄이다. 여기에는 생명, 신체, 재산, 명예, 사생활 등이 포함된다. 한 개인이 이러한 기본적 권리를 배타적으로 향유할 수 있으며, 이를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문명사회에서는 이제 상식에 속하며 우리 헌법도 국민의 기본권으로 이를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에 대하여 ‘범죄’로 규정하여 국가형벌권이 개입하는 것은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타인의 신체, 재산, 명예, 사생활 등에 관한 권리를 ‘일상적’으로 침해하는 데도 범죄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보자. 갑이 을에게 신체적인 위해를 가했다. ‘폭행’죄가 성립한다.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의 신체적 손상을 입혔다면 ‘상해’죄가 된다. 말을 듣지 않으면 폭행하겠다고 겁을 주었다면 ‘협박’죄가 되고, 욕설을 하면 ‘모욕’죄가 되며, 특정한 장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면 ‘감금’죄가 된다. 그런데 갑이 을의 아버지(남편)이다. 그럼 상황이 달라진다. 폭행은 ‘사랑의 매’(혹은 있을 수 있는 ‘손찌검’)로 둔갑하고, 협박과 모욕은 ‘훈육’(혹은 ‘칼로 물베기’의 부부싸움)이 되며, 감금은 ‘보호’가 된다. 가족은 ‘개인적 법익에 관한 죄’에 관한 한 ‘치외법권’ 지대이다. 물론 ‘상해’나 ‘살인’의 경우는 가족이라도 용납되지 않으며 또한 최근에는 ‘가정폭력 특별법’이 제정되어 국가형벌권이 개입을 강화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법감정은 그렇지 않다. 아버지(남편)는 자식(아내)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해도 된다는 전근대적 인식은 불식되지 않고 있다.

여성과 청소년도 국민으로서의 기본권을 가진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들의 지위가 아내이거나 자식일 때는 국민으로서의 기본권이 부인된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국민의 기본권은 국가안보,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이 경우에도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는 없다고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아무리 육법전서를 뒤져봐도 타인의 아내와 자식인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한 ‘법률’은 없다. 즉 명백한 불법행위를 그것도 일상적으로 범하고 있는 데도 ‘범죄’로서 처벌받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남편)가 법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는 특권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법적 강제를 받지 않는 특권은 언제든지 남용될 수 있다. 가족 내의 가부장의 특권을 인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백 걸음을 양보하여 그것을 현실로 인정한다 할지라도 이 아버지(남편)들이 가족 밖에서 똑같은 짓을 하지 말라는 보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는 속담을 상기하자.

예컨대 한 남성이 한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했다는 혐의를 받고서 제일 먼저 변명이랍시고 했다는 말이 ‘마누라인 줄 알았다’이다. 이게 변명이 될 수 있다는 건 뒤집어 말하면 ‘마누라’의 ‘성적 자기 결정권’은 침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사람을 폭행하고 나서도 ‘아들인 줄 알았다’고 말하면 변명이 될까. 실제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멱살잡이 주먹다짐을 하고는 ‘아들 같아서’라고 얼버무리고 성추행을 하고도 ‘딸 같아서’라고 웃고 넘어간다. 자기 아들이 다른 사람한테 두들겨맞아도, 또는 자기 딸이 다른 사람한테 성추행을 당해도 그렇게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양해할 수 있는지를 따져 물어볼 필요는 전혀 없겠다. 아버지라고 해서 자식이 당한 피해를 양해할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타인의 권리를 밥먹듯 침해하고도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는 사람에게서 (가족이 아닌) 타인의 권리에 대한 존중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개인적 법익에 관한 죄’의 본질은 가족 내의 특권이 가족 밖으로 확장 남용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여성이나 청소년이라고 해서 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상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해도 어디에다 하소연할 데도 없는 사람들에게 타인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생활의 기본 원리가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인권의식’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 인권이 보장될 때, 내 인권을 침해당하더라도 즉시 구제를 요구할 수 있을 때, 타인의 인권에 대한 존중도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부장제 가족이란 ‘범죄의 학습장’에 다름아니다. 가부장의 특권을 용인하는 가족제도의 전근대적 관습은 근대적 ‘인권의식’의 성장을 가로막으며 ‘인권 불감증’을 사회적으로 확대재생산하는 원천이다. ‘인권 불감증’은 범죄 행위에 대한 도덕적 저항력을 심각하게 약화시킨다. 반대로 나의 인권이 존중받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인권도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는 의식이 자연스럽게 체화된 사회에서라면 적어도 ‘개인적 법익에 관한 죄’의 상당 부분은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처벌에 대한 두려움’ 이전에, 내게 그 누구에게도 두들겨맞지 않을 권리가 있다면 또한 그 누구도 두들겨팰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닌가.

발표지면 세상을 바꾸는 여성(민주노동당 여성위 소식지), 2000.6.
단행본수록 만장일치는 무효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