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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어때서?
작성자 똥개

두 번의 등급 판정 보류라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드디어 영화 <거짓말>이 개봉되었다. 이제 보고 싶은 사람은 보고 보기 싫은 사람은 안 보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개봉하자마자 ‘음란물’로 고발당하는 수난이 기다리고 있다. 버젓이 성인용으로 등급이 매겨진 마당이니 ‘음란물 유통 차단’의 가장 강력한 근거로 거론되던 ‘청소년 보호’라는 명분은 분명 아니다. 이 영화를 마땅치 않게 보는 이들의 주장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이 영화가 분명히 음란물(포르노)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음란물이 공개적으로 유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전자의 주장에 대해서는 별반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개인의 가치기준의 문제이고 타인이 주제넘게 왈가왈부할 일이 못된다. 특정 표현물의 음란성 여부는 ‘수사’의 대상이 아닐 뿐더러 심지어 ‘논쟁’의 대상조차도 아니다. 그저 다른 가치관의 존재를 존중해주는 것으로 족하다. 그것만으로도 아무런 이해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분들이 자신과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대중들을 상대로 설령 다소 과격한 불매운동을 벌인다 해도 말릴 이유는 없다. 장선우 감독이 자신의 가치관을 대중 앞에 드러내 표현했듯이 그들에게도 ‘의사표현의 자유’는 있을 테니까.

그러나 후자의 주장에 대해서라면 나는 매우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물론 불특정 다수의 공중을 상대로 행해지는 음란 행위라면 차단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야말로 ‘선량한 풍속’을 해치고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음란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실제로 침해하기 때문이다(그런 의미에서 광고를 제한하는 것은 일말의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가치관과 기호에 따라 관람료를 지불하는 ‘선택’을 한 ‘성인’들에 한정하여 상영하는 것마저 금지하고, 심지어 그 여부를 ‘사법적 판단’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전혀 찾을 수 없다.

특정 표현물의 음란성 여부는 각자가 판단할 문제이지, ‘사회적으로 합의’할 문제도 아니며, 국가의 공권력이 개입할 문제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거짓말>을 목불인견의 음란물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절대 다수의 가치관이라 할지라도, 우리 사회에는 그와는 다른 판단이 존재할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예컨대 음란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판단도 그들의 판단과 똑같이 존중될 가치가 있으며, 설령 음란물이라 할지라도 오히려 ‘음란물’이기 때문에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명백하고 현존하는’위해가 되지 않는 한 그들이 ‘음란물’을 즐길 권리도 존중받아 마땅하다. 포괄적이고 잠재적인 위협을 이유로 그것을 제한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한 개인이 자신의 취향과 기호에 따라 음란물을 접촉하는 것이 그 자체만으로 국가안보나 공공복리나 질서유지와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제아무리 다수라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개개인의 가치관에 근거했을 뿐인 ‘선량한 풍속’이,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기 위해 성립한 ‘헌법적 합의’보다 우선한다는 것인가.

다양한 가치관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폐쇄적인 사회가 얼마나 야만적인가를 우리는 몸으로 겪어 왔다. 수많은 작가들이 검열에 시달렸고 침묵을 강요당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유포한 것이기는 하지만, 또한 예컨대 ‘전쟁체험’ 따위를 근거로 자발적으로 동조하기도 했던 ‘사회적 통념’과 조금이라도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단지 그 이유만으로 무시무시한 죄목의 범법자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 원초적 야만에 수많은 양심들이 또한 분노했고 저항했다. 그런데 음란성의 기준이 ‘사회적 통념’에 있다는 치졸한 논리는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를 압살하던 그 야만과 도대체 얼마나 다른가. 아니 다른 취향과 기호를 표현할 자유도 없는 사회에서 하물며 다른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자유를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권위주의 시대의 ‘일사불란한 총화단결’에 향수를 품는 시대착오적 인사들이 <거짓말>을 단죄하겠다고 덤벼드는 것은 차라리 당연해 보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앞정서 왔던 인사들조차도 어느샌가 자신이 저항했던 그들과 똑같은 표정과 말투로 ‘통념에 어긋나는’ 음란물을 추방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모습은 실망을 넘어 서글픔마저 느끼게 한다.

발표지면 문화일보, 2000.1.13.
단행본수록 만장일치는 무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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