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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적 산문  Critical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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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설거지’인가 ‘맹아’인가
작성자 똥개

10년 단위의 세대 구분이 적실한 것인지는 묻지 말기로 하자. 묘하게도 한국 현대사는 1950년의 전쟁, 1960~61년의 혁명과 반혁명, 1972년의 친위쿠데타, 1980년의 학살로 이어지며 10년 주기로 격변을 거듭했으니까. 그런데 1990년대? 차라리 이 역사적 사건들의 목록을 이어가자면, 1987년의 ‘또 한 번의 미완의 혁명’과 1997년의 그야말로 ‘50년만의 수평적 정권 교체’를 올려놓아야 마땅할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1987년의 힘으로 얻어낸 헌법이 대통령의 임기를 5년으로 규정하는 바람에, 두 명의 대통령을 거치는 동안, 또 훌쩍 10년의 세월이 한 바퀴 돌았다. 90년대라고 추상적으로 말하는 대신 1987년에서 1997년까지의 10년을 조망해 보는 건 어떨까.(물론 꼭 정치사적인 사건이 사회 전체를 규정하는 건 아닐 것이다. 허나, 그저 막연히 서력기원 년도의 10년 단위를 사용하는 것보다야 내용이 있지 않겠는가. 더구나 시민사회가 제 자리를 잡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정권의 향방이 사회를 규정하는 힘은 적어도 ‘정치학 교과서’에서보다는 크다면 말이다.)

주지하다시피, 이 시기는 사실상 ‘불법적’ 5공의 ‘합법적’ 연장이었고, 따라서 1980년대의 연장이었다. 5공 말기에나 있을 법하던 건대 사태의 악몽이, 심지어 ‘문민의 정부’에서도 꼭 10년만에 연세대에서 재연되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다. 아니 달라진 것이 있긴 하다. 1991년의 ‘마지막 불꽃’을 고비로 더이상 ‘야만에 대한 항의’가 ‘범국민적인 열기’로 승화되는 것이 적어도 당분간은 불가능해졌다는 처연한 사실. 이젠, 예컨대 자식을 어이없이 잃은 부모들이 여의도 한복판에서 1년 동안이나 천막을 쳐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다. 시민사회에서 ‘양심’과 ‘정의’는 실종되었다. 아니, 조금만 더 처연해지자. 실은 언제 우리 시민사회에서 ‘양심’과 ‘정의’가 합의된 적이 있었나? 유신과 5공이 지극히 비정상적인 정치체제라는 걸 전제한다면, 오히려 1970~80년대의 ‘저항’ 또한 아주 예외적인 ‘비상한’ 모습이었던 건 아닐까.

문화적으로 본다 해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의 벌거벗은 ‘야만’ 속에서 ‘문화’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면, 오히려 정작 1990년대의 현란한 ‘문예부흥’(?)이야말로 실은 단지 ‘지체’되었을 뿐인 가장 80년대적인 문화 행태는 아니었을까? 예컨대 90년대 벽두를 강타한 ‘신세대’ 담론. 그 ‘신세대’의 초상은 실은 1990년대를 맞이한 소위 386세대의 자화상이었다. 왜 X세대는 n세대로 대체되었는가. 아니 n세대의 특성으로 운위되는 내용들이 10년 전의 X세대와 무엇이 얼마나 다르기에?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면에선 붕어빵처럼 똑같은 내용이 되풀이되고 있지만, 달라졌다면 문화상품의 주 소구대상이다. 이미 X세대는 너무 늙어버렸다! 새로운 상품시장을 개척하려는 자본의 눈물겨운 말잔치, ‘차별화 전략’ 앞에서 X세대는 속절없이 사라져간다. 그것이 정말 그 이전의 소위 ‘386세대’와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신세대’였다면, 이런 황당한 코미디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물론 나는 ‘신세대’ 담론 전반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신세대’ 담론이 함의하고 있던 문제 제기는 n세대로 변형되어,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렇게 본다면, 소위 다가오는 ‘21세기의 주역’ n세대(이것도 결국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점은 부언해 두자. X세대처럼 속절없이 사라져갈지, 아니면 그야말로 그 이전 세대와도 구분되고, 그 이후와도 구분되는 독자적 정체성을 확보할지는 더 두고볼 일이다.)와 소위 ‘386세대’의 틈바구니에서 1990년대에 20대를 살아낸 청년세대의 문화적 정체성은 의미있는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조금 뒤쳐진 축은 심하게 말해 80년대의 ‘설거지’이고, 조금 앞서나간 축은 n세대의 ‘맹아’일 뿐이다.

이런 문화적 지형은, 서두에 제시한 정치사적 상황의 이중성과도 맞물린다. 정치사적으로만 본다면 그것은 5공 정권의 연장이었을 뿐이지만, 국민의 직접선거를 통해 집권했다는 점에서는 유신, 5공 독재와 확연히 구분되지 않는가. 거칠게 말해서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힘에 있어서 1987년의 ‘개헌’이 더 중요한 사건인지, 혹은 1997년의 ‘정권 교체’가 더 의미있는 사건인지는 아주 모호하다. 그러나 어느 시각에서 보든지, 이 시기에 독자적인 정체성을 부여하기는 힘들 것 같다. ‘정권 교체’에 더 의미를 부여하는 시각에서 보자면 5공의 ‘설거지’일 테고, ‘개헌’에 방점을 두는 시각에서라면 ‘국민의 정부’(혹은 그 뒤로 이어질 개혁 정권)의 ‘맹아’적 모습일 테니까. 특히나 만일 기득권 세력에 포위된 ‘반쪽짜리’ 정권에 불과한 DJ 정부의 개혁이 끝내 좌초하게 된다면, 이전 노태우, 김영삼 정부와의 차별성은 더욱 희미해질 수밖에 없으며, 새로운 개혁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의 기간을 한데 뭉뚱그려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짐작하겠지만, 실은 이것이 또한 앞서 얘기했듯 극히 불투명한 n세대의 앞날과도 적지않은 함수관계를 가질 것이다.)

또한 우연치 않게도, 1997년 말에 터진 외환 위기는 1인당 GNP를 1990년대 초의 수준으로 되돌려놓았다. 90년대는 그 자체가 실체 없는 거품이다. 우리는 어쩌면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또한 경제적으로도 1987년 6월 그 자리에 다시 서 있다. 그래서 한 문화평론가는 1990년대의 허리가 꺾어질 무렵,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90년대는 없다. 그것은 포스트 80년대이거나, 혹은 프리 21세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1990년대를 되돌아보는 것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역설적이지만, 오로지 하나의 과제를 남겨주고 있다는 면에서 아주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우리가 다음 시기, 21세기의 첫 10년간을 어떻게 맞이하고 또한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따라 1990년대에 대한 규정은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는 바로 그 점이다. 그리고 나는 바란다. 1990년대는 1980년대의 ‘야만’이 사탕발림으로 던져준 거품에 얹힌, 그 ‘야만’이 남긴 상처에 대한 ‘설거지’였을 뿐이라고 그렇게 기록될 수 있기를. 물론 이 기대가 현실화되는 최대의 관건 중 하나는, 우리가 얼마나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적어도 최소한의 ‘양심’과 ‘정의’를 시민사회 안에 확보할 수 있는가일 것이다.

발표지면 관악문화 창간호, 1999.12.
단행본수록 만장일치는 무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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