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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적 산문  Critical essay
사회문화 비평 성격의 산문을 올려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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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나쁜 엄마’들을 위한 변명
작성자 똥개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있고, 딱히 맞벌이가 아닌 전업 주부의 경우라 하더라도 아이 뒤치다꺼리에 24시간을 오롯이 매달리는 ‘전통적’인 어머니상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주부에게도 친구가 있고, 비록 ‘경제 활동’까지는 아닐지라도 ‘사회 생활’이 있을 것이며, ‘자아 실현’에 대한 욕망이 없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육아 시스템이 충분하지도 못한 터라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겨난다. 특히나 의외로 많은 엄마들이 아이에 대한 자신의 ‘게으름’ 혹은 ‘무신경’, 심지어 때때로 자기도 모르는 새 느끼게 되는 ‘짐스러움’에 대해 심한 자책감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실제로 이 엄마들은 그다지 게으르지도 않고 무신경하지도 않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아이에 대한 책임감을 과도하게(적어도 자기 자신조차도 쉽게 감당하지 못할 만큼) 부과하고 있는 탓에 생겨나는 ‘쓸데없는’ 자책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엄마가 조금만 더 부지런하게 신경을 쓴다면 피할 수도 있는(적어도 엄마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상처를 받기를 원하는 엄마가 어디에 있겠는가. 이 자칭 ‘나쁜 엄마’들은 그걸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엄마는 아이들의 ‘수호 천사’가 아니다. 천사의 몫은 천사에게! 그리고 엄마는 인간으로서 엄마의 몫을 하는 것으로 족하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듯이 엄마 노릇도 생긴 대로 능력이 닿는 대로 또 상황이 허락하는 대로 형편껏 능력껏 하면 되는 거지, 아무리 극한 상황에서도 엄마라면 누구나 당연히 ‘엄마’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개개인의 차이를 무시할 때 엄마는 사람에서 천사로 승천해 버린다.

거꾸로 생각해 보자. 만일 그 모든 ‘나쁜 엄마’들이 스스로 자책하지 않을 만큼 아이에 대해 ‘초인적인 헌신’을 한다면, 그래서 그 아이가 다치지도 병들지도 않고 아무런 상처 없이 성장할 수 있다면, 그건 그 아이에게 바람직한 것인가. 아이는 커서 언젠가 어른이 된다. 그리고 아이든 어른이든 상처는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치유된다. 설령 평생 치유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건 오롯이 그 자신의 몫이지, 적어도 엄마든 그 누구든 타인에게 전가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어른이 되면 어린 시절의 상처쯤은 스스로 딛고서야 하는 것이고, 그 과정을 가리켜 ‘인격적 성숙’이라고 하는 것일 게다. 따라서 이건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 이전에 인격을 가진 인간이기에 가지는 신성한 권리이다. 엄마라 할지라도 그러한 성숙의 기회를 박탈할 권리는 없다. 물론 나는 예컨대 아동 학대를 정당화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인격을 가진 사람이 인격을 가진 사람에 대하여 행사하는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나는 지금 오히려 ‘아동 학대’가 아니라 ‘엄마 학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엄마들 스스로에 의해 저질러지는 끔찍한 자학을. 그리고 그것이 결코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사소한 상처조차 받지 않도록 24시간 아이에게만 매달려 잠시도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는 ‘수호천사’의 역할을 뿌듯하게 해냈을 때 엄마는 스스로 만족할지 모른다. 그러나 엄마가 천사이기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꼭 그 만큼 엄마라는 한 인간의 삶은 남루해졌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로 인해 지상의 인간에서 천사로 승천해 버린 엄마의 남루한 삶에 대하여 정작 어른이 된 아이가 감당해야 할 마음의 짐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건 자신의 인격적 성숙으로 치유할 수 있는 그런 상처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만큼 잔인한 부담이다.

그리하여 전통적인 도덕은 이렇게 가르친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며, 자신이 엄마로부터 받은 만큼 자식들에게 갚는 것이라고. 아주 그럴듯한 해법이다. 그래서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 자식에게 볼모잡힌 남루한 엄마들이 세세년년 대를 이어가며 도처에서 자식들 가슴을 멍들게 할 것이다. 게다가 대를 물려가는 이 빚 갚음이 스스로 만족할 만큼 깔끔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숱한 ‘나쁜 엄마’들은 자책감으로 고통받을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도깨비 놀음인가. 수많은 엄마들의 ‘인간이기를 포기한’ 승천을 대가로, 그리고 그 승천의 대열에 끼지 못하는 숱한 ‘나쁜 엄마’들의 끔직한 자책을 볼모로, 그렇게 가부장제는 대를 이어가며 유구하게 유지되고 있다.

분명히 말하자. 인격을 가진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인간의 의지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숙명적 관계를 빙자하여 밑도 끝도 없는 ‘부채’를 대물림으로 전가해 가는 역사적 순환의 고리는 끊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나는 모든 ‘나쁜 엄마’들을 옹호한다. 적어도 그들은 자식에게 자신이 인간이기를 포기하면서까지 아이들에게 얼토당토않은 부채를 전가해 버리는 잔인한 짓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자해공갈’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폭력이다. 당신이 아무리 ‘위대한’ 어머니일지라도 당신의 아이에게 그런 폭력을 행사할 권리는 없다. 그리고 기실 아무도 누구에게도 빚 따위는 없다. 그건 저들의 아주 오래된, 음험한 음모에 지나지 않는다.

발표지면 (넷) 1997.
단행본수록 그들만의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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