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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각의 자유를 위하여
작성자 똥개

매달 15일이면 오후의 정적을 깨뜨리며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곤 한다. 이 해묵은 집단 히스테리에 대해 새삼스럽게 욕설을 늘어놓아 봤자 뻔한 얘기의 되풀이일 터이니 생략하자. 그러나 이 사이렌 소리가 집단 환각을 야기한다는 것은, 이 미친 짓을 시행해온 자들조차 정직하게(혹은 이 경우는 ‘뻔뻔스럽게’라고 표현해야겠지만)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왈 ‘안보 경각심’이라니! 물론 오해하지 마시라. 환각은 그 자체로 나쁘지 않으며, 사람들은 때로 환각을 불가피하게 필요로 하기도 한다. 누가 무엇을 위해 그것을 조장하고 이용하느냐를 ‘비판’할 수 있을 뿐이다.

해마다 두 차례씩 되풀이되곤 하는 그 지긋지긋한 집단 히스테리의 경우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귀성 전쟁’의 기저에 깔려 있는 ‘가족’이라는 정서적 대상물이 집단 환각에 기인한 한낱 가상 현실일 뿐이라는 것은 명백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로부터 정서적 위안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다면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현존하고도 명백한’ 위해를 끼치지 않는 한, 그 환각 자체를 단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물론 이 공공연한 가상 현실 게임은 민방위 훈련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현존하고도 명백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점에 관해서라면 신랄한 비난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비판하고 있는 것은 환각에 도취된 자들의 가상 현실에 불과한 것을 가지고 ‘현실’을 구성해 버리고 마는 폭력성에 관해서이지, 환각의 힘을 빌어서라도 정서적 위안을 구하려 안간힘을 쓰는 약한 영혼들에 대해서가 아니다.)

엊그제 또 유명 연예인이 연루된 마약 사건 보도가 신문 사회면을 장식했다. 그런데 나는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이 자신의 골방에서 약물의 힘을 빌어 자신만의 환각을 즐긴 것과 당신들이 해마다 두 차례씩, 혹은 한 달에 한번씩 공공연하게 벌이고 있는 집단 환각의 잔치에 의존해 정서적 위안을 구하고 심지어 ‘안보 경각심’을 되새기는 것은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가. 아니 따지고 보면 굳이 차이가 없지도 않다. 그들의 환각은 그 자체로 아무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지만, 당신들의 환각은 실제로 폭력으로 현상하고 있다는 그 결정적 차이! 백 걸음을 양보해서 만일 환각이 ‘단죄’의 대상이라면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도대체 정작 단죄되어야 할 것은 누구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 보라. 약물에 의존하는 환각을 비난하는 당신은, 환각으로부터 손톱만큼의 도움도 받지 않고 당신의 삶을 버틸 만큼 강한 영혼인가.(혹 그렇다면 존경할 만한 일이기는 하지만, 존경받을 만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당신이 타인에게 명백한 폭력으로 작용하는 제도화된 집단 환각의 도움을 받고 있다면, 어떤 이유에서건 그런 종류의 환각에는 도무지 위안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약물의 도움을 받는 것이 왜 이상한가. 아니 중독의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라면 마약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알콜의 도움을 받는 것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물론 마약 중에는 필로폰처럼 아주 위험한 유해 약물이 있다. 그러나 유해 물질의 유통을 단속하는 것과 (치료의 대상인) 투약을 단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하물며 환각 자체를 범죄시하고 중독성이 없거나 경미한 모든 종류의 약물을 차단하는 바람에, 오히려 필로폰과 같은 명백한 유해 물질이 단지 제조가 쉽다는 이유만으로 대량 유통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골방에서 혼자 즐기는 환각은 적어도 공공연한 집단 히스테리보다는 훨씬 건강하다.


한 말씀 더.

연예인이 무슨 ‘봉’이란 말인가. 무슨 테러 조직 연루 혐의자도 아니고 반국가 활동(설마 국적을 포기하는 것이 반국가 활동이란 말인가)를 한 것도 아닌데, 순전히 자국 내의 여론 무마용으로 정상적인 외교 관계가 있는 외국민의 입국을 거부하는 폭거를 저지르지 않나, 같은 혐의로 한꺼번에 입건된 사람이 8명이라는데 모두 익명으로 처리하면서도 유독 무죄를 주장하는(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기 전까지 그에게 걸린 혐의는 단지 검찰의 주장일 뿐이다) 사람을 대문짝만하게 실명으로 떠들어대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그조차도 또 다른 거대한 집단 환각이 자아낸 마술이 아닌지 모를 일이다.

발표지면 일일문화정책동향, 2001.11.
단행본수록 만장일치는 무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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