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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적 산문  Critical essay
사회문화 비평 성격의 산문을 올려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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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들을 죽이고 있는가……
작성자 똥개

다른 말이 필요없다. 상식에 호소하자.

내가 무슨 이유에서든 더이상 삶의 희망을 잃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범법인가? 물론 아니다. 내가 자살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나의 목숨을 끊어 달라고 부탁했다. 범법인가? 위의 경우가 범법이 아니라면 당연히 범법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자신의 목숨을 끊어달라고 부탁한 것을 들어주었다. 범법인가? 논리적으로만 따지자면, 위의 경우가 범법이 아닌 이상 범법일 수가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실정법상으로는 범법이다.

다시 논리적으로 따져 들자면, 세번째 경우가 명백히 범법이려면 두번째 경우도 마땅히 범법이어야 옳다. ‘하수인’은 살인범이 되는데, 정작 그 ‘살인’을 ‘교사’한 사람은 책임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죽은 사람에게 어떻게 책임을 묻냐고? 만일 ‘미수’에 그쳤다고 가정해 보라. 그래도 ‘살인 교사’의 미수범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 그런데 문제는 다시 첫번째 경우로 소급이 된다. 만일 두번째 경우가 범법이라면 첫번째 경우도 당연히(!) 범법이어야 옳다. 하긴 그래서 형법에는 ‘자살 방조죄’라는 게 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자살할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도왔다면(심지어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음으로써 도움을 주었따 해도) 범법이 된다. 자살 자체를 범법으로 간주하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발상이다. 도대체 범법이 아닌 행위를 말려야 할 의무라는 게 있을 턱이 없지 않은가.

이건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다. ‘자살’이 어떻게 범법이란 말인가. 도대체 ‘자살’이 누구의 이익을 침해하는가. 혹시 우리가 ‘노예’라면, 그래서 ‘자살’조차도 주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면 ‘인간이 인간을 재산으로 소유할 수 있는가’를 따져물을망정, 피해자가 확실한 이상 범법일 수는 있겠다고 인정해 주지 못할 것도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누군가의 노예가 아니다!

혹은 특정인은 아니더라도 소위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가. 자살자가 많아진다고 해서 도대체 무슨 공공의 안녕 질서가 저해되는지도 모르겠거니와, 설령 그런 게 있다손쳐도 한 개인이 그야말로 ‘죽을 결심을 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서 ‘사회의 안녕’까지 고려해야 하는가. 아니 할 말로, 먹고 살 게 없어서 죽겠다는 사람이 남의 금고를 털겠다고 작심을 하는 것보다, 실연의 충격으로 죽겠다는 사람이 상대에게 보복을 하겠다고 칼을 가는 것보다, 세상을 비관하여 죽겠다는 사람이 불특정 다수에게 테러를 가하겠다고 덤비는 것보다, 그저 나 하나 조용히 사라져 주겠다는 ‘자살’이 훨씬 더 ‘사회의 안녕’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죽을 각오로 살면 못 할 게 뭐 있느냐’고?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게 ‘자살’이 범법이어야 할 이유는 못 된다. 그가 ‘죽을 각오로 악착같이 살겠다’고 노력하지 않는다고 해서 누구든 피해를 보는 것이 없지 않은가. 경찰은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가. 하루에도 명백하게 다른 사람의 생명, 재산, 신체에 구체적인 피해를 가하는 사건들이 수십․수백 건씩 넘쳐나는 판국에, 그대로 두어도 아무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색출하겠다고 애꿎은 인터넷 사이트나 뒤질 만큼 한가한가.

물론 경찰은 전혀 한가하지 않다. 소위 ‘국민의 혈세’(!)로 그들이 하고 있는 짓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런 것들뿐이다. 예컨대 ‘주민등록증’과 ‘불심검문’! 우리는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국가의 관리를 받고 있는 몸이다. 내 몸은 이미 내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초등학교 때 반공교육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수령의 명령 없이는 살 권리도 죽을 권리도 없는” 끔찍한 국가주의 사회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국가는 우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권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경찰의 ‘자살’ 단속 소동은 바로 국가가 스스로의 권력을 시위하기 위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 국가주의 사회라는 것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키기 위해 벌이고 있는 일종의 ‘이데올로기 쇼’일 뿐이다.

나는 모든 자살은 실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믿는다. 사람은 누구나 살고 싶어한다. 그리고 더 행복하게 살고 싶어한다. 인류의 문명이 바로 그 증거다. 살고자 하는 욕망이 없었다면 이 문명도 없었을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죽을 작정을 했다면, 그것은 그에게 삶의 욕망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삶에의 욕망을 죽음에의 의지가 압도한 결과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반드시 그로 하여금 더이상 삶의 욕망을 지탱하지 못하도록 몰아간 누군가가 있다. 정 ‘자살’이 못마땅하다면 그들을 ‘자살’로 몰아가는 그 누군가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우선될 일이지, 그건 나 몰라라 하면서, 끝내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만을 매도하는 것은 결코 온당하지 않다. 당신이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지 않은가.

자살하는 사람을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들을 비난할 이유도 찾지 못하겠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살아갈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좀더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 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당신은 그들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혹시라도 내 가족만 살기 위해 누군가를 더욱 극심한 절망으로 몰아간 적은 정말 없는가. 당신에게 누군가의 ‘자살’을 비난할, 혹은 그것을 (당신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권력’의 힘까지 빌어 단죄할 자격이 과연 있는가.

끝으로 ‘자살’에 대한 오해 한 가지만 바로 잡고 넘어가자. 예컨대 장가 못 간다고 농약을 마시는 농촌 총각이 그깟 색시 하나 없다고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겨울에 길바닥에 나않게 된 일가족이 연탄불 피워 놓고 자살하는 것이, 단지 집 없이 살기가 힘들 것 같아서 그 고통을 회피한 것은 아니란 말이다. 사람은 그렇게 모질지 못하다. 아무나 자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이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색시가 없다거나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아니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무슨 짓을 한다 해도 그 고통이 손톱만큼도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절망’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숱한 절망 앞에서 좀더 겸허해져야 한다. ‘자살 권하는 사회’는 내버려둔 채 방관하면서, ‘자살하는 사람’들만 나무라는 그 ‘오만하기 짝이 없는 비겁함’이 나는 역겹다!

발표지면 컬티즌, 2000.12.
단행본수록 만장일치는 무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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