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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적 산문  Critical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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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포르노
작성자 똥개

적어도 가부장적 체제가 성립한 이래로, 어느 시대라고 해서 '포르노'가 없었던 때는 없었으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포르노의 범람'을 사회적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은 적도 없는 것 같지만, '인터넷'이라는 첨단 문명의 이기가 아무런 사회적 준비도 없이 급작스럽게 일상 깊숙이까지 파고들어온 데 따른 일종의 '문화 충격'이 과장스럽게 표현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단골 메뉴 중의 하나가 '포르노의 범람'을 우려하는 목소리이다. 하루에만도 수십 건씩 메일박스를 도배하다시피하는 스팸 메일의 대부분은 사실상 '포르노'로밖에 보이지 않는 '성인 사이트'의 광고물이며, 공개된 사이트가 아닌 이른바 '개인 대 개인'(P2P) 방식으로 손쉽게 불법 유통되는 파일들의 목록에서 '포르노' 동영상도 중요한 일부분일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기도 어렵지 않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가령 인터넷이 연결된 어두운 골방에서 '성인 사이트'에 접속하거나 또는 불법으로 다운받은 '포르노' 동영상을 남몰래 탐닉하는 풍경을 그려 보이며 그것이 무슨 대단한 사회 문제라도 되는 양 진지한 표정으로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역기능을 성토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것은 거의 날조된 이미지에 가깝다. 인터넷이 존재하기 전에도 다양한 형태의 '포르노'가 존재햇으며, 그것들은 언제나 '어두운 골방'에서 '남몰래' 탐닉하는 대상이었다. 그리고 이런 물건들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도무지 알 길이 없는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블랙 마켓'을 통해 '은밀하면서도 공공연하게' 유통되어 왔다. 인터넷이 이 과정에 작용한 바가 있다면, 그것은 이 '블랙 마켓'의 접촉면을 획기적으로 확대했다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 이전에는 존재한 적도 없고 존재할 수도 없었던 '새로운' 블렉 마켓을 인터넷의 기술적 기반이 새삼스럽게 창출해 낸 것이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인터넷은 문자 텍스트는 물론 그래픽 이미지, 동영상과 사운드 등 디지탈 기호로 표현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데 묶어 '빛의 속도'로 전달할 수 있는 매체이며, 더욱이 누구나 누구에게나 무엇이건 거의 아무런 기술적 통제를 받지 않고 전달할 수 있는 매체이다. 더구나 '블랙'이건 '화이트'건 모든 시장은 스스로를 확장하려는 본질을 가지고 있으며, 인터넷을 통한 접촉면의 확대를 최대한 이용하려 한다. 인터넷을 통해 범람하고 있는 것은 '포르노'만이 아니라 실은 시장의 무한 확장을 꾀하는 소비 자본주의의 탐욕 자체이며, 여기에서 '포르노'가 유독 예외가 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다만 '블랙 마켓'의 경우, 다른 '물리적인' 경로를 이용하려 한다면 그 '은밀한' 속성으로 인해 전달의 범위와 방법에 상당한 제약이 따를 내용들이지만, 정보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신상이 서로에게 차단되어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은밀한' 가운데에서도 전달 범위가 거의 무제한이라는 점에서 얼마든지 '공공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 확대의 효과가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이는 스펨 게시물이나 스펨 메일들에서 아마도 '포르노'의 다음 순위를 차지할 만한 것이 '고리대금업'이라는 데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물론 '성인 전용' 사이트의 운영이 불법이 아니듯, 이들 유사 금융업도 그 자체로 불법은 아닐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법적으로 금지된 불법적 행위인가가 아니라 그 거래에서부터 소비로까지 이어지는 과정에 틀림없이 존재하는 '은밀함', 즉 '왠지 떳떳하지 못함'이다. 흔히 오해하는 바와는 달리, 이런 광고물들이 유독 인터넷 공간에서만 '범람'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가령 공중 화장실의 벽면을 도배하며 덕지덕지 붙어있는 광고물들과 인터넷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전송되는 스펨 메일의 내용 사이에서 어떤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주목해야 할 것은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가공할 확산성이 아니라, 그 물리적인 전달 경로는 왜 하필 '공중 화장실'일 수밖에 없는가이다. 요컨대 '은밀하면서도 공공연할 것'을 요구하는 '블랙 마켓'의 속성에 가장 잘 드러맞는 공간은 아마도 '공중 화장실'일 것이다. 이것이 마치 인터넷 자체의 문제인 양 비약되는 데에는, 인터넷에 접속하는 사용자가 '개인용 컴퓨터'라는 도구와 마주앉아 있으며, 이로 인해 전체적인 추상 구조에서 보면 틀림없이 사회적이고 공적인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조차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인식하게 된다는 사정이 깊이 결부되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포르노'를 소비한다는 것은 공식적으로는 감춰야 할 '은밀한' 일이며, 동시에 '포르노'의 소비에 관해 일종의 '공범 의식'을 공유하는 동류 집단 내에서는 접촉과 입수의 경로에 대한 지식 또는 실제 접촉 경험의 빈도와 질 따위가 자랑거리가 될 수 있을 만큼 '공공연한' 일이다. 그것은 인터넷의 출현 이전에도 그랬었고, 지금도 그러하며, 적어도 '포르노'가 계속 소비되는 한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단지 인터넷은 상대적으로 저비용으로 이 '자랑거리'들의 목록을 손쉽게 늘릴 수 있는 경로를 개방시킨 것뿐이다. 물론 '포르노'가 더이상 '은밀한'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면 특별히 그 소비가 '공공연한 자랑거리'가 될 리도 만무하지만, 이것은 사태의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그 본질적 속성에서부터 은밀할 수 없는 것은 더이상 '포르노'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누군가가 어떤 대상을 '포르노'로서 인식한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그것을 소비하든 또는 소극적으로 그 소비를 거절하든과 무관하게 이미 그 대상을 '사회적으로 공공연히 드러내서는 안 되는 은밀한 욕망'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인터넷이 아니라 다시 '포르노'이며, 좀더 정확히는 '포르노'를 소비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왜 '포르노'라고 꼭 집어 지목하지 않고 굳이 '포르노'를 소비하고자 하는 '욕망'이라는 식으로 에둘러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언이 필요하다. 나는 기본적으로 '포르노'는 허구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또는 허구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분히 주관적인 관념으로서 각자에게는 각자가 생각하는 '포르노'가 있을 뿐이며, 이 사람에게 '포르노'인 것이 저 사람에게는 '포르노'가 아닐 수도 있으며 그 반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 대다수에게 같은 의미로 통용되는 일반 명사로서 '포르노'를 정의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극단적으로 담배 같은 일상 용품에 패티쉬가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담배는 물론 담배를 연상시키는 모든 것이 잠재적인 '포르노'일 것이며 실제로 '포르노'로서 소비될 것이다. 또는 성기와 음모의 노출에 신경질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공식 기관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대다수의 '소비자'들에게 실제로 '포르노'로서 소비되거나 또는 같은 이유로 거부되는 수많은 '성인용 영상물'들은 (성기나 음모가 노출되지 않는 한) 적어도 그들이 보기에는 '사회적 유통을 차단하거나 제한해야 할' 만한 '포르노'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나는 영상물등급위원회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공식 기관들이 '포르노'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포르노'의 법적·사회적 정의와 무관하게 실제로 '포르노'로서 소비되는 것들이며, 그런 점에서 범위를 특정할 수조차 없는 '포르노' 자체보다는 '포르노'가 소비되는 양상에 더 관심이 있다. 그 대상이 무엇이건 간에, 즉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에게 전혀 '포르노'로는 보이지 않는 대상이라 해도, 누군가가 그것을 '포르노'로서 소비한다면, 거기에는 틀림없이 '일반적으로' 포르노가 소비되는 양상이 고스란히 관철되고 있을 것이다. '포르노'의 실체가 존재한다면, 정(靜)적이고 구체적인 어떤 '대상'이 아니라 바로 그 동(動)적이고 추상적인 보편성을 담지한 '과정'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어떻게 '포르노'가 소비되는지 그 양상을 보자. 인터넷의 등장으로 '포르노'가 대량으로 또한 무차별적으로 유포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식의 평가는 설령 그것이 사실의 일단이라 해도 일면적인 관찰일 따름이다. 가령 '인터넷과 포르노'라는 제목에서 거의 대부분의 독자들이 가장 먼저 떠올렸음직한 이른바 '포르노 사이트'라 불리는 '성인 전용 사이트'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무차별적으로 살포되는 '성인 사이트'의 광고물 역시 '포르노'라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일반적인 '스펨 공해'의 차원에서 다루어저야 할 문제일 것이다. 물론 합법적인 '성인 사이트'를 통해서조차 유통되기 어려운, '포르노'의 제조와 배포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형법 규정의 적용을 받게 될 '하드코어'들이 이른바 'P2P' 방식을 통해 얼마든지 무한대로 복제 전송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사실 '포르노'를 소비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합법적인 '성인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이나 불법적인 파일을 'P2P' 방식으로 전송받는 것이나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 합법성 여부와 무관하게 '포르노'는 어디까지나 '포르노'일 뿐인 것이다. 게다가 'P2P' 방식으로 교환되는 '포르노'들이 모두 합법적인 유통이 불가능한 '하드코어'들인 것도 아니다. 합법적인 '성인 사이트'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유통될 수 있는 내용들이 어쩌면 더 많을 수도 있다. 이러한 개별적인 교환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그 내용이 형사적으로 단속될 만한 수위인지 아닌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미 그것을 '포르노'로서 소비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이다. 의연히 '포르노'는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수용)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가령 공중파 방송에서조차 아슬아슬한 '성적 은유'들이 시도때도 없이 출몰하는 세상에 살면서 하필 인터넷이라는 매체만을 따로 때네어 논의할 만한 얘기거리가 남아 있기는 한 것일까. 또는 심지어 흔히 '직장의 꽃'이라는 폭력적인 이름으로 불리는 전통적인 '여사원' 역할의 존재도, 내가 보기에는 남성 중심적 직장 조직이 집단적으로 소비하는 일종의 '포르노'일 뿐이다. 오해 없기를 바라지만, 나는 이미 우리의 일상 깊숙이까지 파고들어 있는 모든 '성적 은유' 자체를 '포르노'라고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다.('포르노'의 정의가 모호한 만큼 '포르노'라는 딱지를 '정치적 공격'의 근거로 삼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비열한 태도이다.) 문제는 그것들이 언제나 '포르노'적인 방식으로, 즉 '포르노'로서 소비되고 있다는 그 양상에 주목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포르노'로서의 소비를 겨냥한 '성 상품화'로 뒤덮인 '공기'를 호흡하지 않을 방법이 없는 세상에서, 인터넷은 단지 탐욕스러운 소비 자본주의의 가장 유용한 마케팅 경로 중의 '하나'일 뿐이다. 물론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팔겠다"는 벌거벗은 탐욕만이 소비 자본주의의 전모는 아니다. "소비자의 잠재적 욕망을 호출하여 당장 원하지 않는 것이라도 원하도록 만들어 내고야 마는" 데 가공할 위력의 실체가 있다. 따라서 인터넷을 통한 '포르노'의 만연은, 이미 인터넷의 등장 이전부터 거역하기 어려운 문화적 '공기'로 조성되어 있던 '성 상품화'의 '매트릭스'가 첨단의 통신 수단을 만나 노골적으로 표면화한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사회적인 시선을 피해가며, 성인 사이트에 접속을 하거나 비디오 대여점의 성인 코너를 기웃거리거나 또는 'P2P'를 통해 좀더 '화끈한' 것을 전송받거나 심지어 앞서 예를 들었듯이 사무실에서 동료의 몸매를 슬그머니 훔쳐볼 때조차도, 이런 행위가 '음란(='포르노'의 사전적 역어)한 판타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이 공식적으로 용인되지 못하는 '은밀한 욕망'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지 애초에 그 대상이 '음란성'을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요컨대 법적으로건 또는 그보다 더 폭넓게 관습적으로건 '금지되어 있는 것'만이 '포르노'이다.(그러니 '포르노'를 금지한다는 것은 요령부득의 순환논법이다.)


그 '욕망'의 정체를 좀더 분명하게 밝히는 것은 이 글의 논제를 넘어서는 보다 근본적인 층위에서 고민되어야 할 질문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포르노'를 소비하는 행위는 물론이려니와 그것을 소비하려는 '욕망' 자체부터가 이미 성별적 권력장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철저하게 권력적인 작용이라는 점이다.(그래서 '포르노'에 대한 모든 비판적 접근은 궁극적으로 '권력 비판'으로 수렴되어야 하며, 거기에 이르지 못하고 선정적으로 변죽만 울리는 방식으로는 문제의 해결은커녕 실체의 파악에도 실패할 것이겠지만 여기에서는 상술을 생략한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어느 누구로부터도 온전히 통제될 수 없다는 점에서 흔히 '탈권력'의 징후를 매개하는 배경으로 논의되곤 하는 인터넷 매체가 오히려 바로 그러한 속성으로 인해 기존의 권력관계를 재생산하면서 접근성이 대폭 강화된 불특정 다수를 다시금 그 권력장 안으로 흡인하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수단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아이러니는 가령 흔히 누구로부터도 통제되지 않는 '표현의 자유'에 기반한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하는 매체로 평가되곤 하는 인터넷이 오히려 '폭력의 자유'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현실과 구조적 등가물이다. '금지되어 있는 것' 또는 보다 엄밀하게 말해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자신의 도덕 관념에 의해 내면적으로 이미 억압되고 있는 욕망'의 소비 자체가 '포르노'라면, 예컨대 아무 게시판에서나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내뱉는 것으로 감정의 배설을 하며 인터넷을 쓰레기장으로 만들고 있는 행태부터가 이미 실은 '포르노'이다. 비단 '성인 사이트'나 'P2P'로 전달되는 파일들만이 아니라 어쩌면 인터넷 전체가 '포르노'의 바다인 셈이다. 다만 이 틀림없는 공공 영역을 뻔뻔스럽게도 '포르노'로 소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딱한 것은 이 '은밀하면서도 공공연한' 쾌락의 질주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금지의 정도가 강해질수록 금지를 위반하는 쾌락의 크기와 그것을 소비하고자 하는 욕망의 크기만 더 커질 따름이다. 인터넷을 통한 '포르노의 범람'이라는 표피적 현상에만 시선이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중층적으로 구성된 인간의 내면과 욕망, 그 사이에서 정교하게 작동하고 있는 권력장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발표지면 미발표, 2005.5.
단행본수록 미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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