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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적 산문  Critical essay
사회문화 비평 성격의 산문을 올려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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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탄핵하고 싶다
작성자 똥개
"2004년 3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사망했습니다."

3월 12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뒤에 쏟아진 무수한 선동 구호 중의 하나를 연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흔해 빠진 언설에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다면, 그것은 3월 12일 국회에서가 아니라 3월 30일 법원에서였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아니 실은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사망 상태였으며 이 날의 사건은 단지 그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상기시킨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물론 유감스럽게도 보름 동안 '헌정 문란'과 '의회 쿠데타'를 소리 높여 성토하며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국민이 직접 나서겠다고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모여들었다던 그 '국민'들은 그때 그곳에 없었다.

대통령의 직무가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정지되었을 뿐 합법적인 대행권자가 그 직무를 차질없이 대행하고 있으며 어느 헌법 기관도 기능이 침해되지도 않았고 그럴 위험도 전혀 없는 상황을 놓고 '쿠데타'라고 과장된 수사를 늘어 놓으며 '민주 수호'의 의지에 불타던 어느 누구도, 한 학자가 반생을 바쳐 연구한 결과가 '적인가 아인가'라는 조악한 정치 논리로 난도질당한 끝에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의 이익을 좇는다'는 형사 재판의 기본도 무시당한 채 사실 관계조차 확인할 수 없는 죄목으로 징역 7년의 중형이 선고되는 폭거를 향해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입빠른 소리에 지나지 않는 말들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 해도, 그것은 그저 '비통하고 가슴아픈' 일일 따름이었다. 어느 쪽이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내용세 더 큰 위협이 되는 사건인지는 민주주의의 '민'자만 알아도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일 텐데도, 어찌된 일인지 그토록 열광적으로 분출하던 '민주주의 수호'의 결연한 의지는 온데간데 없었다.

이것은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 이후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민주주의 수호'의 요란한 구호가 실은 새빨간 거짓말이거나 얄팍한 대중 선동에 지나지 않았다는 처연한 사실을 웅변한다. 민주주의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양심의 자유를 부인하는 국가보안법에 침묵하면서, 엄연히 탄핵의 요건과 절차는 물론 그에 대비하여 헌법 기관의 기능이 정지하지 않도록 하는 명문화된 규정을 버젓이 두고 있는 대통령의 직무가 일시 정지되었다고 '헌정 중단'이라고 호들갑을 떨어대는 모습은, 그들이 내건 '민주주의 수호'라는 구호의 진정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20여 년 전 박정희라는 존재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을 때의 집단적 패닉을 연상시켰다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물론 나는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정당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정당성은, 바로 그런 경우에 그것을 판단하라고 만들어 놓은 헌법재판소에서 정당한 절차에 따라 결정할 일이다. 입 가긴 사람마다 그 정당성을 따지고 들어 힘으로(!)――그것이 설령 '국민'의 힘이라 해도!―― 해결하려 할 바에야, 도대체 무엇하러 헌법재판소라는 기관을 굳이 설치하여 '국민의 혈세'로 운영하는가. 또는 도무지 같잖은 사유를 들어 탄핵 소추라는 정치적 무리수를 감행한 국회의원들과 그들이 소속된 정당에 대해 분노하고 항의하는 것도 얼마든지 정당하다. 그들의 탄핵 소추권은 최종적인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것일 테니까. 다시 말해 나는 지금 탄핵에 반대하는 정치적 의사 표현 자체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탄핵에 반대한다" 내지는 "나는 도무지 돼먹지 못한 이유로 탄핵 소추안을 통과시킨 정당들에 반대한다"는 지극히 정당한 의사 표현과 그것을 '헌정 문란'이며 '의회 쿠데타'라고 과대 포장하여 '민주주의 수호'까지 내처 달려나간 어처구니없는 선동적 언설 사이에 명백하게 존재하는 심각한 간극에 주목하는 것뿐이다.

내가 이 부분을 특히 주목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서두에 암시한 바와 같이, '민주 수호'의 의지가 그토록 강렬한 국민들이 무려 반 세기 동안이나 국가보안법을 내버려 두고 있으며, 심지어 여론 조사를 해 보면 그 국민의 절반 가량이 여전히 국가보안법의 폐지에 반대하거나 유보적이라는 엽기적인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로부터 출발한다. 현대적인 민주 사회에서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지만, 또한 그러한 이유로 국가 권력이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에 반하여 행사될 때 그것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은 정교하게 마련되어 있지만, 정작 주권자인 국민(이 경우에는 '국민' 역시도 국가를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기관'이다)의 정치적 판단력을 도무지 신뢰할 수 없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즉 행정부와 입법부가 선거를 통해 구성된다는 것, 사법부가 여타의 권력으로부터 엄정한 독립을 유지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선거를 통해 구성된 입법부와 행정부의 권력에 의해 임명된 수장의 지휘를 받는다는 점, 또한 대의기관인 입법부가 대통령의 탄핵 소추로부터 예산 편성권과 국정 감사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행정 권력을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은 국가를 구성하는 어느 기관도 국민의 의사에 기반하지 않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질 수 없음을 의미하지만, 정작 그러한 시스템에서 역설적으로 '국민'은 어느 누구로부터도 통제되지 않는 '절대 권력'의 담지자가 되며 그것이야말로 '주권재민'이라는 근대 민주주의 원리의 핵심적 이념이다.

물론 '자치'는 그 본래적 의미에서부터 '국민'이라는 이념적 절대 권력이 현실적으로 결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질 수는 없다는 전제를 함의하고 있다. 요컨대 '국민'은 누구로부터도 통제받지 않는 절대 권력인 것이 아니라, '국민' 자신으로부터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국민' 상호간에 통제되거나 견제될 수밖에 없는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국민'이 다양한 정치적 의사를 가진 주체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전제가 현실에서 의미를 가질 때에만 실현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러한 이유로 마치 '국민'이 단일한 정치적 의사를 가진 통합적 주체이기라도 한 양 들먹여지는 '국민의 총의' 따위는 존재할 수도 없을 뿐더러 존재해서도 안 된다. 또는 만일 혹시라도 그러한 것이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도 틀림없이 누군가에 의해 적절한 절차에 따라 견제되어야만 하는 것이지 그 자체로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권력'일 수 없는 것이다. 이 자명한 이치를 무시하는 것은 '주권재민'이라는 원리에 대한 심각한 오독이며 심지어 도발적인 모욕이다.

그러니 지금 이 시대에 정작 '민주주의'를 위협하며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있는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 헌법재판소가 마땅히 수행해야 할 기능을 부인하며 '국민'이 그것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쿠데타적 발상'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며, 심지어 '국민'의 이름으로 '탄핵 반대'의 슬로건을 전유함으로써 대통령의 탄핵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1/5 가량의 '국민'들을 졸지에 '비국민'으로 내모는 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하물며 다양한 정치적 의사의 표현은커녕 그 존재마저도 말살하려는 제도적 장치의 핵심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의사도 능력도 없는 '국민'들이 어떻게 감히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절대 주권자'를 자임할 수 있단 말인가. 다시 강조하거니와 국민이 절대적 주권의 담지자일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그 '국민'이 다양한 정치적 의사를 가진 주체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사이에 상호 견제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절대적 주권'의 담지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 '절대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고 있는 '국민'들의 안하무인을 견제할 권리와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이 자리에서 그들을 '탄핵'하고 싶다. 국가보안법의 폐지에 반대하는 자, 반인권적 고문의 책임자로 지목받는 자를 대표로 선출하면서도 "다 지나간 일"이라고 강변하는 자, 대통령이 없으면 나라가 망하는 줄 아는 자, '수의 우위'만을 믿고 '국민'의 '절대 주권'을 참칭하려 드는 자, ‥‥ 이들의 오도된 '주권 행사'를 '탄핵'할 수 있는 절차와 방법을 누가 나에게 알려 달라.

내가 알고 있는 그 유일한 방법은 시민사회의 공론에 붙여 다양한 의견 간에 상호 비판과 토론을 통해 견제하고 견제받도록 하는 길뿐이며, 그것이야말로 내가 {당대비평}이라는 공론장에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게간지를 읽느냐는 지극히 현실적인 반문 앞에서 한편 참으로 무기력하고 자족적인 방법에 지나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길이 없다.
발표지면 당대비평 26호 머리글, 2004.여름
단행본수록 그들만의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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