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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적 산문  Critical essay
사회문화 비평 성격의 산문을 올려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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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밥그릇, 정치 토론을 하는 법
작성자 똥개
또 집단 히스테리의 계절이 돌아오나 보다. 도대체 일년에 두 번씩이나 왜들 그렇게 혈연을 빙자해서 꾸역꾸역 모여들어야 직성이 풀리는지는 일단 묻지 말기로 하자. 모처럼 모여 앉은 혈연 집단의 구성원끼리 공연히 세상 돌아가는 얘기 잘못 꺼냈다가 서로 얼굴 붉히지나 않으면 다행일 터이니, 그렇게 모여서는 기껏해야 고스톱이나 치며 사흘씩이나 되는 꿈같은 연휴를 허송하더라는 뻔한 비아냥도 일단은 접어 놓자. 그렇게 까닥하면 분위기 삭막해지기 십상이라는 위험을 다들 모르지 않으면서도 어떻든 명절 술자리에 정치 얘기만 한 안주거리는 또 없더라는 게 오늘 해야 할 얘기이니 말이다. 더구나 올해는 선거가 있는 해이니 어련하겠는가.

그런데 때로 ‘미숙한’ 돌출 발언으로 인해 험악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도 드물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대개는 신기하게도 아슬아슬하게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결정적인’ 충돌만큼은 용케도 피하곤 하며 다만 술안주거리로서의 사명에만 충실한 것이 또한 명절을 핑계삼아 모여앉은 이들 사이에 오가는 정치 얘기의 예정된 귀결이다. 그것 참 희한한 일이다. 혈연을 공유했다고 해서 정치적 이해가 같으란 법이 없는데도, 정치 얘기를 아예 안 하면 모를까, 정치적 쟁점에 대한 생산적이고 진지한 토론은 없다. 왜 안 그렇겠는가. 정치하는 놈들 싸잡아 욕하기에 슬그머니 부화뇌동하다 보면 잠재된 ‘갈등 요인’들은 그대로 자취를 감추어 버리는데.

명절날에나 한데 모여앉는 혈연도 ‘연고’라고 적극적인 정치 토론을 통해 ‘현장 선전’ 활동을 하고 싶은 사람이건, 가급적이면 정치 얘기는 피하고 싶지만 부득이 정치가 화제로 등장한다면 그저 남들처럼 술안주거리 삼아 대충 맞장구치기보다는 이왕이면 제대로 된 정치 토론으로 이어지게 하고 싶은 사람이건, 아무튼 생산적이고 유익한 토론을 시도나마 해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것이 내가 컬티즌의 편집진으로부터 주문받은 내용이다. 애당초 토론을 하려고 모인 사람들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가능하면 심각한 얘기를 피할 작정인 사람들이 대부분일 텐데, 나라고 해서 뭐 별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꼭 명절날이 아니더라도, 또 꼭 혈연 집단이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토론이 이루어지려면, 그리고 그것이 생산적이 되려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그것은 토론의 당사자들이 자신의 이해관게에 정직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막연하게 정치인의 이미지를 가지고 호불호를 이야기하는 것은 정치 토론이 아니다. 가십거리밖에 되지 않는 인간성에 대한 소문을 화제로 올리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상의 무료함에 넌더리가 난 복덕방 할아버지들의 몫으로 남겨 둘 일이며, 전력이나 정치적 행적을 들먹이며 짐짓 객관적인 척 싸구려 ‘품평’을 하는 것은 ‘인사 청문회’라는 이름의 정치 코미디가 전공인 ‘여의도 유치원생’들에게나 어울리는 일이다.

나아가 누구를 지지한다고 해서, 어느 정당에 투표한다고 해서, 자신한테 십원짜리 동전 한 닢 떨어지는 게 없다고 강조하는 것은 적어도 생산적인 토론을 위한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정치란 어차피 본질적으로 밥그릇 싸움이다. 한 점의 사심도 없이 정치를 논하겠다는 것은, 추호도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고 한사코 발뺌하는 것은, 실은 정치 토론을 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느 정당이 정치적으로 우세할 때 내게 돌아올 이익이 무엇인가를 숙고하고 나서, 그렇기 때문에 그 정당을 지지한다고 떳떳하게 말하라. 토론의 상대가 설령 혈연 가족이라 하더라도 그와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쉽게 각오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래야만 토론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뿐이다.

작년 대통령 선거 때, 인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후배가 몇 십 년을 줄기차게 반동 세력에 투표해 왔던 자신의 어머니를 드디어(!) 설득해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동안 정치에 대해서는 무슨 얘기를 해도 설득은 고사하고 오히려 당신 아들이 빨간 물이 든 게 아닌가만을 심각하게 걱정하시던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비결이 몹시 궁금했다. “그 정당에서 이공계 지원 예산을 인문학 지원 예산을 줄여서 마련한다는 공약을 냈습니다. 어머니, 그 사람 당선되면 저 죽어요.” 세상에 어느 어머니가 아무리 우국충정에 불타도 그렇지, 자식의 앞길을 막겠다는 정치 세력에 투표하겠는가. 정치 토론은 예컨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또는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나는 출판 산업 주변에서 종이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고, 공공 도서관 말고는 출판 산업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 나는 공공 도서관을 많이 짓겠다는 정당을 지지한다. 참고로 어느 정당은 이번 총선에 ‘공공 도서관 1천 개’ 공약을 냈다. 4천 개쯤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 희망에 턱없이 모자라는 대안이지만, 나는 그나마 비판적으로 지지할 가치는 있다고 판단한다. 이것이 내가 다른 모든 정치적 이유들에 우선해서 그 정당을 지지하는 이유이다.”

아, 그리고 깜빡 잊을 뻔했다. 남성 유권자들께서는 대청마루나 안방에서 심지어 온갖 ‘진보’적이고 ‘개혁적’이며 때로 ‘우국’적인 수사를 구사해 가며 열띤 정치 토론에 침을 튀시고, 여성 유권자들께서는 부엌에서 ‘진보’적으로(혹은 ‘개혁’적으로, ‘우국’적으로) 가열차게 설거지를 하시는 낯설지 않은 풍경을 그대로 두고서는, 그 알량한 정치 토론이 그 자체로 제아무리 생산적이라 해도 결코 ‘진보’적이지도, ‘개혁’적이지도 않을 것이라는 분명한 사실! 발언권이 제한되어 있는 토론은 이미 토론이 아니라 우격다짐일 뿐이다. ‘생산적인 우격다짐’? 그런 건 없다!
발표지면 컬티즌, 2004.1.
단행본수록 그들만의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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