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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적 산문  Critical essay
사회문화 비평 성격의 산문을 올려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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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를 꿈꾸는 당신에게
작성자 똥개
저녁 찬거리를 사러 들어간 동네 수퍼마켓 입구에 내 걸린 선전용 현수막에 큼직하게 박힌 “7억”이라는 글자. 워낙 현실감이 없어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으나, 무슨 쿠폰에 걸린 경품 액수인 모양이다. 그저 “요즘은 억대가 아니면 돈 축에도 못 드나보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실없이 웃고 말았다. 아닌 게 아니라 재산이 ‘10억’쯤은 있어야 한다며 눈이 벌개진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라는 얘기도 들려온다. 흔한 말로 “10억이 뉘 집 애 이름인가?” 자고 나면 일간지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억대 판돈의 정치 도박판을 몇 달째 구경하다 보니 다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모양이다.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노령화 사회니, 사회 안전망의 부재니, 가족 구조의 변화니 하는 뻔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생각은 별로 없다. 굳이 실업이나 노후에 대한 불안이 아니더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축적 그 자체는 부도덕한 일이 아닐 뿐더러, 별반 하는 일도 없이 웬만한 월급쟁이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거액의 급여를 ‘혈세’에서 꼬박꼬박 타먹는 것도 모자라 몇 백 몇 천 억씩을 주물러 대고 있다는 정치인들의 꼬락서니 앞에서 고작(!) 10억쯤의 재산을 꿈꾸는 알량한 배포를 타박한들 무슨 설득력이 있겠는가. 그저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스캔들인즉, 남의 눈에야 도박이든 투기든 자기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재테크’요 ‘투자’일 터인데 하나마나한 공자님 말씀 떠들어 봤자, 다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얘기’이니 오히려 맞장구치며 쌍지팡이 짚고 달려들망정 그것이 실은 자신의 ‘소박한(?) 꿈’을 겨냥한다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한 달에 1백만 원 가량의 저축할 여유를 확보하는 것조차 까마득한 일로 보이는 내게, 대체 어디서 난 돈을 종잣돈으로 굴려서 만들겠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몇 년 안에 10억의 재산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은 이미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언필칭 ‘부자’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재산을 10억쯤으로 불리기 위해 골몰한다는 ‘재테크’나, 10억이든 그 이상이든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때로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해대는 ‘돈지랄’이나 내게는 별 차이가 없게 느껴진다.

생각해 보라. 4∼5인 가족의 가장임에 틀림없는 15년쯤 일한 숙련 노동자가 연간 1300시간의 시간외 노동까지 해 가며 벌어들이는 돈이 연간 5천만 원쯤 된다고 해서 ‘노동 귀족’이라고 게거품을 물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노동력 외에 다른 아무 밑천 없이 20년쯤을 죽어라고 일하면서 먹을 것 덜 먹고 허리띠를 졸라매서 꿈이라도 꿔 볼 수 있는 금액이라야 기껏 2∼3억 정도일 것이다.

그러니까 10억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거나 또는 그렇게 벌어들인 얼마간의 여축에 대한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정당한 수준의 이자 소득으로만 그 꿈을 이루겠다는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얼마가 되었든 또 어떻게 마련하였든 얼마간의 종잣돈을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뻥튀기’할 작정을 하지 않은 다음에야 이런 터무니없는 꿈을 꿀 리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부자라고 해서 흥청망청 돈을 뿌리고 다니는 것은 아니다(그런 사람들은 특히 따로 ‘졸부’라고 한다). 전혀 비생산적인 소비로 보일 때조차도 그것은 다른 경제외적 가치에 대한 잘 계산된 ‘투자’일 때가 더 많다.

그렇다면 이미 더 이상 ‘노동력을 판’ 대가가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는 그들이 부자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부자이며, 노동력 재생산에 충당하고 남는 잉여를 도박판에 판돈 걸듯 오로지 미래에 돌아올 가치 증식을 위해 비생산적인 일에 ‘투기’하는 것이 ‘돈지랄’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돈지랄’이란 말인가.

그들이 부자가 되기 위해 돈을 굴린다는 것은 심각한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분명히 말하자. 1억도 채 되지 않는 종잣돈이 몇 년 안에 10배 넘게 ‘뻥튀기’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악질적인 고리대금업자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일이다. ‘재테크’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한다고 해서 그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물론 나는 서두에 말했듯 그것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생각은 없다. 가치는 오로지 노동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며 당신이 자신의 노동력 상품 가치를 훨씬 상회하는 소득을 올린다면(이 경우에는 ‘번다’는 표현보다는 ‘딴다’는 표현이 더 적당하겠지만) 그것은 다른 누군가의 몫을 가로챈 것일 뿐이라는 빛 바랜 경제학 교과서를 들이대 봤자, 이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자가 되어 보기로 작심한 당신에게는 비웃음거리밖에 안 될 것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나는 부자를 꿈꾸며 ‘재테크’를 모색하는 당신에게 다만 한 가지, 당신이 가난하다는, 적어도 아직은 부자가 아니라는, 그래서 부자가 되려고 한다는 그 엄청난 착각을 중지해 달라고 요구할 뿐이다. 10억을 가진 사람은 100억을 가진 사람에 견주어 자신은 부자가 아니라고 할 것이니, 지금 당신의 가용 재산이 얼마인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이 부자들이나 누릴 법한 삶의 방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덧붙여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이 부자는 아닌 것 같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애당초 부자가 아닌 ‘생계를 위해 노동력 말고는 팔 것이 없는’ 사람이 ‘강도’로 나서지 않고 ‘정직하게’ 부자가 되는 길이란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이해하기를 당부한다. 그런 강도짓은 먹고 할 일 없는 부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결코 부자가 아닌 나는, 5년쯤 뒤엔 1억쯤이나 될까 싶은 여축이나마 마련해 보겠다고 오늘도 눈이 빠져라 내 알량한 노동력을 실현하고 있는 중이다.
발표지면 컬티즌, 2003.12.
단행본수록 그들만의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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