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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적 산문  Critical essay
사회문화 비평 성격의 산문을 올려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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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언어의 세 가지 풍경
작성자 똥개
인터넷의 언어 문화를 두고 말이 많은 모양이다. 한편에서는 온갖 게시판을 쓰레기장으로 만들다시피 하며 '폭력의 자유'로 돌변한 '표현의 자유'의 슬픈 초상을 개탄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정상적인 한국어 사용자라면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도 못할 '은어'들이 활개치는 것에 '국어 파괴'를 우려하기도 한다. 나부터 말하라면 전자에는 대체로 동의하고 후자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그와 무관하게 이러한 근거를 들어 '인터넷의 언어 문화'를 함부로 재단하는 것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때로 가슴 뭉클한 감동이 묻어나는 삶의 단면이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지 않았다면 그 이야기를 전혀 접하지 못했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자아내곤 하는 것도 어김없는 인터넷 언어의 일면이며, 또한 때로 가슴 아픈 사연을 애써 털어놓고 또 그런 이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이나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조용히 덮어두는 대신 용기있게 까발려 고발하고 또 그런 이와 함께 분노하며 사회적인 연대의 길을 찾는 것 또한 인터넷 언어의 소중한 일면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질문할 수 있는 것은, 인터넷 언어가 어떻다느니 또 어떻게 해야 된다느니 하는 것들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어떤 경우에 어떻게 인터넷을 이용하여 어떤 말을 하는가일 것이다. 물론 두말할 나위도 없이, 더 많은 사람들과 열린 대화를 원할 때 우리는 인터넷을 사용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그러나 예의바르게 한다. 그럴 때 인터넷은 우리에게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대화할 수 있게 해 주는 아주 유용한 도구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 언어가 언제나 그렇게 아름답고 정겹지만은 않듯, 인터넷의 언어라고 해서 별다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 막말을 서슴지 않게 되는가.(또는 아주 심성이 고운 사람이라 어떤 경우에도 막말 따위는 결코 하지 않는다 해도, 누구에게서도 막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천국에서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주로 어떤 경우에 막말을 듣게 되는지를 뒤집어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실은 인터넷 언어가 폭력적이라고 할 때, 그것은 인터넷에만 국한시킬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상 생활에서 막말이 오가는 바로 그 상황이 실은 인터넷에서도 막말이 쏟아지는 경우이다. 예컨대 평소에 아무리 점잖은 사람도 운전대만 잡았다 하면 '입에 걸레를 물게 되는' 것은, 길바닥에서 스쳐 지나가는 다른 운전자들이 다시 부딪칠 일이 거의 없는 '낯선 사람들'이기에 마음놓고 '분풀이'삼아 막말을 쏟아내도 뒷탈이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이라고 해서 별다른 것이 아니다. 동창 모임처럼 '대면 관계'를 당연히 수반하는 커뮤니티의 게시판에서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생각하건 말건 자기 주장만 되풀이해 대는 '투정'을 좀체로 보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터넷 언어 문화의 폭력적인 일면을 충분히 우려한다 하더라도, 그 탓을 인터넷에 돌려서는 곤란하다. 실은 일상적으로 대면할 가능성이 없으며 따라서 아무렇게나 대해도 손톱만큼도 뒤탈이 없을 것 같은 '낯선 사람들'과도 얼마든지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우리가 얼마나 몸에 익히고 있는가가 문제의 핵심일 것이다. 다시 말해 한 번도 인격으로서 제대로 존중받아 본 적도 없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훈련받은 일은 더더구나 없는 사람들이 유독 인터넷에 접속했을 때만 최소한의 기본적인 예의를 발뤼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일 터이다. 그래서 예컨대 일상에서 누구에게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은 채로 아무렇지도 않게 여성/장애인/동성애자/외국인을 비하하던 사람은, '말의 민주화'에 힘입어 더더욱 안하무인으로 여성/장애인/동성애자/외국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공공연하게 떠벌이게 되는 것이다. 여전히 문제의 핵심은 우리의 일상적인 한국어이지, 인터넷 언어가 아니다.

그래도 인터넷 언어의 폭력성에 대한 우려는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우리에게 전혀 다른 차원에서나마 반드시 해결해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를 던져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이른바 '국어 파괴' 현상에 대한 우려는 기실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 역시도 우리가 일상 언어에서 어떤 경우에 일부러 특정한 사람만을 염두에 두고 그 외의 사람들은 못 알아들을 말을 하는지, 또는 어떤 경우에 다른 사람들끼리 하는 말을 못 알아듣게 되는지를 생각해 보면 간단하게 설명되는 일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는 '사투리'이다. 같은 고향 사람들끼리는 무척 정겹게 들리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도통 못 알아들을 암호문처럼 들리거나 대충 알아듣기는 하더라도 무척 이물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특정 지역의 사투리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이 없는 사람에게라면 즐거운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주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부러 다른 지역 사람을 대화에서 소외시키기 위해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그 말이 익숙하기 때문에 무심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하다 보면 사투리가 튀어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런 경우에는 잘 알아듣지 못한 사람이 그 의미를 물어오면 친절하게 다시 고쳐 말해 주기도 한다. 언뜻 보기에 제대로 된 한국어가 아닌 듯 보이는 대부분의 인터넷 언어들은 바로 이런 경우이다. 다만 우리는 말을 문자로 옮길 때는 반드시 표준어로 표기해야 한다고 배워왔고 그렇게 표기된 글들만 보아 왔기 때문에, 귀로 듣는 사투리보다 훨씬 더 낯설고 이물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나 정확한 표준말로만 일상적인 언어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듯이, 글로 쓴다고 해서 언제나 정확하게 표준어로만 표기해야 한다고 미루어 넘겨짚는 것은 일종의 미신이다. 특히나 인터넷 언어는 비록 문자의 형태를 취하고는 있지만, 글말보다는 입말의 속성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우리는 예컨대, 아이들이 들어서는 안 될 이야기들을 어른들끼리 은밀히 주고받기 위해 짐짓 아이들이 못 알아들을 법한 어려운 말로 어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아이들을 슬그머니 따돌리기도 한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으며, 어른들에게 아이들이 알면 곤란한 이야기가 있듯이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이 알면 곤란해질 이야기가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는 아이와 어른을 떠나서라도, 예컨대 남자들이 못 알아듣기를 바라는 여자들끼리의 이야기라든가, 또는 그 반대로 여자들이 못 알아듣기를 바라는 남자들끼리의 이야기라든가 하는 것들도 틀림없이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대개는 '혹 알아들었더라도 모르는 척 해 달라'는 완곡한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돌려 말하는 것뿐, 굳이 반드시 알아듣지 못하게 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아마도 그런 경우라면 조용히 불러내어 따로 이야기를 하지, 공연히 호기심만 생기도록 다 듣는 데서 공공연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저히 일종의 '사투리'로 보아 넘기기 어려울 만큼 비틀린 말들을 일부러 쓰는 것이 분명한 경우조차도 실은 바로 이런 경우이다.

일부러 그렇게 돌려서 비틀어 말하는 내용을 못 알아들었으면 그만이지 굳이 알려고 드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일이고, 알아들었다면 알아들은 대로 이해하고 넘어가면 그만이지 그것을 두고 '국어 파괴'를 걱정하는 것도 황당한 일이다. 어차피 한 사람이라도 알아듣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말을 혼자 중얼거리기 위해 일부러 시간 내어 자판을 두드리는 수고를 할 사람은 없다. 그리고 내가 그 말을 못 알아들었다면 그것은 애당초 나더러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니려니 여기면 그뿐이다. 언제나 어떤 경우에나 또 누구나 반드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만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폭력에 가깝다. 그것은 실은 나에게 분명한 용건이 있을 때에 한해서 내게 갖추어야 할 예의일 뿐이며, 이 경우 그 말을 꼭 알아들어야겠다는 용건이 있는 것은 내 쪽이므로 겸손하게 예의를 갖춘다면 못 알아듣게 말한다고 투덜거릴 일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말들을 배워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듯 다양한 양상의 말들이 한국어를 풍요롭게 할지언정, 파괴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발표지면 삶이 보이는 창, 2003. 10.
단행본수록 그들만의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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