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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적 산문  Critical essay
사회문화 비평 성격의 산문을 올려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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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
작성자 똥개
불쾌한 상상이긴 하지만, 이렇게 가정해 보자.

당신이 인터넷 게시판에서든 길을 가다 우연히 잡힌(아니면 아르바이트삼아 방청을 나간) 텔레비전 카메라를 통해서든 공개적으로 무슨 말인가를 했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 말이 상당히 '싸가지 없이' 들릴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고.(당신이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다고? 사람의 생각은 다양하니까 당신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는 지당한 내용이라도 그걸 싸가지 없다고 판단할 사람이 전혀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사람이 공개적으로 당신을 죽이겠다고, 그것도 모자라 "토막을 낼까 신나로 태울까"라는 소름끼치는 부연에, 같이 죽이러 가자고 선동까지 하며, 꼭 죽이겠다, 못 죽이면 자살하겠다고 몇 번씩이나 되풀이해 강조한다면 당신은 어떤 기분이 들까.

나부터 말하라면,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겟지만 그런 짓을 진짜로 할 만한 배짱이 있는 인간이라면 인터넷에다가 그리 요란하게 떠들어대지는 않는다는 경험칙상의 판단을 믿고, 그냥 별 웃기는 사람 다 보겠다고 '똥 밟은 셈' 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내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 사람에 따라서는 실제로 분명한 위협을 느끼거나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불쾌감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불안감을 경험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버스에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볼펜 따위를 강매하는 '깍두기 오빠'들에 대해서 냉소어린 불쾌감에 그치는 사람도 있고, 위협으로 느껴지는 사람도 틀림없이 있겠지만, 그건 어느 쪽이 다수인지 또는 어느 쪽이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인지를 판단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을 '대단한 강심장'이라고 경탄하거나 '과민한 소심증'이라고 면박을 줄 문제가 아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실제로 위협을 느낀다면 그것은 언필칭 '협박'이다.

그런데 단지 이 정도의 문제라면 나는 이 글을 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당신을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사람이 당신의 가족 상황까지 훤히 알고 있는 듯이 떠들면서 심지어 성인이 아닌 다른 가족의 안전까지 언급한다면, 설령 그것이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 흔히 주어섬기는 상투적인 말투'일 뿐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만에 하나'에 대한 불안감이 들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게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협박'에 꼿꼿이 맞서다가도 끝내 무너지는 것은 '아이들'을 들먹이면서부터라는 것은 우리가 경험칙으로 알고 있는 분명한 사실이며, 미성년자를 유괴하는 범죄가 죄질이 나쁜 것은 물론 미성년자를 구체적인 범죄 대상으로 한다는 그 사실 자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바로 그런 심리적 약점을 악용하는 반인간성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나부터 이야기하라면, 피시통신 시절부터 온갖 '테러 위협'(?)에 이골이 날 대로 나서 웬만한 위협에는 콧방귀도 안 뀌는 강심장이기는 하지만, 다른 가족, 특히나 (내게는 아직 아이가 없지만 만일 아이가 있다면) 아이를 들먹인다면 생각이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거기에는 일말의 동정의 여지도, 상황에 대한 어떠한 이해의 여지도 없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 있으며, 이것은 그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난 것이다. 나는 아마도 주저없이 그를 수사 당국에 고발하고 처벌을 구할 것이다. 혹시 다른 생각 있으신 분?

그래서 그 사람은 '협박'죄로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사람을 협박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형법 제283조 제1항) 당신이 피해자라고 가정할 때,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는가? 혹시 죄질에 비추어 선고 형량이 너무 낮은 것이 불만일지는 모르겠지만, '초범'이고 또 '깊이 반성하고 있다'니까 그쯤은 너그럽게 이해해 주자. 그리고 그 사람의 범죄 행위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피해자인 당신의 '신분'이나 '신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당신이 초등학교밖에 안 나온 무지렁이이건, 평범한 회사원이건, 고급 공무원이건, 또는 조그만 위협에도 간이 콩알만 해지는 소심한 사람이건, 웬만한 위협은 우습게 여기는 강심장이건, 그가 당신을 그것도 당신의 아이들을 볼모로 협박했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웬걸? 나와는 생각이 다른 분들이 많으신 모양이다. 협박의 피해자가 현직 검사라고 해서 '무권유죄'라는 터무니없는 억지를 쓰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말 한 마디 잘못 한 것 가지고 심하다'는 동정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후자에 대해서라면 위에서 가정법으로 전개한 상황에 역지사지해 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니 더 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원래 '협박'이란 '말'로 하는 것이니('말' 이외에 다른 수단을 쓰면 '특수협박'이 되어 죄가 더 무거워진다), '말 한 마디'라고 해서 눈감아줄 수 있다면 아예 '협박'죄에 걸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나마 '무권유죄'론에는 어느 정도의 현실이 반영되어 있기는 할 것이다. 그보다 훨씬 더 심한 협박의 피해를 받으면서도, 수사 당국의 태만한 일처리로 오히려 고발하지 않느니만 못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사람도 하나둘이 아니고, 그러한 이유로 수사 당국을 믿지 못해 고발도 못하고 고스란히 당하고도 입도 뻥긋 못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범죄에 대한 정당한 처벌이 '괘씸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만일 피해자의 신분에 따라 범죄의 처벌에 차별이 존재한다면, 모든 범죄에 대해 차별없이 대처하라고 요구해야 할 일이지 그러니까 이미 드러난 범죄를 처벌하지 말라고 하거나 '괘씸죄' 처벌로 매도하는 것은 상식 이하의 어불성설이다. 툭 까놓고 얘기해서 당신이 그런 협박 피해를 받았다면 사돈의 팔촌까지 뒤져서라도 수사 당국에 연줄을 찾으려 들지 않겠는가? 그래서 현직 수사관의 협조를 받아내서 범죄자를 처벌할 수 있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피해자와 수사관의 친분 관계 때문에 안 받아도 될 처벌을 받았다"고 억울해한다면 당신은 뭐라고 하겠는가.

나는 누구로부터도 협박도 폭행도 받지 않고 안전하게 살고 싶다. 그리고 만일 그런 일을 당한다면 나의 안전을 침해한 명백한 범죄 행위에 대해 정당한 처벌을 해 달라고 국가에 세금도 낸다. 당신은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그것은 협박 피해를 당한 어느 검사도 마찬가지이다. 제발 제 정신으로 돌아오라. 그는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협한 범죄에 대해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일 뿐, 예컨대 '부당한 권력'에 저항한 투사도 아니고, 공연히 '높은 사람'의 심기를 건드려 억울한 '괘씸죄'에 걸려든 불운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발표지면 컬티즌, 2003.5.
단행본수록 만장일치는 무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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