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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펌/프레시안] 변영주 감독 인터뷰 (2012.10.)
작성자 똥개 조회수 859 작성일 2014-02-18 19:38

원문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20928024847§ion=04&t1=n

 

요즘 내가 출판편집자에 대해 떠들고 다니는 얘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퍼옸다.

)역시 다시한번 십여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변감독과 내가 세상을 보는 결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확인한다....)

 

(상략)

나도 <밀애>를 되게 좋아해 두 번이나 봤다.(웃음) 하지만 '정치적이지 않은, 정치적으로 지지받지 않을 영화'라고 했지만, <화차>나 다른 영화들도 보면 정치적인 것이 녹아 있는 것이 분명히 있다.

영화를 만드는 것이 글을 쓰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면, 결국 무엇을 만든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건, 어떤 영화를 만들건 간에 그것을 만들고 있는 나의 시점과 신념과 뇌는 언제나 '나는 지금 2012년을 어떻게 살고 있고, 나는 어떤 인간으로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 안에 있는 거다. 정치적인 것과 전혀 상관이 없는 코미디영화를 만들더라도 새누리당 지지자와 진보신당 지지자의 영화는 다르다.(웃음) 그것은 그 사람의 정치적인 성향이 아니라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와 캐릭터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이 되는지, 하고 싶은 것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인 것이다. 채식주의자인 감독이라면 영화에 불고깃집이 나오기는 힘든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그것을 그냥 만드는 게 아니라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라는 거다.

비근한 예가 <화차>의 원작자인 미야베 미유키의 일화이다. 그는 전 세계로 책이 출간되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걸어 다니는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결혼을 하지 않고 지금껏 부모님과 함께 어렸을 때부터 살았던 그 집에서 살면서 전철을 타고 출퇴근을 한다. 어느 날 출판사에서 워낙 유명한 사람이니 납치위험도 있고 하니까 자동차를 타고 다니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운전을 배울 수 없을 테니 기사를 불러서 차를 갖고 다니라고 했더니, 일주일을 고민한 뒤에 그가 하는 말이 "미안합니다. 나는 아침에 집에 나와서 골목길을 걸어서 시장통을 지나 전철을 타고 이곳에 오지 않으면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전철에서 내가 바라보고 있던 그 사람을 상상하고 만든 캐릭터이고 시장 길을 걸으면서 봤던 어떤 풍경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그런데 차를 타고 다니면서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면 내가 글을 쓸 수 없잖아요. 납치당하지 않도록 조심할게요"라는 것이다. '그거'라고 생각한다. 생산을 한다는 것은 우아를 떨며 살롱 같은 곳에서 깊은 시름에 잠겨 있다가 어느 순간 시상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이고, 어떻게 살기로 결심했고, 그 세상을 향해 이렇게 전진할 거야'라고 결심하며 사는 어느 순간, 내 시선에 의해서 잡힌 어떤 세상이 영화가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중략)

현장에서 감독의 역할은 세 개가 있는 것 같다. 열심히 듣는 것, 정확하게 대답해 주는 것, 그리고 겁먹지 말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 세 가지만 잘한다면 영화 현장에서 성별이 문제되지 않는다. 특별히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게 있어서 영화 현장이라는 것은 힘든 편이 아니고, 실제로 한국 영화 현장은 굉장히 권위적이지 않은 편이다. 내가 있었던 현장은 아무튼 그랬다. 다른 데는 잘 모르겠고(웃음). 기본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일이 아이를 키우거나 가사 노동을 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감독의 역할 중에 '겁먹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어떨 때 겁이 나나?


어떻게 찍어야 할지 다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현장 컨디션이 바뀌었을 때 과연 어떻게 찍어야 할지 모르겠는 때가 있다. 원래 여기까지 이 장면을 찍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문제가 생겨서 지연 되는 바람에 해가 떨어지려고 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20분이고, 20분 안에 어떤 것을 찍고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하는지 고민이 될 때가 있다. '배우들은 이미 감정이 다 올라와 있고, 이것을 중간에 끊고 내일 찍자고 하면 아마 전체를 다시 찍어야 되고, 그러면 제작비도 문제가 될 것이고' 하는 수만 가지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가장 원하는 방식으로 가장 원하던 그림을 뽑아내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결심을 해야 하는데, 그 순간이 두렵다. 그때 주저하거나 비겁해지면서 겁을 먹고 물러서면 영화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중략)

문화예술계 현장 스태프들의 열악한 처우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배우들은 억대 출연료를 받는 상황에서도 최고은 작가는 배고픔에 굶어 죽어야 했던 현실이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최근에는 영화산업노조, 세종문화회관 노조, 개별 예술인 등이 함께 힘을 합쳐 '예술인 소셜 유니온' 출범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혹시 여기에 함께 참여하고 있나?

충무로 스텝들은 처우가 나쁘지 않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도 20억 원 미만의 영화의 경우에는 스텝 보수를 보장해준다. 정말 그지 같고 개떡 같고 도둑놈 같은 현장이 아닌 이상, 오버차지(시간 외 수당)도 받고 촬영하는 동안에는 4대 보험도 다 된다. 문제는 찍고 있지 않을 때이다. 영화가 촬영되지 않고 놀고 있을 때 이 친구들의 생활보장은 어떻게 하는가가 고민인 것이다. 유니온의 경우는 오히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인디들의 문제를 위해 결성된 것이다. 독립영화 현장에서 일하는 친구들이라든가 인디밴드로 활동하는 친구들은 정말로 돈을 받을 방법이 없다. 비정규직 문제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이 친구들이 어떻게 정부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이다.


감독도 사실 벌이가 일정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문화예술을 한다는 것이 때로 고통스럽지는 않나?

이제 영화도 좀 잘됐는데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웃음) 기본적으로 나는 삶이 불안정한 것이 무섭거나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해야만 하는 일을 선택한 사람과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 부모님을 부양하기 위해 직장을 선택하고 돈을 버는 사람과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사람과 삶의 안정성이 같으면 정말 거지같은 나라 아닌가? 나는 내가 삶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다.

잘 먹기도 하면서 하고 싶은 일도 한다는 것은 솔직히 웃기는 일이 아닌가. 그건 무슨 시건방인가. 그럼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겠나. 먹고 살 수 있는 안정된 길이 있다면 이런 인터뷰 하겠나. 골방에 앉아서 나올 때까지 자기 글 쓰고 있지 말이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다 먹고 살기 위해 버티며 사는 거지 않나.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걸 하고 있다면 삶이 조금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내가 지금 마흔일곱 살인데 내 집 꿈도 못 꾸고 있고 내년이면 전세금도 올려야 한다. 보험 든 거? 없다. 은행잔고? 요즘 영화가 잘돼서 몇백 단위가 좀 있다.(웃음) 기본적으로 몇십 단위다. 그런데 그래서 불행해지는 거라면 왜 이 일을 하겠나? 나는 모든 것에는 게임값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항상 내 모든 짐이 트렁크 두 개 안에 들어가길 바란다. 요즘은 잘돼서 세 개.(웃음)

'잘 먹기도 하면서 싶은 일도 한다는 것은 솔직히 웃기는 일이 아닌가'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이 없다. 오히려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생활의 안정을 누릴 수 있어야 성공했다라고 생각하는 사회다.

요즘 친구들한테 미안하다. 나도 먹고살려고 시간 강사 같은 것도 한다. 시간강사로 먹고산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화차>가 잘 되면 한 학기 또 뛰겠다고, 쓸데없는 약속을 했던 것 때문에 강의를 또 하게 되었다. 사실 애들 가르치는 것 진짜 싫다. 내가 20년에 걸쳐서 깨달은 걸, 요돈 받고 애들한테 풀어 준다는 게 막 억울하고 분하다.(웃음) 그래서 애들이 이해 못 하는 표정 지을 때 되게 좋다.(일동 웃음) 농담이고. 어찌 되었건 학교에 가서 수업을 하면 애들한테 정말 미안하다. 우리 때문에 애들이 이렇게 고생하고 있다. 우리 세대가 고생하고 세상의 모든 폭력은 다 받고 온갖 피해는 다 받은 것처럼 굴지만, 사실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적어도 우리 때보다 애들이 안 행복하지 않나. 우리는 철저하게 실패한 기성세대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이십대들이 세상을 장악해서 우리의 목을 어서 빨리 쳐버렸으면 좋겠다. 우리를 다 끌어내렸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제일 먼저 "네. 죄송했습니다" 그러면서 짐 싸들고 내려 갈 거다.

하지만, 이 미안한 것과 상관없이 요즘 청년들이 '88만 원 세대'라서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현실적 상황이 자기연민의 도구가 되면 망한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도 하면서 생활이 안정적인 것은 우리 세대들도 못해본 일이고 전 세계도 못하는 일이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복지가 잘 된 국가도 잘 못하는 일일 것이다. 얘가 가진 것을 나도 가지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모두 다 할 수는 없다. 이때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한 걸음의 전진이다. 그리고 사회가 해줘야 하는 것은 이 친구가 한 걸음의 전진을 하다가 벼랑 끝으로 떨어져 버렸을 때 죽지 않도록 밑에 안전한 그물망을 놔주는 것이다. 적어도 얘가 먹고는 살 수 있고, 자기 몸을 누일 수는 있고, 일주일에 한 번은 영화는 볼 수 있는 제도를 보장해 주는 게 사회와 세상이 해야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회가 벼랑에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게 해주는 건 보장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나무가 아무리 높이 자라도 부러지지 않는 이유가 마디와 마디가 지주대 역할을 해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감독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동일한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어 오진 않았을 것 같은데, '아~ 나는 계속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구나'라며 스스로 매듭을 지었던 순간들이 있었나. '영화를 안 만들면 죽겠구나'라고 생각하던 그런 순간들은 없었나?

영화를 안 만든다고 내가 죽지는 않는다. 나는 영화보다 내가 더 소중하다. 가끔 후배들이 "감독님, 저는 영화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하면 "영화가 무슨 죄가 있어서?"라고 한다.(웃음) 나는 영화보다 내가 세상을 올바르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들고 싶다고 느껴지는 그 영화를 만들면서 그것을 관객들이 사랑할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포기해야 할까?'라는 생각도 안 한다. 내가 만약 어느 날 영화감독을 더 이상 못하게 되면 불행해질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다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거다. 내가 만약 꿈꾸는 어떤 삶이 있고 내가 세상을 손을 잡고 걸어가려는 어떤 길이 있다면 책 대여점을 하면서 꼬맹이들한테 "야 판타지 재밌는데, 이 책 죽여~"라며 책을 권하는 걸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중략)

 

20대에 느꼈던 벽이 오히려 지금의 변영주 감독을 있게 한 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하나. 그런 면에서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류의 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일단 기본적으로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책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정말 좆같다고 생각한다. 개 쓰레기라는 생각을 한다. 지들이 애들을 저렇게 힘들게 만들어 놓고서 심지어 처방전이라고 써서 그것을 돈을 받아먹나? 내용과 상관없이 애들한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무가지로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걸 팔아먹나? 아픈 애들이라며? 아니면 보건소 가격으로 해 주던가. 20대들에게 처방전이라고 하면서 무엇인가 주는 그 어떤 책도 팔 생각은 없다. 이 세상에서 제일 못된 선생은 애들한테 함정의 위치를 알려주는 선생이다. 걷다 보면 누구나 함정에 빠지기 십상인데, 그것을 알려준다는 것은 되게 치사한 자기 위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해야 될 일은 그 친구들이 함정에 빠졌을 때 충분히 그 함정을 즐기고 다시 나올 수 있도록 위에서 손을 내밀고 사다리를 내려주는 일이지, "거기 함정이다"라고 하거나 "야, 그건 빠진 것도 아니야. 내가 옛날에 빠졌던 것은 더 깊었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영화가 하고 싶어서 막 어쩔 줄 몰라 하는 것과 대기업에 취직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 중에 더 훌륭한 선택은 없다. 누구나 자기의 선택이 있는 거다. 다만 행복할 자신은 있으시냐고 묻고 싶을 뿐이다.


(중략)

 

변영주 감독을 사로잡고 있는 화두가 있다면?

고흐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거대한 벽을 허무는 일'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것은 영화를 만들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벽을 한꺼번에 뽀개는 것이 아니라 조그만 끌로 아주 천천히, 그러나 아주 오랫동안 긁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변영주에게 자유란?

나에게 자유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디테일하게 행동하는 거다. 꿈이라는 말보다 욕망이라는 말을 더 좋아하는데, 누구에게나 욕망이 있다. 장래희망보다 '누구랑 첫 섹스를 하고 싶은가'가 그 사람의 인생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제나 욕망이라고 큰 틀에서 얘기를 한다. 욕망은 아주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않는 한 그 근원에 있는 진짜 욕망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근원에 있는 욕망을 알아내려고 할 때 내 머릿속에 누군가가 그건 아니지, 그건 잘못된 거지라고 해서 제어하지 않는 것이 자유인 것 같다. 가장 더러운 상상에서부터 가장 고귀한 상상까지 마음껏 할 수 있고 그것을 아주 디테일하게 행동하면서 내 삶에 대해서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은 이렇게 할 거고, 이건 이렇게 할 거야. 그게 싫다면 당당하게 나한테 아니라고 얘기해. 뒤에서 뒤통수치지 말고"까지를 토해내는 게 자유인 것 같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자기를 너무 특별하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슈퍼스타K> 같은 것을 보면 10대 아이들이 나와서 "저는 너무 독특해요. 저는 너무 이상한 애고요, 저는 5차원이고 6차원이에요"라고 할 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 걔랑 똑같이 말하고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은 옷을 입은 애를 나는 5분 안에 서른 명을 구해다 줄 수 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너와 내가 어디가 비슷한 것인가'이다. '너와 내가 어디가 다른가'가 아니라 '너와 내가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는가'를 찾는 것이 더 먼저라는 것이다. 그래야 '너의 어떤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그것이 연동되어져서 나의 문제도 조금씩 나아지게 되는 것을 찾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손을 잡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은 다들 자기가 독특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무서워서 그러는 거다. 스스로 무리 안에 있으면서 그 무리에서 승리할 자신이 없으니까 자기는 독특하다고 하는 거다. 핵심은 승리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 주는 거지, 애들을 가짜로 독특하다고 인정해 주는 게 아니다. 그러니 제발, 옆 사람이 나와 얼마나 비슷한가를 찾는 일, 아주 전통적인 언어로 '친구 찾기'를 했으면 좋겠다.

자기 연민이야말로 독약이다. 스스로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걔보다 불행한 사람 서른 명을 5분 안에 데려다 줄 수 있다. 자기가 얼마만큼 불행한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얘하고 나하고는 어떤 불행함 안에 놓여 있는가'를 상상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88만 원 세대'라는 것이 구조가 변해야 한다는 개념으로써는 중요한 말이지만, 이것이 당신의 핑계거리와 자기연민의 도구로써 존재한다면 당신은 우리 세대에게 끝까지 이용당하다 죽을 것이다. 자기 연민을 벗어던지고 세상을 친구들과 손을 잡고 만들어라.

그래서 트위터에 얼마 전에 이런 이야기를 썼다. "당신들이 세상을 건져서 빨리 우리들의 목을 따 달라"라고.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의 20대들이 건설하는 20년 뒤의 이곳이 내가 생각하기에 정말 못마땅할지라도 상관없다. 어떤 세상이 올지라도 박수를 칠 거고 대단하고 멋지다고 할 거고 지지할 것이다. 다만 어떤 사안들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그런데 이 부분은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떨까요?"하면서 유서처럼 남기고 갈 것이다. 후배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을 하든 지지해 주고 안전망을 마련해주고 손을 내밀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지, 그것을 구경하고 있거나 '너희들을 구원해주겠다'거나 '너희들, 인생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치사하다.

그래서 정말 <아프니까 청춘이다>만큼 엿 같은 게 '20대 개새끼론'인 것 같다. 부끄럽지도 않나. 어쩌면 마흔 살 넘었는데도 저렇게 자기 성찰이 안 되지? 얼마나 게으르면? 얼마나 꼰대길래? 또 한 가지 우리의 임무가 있다면 우리 세대들의 꼰대들과 싸우는 것이다. 그래서 빨리 젊은 친구들에게 길을 터주고 그 친구들이 신나게 걸을 수 있도록, 적어도 한 걸음 더 걸을 수 있도록 용감해질수 있는 그 어떤 것을 만들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일을 실제로 지금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진숙 씨나 송경동이 이미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고 홍세화 선생님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젊은 친구들이 '피시(PC, Politically Correct 정치적으로 올바르려고 하는)'하게 굴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홍세화 선생님이 어느 날 트위터에 "아들과 함께 대학로를 걸으며 담배를 물었습니다"라고 썼는데, "선생님 길빵하지 마세요"라고 멘션을 보내는 얘들이 있다. 도대체 이게 뭔가. 홍세화 선생님이 길에서 담배 피는 게 좋지 않다는 걸 모르시겠나. 그럼에도 그 말을 건네고자 한 이야기의 맥락이 있지 않나. 그래서 내가 "정말, 지랄 맞다"라고 썼더니, 거기다 대고 또 "지랄이라는 것은 간질환자들에게 있는…"이라는 멘션을…. 그게 중요하냐? 왜 그러는가. 왜 그렇게 우아들을 떠는가. 인생 좆같이 살면서, 맨날 다 뺏기면서, 이용당하면서 왜 이렇게 우아한 척을 해. "그래요? 지랄이 그런 뜻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랄이라는 말은 그렇게 분석하면서, 그 말에 섞여 있었던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왜 이야기 안 하는가. 그 말부터 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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